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하는 자 "수정본"
1. 본문: 요일 2:22-23,25,28
2. 명제: 적그리스도는 거짓말하는 자다.
3. 제목: 거짓말하는 자
1. 갈등
오늘은 우리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먼저 22절“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에서 사도가 적그리스도를 거짓말하는 자라고 거침없이 지적합니다. 요한 사도는 사랑의 사도라고 불릴 정도로 사랑을 많이 강조했는데 어떻게 교회를 떠나도록 유혹한 자들을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정죄할 수 있을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관용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은 이런 강한 어조의 언어나 논쟁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현대적 사고방식 때문에 요한이 사용하는 거짓말하는 자라는 표현은 우리 귀에 너무 심한 어감으로 전달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분문이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은 어투들은 신약성경의 특징입니다. 바울 사도도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사용한 언어들을 보면 갈 1:8“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보다 더 강한 어조는 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또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매우 강한 어조의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바리새인들을 향해 눅 3: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라고 했고 주님도 바리새인들에게 마 23:27에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연민의 정 때문에 감상 적이 되기 쉽고 따라서 교리에 있어서는 희미해지기가 쉽습니다. 신약성경은 자신을 위해 참아내는 것과 진리가 공격을 당할 때 처신할 것에 대해 명확하게 구분 짓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개인적 감정에 관한 한 무엇이든지 참아내야만 합니다.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진리에 관한 한 그리고 진리에 관계되는 한 복음의 본질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한 우리는 강하게 맞서서 거짓말하는 자와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에 관해서는 억울한 일이나 어려운 일을 당해도 관용하고 사랑으로 받을 수 있으며 세상이 나를 업신여기고 못되게 굴며 핍박해도 꿋꿋이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이나 하나님의 영광에 본질적으로 관계가 있는 진리의 문제에 관해서는 어떤 타협도 그러한 의견을 수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요한이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라고? 표현한 것과 같은 입장을 취해야만 할 것입니다.
2. 갈등 심화
하지만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논쟁할 때에 분을 내며 ”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 “는 말씀에 부합해 화를 내는 것이라고 스스로 설득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 되는 진리에 대해서는 요한과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같은 그리스도인끼리와 피차간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도 역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선지자의 예언 중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에 관해서는 우리가 취하는 어떤 특정한 예언적 관점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강하게 정죄하는 듯한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지극히 핵심적인 진리의 교리에 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과 진리를 구별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확실한 태도를 취해야만 하는 핵심 진리와 다소간의 견해 차이가 있을 수도 있는 내용과도 구별해야 합니다. 결론은 요한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매우 핵심적이고 중요한 진리라는 사실과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이와 같은 강한 어조의 자기 의견을 표현한 것입니다.
3. 전환
그렇다면 요한은 왜 적그리스도 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했습니까? 답은 이러합니다. 적그리스도들이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미 21절에서 ”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고 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가르치는 내용이 사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 요한은 자신의 가르침의 본질인 생명의 말씀에 대해 요일 1:1-2“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근거로 해서 그는 “ 이들은 내가 직접 목격하고 증거 하는 사실들을 부인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거짓말쟁이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다른 사도들이 변화 산 상에서 주님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야곱이 변화 산 상에서 주님과 대화를 나누시는 것을 보았으며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는 하늘로부터의 음성도 들었습니다. 요한은 이들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는 모순되기 때문에 거짓말쟁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영원하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있는 인간 예수를 떠났기 때문에 실제로 죽은 자는 인간 예수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돌아가실 때에 그곳에서 직접 보았고 그분이 부활하신 후에 숨어 있던 제자들과 도마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를 넣어보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영은 내가 갖고 있는 것과 같은 살과 뼈가 없으며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사실들에 대해 나 자신을 증인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할 수 있으며 그분이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신 것도 역시 보았다. ‘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같이 가르치지 않는 어떤 것도 거짓말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도들의 증언 외에 다른 것은 모두 사실을 왜곡시키는 거짓 가르침이며 독생자가 이 땅에 성육신 했다고 친히 증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런 것을 믿으면 좋지 못한 결과가 있을 것이니 피하라고 강력하게 요청합니다. 그 자체가 사실이 아닐 뿐 아니라 ”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먼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아들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말인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교리를 부인하는 말이 됩니다. 이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빌 2장에 기록된 모든 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빌 2장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 님에 대해 ”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라고 기록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영광을 포기하고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시어 종의 형태를 취하셨다. ’고 했는데 이런 모든 것은 잘못된 기록이 됩니다. 성육신이 더 이상 사실로 존재하지 못한다면 그분의 출생과 죽음에 관계되는 영광과 기이함과 신비함 등 모든 것도 단순히 설화가 될 뿐입니다. 말구유에 누워 있던 아기로서의 예수 님은 단순 인간이었을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동정녀 탄생과 그 외의 다른 어떤 기적도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는 다른 아이처럼 평범한 아이였으며 성인이 되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실 때 영원하신 그리스도가 내려와서 잠시 동안 그에게 임재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는 그를 떠났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러합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성경의 핵심이 되는 성육신의 교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상실하게 되고 그분에 관한 모든 가르침도 거짓이 됩니다. 