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수정본"
1. 본문: 엡 2:7
2. 명제: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온 세상에 나타내신 사건이다.
3. 제목: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1. 갈등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서라는 말씀을 숙고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 안에서 성탄절의 메시지의 진수가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행하심에 있어서 그분의 영광과 은혜의 놀라움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라는 방식을 통해서였습니다. 바울 사신을 읽어 보면 예수 이름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 그 안에서 ”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 말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받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도 모든 것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에 관해 말하고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것에 대해서 말하고 하나님에 의해서 치료받고 하나님에 의해서 인도함을 받은 것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사람을 다루시고 사람을 축복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없이 기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은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안에서 또 그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시고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고 우리에게 흘러들어옵니다. 그분은 “ 그의 몸 된 교회의 머리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입니다. 그분은 머리입니다. 우리는 몸속에 있는 지체들입니다. 모든 것이 머리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모든 축복들을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누립니다. 그리스도는 오직 유일한 통로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오직 유일한 중보자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나옵니다.
2. 갈등 심화
바울의 강조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방식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요. 기이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의 처음 세 절 가운데서 우리 인생의 본성을 밝혀줍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생입니다. 마귀의 권세를 따르며 육체와 마음의 욕심을 따라 행하던 인생입니다.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우리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이 이런 우리 인생을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 자체가 측량할 수 없는 은혜의 풍성함을 지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입니다. 그 은혜의 풍성함을 알리는 방식이 “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부모가 자기 외아들을 아프리카 선교사로 보냈습니다. 주되 그것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께서 예수 님을 “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여기 아끼다. 라는 말을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구원의 길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으며 무엇이 필요하였는지를 아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일이 성자의 고난을 당하시는 일을 함축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분은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모든 것을 위해서 그를 주셨습니다. 그 잔인하고 고뇌에 찬 십자가 죽음 속에 의도하고 있었던 모든 것을 위해서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자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는 그분의 아들을 죄로 삼으심으로써 그것을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 53장 “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 일을 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등의 고통을 당하지 않고 그 일을 하셨습니까? 그것은 커다란 비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쉽게 취급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너무나 입심 좋게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상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상하게 하신 것이 그의 뜻이었고 그분의 기쁨이었습니다. “ 그는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로 하여금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슬픔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세 마디 “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라는 말을 생각하기까지는 그 은혜를 측량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시는 방식입니다. 그의 은혜의 지극히 크심을 누가 잴 수 있을까요? 누가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우리 복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외아들을 우리 죄인을 위해 내보내시고 주셨습니다. 그에게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죄악을 담당시켰습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은혜의 풍성함입니다.
3. 전환
아버지 하나님에 이어서 우리는 성자 하나님의 입장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빌 2:5-11에서 이 말씀을 통해서 성자 하나님의 겸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그 영원한 영광의 특권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신 것입니다. “ 그는 근본 하나님이시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것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셨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아버지 하나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반역하는 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두고 떠나려 합니다. 나는 잠깐 동안도 내 영광을 뒤로 미룰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떠한 일을 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 그것만은 못하겠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그는 그분의 신성의 모든 표지를 고집하여 취할 권리로 여기지 아니하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 그는 자기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그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인체 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왕의 신분이라는 모든 장식들을 버려두셨습니다. 다른 말로해서 그는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 가운데 거하기 위해서 땅에 내려오셨을 때에 바로 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비록 그는 언제나 하나님 자신이었지만 사람으로 오셨고 종의 모양을 취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측량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불된 대가가 무엇인지를 말해 줍니다. 