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설교

착한 종과 악한 종

wordlove 2009. 10. 5. 08:18

1. 본문: 눅 19:11-27

2. 본문 중심 진리: 하나님 나라가 당장 나타날 줄로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열 므나 비유의 말씀을 하셨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기위해 먼 나라로 갈 때 그 종을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면서 내가 돌아 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아니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를 했는지를 보고하게 했다. 첫 번째는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그러자 주인이 잘하였도다. 착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느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리라 했다. 둘째가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리라했다. 또 한사람이 와서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두지 않는 것을 취하고 심지 않는 것을 거두는 분이심을 알고 무서워서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나이다. 주인이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겠다. 너는 내가 두지 않는 것을 취하고 심지 않는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줄 알았느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에 있는 자들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마저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하지 않는 자들은 다 죽이라고 명령했다.

3. 주제: 착한 종과 악한 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

4, 테마: 착한 종과 악한 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

5. 명제: 사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선한 종과 악한 종으로 갈라놓았다.(비교적 명제)

6. 목적: 착한 종과 악한 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조명하여 악한 종의 태도는 버리고 선한의 태도를 본받도록 하기위한 목적으로

7. 질문 제기: 착한 종과 선한 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8. 중심 단어들: 차이들

9. 전환 문장: 사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선한 종과 악한 종으로 갈라놓았다. 착한 종과 선한 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무엇인가?

10. 대지

1) 악한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

2) 선한 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

3. 악한종과 선한종이 받은 상은 무엇인가?

11. 제목: 착한 종과 악한 종

12. 복음: 예수님은 성도들이 선한 청지기로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여 이윤을 남기는 삶을 살다가 주님을 만날 것을 말씀하신다.


본문: 본문: 눅 19:11-27

이번 추석은 작년의 세계 금융위기 여파의 충격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경제도 작년에 비해 좀 나아지는 것 같고 곡식과 과일도 풍년이 된 것 같아 작년에 비해서는 좀 여유로운 가운데서 추석을 맞이하는 것 같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인 동시에 결산을 준비하는 계절입니다. 예수님께서 3년 공생애를 거의 다 마치시고 마지막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서두르고 계셨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왕의 취임식은 예루살렘 입성을 하면서 시작 되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예수님을 배웠던 제자들은 지금 다들 들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통해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참 왕이 되셔서 원수의 나라인 로마 제국 쫓아내시고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울 것을 믿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도 다 한자리 할 것을 기대하며 인간적인 꿈에 부풀어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아신 예수님께서 오늘 므나 비유 말씀을 하셨습니다. 므나는 당시 로마 제국의 화폐단위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는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와 유사합니다. 비유란 예수님 당시 보통 사람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알고 있었던 사건이나 풍습 또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아주 친숙한 생활 이야기등을 재료로 사용해서 하늘의 심오한 영적 진리를 이야기 형식으로 만들어 전한 예수님의 말씀 전달 방식입니다. 오늘 비유도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이야기이었습니다. 비유의 내용이 대강 이러합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기위해 먼 나라로 갈 때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면서 내가 돌아 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아니했습니다. 마침내 귀인이 왕위를 받아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를 했는지를 보고하게 했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그러자 주인이 잘하였도다. 착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느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둘째가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리라 칭찬했습니다. 또 한사람이 와서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당신은 엄한 사람이라 두지 않는 것을 취하고 심지 않는 것을 거두는 분이심을 알고 무서워서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나이다. 그러자 주인이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겠다. 너는 내가 두지 않는 것을 취하고 심지 않는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줄 알았느냐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에게 있는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마저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하지 않는 자들은 다 죽이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의 비유 말씀입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을 기대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 내가 다시 와서 하나님 나라를 세울 때까지는 너희들이 할 일이 있다. 비유속의 종들처럼 주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열심히 봉사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이윤을 남기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다가 어는 날 갑자기 주님을 만날 것이며 모두가 자기 인생의 회계 보고를 다 해야 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악한종과 착한종이라는 두 종류의 종으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비유의 핵심 주제는 사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선한 종과 악한 종으로 갈라놓았다는 것입니다. 착한 종과 선한 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1. 악한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는 무엇입니까?

