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가려느냐?"수정본"
1. 본문: 요6:66-71
2. 명제: 예수 믿는 유일한 근거는 주님만이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3. 제목: 너희도 가려느냐?
1. 갈등,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것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르기 때문.
꼬마 아이가 들고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가든 보잘것없는 도시락 하나를 가지고 예수님께서 장정만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시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은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을 일으키셨습니다. 그 소문이 사방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에게 가면 얻어먹을 것이 많다.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예수님은 더 이상 기적을 행하시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예수님을 찾아온 무리들의 숨겨진 동기를 지적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은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라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하시면서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무리들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자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자신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에 무리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예수님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병도 고쳐주시고 많은 기적도 행하셨지만 왜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냉정하게 하셨을까요?
2. 갈등 심화, 이 말씀이 어렵도다.
예수 자신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자 무리들이 당신을 믿을 수 있는 표적을 보여 주세오. 라며 또다시 표적을 구했습니다. 여기 표적이란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말합니다. 롯 또 복권에 당첨되면 예수 믿겠습니다 라는 어떤 사람의 요구와 비슷합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많은 기적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무리들은 우리 조상 모세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것처럼 그런 양식을 예수 당신도 내려주실 수 있습니까? 반문하면서 그 떡을 우리에게 항상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당신을 믿겠습니다 라는 반응입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양식이란 먹고 배부른 육신의 양식을 두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으실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는 말씀에 수군수군 대기 시작합니다.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예수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어찌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하지 무리들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이들의 반응에 대해 예수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내 살을 먹는 자는 결코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지만 소귀에 경 읽는 것처럼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웅성웅성거렸습니다.. 아니 우리 보고 예수의 살을 먹으라고! 우리를 식인종으로 아는 모양이지. 참 예수의 말을 어렵다며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지난번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우리가 배불러 먹었는데 오늘은 도대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를 알아듣지를 못하겠어. 무리들은 이런 불평을 하면서 한 사람 두 사람 예수님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배고파 죽겠다. 나는 갈란다. 나도 갈란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떠나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결국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했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한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들이 예수님을 찾은 동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먹을 것을 얻고자 한 것이 유일한 예수 찾는 동기였습니다. 사람마다 교회를 찾는 동기와 상황이 각양각색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역경을 통해서 교회를 찾습니다. 역경은 그 사람의 영혼을 깨우쳐 부르시는 하나님의 나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역경 가운데는 즉 병, 가난, 고난, 이혼, 등등의 여러 인생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교회의 문을 두드립니다. 예수님을 찾는 동기가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 문제입니다. 진리가 아니라 자기 축복입니다. 물론 신앙의 출발은 어떤 동기를 가지고 왔는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문제를 통해서 부르시고 그것을 통해 그 사람에게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을 찾는 동기가 예수님이 목표가 아니라 계속 자신의 문제 해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을 기복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신앙을 계속 유지하면 언젠가는 실망할 때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불평합니다. 교회 나오면 병 나을 줄 알았는데 차도가 없어. 교회 와봤자 소용이 없어, 교회 나오면 부자 될 줄 알았는데 예수 안 믿어도 잘만 살더라. 가난하고 어려울 때는 열심을 내던 사람들도 이제 살만하고 배가 부르고 건강하니까? 딴 소리를 하면서 교회를 떠납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은 계속됩니다.
3. 전환: 너희도 가려느냐?
