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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하나 됨의 길"수정본"

wordlove 2021. 8. 30. 05:18

1. 본문: 4:2-3

2. 명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3. 제목: 영적 하나 됨의 길

 

1. 갈등

그리스도인의 삶의 일반적인 성격은 우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언제나 우리 마음의 중심 되는 것에 위치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삶을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죄와 허물로 죽었을 때 우리를 부르시고 살리셨으며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구원 받은 상태나 혹은 현 상태에만 그대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 나는 구원 받았다. 나의 죄는 모두 용서받았다. 그러니 만사가 형통할 것이다. “라고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끊임없이 전진하는 진행의 생활이어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위한 첫 번째 원리는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일 “ 입니다. 왜 사도는 이 말씀을 맨 처음에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1: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하나님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을 때 의도하신 근본 목적은 바로 이 통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 있는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 죄악의 세력은 분열의 세력입니다. 죄는 언제나 나누고 분리시키며 찍어 쪼갭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속에 갈등을 일으킵니다. 죄는 우리 생활 속에 있는 다툼과 고통을 끊임없이 일으킵니다. 죄는 또한 인간 사이를 이간시킵니다. 그리하여 불화하게 하며 싸우고 다투게 합니다. 세계는 죄로 인해 지금까지 파괴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구원의 중심이 되는 목적은 결합시키고 연합시키고 하나 되어 죄와 인류의 타락이 가져왔던 무서운 파괴가 있기 전에 누렸던 통일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행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이 하나 됨에 대하여 먼저 말한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의 특징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 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것이 4:1절에서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의 첫 번째로 다루는 원리입니다.

 

2. 갈등 심화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 어떤 관점과 자세가 필요합니까? 2-3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바울은 먼저 성경적 관점으로 권고합니다. 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오늘날 WCC 운동은 전 세계의 교회 연합과 재결합의 문제를 끊임없이 거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교회 연합의 문제에 있어서 먼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 됨의 성격과 본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일반적인 우정이나 형제애나 동지애나 민족애의 정신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무신론적인 공산주의와 인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함께 모여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우리가 믿는 일에 대하여 너무 편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일반적인 악에 대하여 우정과 우애와 공동으로 대응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사도가 이런 생각에 대해 어떻게 말합니까? 사도가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 됨은 에베소서 전반부에서 말하고 있는 성경적 가르침에 기초한 하나 됨입니다. 다시 말해 엡 1-3장에서 말하고 있는 교리에 기초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와서 당신이 무엇을 믿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오십시오. 함께 일합시다. 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다음과 같이 대답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선생님 엡 1-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위대한 교리의 결과가 아니고서는 어떠한 하나 됨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데요 이 하나 됨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교리적이어야 하며 진리를 아는 것 위에 기초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우리는 주장합니다. 다음으로 영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서 여기 이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 영이란 말은 어떤 인간적 우정이나 단합 정신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 아닙니다. 4:4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영이라는 말은 거룩한 성령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세계 교회 연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이 영을 인간적 우애 단합 정신 정도로 이해합니다. 그들의 주장은 성령으로 부터 온 하나 됨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사도가 말하는 하나 됨은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하나 됨입니다. 하나 됨을 일으키시는 분은 오직 성령뿐이십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성령께서 만드신 이미 그곳에 있는 하나 됨을 깨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키는 것이지 창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하신 일입니다. 사도가 말하는 하나 됨은 생명력 있는 하나 됨입니다. 그것은 기계적인 하나 됨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하나 됨과는 전적으로 다릅니다. WCC의 하나 됨은 어떤 주어진 목적을 위해서 이질적인 분자들(혼합 종교, 보편적 구원 등)이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은 안에서 시작하여 밖으로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유기적이며 생명력 있는 것이지 인위적인 조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외적인 하나 됨이 아니라 내적인 하나 됨입니다. 또 한 이 하나 됨은 성령의 사역을 이해할 수 있을 때에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일 성령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다면 이 하나 됨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성령을 단순히 정신이나 능력으로 알고 있다거나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 되심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하나 됨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WCC 세계 교회의 연합을 주장하는 자들은 성령의 교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기독교는 선을 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님의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믿지 않고 보편적 구원론을 주장합니다. 이런 사람과 하나 됨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하나 됨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령께서 다른 사람 속에도 계신다면 우리는 즉시 우리 속에 계시는 성령으로 이 하나 됨의 이음줄을 서로 느끼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2:12“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 더니전에는 멀리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었던 에베소서의 이방인들이 이제는 유대인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에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역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모두 하나인 것입니다. 내 속에 성령이 계시지 않는다면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둘에게 다 같이 계실 때 그때는 진정한 교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영적 교제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다스리는 곳에 하나 됨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외적으로 눈에 보이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교회에 소속되어 접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 됨은 내적인 것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시는 사람과 만날 때에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 됨에 대한 자세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힘쓰다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참뜻은 근면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기를 서둘러야 하고 그 일에 관심을 나타내야 하며 열심을 표시해야 합니다. 힘써 지켜야 합니다. 무엇보다 부르심을 입은 이 부름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을 하는데 서둘러야 하며 이 일에 대하여 부지런해야 하며 결코 그것을 잊지 말고 이 일이 우리 생활의 주된 일이 되어야 한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그다음 단어는 지킨다 라는 단어입니다. 지킨다. 라는 단어의 의미는 감시하다, 굳게 지속하다, 보존하다는 뜻입니다. 사도는 우리에게 하나 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미 하나 된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역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 속에 계십니다. 하나 됨은 그곳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첫째 되는 자세는 이 놀라운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 하나 됨을 고수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것을 보존해야 하며 모든 정성과 힘을 다하여 그것을 힘써 지키고 나타내는 일이 우리의 첫 번째 자세라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기억한다면 믿는 사람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결혼을 힘써 지키는 것이 신자의 당연한 자세입니다. 믿는 자가 이혼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불신이요 불순종입니다.

