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선물"수정본"
1. 본문: 엡 4:7-10
2. 명제: 하나 됨의 원리는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임을 깨달을 때 지킬 수 있다.
3. 제목: 그리스도의 선물
갈등
7절 “그러나”(우리 성경에는 없으나 영어 성경에는 나옴) 이 접속사는 앞의 말과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사도는 여전히 교회의 하나 됨에 대한 주제를 계속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3절“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심을 지키라 ”고 계속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약간 다른 방법으로 권면합니다. 사도는 그 주제의 다른 면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용하는 단어가 “ 그러나 ”입니다. 우리는 통일(하나 됨)을 획일이라는 말로 잘못 생각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 됨을 우표처럼 모든 면에서 차이가 없는 완전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그것은 참된 하나 됨이 아니며 활기 없는 일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 됨은 그보다는 훨씬 크고 장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나 됨은 기계적인 어떤 것이 아닙니다. 현대 사회는 아주 똑같은 물건들을 대량 생산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동일합니다. 사람들은 인간들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모든 면에서 같은 방식으로 처신하는 대표적 모형을 마음에 그립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는 군중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서 대표적 모형을 따라 행동하고 싶어 합니다.. 사도는 이런 견해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도는 하나 됨은 살아 있고 생명력 있는 것이며 그 다양성 때문에 동요가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영적 하나 됨의 특수한 면이며 또한 영광스러운 면입니다. 사도는 이 원리를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살펴봅시다. 4-7절에서 하나라는 단어를 7회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 한 성령, 한 몸, 부르심의 한 소망, 한주,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 ”이 말씀을 통하여 위대한 하나 됨의 원리를 정립하고 있습니다.
2. 갈등 심화
하나 됨의 가르침을 7번씩이나 강조하다가 곧이어서 7절“ 우리 각 사람 ”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 우리 각 사람 ”이라는 말은 하나 됨의 원리를 파괴시켜버리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 됨을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구별할 수 없는 단단한 덩어리의 일부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위치를 상실해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개인적인 자아입니다. 우리는 개인적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한 단위가 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모두 “ 하나 ”이지만 우리가 또한 “ 우리 각 사람 ”이라는 말로써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 하나 ”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모두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몸의 여러 지체로서는 모두 하나입니다. 모든 개개인의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받은 구원은 다른 그리스도인이 받은 구원과 동일합니다. 모든 회심은 동일합니다.. 특별하고 독특한 환경이나 특수한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입니다. 특별한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중생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입니다. 그것은 모든 개인에게 있어서 하나의 기적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똑같은 기적입니다. 대가족에 아들도 있고 딸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똑같은 자식입니다.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있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자식이라는 관계 부모와의 관계는 차이가 없습니다. 한 몸을 생각해 볼 때도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동일하며 하나이며 모두 똑같습니다. 하나 됨은 모든 사소한 점에서까지 동일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같을 수가 없습니다. “ 우리는 모두 각각 개인적인 사람입니다. ”이 말속에는 부동성과 차이성과 다양성과 변화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질 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서로 다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두 가지 원리를 명심해야 합니다. 부동성은 하나 됨을 깨뜨리지 않습니다. 또 한 하나 됨은 부동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구속의 은혜의 특별한 영광입니다. 구속의 기적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상에 나타내고 시사하는 특별한 현상이며 그 무엇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는 몸의 지체 속에 있는 이 명백한 차이를 설명합니다. 7절“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더니 ”여기에서 사도는 이 부동성과 다양성의 관점에서 하나 됨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는 7-16절에서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사도는 교회의 모습을 묘사하고 이 하나 됨과 다양성이라는 두 요소에 의해서 교회가 어떻게 특징지어지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 됨의 원리는 무엇인가?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 내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신 선물임을 깨달을 때 가능합니다. 7절“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전체 교회와 각각의 지체들이 향유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의 제공자가 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양성 속에서 하나 됨을 보증하는 원리입니다. 사도는 고전 12장에서도 똑같은 원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성령의 은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을 보내시는 분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령을 통하여 은사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전 12:4-5절“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고전 12: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여기서도 똑같은 중심 되는 원리를 발견합니다. “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이어서 8-10절을 말씀합니다. “엡 4: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엡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엡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는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으니 ”이는 자기를 격려하고 분발시킨 거룩하신 이름을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룩하신 이름에 대하여 놀라운 표현으로 이 3절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너무나 사랑하여 언제나 깊은 감동을 가지고 주님의 이름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생각할 때면 바울은 자신을 망각하고 한 번 더 그 영광을 찬미합니다. 7절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모든 은사를 나누어 주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두 주님의 영광으로 인하여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어떻게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모든 은사를 나눌 주시는 분이 되는 것인가? 그 답이 8-10절입니다.
