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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들을 시험함

wordlove 2021. 8. 23. 05:56

1. 본문: 요일: 4:1

2. 명제: 모든 은사의 나타남이 성령세례의 결과가 아니다.

3. 제목: 영들을 시험함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성령세례 말씀에 대한 편집본

 

갈등

이해를 돕기 위해 로이드 존스 목사가 사용하는 용어에 대한 정의를 먼저 소개합니다. 첫째는 중생, 거듭남, 성령의 기본 세례, 성령에 의한 세례를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고전 12:3, 13” 두 번째는 거듭나고 성령의 기본 세례를 받은 자가 성령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성령의 인도를 지속적으로 받은 것을 성령의 생활 충만이라고 말합니다. “엡 5:18”엡5:18” 세 번째는 성령의 능력 세례로서 성령의 생활 충만한 가운데 특별한 사역을 수행하기 위해 능력을 부어 주시는 성령의 사역으로 승천하시면서 주님이 친히 부어주셨으며 오순절뿐만 아니라 교회사를 통하여 계속 부어져 왔으며 지금도 계속 부어짐으로 교회는 부흥될 것이다. 네 번째는 특별한 사역과 위기의 때에 능력 세례의 결과로 성령이 충만히 임재한 상태라고 주장할 때 로이드 존스 목사가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우리가 성령의 은사들을 고려하고 있는 이 때에, 저는 역사적인 증거 즉, 교회사의 특별히 부흥의 역사를 살펴봄으로 결론을 간략하게 보충하고자 합니다. 교회의 부흥은 교회에 대한 성령의 부어주심과 오순절에 일어났던 것의 반복일 따름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부흥이란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성령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갑자기 하나님의 영인 그들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충만과 새로운 수준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들이 진에는 전혀 가지지 못했던 확신으로 가득 찼으며 놀라운 지식과 총명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부흥에는 언제나 성령의 임재를 체현하는 확실한 현상들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이러한 새로운 권능과 예언적 은사의 일종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수 세기에 걸친 교회의 위대한 부흥 운동에서 방언과 이적의 증거와 같은 특별한 은사들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1857년 미국과 다른 나라들 그리고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대 복음적 부흥 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의심할 것 없이 부흥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기적이라 말하는 것들은 거의 없었으며, 특별히 방언과 예언의 은사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매우 잘 증명된 사실들입니다. 성경 자체의 가르침과 교회사의 증거는 성령세례란 반드시 특별한 은사들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성령세례는 항상 어떤 특별한 은사들을 동반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적인 답변은 항상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여러분이 방언이나, 기적이나, 그 밖의 다양한 은사들이 없이도 성령의 능력 있는 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웨슬리 (Wesley) 형제들과 횟필드(Whiteficld)와 같은 사람들이 성령세례를 받은 사실에 대해 논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관련하여 이러한 일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령세례 자체는 큰 권능 가운데, 주어지나 이러한 은사들은 어떤 것도 그렇게 확실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물론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 기인합니다. 성령은 때로 은사들을 주시기도 하고 주시지 않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은사들이 발생하지 않는다거나, 언제나 일어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주된 결론이 세워졌습니다. 은사의 문제는 전적으로 성령의 주권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의 영이 주권 가운데 결정하시는 그 어떤 것에도 우리의 마음과 가슴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갈등 심화

