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한 삶"수정본"
1. 본문: 요일 3:3
2. 명제: 성결한 삶의 비결은 그리스도인 자신이 누구이며 주어진 영광의 길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3. 제목: 성결한 삶
1. 갈등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의 놀라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현실로 되돌아왔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가기 전에 영광된 삶을 마음껏 즐기기 전에 아직 몇 가지 남은 것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육신에 거하며 우리를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절에서 우리에게 기다리는 영광된 삶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것은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른 것과 같습니다. 산의 정상에 올랐다면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는 장차 영광된 자리에 갈 꿈과 소망을 가진 자로서 이 땅의 현실 가운데 들어가 꿈과 소망을 매일의 삶에 적용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요한은 3절에서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밤이 낮을 따라오듯이 3절은 2절을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다시 말해 2절 말씀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가를 입증하는 것은 3절 말씀을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 지로 입증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 생활에서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 깨끗하게 해야만 한다. ”라는 식으로 기록하지 않고 오히려 “ 깨끗하게 하느니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확실하게 철저하게 테스트할 수 있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2. 갈등 심화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실행에 옮기는데 그리도 자주 실패할까요? 대답은 우리의 믿음의 결함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진짜 문제는 행함의 영역에 있다기보다는 믿음의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궁극적 방법은 행함으로 옮길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교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뿐입니다. 이것이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결 즉 성화의 내용에 관해 신약 성경이 가르치는 방식을 살피지 않고서는 이 구절을 올바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신약 성경에 의하면 성결 즉 성화는 교리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성결 된 삶을 이해할 때 단순하게 성결된 삶을 사는 것이라는 차원에서만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식으로 성결 된 삶을 이해했던 것이 수도원 운동이나 금욕주의 운동으로 결국 핵심을 잘못 잡고 옆길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이들의 문제는 성결을 그 자체로만 이해하려 하여 성결한 삶이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삶의 종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이 그 성결된 삶 안에 들어가야만 얻을 수 있는 어떤 것 정도로 생각한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절대로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결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며 교리를 이해한 후에 자연스럽게 뒤따라오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위치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소망에 대해 말하고 나서 성결과 성화에 대해 즉 그리스도인의 행위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성결해져야만 하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영광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이유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차원에서의 성결 된 삶을 생활에서 행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결을 그 자체의 어떤 것 정도로 생각한다면 나름대로 규율과 규칙을 만들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아주 사소한 것에 관심을 쏟게 될 것이고 자기도 모르게 율법주의적 사람이 될 것이며 동시에 많은 의무를 지켰다는 것으로 인해 자신의 의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본질을 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결이란 무언인가가 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하도록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누구인가를 알고 있음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해야 될 일을 한다는 것이 성결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선하고 성결 된 삶을 살지 않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성결 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나는 천국 가기 위해 성결한 삶을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는 천국에 갈 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합당한 성결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본문에서 이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나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땀 흘리며 기도하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 사실에서부터 출발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자입니다. 나는 그곳에 가도록 부름받았다는 확신과 하나님이 그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날 것을 알기 때문에 그분을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차원에서 성결의 삶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다음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결의 삶 즉 성화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즐기며 꼭 도달해야만 하는 더 높고 더 행복한 삶이라고 이해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이 자동 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삶으로서 이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성결 즉 성화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결의 삶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누구든지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교리를 참으로 이해했다면 그들은 예외 없이 성결의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성결의 삶은 특별한 것으로 분류된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나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성결의 삶은 그리스도인이 받은 것을 필연적으로 밖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들은 성결의 삶 즉 성화의 삶을 행하는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선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선물로 받았듯이 성결 또는 성화의 삶도 역시 선물로 받아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오거나 특별하고 예외적인 축복을 갑자기 받았다거나 하는 식으로 성결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과 우리를 기다리는 기업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나는 죽음 후에 나를 기다리는 영광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나는 “ 이제 이런 빛 가운에서 나의 삶을 가꾸어 나가라. 그리고 주님이 정결하신 것처럼 너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 ”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성결이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고 노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빌 2:12-13“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런 말씀이 있기 때문에 성결의 삶은 노력해야만 합니다. 