이런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도 거짓말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님은 아버지에 의해 따로 세움을 받고 맡겨진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무한대로 성령의 기름 부 음을 받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사역을 위해서입니까? 바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사역을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가 받아야 될 징벌을 감당하시고 세상의 죄들과 고통을 지시는 사역입니다. 그러고는 우리의 대언 자로서 우리를 위해 하늘에 계시려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 예수를 진짜 떠났다면 이 사실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구속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영원한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이는 어떤 사람도 이루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아들만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분이 인간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 떠났다면 우리는 여전히 율법 아래 있으며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을 수밖에 없으며 죄 사함도 있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여전히 죄 가운데서 사함받지 못한 멸망의 자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됩니다. 아직도 여러분은 요한 사도가 이들을 거짓말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됩니까? 우리는 구원을 도둑질하고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훼방하는 어떠한 것이든지 거짓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최선을 다해 비판해야 합니다. 이런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그분의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교리를 부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역시 거짓말쟁이라고 합니다. 그는 ”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랴“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상태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교리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버지를 아직 모른다는 말이며 하나님을 상실했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을 그저 막연하게 필요할 때 나를 도우시는 힘 또는 어떤 능력 정도로 믿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 님을 떠나서는 하나님에 관한 참된 지식을 찾을 길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조물주가 있거나 눈에 보이지 않은 어떤 영향력이 있다고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들을 알지 못하고는 결코 아버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따라서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를 부인하는 자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요한은 다른 가르침을 거짓말쟁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아들을 빼앗아 가려는 자들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빼앗아 가려는 자들이며 결국 우리가 어둠 가운데 하나님을 찾으려고 더듬던 이전의 위치로 돌아가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기도할 때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 또 마 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신다고 하셨으며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것을 이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적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옳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실 수 없으며 단지 두려워할 정도의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들은 부인하는 것은 아버지를 부인하는 것이 되는데 이는 아들을 통해서만 아버지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가르침을 따른다면 요한이 그리스도인에게 제시하는 매우 귀중한 위로 즉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 역시 사실이 아닌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 됩니다. 만일 이것이 참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 살면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기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며 대적 마귀의 세력에 대항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사도 요한은 강한 어조를 사용하여 그들은 비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잘못된 가르침은 아들과 아버지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또한 삼위일체의 교리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 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될 때만이 삼위일체 교리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 믿음에 관계되는 교리를 이해하는 문을 열어 주는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들을 안다고 말하기 전에 아버지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한 우리가 아들과 아버지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때에 아버지와 아들에 의해 보냄을 받은 성령의 교리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하시며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교리를 부인한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이 됩니다. 구원을 계획하신 아버지와 구원 계획을 성취하시기 위해 오신 그 아들과 이 구원 계획에 눈을 뜨게 해 주어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 사역이 실제화되도록 도와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모두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들을 부인하는 것은 아버지를 부인하는 것이며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것은 성령을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런 엉터리 가르침은 거짓된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4. 대단원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결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25절”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그분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바로 영원한 생명이다. 거짓말을 믿지 말라. 그것은 여러분에게서 영원한 선물마저 빼앗아 가버립니다. 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는 속지 말라. 그들은 진리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 거짓 가르침을 믿는다면 주님을 뵐 때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계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 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올 것이기 때문에 그날을 즐거워하기 원한다면 그분을 대할 때 확신을 가지기 원한다면 ” 주 예수여 어서 오소서 “라고 말하기를 원한다면 이런 거짓된 가르침을 피하고 진리에 굳건히 서야 합니다. 진리가 여러분 안에 거한다면 주님의 재림이 두렵고 놀라운 일로 다가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그날을 즐거워하며 영광을 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얼굴을 확신을 갖고 대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