사랑하는 형제여, 여러분이 교회에서 성령의 권능의 필요성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저는 여러분의 신앙을 의심합니다. 이 시대는 성령의 능력으로 권리를 선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으며 오지 성령세례만이 교회가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것은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개인들과 전체 교회에 임한 성령의 능력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에 대해 분명히 알려면 은사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현듯 은사의 출현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령의 나타남과 은사라고 즉시 받아들여야 할까요?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접하는 두 가지 주된 위험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령을 소멸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전해진 어떤 것도 경시합니다. 그들의 마음의 선입관과 그들의 모든 편견이 이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성령 세레를 받았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사역에 대한 최대의 적은 거의 일괄적으로 교회 자체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이것은 성령을 소멸하는 것에 기인한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개혁가들을 박해했습니다. ! 슬프게도, 개신교도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들을 때로 박해하곤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러한 위험은 교조주의와 질서와 치장, 그리고 규제되고 정해진 모든 것에 의한 의식들을 선호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것은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사도가 성령을 소멸치 말라 ””라고 말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교회에서 특별한 은사에 관해 듣는 순간, 그것을 비난합니다. 다수가 직면하는 큰 위험은 성령을 훼방하고 소멸하는 것이며, 그에 의해 성령의 주권에 대항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쉽게 모든 것을 믿어 버리곤 합니다. 교회사를 읽을 때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던 이들에게 이러한 성향이 발견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우리들 각자는 우리를 자신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천성적인 기질이 편견이 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발견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경계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첫 번째 사람들이 성령을 소멸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고정된 이론으로 그것과 다른 모든 것들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이와 또 다른 유형은 성령을 소멸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두려운 마음이 되며 이것이 그들의 비판적 능력을 파괴해 버립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것이라도 믿을 만한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경이 거짓된 열정이라 불렀던 것이며, 항상 광신주의 (fanaticism)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광신주위는 항상 비난을 받았으며 그것은 교회의 생명에 치명적인 피해를 가져옵니다. 심지어 성령의 외적인 나타남의 은사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극단적인 것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그리고 명백하게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났던 것과 깊은 종류의 위험을 잘 알 것입니다. 따라서 위대한 사도가 주의를 기울였던 그 부분의 말씀이 필연적으로 오늘 이 시대에도 요청되고 있습니다.

 

3. 전환

이제 우리는 두 번째의 큰 원리를 계속해서 살펴보려 합니다. 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이라 주장하는 모든 것들을 무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까?? 우선 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우리 앞에 놓여있는 모든 것을 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주 단순하게 마귀와 같은 존재와 인격이 있기 때문이며 악령들, 추악하고 해로운 영들과 같은 실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사도가 엡 6:12에서 말씀하신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들과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는 위대한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의 저는 우리가 영적인 영역 주, 영적 환경 내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단지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물질적인 것의 주위에는 영적인 영역들이 있으며, 하나님과 모든 거룩한 것을 대적하는 사악하고 해로운 영들과 권세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심지어 구약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종 모세가 그의 지도력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어떻게 권능을 받았는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구출하기 위해 보냄을 받지만 모세는 어려움을 예견하였습니다. 그는 실제 적으로 내가 가서 이 일을 그들에게 말하면, 그들은 나를 향하여 " 너는 누구이며, 왜 우리가 너의 말을 들어야 하느냐? 너는 우리가 큰 위험에 빠지도록 요구하고 있다. "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길, “ 좋아 그러면 내가 너에게 이르리라 내가 너에게 할 말을 이르리라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보냈다고 말하라.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외에도 네가 네 손에 가지고 있는 지광이를 보라 내가 너로 그것을 통하여 이 일을 행할 수 있도록 하리라.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바로 이러한 일들의 수많은 예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것들이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성령뿐 아니라, 이러한 악령들로부터 항상 둘러싸여 있으며 그들의 한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가능한 한 우리에게 영들을 시험하라 ”, “ 영들을 분별, 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일 4:1에서 " 영들이 하나님에게 속하였나 시험하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제시하는 것처럼 모든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들이 하나님에게 속하였는지 세상에 속하였는지 분별하고 시험하라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실제적인 권고입니다. 절대로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비판적인 능력을 행사할 것과 그들을 분별하고 시험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살전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라고 말합니다. 그 본문의 상황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는 성령을 소멸치 말 "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이는 앞서 말한 첫 번째 그룹에 대한 책망을 의미합니다. 그와 같이 행하고 있는 이들이 있으나, 너희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범사에 헤아리라 "고 말하여 극단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헤아려 단지 좋은 것만을 취하십시오.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사도가 교회에서 행하라고 훈계한 바로 이러한 것을 행하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러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배우지 않아서 영적인 일들에 대해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저는 저 자신의 사적인 생활과 사역에서 더욱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성경을 읽는 것 다음으로 교회사를 끊임없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2세기 중반경에 몬타누스주의(Montanism)라 불린 운동이 있었습니다. 저는 몬타누스 주의자가 잘못 평가되었다고 믿기에, 이 운동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기를 원합니다. 제도적 교회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교회는 교조주의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었으며 콘 티누스 주의자들은 삶과 권세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과 더불어 동시에 명백히 극단적인 것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수세기를 계속해서 거슬러 내려오면 로마 가톨릭 교회가 거의 끊임없이 기적들을 보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4세기에서부터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것은 일사천리로 급속하게 증가합니다.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성인들의 유물'로 불리는 것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뼈는 베드로의 몸이나 다른 어떤 성인의 몸에서부터 나왔으며, 이것이 기적적인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기적이라 불린 것들은 교회사의 관련된 사실과 현상과는 따른 것입니다. 쉽게 믿고 무 비판적 사람들은 그들이 직면하게 되는 기적과 경이를 믿으며 곧 성령의 사역이라고 단정할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의 결과" 로마 가 톨릭의 개종자가 됩니다. 여기에 역사가 주는 가지 큰 교훈이 있습니다. 수세기를 더 내려가면, 여러분은 개혁주의(Protestantism)에서 동일한 일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모든 것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무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도 미혹하는 악령들의 위험을 제시해 주는 세 번째로 옮겨가려고 합니다. 세 번째 예증은 강신술과 심리학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경이로운 이적과 이런 현상들을 일으킬 수 있는 악령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달하면, 강신술에서 여러분이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은 수없이 많이 보고되었고 증명되었습니다. 악령들도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말과 방언을 말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에 의해 일어난 방언을 모방할 수 있습니다. 어느 모로 보나 그들은 동일한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방언뿐 아니라 강신술의 영역에서 병 고침이 발생했다는 것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려 깊은 관찰자들과 강신술을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조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무 비판적으로, 여러분 앞에 나탄난 어떤 현상을 믿으려 한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강신술이나 혹은 그러한 영역에 속한 모든 것들의 속임 수에 따르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심리학에도 적용이 됩니다. 기독인의 신앙을 무시해 버리고 대신 심리학에 의하여 그것을 설명하려는데 있습니다. 그들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사람들에게 최면을 걸어서 전혀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던 다른 언어로 말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영적인 세계에 호소하지 않고도 자기 스스로는 최면에 걸리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순수한 심리학적 차원에서 자기 암시나 자기 최면 혹은 잠재의식 속에 깊이 파묻혀서 기억 속에 잊힌 어떤 것을 재생시켜서 방언과 같은, 영지인 현상들을 재현해 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 이것이 기독교의 전부이고 기독교는 그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것들이 바로 서와 여러분이 영들을 분별하라! " ”영들을 시험하라”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 " 라 성경의 권고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몇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 현상들을 성령세례와 혼동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4. 대단원

