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그 미래"수정본"
1. 본문: 요 14:2-3
2. 명제: 평안을 얻는 길은 예수 님이 준비하고 계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다.
3. 제목: 영혼과 그 미래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얻는 데 있어서 예수 님이 가르치신 첫 번째 강조점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예수 님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믿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에서 출발해야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에 대해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님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으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롬 8장에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할 이유를 제시합니다.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할 확실한 이유입니다. 이 말씀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며 그분과 관련된 성경의 사실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 님은 “ 나를 믿지 못하고 내가 너희를 위해 이제 할 일들을 믿지 못하면 위로해 줄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믿으면 마음에 평안이 임할 것이요 근심이 사라질 것이다. ”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다음 단계는 문제를 바라보는 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논리적인 순서입니다. 1단계 2단계 3단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3단계부터 시작하기 쉽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문제부터 붙들고 먼저 씨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방식을 보십시오, 예수 님은 문제로 곧장 달려가지 않습니다. 앞에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일단 뒤로 물러가는 것이 장애물을 뛰어넘은 현명한 길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 장애물을 향해 달려가야 추진력을 얻어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이 이런 방식을 소개합니다. 문제에 곧장 달려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가 출발하는 것입니다. 예수 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후에 좀 더 직접적으로 문제 자체에 접근하여 자신의 인생관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평안을 얻는 길은 예수 님이 준비하고 계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평안을 얻기 위해 예수 님이 말씀하시는 원리는 무엇인가요?
첫째 이 세상의 삶은 다음 세상의 관점에서 바로 볼 때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님은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이것을 보면 예수 님께서 이 세상의 삶이라는 문제를 다루시면서 얼마나 빨리 다음 세상의 이야기로 나아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 적인 방법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장차 무슨 일이 생길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이 삶에 직면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나의 현재 당면한 문제의 고민을 먼저 앞세웁니다. 그러나 예수 님은 다음 세상부터 살핀 후에 이 문제를 다루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이 방법은 현대인들에 맞지 않는 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아!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를 하네 그리스도인들은 현실적이지 못해 ”오늘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음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라니 비현실적이라고 비웃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현실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현실에 도움이 되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 그림의 떡 같은 ”말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현실적인 인생 프로그램을 찾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세상의 삶 자체가 삶 너머의 세계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인생 초기에 여유롭고 한가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마치 그런 삶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착각 하기 싶습니다. 그래서 모든 관심과 힘을 현 세상의 삶에 집중 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죽음의 이야기를 해봤자 삶 너머의 이야기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하나님과 영적 세계를 외면한체 이 지상의 삶에 정착하기 위해 애를 써왔지 않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전쟁이 일어나든지 큰 병을 만났든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만나든지 큰 사건을 경험하면서 삶 너머의 세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서 삶은 본질적으로 덧없는 것임을 생각하며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이 삶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세상의 삶은 덧없는 것이며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삶은 긴 여행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통과해서 가야 할 곳일 뿐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나그네요 외인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나그네요 여행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계속 일깨우는 한 가지 사실은 세상의 삶이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연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합니다. 언제 무슨 일이 날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건이 일어납니다. 비극은 우리 인생은 성경의 이런 지적을 외면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또 한 이 세상의 삶에서 어떤 안전도 확보되거나 보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의 삶에 매여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은 반드시 실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바로 비지성적이며 비현실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복음을 떠나서는 궁극적으로 세상의 사람들에게 안전한 삶을 살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세상의 것과 세상의 사람들에게만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행복을 찾는 사람은 분명히 실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나 가족이나 직업이나 돈이나 건강에서 힘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는 자 그런 것에서 궁극적인 의미의 행복과 기쁨과 마음의 평안을 찾는 자는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어느 날 전부 사라집니다. 그런데도 사람들 대부분은 그런 것들에 근거하여 자신의 인생 철학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쟁과 사고가 일어나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 버립니다. 그런 것들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니 의지하지 말라고 성경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지나가고 맙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이 이처럼 지나가고 흘러가는 것은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죄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죄가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세의 삶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있을 것처럼 하나님 없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와 죄 때문에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죄의 삯은 사망이니라 ”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그리고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죽음만 물리치면 완벽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온 인류를 사로잡고 있는 죽음의 공포는 쉽게 떨쳐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현실입니다. 평안을 얻기 위해 예수 님이 말씀하시는 원리는 무엇인가요?