성결이란 신비로운 경험처럼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주장하는 진리를 완성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2절 말씀을 믿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영원한 영광의 자리에 나아가는 자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요한이 ‘나타나심’이라고 표현했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왕 중의 왕으로 그리고 만유의 주로 오시리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주님이 이 땅에 심판하러 오셔서 모든 악한 것을 온전하게 제거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가 그러한 영광중에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을 믿는다면 더 나아가 그분 모습 그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될 것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다면 우리의 육신이 영화롭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가 흠 없이 점 없이 주님의 거룩하신 존전에서 그분과 영원토록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이와 같은 모든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성결 즉 성화는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3. 전환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 주님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를 강조합니다. 이 말은 그분이 재림 때 주님의 능력 가운데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을 덧입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의 죄악 된 몸을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을 수 있는 소망이며 주님이 이 세상으로 가지고 오실 모든 것과 그분이 행하실 모든 것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소망입니다. 그러기에 이 같은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성결케 하려고 노력합니다. 성결케 하다는 단어와 깨끗하게 하다. ‘라는 단어에는 차이가 납니다.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두 단어의 차이점은 외적 행위와 내적 행위와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깨끗하게 씻는다는 말은 겉으로 보이는 악과 오염된 것과 모든 무가치한 것으로부터 구속받는다는 뜻입니다. 반면 정결케 한다는 뜻은 우리 안에 영적이고 마음의 본질적 성품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정결케 한다는 뜻은 나를 지배하는 죄의 결과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의 본성 가운데 있는 그리고 나라는 존재 자체에 도사리고 있는 죄를 피할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자신을 과거에 지은 죄악들로부터 분리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내 삶 전체를 통해 최선을 다해 죄를 피하고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내 안에는 그리스도와 같이 되려는 소원이 있습니다. 주님 자신과 같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그냥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분이 성결했던 것처럼 나도 성결해지려고 노력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정결케 하다는 말의 전체 뜻입니다. 자신을 정결케 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 싶어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거하는 죄인들보다 조금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생각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또 한 주님을 알기 전의 모습보다 조금 더 괜찮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 나는 어둠을 사랑하고 빛을 미워했던 과거의 품성을 버리고 빛을 사랑하며 어둠을 미워하는 품성을 갖기 원합니다. 나는 나의 존재 자체가 그리스도와 같이 되며 그분을 즐겁게 해드리는 자가 되고자 하는 긍정적 소원을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합니다. 요한에 의하면 이런 것이 그들을 기다리는 영광의 약속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같이 행할 수 있을까요? 요한은 수동적이기 보다 적극적 과정을 말합니다. “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은 저절로 성결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스스로를 성결케 하는 의미로 말합니다. 즉 적극적인 역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저 노력과 수고를 하지 않고 자신을 내어놓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고후 7:1 “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우리는 게으르고 피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 우리보다 앞서간 사람들과 같이 앞에 있는 소망을 바라보며 부지런히 열심히 우리 자신이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노력해야만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과 성령이 내 안에 내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자신을 성결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와 같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면 주님에 대해 늘 관심을 갖고 바라봄으로써 그분의 완벽한 삶을 바라봄으로써 우리 자신을 성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구원의 목적은 우리로 “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부르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며 구원의 목적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이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서 사셨는가를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 나는 주님과 같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분을 늘 생각한다. 나는 어떠한 곳을 향하여 나아가는지를 알기 때문에 내 삶의 현장에서 그런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골 3: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여기서의 행위는 무엇입니까? “ 위의 것을 생각하고 ”입니다. 성경을 매일 읽고 기도하며 여러분을 기다리는 영원한 영광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있는 여러 가지 일에 여러분의 마음을 고정하지 말고 그러한 욕망을 진지하게 거절해 보기 바랍니다. 고후4:17-18“ 고후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이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 위에 있는 지체를 죽이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4. 대단원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을 이처럼 성결하게 하는데 어떠한 동기와 격려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리고 영광의 하늘나라에 나아갈 것을 믿는다면 이 땅 위에서의 불확실한 인생을 어느 날엔가 마감하고 그 순간 영광중에 그리고 온전하심 가운데 계신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와 같은 때를 대비해 나 자신을 준비하고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 아닙니까? 우리가 부름받은 삶과 대조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엉터리며 어리석은 행동일까요? 또 한 다른 동기는 영광의 자리에 도달하게 될 때 우리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일 2:28“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이 땅의 지저분하고 무가치한 여러 잡다한 것들을 갖지 않도록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할 좀 더 강한 이유는 우리가 그분과 같이 되려는 긍정적 소망을 가져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러 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소망으로 활기찬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향한 경의의 표시이며 사랑의 표시이며 감사의 표시입니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쓸데없는 데 소모하지 말고 가능한 언제든지 주님과 함께 있도록 노력하며 언제나 그분을 대면하며 살아야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뒤의 것은 잊어버리고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어진 모든 순간을 다 사용하여 살아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