먼저 무책임했습니다. 눅19:20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고대에는 은행제도가 발달하지 못해 이윤은 없어도 가장 안정하게 재산을 숨기는 방법 중의 하나가 남몰래 땅을 파서 재물을 묻어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악한 종은 주인으로 받은 돈을 가지고 장사한 것도 아니고 은행에 맡긴 것도 아니고 또 땅에 뭍은 것이 아니라 자기 수건으로 싸 두었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언제 도둑놈이 들어와서 주인이 맡긴 그 돈을 훔쳐 갈지 모릅니다. 그 보고를 들은 주인이 악한 종이라고 책망했습니다. 이 종은 참으로 책임감이 없는 종임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무책임한 종이기에 주인으로부터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들은 것입니다. 무책임한 종을 좋아할 주인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종은 주인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눅19: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눅19: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이 악한 종은 자신을 믿고 귀한 돈을 맡긴 주인을 불신하고 있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을 맡길 때는 가장 신임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주인이 여러 종들 중에서 그래도 이 종에게 믿음을 주어 그를 선택하여 귀한 돈을 맡긴 것입니다. 주인이 이종을 믿어주었다는 것은 종에게는 영광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이종은 철저히 주인을 불신하고 있었습니다. 이 종은 자신에게 귀한 돈을 맡긴 주인을 엄한 사람으로 또 무서운 사람으로 불신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인에 대한 일종의 배신행위입니다. 믿는 놈에게 발등 찍힌 꼴이 된 것입니다. 또 이 종은 주인을 악인으로 매도하고 있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무서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종이 한말의 의미는 주인이여! 당신은 남의 돈을 착복 잘하는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주인에게는 황당한 말입니까? 주인을 악하게 여기는 이 종이야말로 주인입장에서 보면 악한종임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 종이 악한 종이라는 책망을 받은 데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종은 주인을 자신의 참 주인 즉 왕으로 섬기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눅19: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백성들은 이 주인이 자신들의 왕 됨을 원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종은 그런 백성들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은 주인의 것을 잠시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주인의 신하요 머슴입니다. 그러나 이종은 자신이 주인의 청치기 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나는 주인의 청지기라고 입으로는 조잘 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신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자신을 지어시고 구원하신 예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고 자신이 주인 되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또한 이런 분류의 사람들입니다. 인생들이 자기 자신이 자신의 왕이라는 그 결정적인 증거가 무엇입니까? 주인이 주신 사명을 잃어버린데서 나타납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신 생명, 은사, 모든 능력을 가지고 주인의 일을 하도록 맡겼는데 그것 다 망각하고 모든 것이 다 자신의 것 이냥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사명을 망각한 이 악한 종의 영적 자손들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잃어버렸습니까? 이 종은 곧 주인이 다시 올 것이라는 약속을 믿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종말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인생의 짧음을 망각하면서 삽니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으로 착각하면서 삽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 중 어리석은 부자가 많다고 합니다. 주인이 주신 재능, 건강, 가지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모았습니다. 이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 자신이 잘라서 이룬 것으로 자신의 것으로 자신의 육신의 만족만을 위해 삽니다. 자신의 영광 유익만을 위해 삽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사용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주인의 것을 주인을 위해 사용하는데 아주 인색합니다. 주인의 것은 마치 자기 것 이냥 생색을 냅니다. 사용해도 하는 둥 마는 둥 태만합니다. 주님은 이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성경은 주의 일에 게으른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성경은 비전이 없는 자는 방자하게 산다고 말씀합니다. 비전이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없는 인생은 결국 방자하게 삽니다. 방탕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자신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악한 종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 악한 종의 길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묻습니다. 여러분의 생명, 은사, 재능, 물질, 자식, 건강 등등은 누구 것입니까? 여러분 자신의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의 것입니까? 예수님의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주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니라고요 흉내만 낸다고요.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사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선한 종과 악한 종으로 갈라놓았습니다. 착한 종과 선한 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2, 착한 종의 사명에 대한 태도는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은 주인의 것을 맡아 잠시 관리하는 청지기임을 분명히 의식하는 사람입니다. 눅19: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님! 당신의 것으로 열심히 장사해서 열배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5배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이 종들은 자신의 모든 것은 주인의 것임을 분명히 먼저 고백합니다. 주인님의 것으로 봉사했을 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당신의 은혜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을 듣자 주인은 잘 하였도다 착한 종아! 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 종은 자신은 주인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사명자임에 대한 의식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이 종들은 자신은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후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 직전 베다니 마을 가까이 와서 제자들에게 마을에 들어가서 아무도 타보지 못한 나귀가 있을 것인데 그 나귀를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어찌하여 푸느냐고 물으면 주가 쓰기겠다고 해라고 했습니다. 영문도 잘 모르는 제자들이 마을에 가보니 정말 나귀 새끼가 있습니다. 그래서 줄을 푸니까 나귀의 임자가 왜 나귀 새끼를 푸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대로 주가 쓰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나귀 임자도 아주런 또를 달지 않고 순순히 허락했습니다. 마침내 그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시여! 그날 참 주인이신 예수님에게 자신의 등을 드린 그 헌신으로 말미암아 나귀 새끼마저 사람들로부터 크게 환대를 받았습니다. 비천한 나귀 새끼도 예수님을 태운 덕분으로 사람들로부터 환영 받았습니다. 참 주인이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섬기면 하나님은 그 인생마저 높이시는 것입니다. 아멘! 무엇보다 이 종이 착한 종인 된 것은 작은 일에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17절에서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의 일에는 작은 것 큰 것 없습니다. 주인의 일은 믿음으로 하면 모든 것이 다 큰일임을 아십니까? 제가 교회당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일주일에 한번씩 합니다. 기쁨으로 합니다. 주님의 일이기에 믿음으로 합니다. 충성은 변함없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큰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주님의 일임을 믿음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으면 하고 나쁘면 그만 두고 하는 것은 참 충성도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환경에 따라 변화는 봉사는 충성도 아니고 믿음도 아닙니다. 어쩌다 한번 하는 것은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께서 나를 믿고 사랑하셔서 나에게 귀한 봉사 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은혜를 놓치지 말자 주님의 일이라는 변함없는 충성은 주님을 만날 날이 가까웠다는 종말 의식이 있는 믿음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착한 종의 길을 가고 있나요? 나의 나 된 것은 다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감사함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는 삶이 여러분의 인생 목표입니까?


