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나를 믿으라"수정본"
1. 본문 : 요 14:1
2. 명제: 마음의 평안을 얻는 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3. 제목: 또 나를 믿으라.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마음의 평안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마음의 평안을 찾고자 온갖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 방법 중의 하나는 아예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말자는 주장입니다. 다시 말해서 현실을 도피해 버리라는 주장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낙관주의 철학입니다. 어떤 이들은 필연적으로 인류는 모든 문제와 고민이 사라지는 완벽한 세상으로 진화하고 있으니 근심 같은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심리학적인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문제 자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반응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심리학자들은 잠시의 평안을 주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그들의 목표입니다. 그들은 “ 왜 걱정하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걱정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임을 보여 주려 합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유쾌한 것들을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이들보다 한 단계 위는 극기의 태도가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 심리적인 침착성 ”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감정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감정의 영향을 받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감정과 마음이 흔들리면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걸음 물러나 심리적인 침착성을 유지하자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 종교들의 목표도 비슷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평온하게 해 주겠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이러한 여러 방법들을 통해서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결국 비관적이고 절망적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도 실제로 평안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히 11장은 소위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하고 있는 믿음의 장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우리처럼 이 세상에 살면서도 무엇에도 구해 받지 않고 마음의 평안과 안식을 누린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기독교 역사와 기록을 보십시오, 무서운 역경과 시련의 한 복판에서도 마음의 완벽한 평안을 증언했던 하나님의 사람들의 전기를 읽어보십시오. 성경은 지금 이 자리에서 이 평안을 실제로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마음의 평안을 얻는 하나님의 길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 길은 우리의 근심 자체를 살피는 대신 하나님에게서 먼저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이 말씀은 여러분을 즉시 자아에서 끌어내어 하나님과 대면시킵니다. 우리는 세상 한복판에서 세상에 푹 빠져 살고 있으며 소소한 세상에 매여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우선적으로 하는 일은 우리를 붙잡아 눈앞의 현실에 쏠린 관심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대면시킨 후 다시 우리의 문제로 돌아가 극복할 수 힘을 주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생에게 기본적으로 먼저 필요한 분이 하나님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출발점입니다. “ 하나님을 믿으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 또 나를 믿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보편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도 하나님을 믿고 무슬림도 하나님을 믿고 여호와의 증인들도 하나님을 믿지만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삶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님은 요 14장에서 성부 하나님을 믿듯이 또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을 신뢰하듯이 나도 믿고 신뢰하라. 너희에게 하나님을 믿어라고 말하는 나를 믿어라. 예수 그리스도 야 말로 마음의 평안을 주는 성경적 방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을 괴롭히는 일 불안한 일이 없습니까? 사업상의 근심거리나 걱정거리는 없습니까? 미래만 생각하면 온통 걱정이 됩니까? 이런 일들이 닥칠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아십니까? 어떻게 평온함과 침착함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지금 여러분이 마음이 평안하지 않다면 그 진정한 이유가 “ 또 나를 믿어라 ”라고 말씀하시는 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잘 모르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약 성경을 읽어야만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믿어라는 거지요? 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전에 이분부터 믿으라고 하는군요? 대체 나더러 뭘하라는 말입니까? “이 질문에 답을 얻으려면 필히 신약성경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신약성경 없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대해 알고 싶으면 사복음서와 사도행전 서신서를 비롯하여 신약성경 전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약성경 전체가 주는 대답은 이분이 다름 아닌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 님의 출생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해 줍니다. 그분은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태어나지 않았고 육신의 아버지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분의 출생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 기적의 사건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그분이 한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셨다고 말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동시에 진정한 인간이었다고 말합니다. 눅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요한은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인간의 삶을 사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습니다.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의 기적을 통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합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주장에 대해 증거를 제시합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 님의 제자 도마가 불신으로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라고 묻자 요 14:9절에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예수 님은 서스럼없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또한 예수 님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셨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8: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성경에 기록된 기적을 보십시오. 예수 님은 의심하는 도마와 빌립에게 요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요컨대 예수 님은 내가 하는 일을 보라는 것입니다. 기적의 증거를 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은 예수 님이 누구신지 알리기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기적을 믿어야 하며 기적을 행하신 이 분을 믿어야 합니다. 