두 번째 세상의 삶이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대상은 반드시 영혼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덧없고 일시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불확실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바로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릅니다. 언제 내 인생의 종말이 임할지도 모릅니다. 무엇하나 기대거나 의지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 자, 내 안에는 세상의 삶보다 더 큰 것 소멸되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이 영혼이다. ”눈에 보이는 이 육신은 죽고 세상은 끝나도 내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 휘장 너머에서 계속 존재합니다. 이 영혼에 집중해야 합니다. 육신의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님은 이점을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예수 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을 파송하려 했습니다. 그때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염려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면서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원수들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삶에 집중해야 합니다. 긴 안목으로 바라보라는 것이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곡간이 모자랄 만큼 농부로서 성공을 거둔 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즉 만사형통이구나 이제 호시절만 남았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하나님을 외면한체 자신의 육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에 무관심한 체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 지금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살고 있습니까? 사람은 평안을 얻기 위해 예수 님이 말씀하시는 원리는 무엇인가요?
세 번째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삶의 주된 역할과 목적은 다음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도피주의적인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외면하거나 현실을 경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에 주의하십시오. 저는 주된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역할도 많이 있습니다. 사업도 하고 직장 일도 하고 가정도 챙기고 최대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살고있는 삶의 목적이 다음 삶을 준비하는 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평안을 얻는 성경의 원리이며 성경의 성도들이 보여주고 있는 삶의 비결입니다. 히 11장을 보십시오. 그들의 비결은 “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 ”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땅의 “ 외국인과 나그네 ”로서 장차 올 것을 준비하며 자신들의 길을 갔습니다. 결국 세상의 삶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음 세상에 비추어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음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 님의 대답은 “ 나는 곧 죽어서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결국은 죽어야 한다. 그러나 겁내지 말라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가 왜 이렇게 말하겠는가? 너희가 죽어서 가는 곳이 어디냐? 바로 내 아버지 집이 아니냐?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다음 세상의 삶에 대한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은 전부 사실이다. ”우리는 대부분 죽음을 무서운 공포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마치 우리를 잡으려 오는 저승사자처럼 생각합니다. 죽음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곳 피하고 싶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죽음은 예수 님을 따르는 자들이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는 문에 불과합니다.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생소하고 무섭기만 한 크고 영원한 세계에서 육체 없이 살아야 할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저녀들에게 죽음은 사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아버지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또 죽는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주님의 눈과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영광스러운 임 재를 느끼는 것은 분명 경이로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부터 영원토록 그분과 함께 지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복되신 임 재 가운데 즐거워하며 영원토록 영광스러운 삶을 함께하게 됩니다. ” 거할 곳 “이라는 말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예수 님은 ” 겁낼 필요가 없다. 아버지 집에는 너희가 다 차지하고도 남을 만한 방이 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 거할 곳 “이라는 말은 영구적으로 받은 땅에 자리한 안전한 곳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장막과 천막에 살면서 밤낮으로 옮겨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이 준비되고 갖추어진 집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삶 평화와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내가 기대하던 모든 것 마음으로 바라던 모든 것을 상상했던 것보다 더 넘치게 누릴 수 있을 곳입니다.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이 사실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주님이 ” 나를 믿으라 나에게 너를 맡겨라. ”라고 말씀하신데 있습니다. 무엇이 저 앞에서 자기를 기다리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박해해도 개의치 않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절대 건드리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확실한 것이며 절대적인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고 지옥이 벌 때 같이 일어나 덤벼들어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할 때가 남아 있습니다. ” 터가 있는 성 “은 시간의 흐름 너머에 있습니다. 그 성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집 영광은 결코 흐려지거나 약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이것이 지금과 같은 세상에 주시는 유일한 하나님의 위로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여러분을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 그리스도가 다시 와서 여러분을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여러분의 영혼임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육신에 대해 아무것도 보장해 드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육신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며칠 안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자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불멸하는 영혼을 안전하게 지키시는 한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개의할 필요가 없습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이며 여러분을 알아서 데려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위해 예비해 놓으신 거처의 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로 들어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들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 하나님의 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 세상을 떠나실 때 여러분의 영혼을 천국으로 데려가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까? 예수 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믿고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영혼입니다. 이 사실을 첫 자리에 놓으시고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아무리 행복해도 잊지 마십시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에 좌우되는 행복은 언젠가 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세상의 그 무엇도 그 누구라도 여러분을 그에게서 끊어 낼 수 없으며 예수 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 낼 수 없음을 먼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영혼의 구주로 믿으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을 위해 거처를 예비하러 가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기업이 기다리고 있음을 마음 놓고 확신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