이것이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입니다. 우리는 베들레헴에 오신 아기에 관해서 감상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는 우리의 이해의 눈이 열려지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 너희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까? 그것이 무엇을 함축하고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았습니까?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분은 성육 하시기 전에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오셔서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어 베들레헴이라 불리는 작은 마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스스로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신성을 빼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이면서 인성을 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이면서 사람이셨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그가 구유에 누이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통해서 “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을 보여 주시고 계셨으며 더 나아가 하늘에 있는 정사들과 권세들과 천사들도 놀라도록 하셨습니다. 천사들이 “ 이처럼 약하고 도울 자 없는 비천한 히브리 처녀 아기는 누구인가? ”답은 오직 “ 그는 주시오. 영광의 왕이시다. ”이것이 첫 번째 성탄절의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는 육신을 입었고 취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를 향하신 측량할 수 없는 자비를 보여 주신 것을 ”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서 “이며 아들을 그런 방식으로 이 세상에 보내심을 통해서였습니다. 우리도 이 더럽고 추한 세상을 목격할 때 구역질이 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같은 세상에 사셨고 거하셨다고 하는 것이 어떠하였던 것입니까? 타락한 인생들과 섞여 사는 것이 어떠하였던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로 묘사된 그분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했겠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재는 척도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이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알게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분은 33년 동안 자신을 향한 죄인들의 거역을 참아 내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계실 동안 자신의 집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가정을 소유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그가 만드셨고 아무것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었던 그분이 머리 둘 곳이 없었고 자기의 집이 없었습니다. 또 그를 향해서 모욕하는 모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를 때리고 야유하고 침 뱉고 욕설을 퍼붓고 채찍으로 때리고 하는 것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것들을 모두 사실입니다. 우리는 철학으로 어떤 아름다운 개념이나 어떤 기이한 환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 고통스럽고 틀림없는 사실들입니다. 그분은 땅으로 내려오셨고 이 모든 것을 체험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고뇌에 차서 “ 땀이 피처럼 되도록 땀을 흘리신 그분을 보십시오. ”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이 있었고 그런 다음에 십자가와 고난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큰 고뇌 속에서 그곳에 계심을 압니다. “ 내가 목마르다 ”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모든 다른 고통들을 당하시면서 버림받은 느낌을 가지셨습니다.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버리셨나이까? ” “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풍성함을 ”세상 죄의 무거운 짐을 담당하셨습니다. 그의 거룩한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를 당하셨습니다. 죄를 삼으신바 되셨습니다. 그것이 은혜를 재는 척도입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참으시고 계시면서 그는 여전히 사람의 아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고통을 상 상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의 모든 형벌을 담당하기에 충분한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축복은 “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서 ”입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가져다 무덤에 장사 지냈습니다.. 베드로는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 생명의 주를 죽였다 “라고“ 말할 때 주는 주인을 의미합니다. ” 죽음 “ ” 생명의 주 “ 생명의 주가 죽음에 처하여졌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죽음에 처하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덤 속에 장사 지냈고 무덤 문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사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영화롭게 하여 높이셨습니다. 영원한 영광이 땅으로 무덤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영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에 대한 척도입니다.
4. 대단원
바울 사도는 이 모든 것은 장래에 오는 모든 세대에 그의 영광의 위대함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사들도 놀라게 한 일입니다. 그래서 창조의 아침 천사들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태어나는 날 아침에 노래 불렀습니다. 그리고 메시아 탄생을 선포했습니다. 삶과 죽음과 그리스도의 장사지냄과 부활과 영광 이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일들을 천사들도 살펴보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여기 원한다는 의미는 천사들이 그 일을 살펴보기 위해서 몸을 굽히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창조자의 무덤 그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천사들이 놀랐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그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보았을 때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했습니다. ” 천사들의 노래가 하늘에서 들리니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여러분과 저같이 비참한 그리고 배반한 죄인들이 새로운 영적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께 대해서 살게 되었고 궁극적으로 그의 존전에서 영화롭게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되 그의 독생자를 그 수치스럽고 잔인한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내어 주실 정도로 사랑하심으로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를 공의롭고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엎드려 절하며 감사 찬양드리십시다.. 찬 122장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엎드려 절하세 구세주 나셨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