예수 그리스도의 일꾼 "수정본"
1. 본문: 롬 15:14-23
2. 명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
3. 제목: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
이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요. 둘째는 있으나 마나 하는 사람이요. 셋째는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16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일꾼이란 사역자란 뜻입니다. 여기 사역자란 의미는 오늘날에는 주로 교회 봉사자를 두고 일컬은 말이지만 바울 당시의 헬라어 의미는 꼭 있어야 될 사람, 없어서는 안 될 사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 명예로운 일꾼을 가리킬 때 쓰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가리켜서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꼭 있어야 하는 존재라는 의미를 다분히 풍기고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었으며 내가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있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나를 통해 이루어진 일과 내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나아갈 것이라고 로마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의미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일꾼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소개하여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전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은혜를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15-16절“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일꾼이란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은혜는 거룩한 특권입니다.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거룩한 특권을 받은 사람이 바로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이 어둠 속에서 죽어가는 인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살리는 거룩한 예수 님의 일꾼으로 불러 주시는 것도 또한 거룩한 특권인 것입니다. 예수 믿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특권을 받은 사람들임을 믿습니까? 바울 사도는 이방인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해서 이방인을 구원하시도록 돕는 복의 근원으로 세움 받았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통하여 우리도 예수 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예수 님을 만난 사람들은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한 동일한 예수 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나를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운명은 예수 믿은 우리 손안에 달려있습니다. 1800년대 영국의 가난한 소외 계층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전도는 단순히 많은 사람들을 예수 믿게 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 당시에 무감각하고 부도덕에 빠져가고 있던 영국 사회 속에 충격을 가했습니다. 영국 사회가 변화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강력한 복음 전도와 이웃에 대한 구제 사역, 사랑의 사역들이 잠들어 가는 영국 사회를 흔들어 깨워 영국 사회를 일대 변혁시키는 운동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의 한복판에서 있었던 사람이 구세군 운동의 창시자인 월 리람 부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1904년 영국 왕 에드워드 7세는 월리암 부스를 궁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정성 어린 치하를 했습니다. 정말 수고했소. 당신의 수고 때문에 이 사회는 달라질 수 있었소. 그러면서 앨범 하나를 내놓고 사인을 부탁했습니다. 그는 이런 명구를 남겼다고 합니다. 위대한 폐하시여! 어떤 사람의 야망은 예술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은 명성입니다. 어떤 사람의 야망을 황금입니다. 그러나 폐하시어!! 나의 야망은 사람들의 영혼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만날 때 그의 영혼은 천하보다도 귀한 가치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천하보다 더 귀한 영혼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위대한 은혜요.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은총 의식이 바울 사도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한 것입니다. 바로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도 덧입었다는 이 은혜 의식이 우리의 심령 속에서도 한 번 뜨겁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 믿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님의 일꾼이 된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7-19절 “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 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바울은 자신은 복음 전하여 이방인을 살리는 거룩한 예수 님의 일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바울이 나를 통해 주님이 하신 일에 자랑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자랑합니까? 미안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자기 자랑이 많습니다. 내가 이 일을 했다고 은근히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히 자기 자랑은 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자신을 통한 모든 일들이 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일이라고 자랑합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가 복음 전할 때 그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해서 표적과 기사도 행하셨습니다. 행 16장에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려 바울 일행을 감옥에서 구출한 기적은 성령님이 행하신 것입니다. 고후 12장에 보면 삼층천 즉 천국을 보게 되는 놀라운 경험도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는 표적과 기사만 있는 것은 아님을 아십니까? 성령의 역사에는 표적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도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여정을 기록한 사도행전을 보십시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곳마다 핍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역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을 자신의 여정을 고백하면서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했습니다. 고후 1: 8-9 “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바울을 통해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전 세계를 향해 퍼져 나갔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이 편만하게 전하여졌다고 말합니다. 일루리곤은 당시 로마 지역 끝 마케도니나 즉 오늘날 독일 접경지까지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일들은 바울 사도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바로 성령의 역사였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표적과 이적만이 성령의 역사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령의 사람 바울 사도의 일생을 보십시오. 바울 사도는 결국 복음 전하다가 체포되어 목이 잘려 순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왜 성령님께서 바울을 살리시지 안했을까? 