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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수정본"

wordlove 2021. 8. 31. 08:17

1. 본문: 4:1-3

2. 명제: 믿음은 반드시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3. 제목: 그러므로

 

1. 갈등

에베소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3장은 순전히 교리적인 것 즉 구원의 방법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모든 교리를 말씀하고 4-6장에서는 이 교리를 실제 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믿는 교리를 어떻게 실생활에서 적용될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교리와 실천을 분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1절에서“ 그러므로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믿는 것과 실천은 서로 연관이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는 교리를 설명하고 나서 이제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 삶에 적용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교리와 실천의 유기적인 관련성을 강조합니다. 바울 사도는 엡 4장에서부터 자기가 지금까지 가르쳤던 교리들을 실천할 것을 호소합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믿는 교리를 적용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믿는 교리에만 기뻐하며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가 변화 산상에서 주님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변화된 모습과 그 영광과 경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아를 보았으며 하늘로부터 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들은 신비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여 내가 여기서 초막을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하리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뜻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머무릅시다. 이거 놀랍지 않습니까? 나는 산 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압니다. 나는 세상의 비참함과 가련함을 압니다. 우리가 여기 산꼭대기에서 머물러 사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그와 같이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생각은 지극히 잘못입니다. 사도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그런 자세는 성경의 교훈을 역행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므로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1-3장에서 머무르면 안 됩니다. 이제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 믿음을 실생활에서 적용해야 합니다. 믿는 교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변화산상에서 초막 셋을 짓자는 제자들의 제안에 동의하지 않고 골짜기로 내려가 귀신에게 시달리는 불쌍한 소년과 그의 아버지를 고쳐주셨습니다. 우리도 은혜를 경험했다면 일상생활에 들어가 믿는 바를 적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러므로“”그러므로 “라는 말을 사용하여 이 권고를 시작합니다.

 

2. 갈등 심화

이 그러므로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첫째는 성경은 항상 전체를 읽어야 합니다. 어떤 한 부분만 읽으면 좋지 않습니다. 성경 전체를 읽고 이해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만 사용하고 강조하면 이단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라는 단어가 이런 위험성을 배제시켜 줍니다. 이단들은 성경의 문맥 가운데 한 부분만 취하여 강조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교리를 만듭니다. 그 구절을 문맥 가운데서 보지 않고 자기 교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여기에서 이상한 교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는 단어는 성경의 총체성과 어떤 구절을 전체 가운데서 봐야 한다는 중요성 그리고 어떤 성경을 그것과 결합된 문맥을 떠나서 생각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두 번째는 그러므로는 단어는 우리가 앞에서 배운 교리의 표준 아래서 살아야 할 생활을 안내해 주는 접속사입니다. 실천은 교리 다음에 따라오는 문제입니다. 교리를 모르고 생활만을 강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 교리만 강조하고 생활이 없는 자들도 있습니다. 둘 다 위험합니다. 천성적으로 머리가 좋아 그들의 두뇌가 지적이고 논리적인 사람들은 심오한 교리를 좋아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1-3 장까지만 공부하고 그 이하는 무관심합니다. 교리에만 머물러 있는 신앙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교리 논쟁에 참여하여 세월을 보내고 새로운 교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진정 회심한 경험이 없는 자들도 있었다는 것이 교회사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교리를 실천하지 못하고 교리 연구에 흥미를 가지고 몰두한 나머지 서로 논쟁하고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교리가 먼저 와야 하지만 그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또 한 체험에만 의지하려는 위험성을 가진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3장까지를 배워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동하여 기뻐한 나머지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비적인 체험을 추구하며 일생을 산 신비주의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속세를 떠나 신비적인 것에 몰두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는 어떤 특별한 체험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신비적인 문제에 몰두하여 다른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교리에만 집착하거나 신비적인 체험에만 관심이 있는 자들은 둘 다 한결같이 그러므로 라는 단어를 무시합니다. 이 단어가 그런 위험성을 지켜 줄 것입니다. 바울이 디도서에서 딛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 하시고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을 삼고자 함이니라. ”바울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신비스럽고 황홀한 체험을 하도록 하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여 하심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13:17“ 내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교리를 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합니다. 또 한 특별한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많이 가진 자에게 더 많은 것은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알고 있는 것과 믿는 것은 나타내야 합니다.