3. 악한종과 선한종이 받은 상은 무엇입니까? 

모든 종들이 주인에게 각기 결산 보고를 다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으로부터 받은 상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악한 종은 먼저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자라고 소리를 들었는지 몰라도 자신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으로부터 받은 은사마저 빼앗겼습니다. 작은 일에 게을리 한 이유 때문입니다. 주님이 맡겨진 봉사를 게을리 하면 주님이 그 축복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십니다. 그리자 그 악한 종의 인생은 결국 쪼그라들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약게 굴지 마십시다. 그리고 자신을 지으시고 구원하러 오신 왕이신 예수님을 거부한 이들은 결국 자신의 죄 때문에 심판 받아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영원히 후회하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선한 종은 주인으로부터 착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더 큰 권세를 받아 누리게 되었습니다. 더 큰 은사를 받았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니 더 큰일을 주인이 맡겼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은 사실 나를 풍성하게 만드는 축복의 도구임을 아십니까? 작은 일에 충성하니 하나님은 이종을 더 풍성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이 선한 청지기로서 이땅에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여 주를 위해 이윤을 남기는 삶을 살다가 주님을 만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악한종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착한종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오늘 주인이 맡기신 사명에 대한 저와 여러분의 태도에 따라 우리 인생의 총 평가는 달라 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