라고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바울은 믿음을 배신하지 안 했습니다.. 순교로서 복음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가장 강력한 성령의 역사임을 아십니까? 역경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고 사람 살리는 복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이 함께한 증거인 것입니다. 항상 표적과 기사만 기다리는 신앙은 성경 적인 신앙이 아니요. 미신 행위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성령님을 무슨 인간의 도구처럼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도행전에 돈으로 성령을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하다가 저주받은 시몬과 같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어리석은 사기 꾼인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믿음과 순종이 있는 곳에 역사합니다. 예수 님을 믿는 곳에 성령이 일하십니다. 최고의 성령의 역사는 예수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것이 최고의 기적입니다. 병 고침 받은 것이 최고의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병 고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의사에게도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병 고침을 위해 기도도 하지만 의사와 약도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사와 약도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불치병을 고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최대의 병은 죄로 말미암아 자신의 주인을 모르고 마귀를 따라가는 불신입니다. 그래서 어두운 영적 눈을 뜨게 하여 예수 믿어 구원을 주셔서 죽은 인생을 살리는 것이 성령의 일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곳에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예수 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곳에 성령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은 성령님을 믿고 성령님을 통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이 함께 계시매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은 두렵지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능히 감당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3.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9절 “ 내가 너희에게 나갈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복이 무엇입니까? 한국 사람은 복하면 이 세상에서 편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생각하는 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 오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즉 물질적인 복만을 연상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물질적인 축복도 허락하십니다. 이런 축복은 믿는 자나 불신자 누구에게나 비를 주시는 것처럼 허락하시는 일반 은총입니다.. 대한민국이 이만하게 사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복이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자가 되는 것이 꼭 인생에게 복된 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한다면 그 복은 그 사람에게는 저주에 불과합니다. 여기 바울이 말하는 복이 무엇입니까? 특별 은총입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입니다. 바로 예수 님이 참 복이십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인생을 죄에서 구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님만이 죄 사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님만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길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님만이 영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님만이 천국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님이 참 복이 신 것입니다. 전도는 가장 위대한 축복을 나누는 것임을 아십니까? 아무리 효도를 해도 예수 님을 전하지 않으면 지옥 가게 만드는 것이 되니 어찌 효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자식에게 공부를 많이 시켜도 자식에게 예수 님 전하지 않으면 지옥 가게 만드는 것이니 어찌 참 부모의 도리를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잘 살아도 예수 님 모른다면 그 인생이 결국 지옥의 길로 가게 되는데 그것이 어찌 복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 님을 전하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을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 님을 믿은 것은 가장 큰 축복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나는 참으로 복된 자임을 확신하는 자리에 들어가셨으면 합니다. 예수 님이 가장 위대한 복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어찌 우리가 예수 님을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님이 자랑스럽지 않은데 어찌 예수 님을 전할 수 있을까요? 가난해도 내가 예수 믿고 이 땅에 열심히 살면 나는 진정 복된 자인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과 동시에 물질로 이웃을 돕는 것을 보게 됩니다. 롬 25-28“ 25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바울 사도는 마게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드린 헌금을 가난한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처음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처음 예수 믿고 이방 지역에까지 전하여 이제 이방인들도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이 전한 복음에 빚진 자가 된 것입니다. 이들은 종족은 다르지만 예수 님 안에서 같은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예루살렘의 교인들이 흉년이 들어 매우 어렵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의 교인들이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할 수만 있으면 저 어려운 예루살렘 지역 교인들을 도우십시다’라는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 헌금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이 아름다운 사랑을 전하기 위해 내가 예루살렘에 가겠다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과 함께 물질을 나누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물질이 필요합니다. 구제 사업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물질로 돕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초대 교회는 어려운 이웃에게 구제 사업도 병행했습니다. 한국의 유명한 학교들, 병원들은 선교사님들이 복음과 함께 세운 기관들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물질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헌금도 드리십시오. 그래야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사람 살리는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은 자와 여러분은 가장 큰 복을 소유한 자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복이신 예수 님을 전하여 사람을 복되게 하는 예수 님의 일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감당할 수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