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love 2021. 7. 5. 06:02

본문: 고전 4:20

명제: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

제목. 능력

 

1. 갈등

하나님 나라의 또 다른 면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보십시오. 고린도는 상업적인 항구 도시였으나 동시에 헬라의 모든 도시처럼 학술원과 토론장, 사람들이 철학을 논하는 지적인 시민이 많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고, 그러나 그 고린도 교회에 문제가 생겨서 바울은 편지를 써야 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첫 번째 문제는 고린도 교회의 몇몇 사람들이 바울의 외모를 걸고넘어졌습니다.. 이들은 " 그 사람은 몸이 너무 약해! "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바울의 말투도 비난했습니다. 저 사람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만 이야기한다니까! 자신의 견해와 관련된 폭넓은 철학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 저 사람의 가르침은 너무 단순해서 거의 초보적 수준이야. 유치해 보여!'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교만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지금까지는 여러분에게 갈 형편이 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갈 것입니다. 내가 가면 여러분을 시험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말이 아니라 여러분의 능력을 시험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또는 기독교나 기독교의 메시지는 지적인 관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의 메시지와 시각은 인간과 삶과 죽음과 존재의 의미와 목적을 말하는 다양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인생철학으로서 성경에 관심을 갖습니다. 이들은 책을 읽고, 강의에 참석하고, 토론에 귀를 기울이며, 기독교에 관한 끝없는 논쟁에 뛰어다닙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와 기독교를 지적인 관심의 문제로 축소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와 기독교는 지적인 관심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지신은 항상 기독교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것이 기독교가 아닐까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에 관해 이 부분을 언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구성원이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구성원이 되려면 교회의 가르침을 매우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믿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사도 바울을 어떻게 비난했던지 간에, 이들의 신앙은 전체적으로 정통 신앙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단순히 지적인 동의라면, 하나님 나라는 능력이 없으며 세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회 일에 매우 열심인 교인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신앙고백에 동의하며, 주일마다 신앙고백을 암송합니다. 이들은 교회 일에 대한 열정과 열심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전혀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 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을 다스리며,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는 것입니다. 능력 증거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말에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족이나 동료 교인들은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 시대에 기독교에 관한 말이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그 속에 능력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주일에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주중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기독교를 항상 이렇게 비판합니다. 세상이 기독교에 등을 돌리는 이유는, 기독교가 말만 앞세우며 구태의연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너희의 증거가 이디 있나? 너희의 능력이 어디 있느니? 교회가 해놓은 것이 무엇이냐? 기독교의 메시지는 이 세상에 들어온 가장 큰 능력의 선포이며 역사입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만큼 개개인의 삶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없습니다.

 

2. 갈등 심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를 지배하십니다. 2021년이라는 연도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세상 역사를 읽어 보면, 기독교가 세상을 일깨운 가장 큰 힘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철저히 이교도 제국이었던 로마가 3백 년도 못 되어 기독교 제국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독교는 단순히 말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기독교는 책을 쓰거나 논쟁하거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철학 용어들을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행위입니다. 대로마제국이 무너지고 나서도 수 세기 동안 그 문화의 명맥을 이어 갈 수 있었던 것은 교회와 기독교의 메시지 덕분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실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독교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를 바꿔 놓았습니다. 교회사에서 있었던 몇몇 대부흥의 이야기는 거의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위대한 의사가 레키 william E. H. Lecky는 프랑스가 피의 혁명 때 겪은 것을 영국이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18세기의 복음주의 부흥 운동, 감리교 부흥 운동 때문이었다고 주저 없이 말했습니다. 이러한 부흥 운동이 끼친 영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부흥 운동은 사람들에게 교육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학교가 생겨났습니다. 부흥 운동은 주일학교를 낳았고, 병원과 의료기관을 세웠습니다. 부흥 운동은 빈민 구호법의 개설을 낳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성령에서 강하게 임하신 결과입니다. 기독교는 능력입니다. 유익을 주는 능력입니다. 기독교는 일으켜 세우며, 자유하게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세상을 일깨우는 가장 큰 힘입니다. 여러분은 기독교가 무엇보다도 능력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내가 부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었입니까? 1: 16이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구원하라고 말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기독교는 단지 표면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자 하나님이 영혼 깊은 곳에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는 사도 바울이 말했을 때 의미한 바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우리 가운데 임할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 오셔서 사림들을 사탄의 나라에서 구해 내어 그분의 나라로 옮기시는 것입니다.