 

3. 전환

이어서 성령의 하나 되기 위해 필요한 성품은 모든 겸손으로 겸손은 낮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자만이나 자기주장 또는 오만에 반대되는 말입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덕 가운데서도 가장 으뜸가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징표입니다. 주님은 사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 의 의미입니다. 세상은 자신을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세상은 적극적이고 자기 과시적이며 야심 있고 대담한 생활 철학을 선호합니다. 겸손은 이것과 반대 정신입니다. 교회에서 겸손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비극입니다. 권세를 사랑하는 것만큼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고 교부 크리소스톰의 말입니다. 사도는 겸손에 이어 하나 되기 위해 필요한 성품은 온유 라는 말을 소개합니다. 온유라는 말은 속마음이 부드럽고 상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능력과 함께 병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누구보다도 온유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강력한 인물이었습니다. 우리 주님도 온유한 분이셨습니다. 온유의 참뜻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필요하다면 고난도 기꺼이 견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도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매우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으며 단호하고 권세 있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겸손과 온유는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키는 필수 요소들입니다. 베드로도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보십시오. 여기서 동이라 는 겸손의 앞치마를 두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시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주님은 수건을 들어 앞치마를 두르시고 허리를 굽혀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발을 씻기었으니 너희들도 서로의 발을 씻기라 겸손의 수건으로 허리를 동여라. 허리를 굽혀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십시오. 이것이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성품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라면서 모든 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그것은 모든 가능한 또는 모든 종류의 겸손과 온유 라는 뜻이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겸손과 온유의 옷을 입어라는 뜻입니다. 주일날만 아니고 여러분이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떤 사람을 상대하든지 언제든지 말입니다. 그것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성품이 되어야 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 말합니다. 분열을 야기시키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그릇된 자만심이 바로 그 원인입니다. 자신의 출신을 자랑하고 자신의 가문과 지위와 재산을 자기의 사업을 자식을 두뇌를 이해력을 자랑합니다. 마음이 낮아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내가 여러분을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잘못을 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올리버 크롬웰의 말입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온유는 겸손과 병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나 겸손을 나타내야 합니다. 다음으로 오래 참음 은 오래 견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화를 내지 않고 오랫동안 자제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의 화를 독 구는 사람을 만날 때 패주고 싶고 창피를 주고 싶은 충동에 굴복하지 말고 견뎌 내라고 말합니다. 오래 참으십시오. 울화가 치밀어도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오래 참음은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지 않으셨다면 우리 중에 그 누구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래 참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모두 오래 참으십시다. 그다음의 성품은 용납하다 는 말입니다. 용납하다. 는 말은 잘 견디어 낸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죄로 유혹합니다. 그때 그 유혹에 지지 않고 잘 견뎌야 합니다. 우리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즉시 보복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한다면 이기려고 하지 말고 공격하지 말고 설득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인내심 있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납하고 오래 참아야 합니다. 사도는 사랑 가운에 라는 성품을 부언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의 관심사를 생각할 것이고 그들을 오래 참고 용납해 줄 것입니다. 아이가 수없이 질문한다 해도 여러분은 참을성 있게 대답해 줄 것입니다. 그것은 그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알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그 아이의 수준으로 낮아져서 그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를 사랑할 때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성품을 나타낼 때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킬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한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들입니다. 성령의 하나 되게 하는 성품으로 화평은 평안의 매는 줄로써 함께 지켜지고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고 화평케 하려고 할 때에 하나 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대단원

이것은 주님께서 산상수훈에서 가르치신 교훈과 동일한 것입니다. 8 복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특징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하여 부름 받은 것입니다.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것이 평화를 깨뜨린다면 그것은 옳지 않다는 증거이며 진리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나의 성품에 결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표는 평안의 매는 줄로 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성령의 열매 즉 주님의 성품입니다. 5 13:22-23 ”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바울은 권고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오직 성경께서 네 속에서 너희 가운데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열매를 산출해낼 수 있도록 하라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말씀에 순종은 성령님께 순종입니다. 그럴 때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그와 같이 행동할 때 성령께서 친히 주도하시는 하나 되게 하심이 놀라운 평안의 매는 줄로 연결로써 여러분 가운데 지켜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