 

3. 전환

셋째는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우리의 생활이 언제나 교리를 실천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교리가 항상 먼저입니다. 이 순서를 바꾸면 안 됩니다. 교리를 분명히 알기 전에는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성화 구원의 교리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성화 교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치 심의 교리는 성화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것도 성화가 아닙니다. 은혜요 칭 의에 속합니다. 그러면 은혜로 구원받은 칭 의 교리는 성화 구원과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그것들은 성화를 촉진시키고 고무하며 성화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성화가 아닙니다. 성화는 은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시요 명령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화는 저절로 얻어지는 경험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명령의 형식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말하는 위대한 체험들은 오직 우리가 빌 2:12-13절에서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성화를 이루기 위하여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상기시킴으로써 우리가 성화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기 위하여 준비된 것입니다. 사도는 엡 3:20절에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역사하실이에게.. ”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상기시켜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 진리를 따라 순종하고 실천하라 행하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리와 체험 그리고 성화와의 연관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생하는 순간에 우리의 성화 구원은 시작됩니다. 우리가 새 생명의 씨앗을 받아들이자마자 그것은 우리 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누어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 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의로움 으로만 받아들이고 후에 거룩함 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완전한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나누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성화 구원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보면 터럭타를 사용하여 잘 갈아 놓은 땅속의 씨앗은 땅속에서 묻혀 있지만 그것으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씨앗은 죽어서 매장된 것이 아닙니다. 그 씨앗 속에는 생명이 있어 싹이 나고 움이 돋아 자라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파란 새싹이 지면으로 솟아오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잘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햇빛이 비추고 비가 내리면 어떻게 됩니까? 햇빛과 비는 생명이 자라도록 자극을 줍니다. 햇빛과 비는 생명의 성장을 촉진시킵니다.. 이미 씨앗 속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서 깨닫는 교리나 체험도 그와 같습니다. 경험들은 성화를 촉진시킵니다.. 내가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있을 때는 죄를 지을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의 사랑을 느낄 때는 죄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됩니다. 교리를 참되게 깨닫는 것도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경험과 성경 지식은 우리를 자극하여 주고 촉진시켜 줍니다. 성경 읽기, 암송하기, 성경 공부하기 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화 그 자체는 경험이 아닙니다. 성화는 내가 받은 생명과 내가 알고 있는 지식(하나님을 아는)의 결과입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이 나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에 옮겨야 할 바로 그때입니다. 2;12-13”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나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는 말씀으로 우리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들은 고무하기 위해서 권고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는 위대한 진리를 행해야 할 것은 오직 주를 바라보는 것뿐 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으며 오직 성화를 은사로서 받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4:1절부터 6장까지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도둑질 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삼가라 ””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신약 성경이 말하는 성화의 교훈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속에 준비해 주신 능력으로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며 지속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교리의 능력과 주님의 자비로운 인도 하심을 따라 우리가 맛볼 수 있는 체험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요 17장에서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 니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러므로라는 말씀을 따라서만 다시 말해 교리를 쫓아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화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교리들을 충분히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위대한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를 불러내신 목적과 우리 앞에 있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수록 우리는 더욱 준비하고 그 일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라는 단어의 참된 의미를 깨듣지 못하면 성경을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보게 됩니다. 성경의 교리와 실천은 서로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것을 분리시켜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설교하면서 동시에 적용해야 합니다. 듣고 실천하십시오. 그러므로라는 말은 우리의 생활과 영혼을 위태롭지 않게 하려고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교리나 경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의롭게 되는 것과 거룩하게 되는 것을 분리시켜서는 안 됩니다. 은혜와 성화는 하나입니다. 성화는 교리와 경험의 필연적인 결과이며 또한 그것은 우리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새 영 즉 성령 때문입니다. 우리가 중생하는 순간에 성화 구원의 과정은 바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 온 심혈을 기울어 두렵고 떨림으로 그것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4. 대단원

사도는 또 한 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고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바로 이 일을 위한 것입니다. 엡 전반 3장을 읽어 보십시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주 시도다.여러분은 이것을 믿습니까? 만일 믿는다면 이 그러므로 라는 말씀이 즉시 여러분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여러분 속의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성화를 향한 소원을 일으켜 주며 분기시켜 줄 것입니다. 엡 1:19-20“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을 보십시오. 1:9-10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여 하심이라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결합시키려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뜻임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나는 하나님의 뜻에 위배되는 일은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일을 돕고 순종해야 합니다. ”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실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사도 요한과 바울의 말씀에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한 요일 3: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나를 끼끗하게 한다 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소원을 일으켜 주는 교리의 진리를 충분히 파악해야 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나를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고 나를 지옥에서 건지 사 천국에 이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 사 내 죄를 위하여 나를 대신하여 죽게 허셨다는 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놀랍고 거룩하신 사랑이 나의 영혼과 나의 생명과 나의 모든 것을 요구하신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그 말씀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나는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전반부 세 장에서 우리에게 설명한 모든 위대한 교리를 따라 우리는 활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 권속‘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그 진리를 믿을 때에 이제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사랑의 포로가 된 것을 알고 기뻐합니다. ” 그러므로 라는 말로서 시작되는 이 말씀은 거부할 수 없는 논리요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내가 거룩해지고 더욱더 거룩해지기를 원하는 것은 내가 그 교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벧전 1:16“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그러므로 는 말의 중요성과 성경을 어느 한 부분만을 뽑아서 생각해서는 안 되며 우리의 감정만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를 받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영원토록 찬미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