 

3. 전환

구약성경에 이것을 잘 보여주는 멋진 예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강력한 바로의 힘과 동치 아래서 노예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군대나 무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감독들에게 매를 맞으며 사는 노예 있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스라엘을 이러한 상황에서 건지셨습니다. 구약성경은 출애굽기에서 이 사건을 역사로 들려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분의 종 모세를 통해 개입하셔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왔으나 바다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앞에는 비하히롯 산과 바알스본 산이 있었고, 뒤에서는 바로와 그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손으로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능력으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신약성경을 봐야 합니다. 특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분의 탄생에서 이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사 장을 보내 마리아에게 그리스도를 낳으리라고 알리셨습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자신은 사내를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 장은 마리아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눅 1:35-37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어지리라. ------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인간은 무에서 생명을 창조하려고 오랜 세월을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명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 아버지 없이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기 전에 먼저 기적을 행하시고 아들을 동정녀의 몸에 잉태시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도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 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능력이라는 사실은 주님의 가르침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 감동받은 것은 그분의 말씀이 그대로 나타나는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 사람이 누군가? 말에 어떻게 이 같은 능력이 있는가? 이 사람은 배운 적도 없지 않은가? 도대체 이 사람의 능력이 어디서 나온 거지? "그분은 죽은 자도 살리실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그분은 단지 선생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 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능력을 나타내셨으며, 행동을 강조하셨습니다. 11:20"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임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질병을 제어하고 몰아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분이 하실 수 없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분의 능력은 우주가 목격한 가장 강력한 사건에서 나타났습니다. 예수 님은 무한한 능력이 있음에도 연약한 모습으로 온갖 조롱을 당하면서 재판을 받으시고 마침내 유죄판결을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 무덤에 장사 지내고 입구를 큰 돌로 막았습니다. 그러나 셋째 날 아침, 돌은 지워져 있었고 주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은 죽음과 무덤을 이길 능력이 있었습니다. 1:4그분은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습니다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제어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 가운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셨고, 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오순절에 제자들이 한데 모여 무릎 꿇고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강한 능력이 그들에게 어떻게 임했으며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사람들에게 임할 때, 이런 일이 그들에게 일어납니다. 사도 베드로는 몇 주 전만 해도 자신만 살겠다고 그리스도를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능력이 충만하여 그리스도를 죽인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3천 명의 교인이 늘어났습니다! 당시에 유대인에게 교인이 된다는 것은 가정에서 쫓겨난다는 뜻이었으며, 박해당하고 죽은 자로 취급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3천 명이 완전히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17: 6"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기독교는 단순히 좋은 조언이나 권고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사람들을 사로잡고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능력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능력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이러한 능력이 항상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베드로가 특별한 설교를 했을 때,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 외쳤습니다. “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이들은 갑자기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자신들의 손이 죄가 되며 그리스도의 피로 젖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외쳤습니다. “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과 심판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 이들은 하나님과 심판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들은 죽음이 두려워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었습니다. 여러분도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복음 안에 있는 죄를 깨닫게 하는 능력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심판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떨어 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능력으로 선포되는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두려움에 떨게 합니다. 또 한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그 나라의 메시지를 믿고 이해하게 해주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은 이 지혜를 어리석다고 여겼습니다. 고전 2: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그렇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대답은 하나뿐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고전 2:10. 12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 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은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믿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기뻐하려면 능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죄를 깨닫게 하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여러분의 영혼의 구주로 믿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령께서 이 능력을 여러분에게 주십니다. 기독교는 새롭게 창조하는 능력, 사람들에게 새 생명, 다시 태어남. 새 출발을 주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본질상 인간은 잃어버린 자이며 죽은 자입니다. 인간의 행위가 인간을 일으키거나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며, 새로운 재능을 주며, 새로운 이해를 주며, 새로운 모든 것을 줍니다. 이러한 능력은 우리가 거듭날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세상에서, 악에서 죽음에서 돌이켜 새롭고 깨끗하고 거룩한 생명으로 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철학이 아니고, 좋은 권고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여러분을 일으킵니다. 기독교는 여러분에게 실패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는 새로운 생명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롬 8:37"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기 때문입니다.

 

4. 대단원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는 우리에게 죽음 앞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승리와 기쁨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납니다.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에게 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의 삶은 어떤가? 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는가? 내 삶이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가? 다른 사람들이 내 삶을 보면서 영향을 받는가?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난, 위로부터 난, 거듭난,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 찬양 드리십시오. 알고 있지 못하다면, 하나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분 앞에 나와 여러분은 죽었으며 생명이 없다고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외치십시오.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여러분을 사망과 죄의 무덤에서 건져 내십니다. 여러분 안에 새로운 생명을 주며, 여러분을 인도하고 이끌며, 마침내 여러분을 영원한 영광의 거처로 맞아들이신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