예수님은 무리들이 자신을 떠나는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이때 예수님은 자신의 12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 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 나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유일한 이유는 예수님만이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즉 예수님을 찾아오는 동기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사람이 구하는 이 땅의 모든 것은 썩는 양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떡이라도 먹고 한순간 배불러도 또 배는 고파 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병 고침 받는다고 해도 또 다른 병이 찾아옵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라가도 내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는 누구나 병이 들어서 먹지 못해서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현실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은 다 썩어질 양식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짊어지고 천국을 갈 수도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지도 못합니다. 교회 다니다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납니다. 그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진리이신 생명이신 예수님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고 썩어질 육신의 양식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가 롯 유다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로마로부터의 유대민족 해방이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이라면 한방에 로마 제국을 엎어버리고 자기 조국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룰 수가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인 동기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예수님이 자꾸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을 것이라는 이상한 소리만 하시니 실망감과 탐심이 어우러져 30 양에 예수님을 팔아먹었고 그 후 죄책감으로 자살로 그 인생을 끝마쳤습니다. 가 롯 유다는 예수님을 찾은 동기가 민족해방이라는 세상적인 문제였습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고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더 중요한 예수님 자신을 보지 못하고 이 땅의 문제 즉 썩어질 육신의 양식만을 구하다가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 롯 유다를 보시고 예수님은 요 6:70-7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교회 오면 병 고침도 받고, 부자도 되고, 형통하고, 출세하고 등등 이런 육신적인 축복만을 구하다가 어느 날 예수 믿어도 부자 안 되네 병 고쳐 주지 않네 실망이야. 실망하면서 떠납니다. 사실 이들이 교회 다닌 것은 예수 믿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육신적인 욕구를 채우려다 즉 썩어질 육신의 양식을 구하다가 실망하여 떠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육신의 욕구가 채워져도 안 채워져도 떠날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신앙의 목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예수님만이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썩지 아니하시는 영생을 주시는 생명의 떡이십니다. 요 6: 47-48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예수님은 영원히 썩지 아니하시는 영생의 길을 소개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연결하시는 중보자가 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을 연결하는 영적인 다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사 믿는 자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심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에서 오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요 6:69“ 우리가 주는 거룩하신 자이 신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떠날 수 없으신 분명한 이유는 예수님 그분 인격과 사역에서 신앙의 근거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돈도 귀하고 병 고침 받는 것도 귀하고 이 땅에 성공하는 것도 귀하지만 이것들이 나에게 영생을 주지 못합니다. 이것들은 결국 썩고 맙니다. 예수님은 썩어질 양식을 주시려 오신 분이 아니라 썩지 아니하실 영생의 양식을 주시려 오셨습니다. 늘 썩을 양식만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예수님은 작심하시고 진짜 축복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확신시켜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히 배부르게 하시는 썩지 아니하실 양식이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돈 보다 먹는 떡보다 병 고침보다 더 귀한 선물이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우리들에게 주시려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났나요. 이 예수님을 믿나요. 예수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은 자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왔다가 떠납니까?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고 예수님이 들고 계신 보따리만 쳐다보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고 썩어질 양식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예수님만이 영생의 말씀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진주 비유를 통해서 설명했습니다.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세상에서 처음 보는 값진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값진 진주의 가치를 발견한 이 사람은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 그 진주를 샀습니다. 이 장사꾼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진짜 값진 보물을 얻기 위해 자신의 다른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의 마땅한 자세가 아닐까요? 바울 사도는 예수 믿기 전 자신이 귀하다고 아끼고 아꼈던 것이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배설물 즉 똥에 불과함을 깨달았습니다. 빌 3:7-9 “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임을 알았기에 예수님을 떠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얻으면 다른 것은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어느 임금이 여러 왕비들에게 한 가지 보물을 주겠으니 구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왕비는 궁 옆의 기름진 전답을 구했습니다. 왕은 선물로 전답을 주었습니다. 어떤 왕비는 궁전의 귀한 보물을 구해서 얻었습니다. 그러자 한 왕비는 폐하시어!! 저는 폐하 자신을 구합니다. 누가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왕을 얻은 그 王妃는 모든 것을 얻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얻는 사람에게 다른 모든 것은 자동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는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고 노래했습니다. 찬송가 94장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영양가 있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나누어 주는 천국 음식점입니다.
4. 대단원,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과거 성경 공부 시간에 박 주익 장로님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당시의 직책은 집사님이었습니다. 집사님! 누가 박 집사님에게 예수 믿지 말라고 협박을 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박 집사님 왈!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으며 우리가 뉘게로 가겠습니까?라고? 너무 정확한 정답을 하는 바람에 한 마땅 웃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여러분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 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으며 우리가 뉘게로 가겠습니까? 이것이 여러분의 고백입니까?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