이 분을 믿지 않으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분을 믿는 자는 그가 행하신 기적 즉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며 선포하는 사건을 또한 믿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이것은 죽음과 부활이라는 단계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단계에 불과합니다. 예수 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하여 깜짝 놀란만 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엄청난 주장을 하신 그분이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었고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셋째 날에 무덤이 떵 비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사도들과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문을 닫고 한자리에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문도 열지 않았는데 오셔서 “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자신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자리에 앉아 구운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 일은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즉 세상의 구세주이심이 최종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은 이 일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고 사방으로 전했습니다. 행 1:7-8“ 행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 님의 부활은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 이시오.. 따라서 세상의 구주이심을 선포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분은 승천하셨고 사도행전 2장에서 갓 출발한 예루살렘 교회에 오순절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메섹으로 가던 “ 만삭 되지 못하여 난자 같은 ”사울에게도 나타나 부활의 증거를 주심으로서 사도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의 구주로 선포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이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이 소란하고 혼란스러우며 불행하고 비참한 이 죄 많은 세상 한가운데 오셨음을 믿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을 믿으십시오. 우리는 어둠 속에서 헛되이 헤매도록 방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그 조치가 바로 이것입니다. 갈 1:4-5“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갈 1: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나님이 예수 님을 통하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이 일을 하심으로써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는 하나님의 길은 무엇인가요?
두 번째 길은 그분이 왜 오셨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예수 님이 그 목적을 이루지 않았다면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님은 성부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약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만큼 충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멀리서 보았습니다. 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러나 우리는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 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이것이 요한 사도의 메시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에 대한 내용만 알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 그분과 생생한 생명적 관계를 맺게 해 주십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하나님 아버지와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해 주십니다. 예수 님을 통해서만 우리 마음의 평안을 얻는데 꼭 필요하신 성령님을 선물로 받습니다. 예수 님은 우리가 참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돕는 우리의 대변자요 위대한 대제사장입니다. 예수 님은 요 14장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안을 얻는 모든 열쇠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아는 일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전까지는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바른 관계를 맺게 해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내 죄를 처리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으며 나에게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본질과 생명을 주시기를 기대할 수도 없으며 기도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께서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문제와 시련과 곤경으로 가득 찬 힘든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연악함과 실패를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크고 벅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 하나님을 믿으라 ”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 좋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십니다. 그분은 크고 전능하신 분이지요. 거룩하실 뿐만 아니라 영원하신 분이고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 간격을 뛰어넘어 그분께 갈 수가 있단 말입니까? ”바울 사도는 하나님 앞에 아주 긍휼히 많은 우리의 대변자요 위대한 대제사장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향해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라고 말씀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지금 영광 가운데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분이 한때 세상에서 사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여러분을 샅샅이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히 그분에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근심하지만 하나님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다고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모든 것이 절망적으로 보일 때 우리는 어찌할 줄을 모르며 어떻게 하며 그의 은혜를 받을까?라고 부르짖습니다. 여기 해답이 있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형편을 온전히 이해하신다는 것입니다.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분은 한때 우리 인생과 더불어 이 세상에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형편을 정확하게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고통의 현장을 무심코 그냥 지나치신 적이 없습니다. 괴로워하는 자들을 급히 지나치신 적이 없습니다. 여리고에서 한 불쌍한 맹인이 “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 질렀을 때도 모든 사람이 조용하라고 했지만 주님은 급히 지나가시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시던 중이었음에도 “ 머물러 ”서셨고 그를 데려오라고 해서 고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온유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지니신 분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처럼 소외되고 고통받는 자들을 돌아보시며 긍휼히 여기신 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와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신 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예수 님께서 지금 여러분의 필요와 근심과 고통 가운데 함께 하고 계십니다. 마음이 불안할 때 근심될 대 심란할 때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예수 님께서 여러분을 이해해 주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며 여러분의 근심을 면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