우리가 어떻게 영들을 시험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 시대에 어떤 사람이 독선적인 자기만족에 놀러 앉아 수수방관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에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무의미할 뿐이다 "라 말하게 됩니다. 저는 어떠한 시대이든지 선하고 정직하며 영적인 사람들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이들은 신앙의 부흥과 영적 재 각성을 열망하고 있으며 이 악한 세대에서 교회가 권세 있게 말씀을 전하고, 필요하다면 정부에 대해 선포하기도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에게 오직 이것을 금하도록 권유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여러분의 내적인 느낌에만 의존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하는 것은 그들이 전적으로 자신의 내적 느낌에 따라서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알다시피, 나는 이것이 옳다고 느낀다. 나는 다른 가능성은 바라지 않아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관적인 것을 전혀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단지 어떤 내적인 감정에만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단이 그렇게 하길 원하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비판력을 충분히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단순히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방법으로 결정해 버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에게 전해진 것이 여러분을 무척 놀랍도록 느끼게 하더라도 결코 동요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제 정말로 하나님에 대한 더욱 큰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은 틀림없이 옳을 거야.. "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들은 멀리하시고 무시하십시오. 그런 것들에 의존하지 마십시오, 또한 나 이것이 옳다고 느껴, 내 안에 있는 모든 것, 나의 일에 이것이 옳다고 말하는 데 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그만큼 교활합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한 백성도 미혹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의 판단을 여러분들에게 하라고 전한 사람들에게 의지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사람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그 사람보다 더 위대하고 강한 사람들을 넘어뜨려 왔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선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것은 나의 모든 삶의 경험을 변화시켰다. ”라고 말한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 말은 옳을 수도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은 성경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사를 통해서도 이러한 교훈을 얻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관심을 쏟는 사람은 항상 주님을 따르기를 열망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러분에게 보고를 전하는 사람의 성격을 동해서 혹은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을 여시고 들을 준비를 하십시오. 그러나 결코 무비판적이 되지 마십시오. “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