3. 전환
이 말씀을 분석해 보면 첫 번째는 이것은 옛날에 예언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8절“ 그러므로 이러기를 ”이라는 뜻은 성령께서 또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나서 시편 68편을 인용하여 18절“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이 말씀의 요지는 주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나누어 주신 은혜는 하나님께서 즉흥적으로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일부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께서 기원전 약 1 천 년 전에 시편 기자에게 그것을 나타내셨습니다. 18절은 교회에 관한 예언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예언입니다. 9-10절에서 사도는 이것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 엡 4: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엡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시 68:18절에서 인용된 말씀을 주 여호와 하나님 자신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68편 전체의 말씀이 다 그러합니다. 그리나 사도가 인용하고 있는 18절에서 “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안겨 주신 큰 승리를 인함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안겨 주신 승리가 이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였습니다. 그 승리에 인하여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 홍해를 건넜던 이야기와 바로의 군대가 멸망한 것과 광야를 여행한 것과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일들을 기억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승리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곤경에 처하여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이 말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엡 4:8절에서 바울은 이것을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고 있습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선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8절“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다윗은 시 68편에서 역사적 사건을 상기하면서 그 당시의 사건을 서술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영감을 받은 자가 되었고 결국 시간을 초월하여 사건을 서술한 것입니다. 다윗 자신을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다 보니 차원 높은 진리를 기록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다윗을 감동시키시어 지역적 사건을 훗날에 일어날 일에 대한 완전한 예언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즉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발생한 사건에 대한 완전한 예언이 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와 같이 선지자들도 그 당대의 사건에 대한 기록 하였고 어떤 한 지역에 그 당시 필요한 말씀을 하였지만 그 의미는 거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예언을 포함하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당대의 한 지역적 사건 역시 먼 훗날에 대한 보다 차원 높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 하에 있었던 기자는 지역적 사건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과 그가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한 표상을 본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큰 증거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다윗이 기록하고 있는 여호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말씀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고전 10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따르는 반석이요 그들에게 물을 주었던 반석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순교자 스데반도 죽기 직전에 행한 설교에서 그리스도는 “ 광야의 교회 ”인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계셨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곧 여호와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을 받았다거나 성부 하나님께서 올라가셨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은 성부 하나님은 언제 하늘에 계시며 영원토록 하늘 보좌에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로 올라가신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예수 님의 능력과 위엄이 성부 하나님과 영원토록 동등하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교리가 이 진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자는 구속의 사역을 위하여 자신을 복종시키셨지만 그의 신분 자체가 예속된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 이단인 아리 우수 파는 그리스도는 영원 전에 창조되어 지금 존재하는 피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스도는 곧 여호와이십니다. 구약 성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쓰여진 말과 똑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곧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66:18절의 말씀은 엡 4:8절에서 인용한 말씀과 똑같지는 않습니다. 여기 에베소서 4:8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시편 68편에서는 “ 인간들을 위한 선물을 받았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그가 선물을 준 것이 아니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 받았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사도는 ” 주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영감의 모순처럼 보입니다. 사도가 구약 성경은 잘못 인용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 받았다 “라는 말과 ” 주었다 “라는 말은 둘 다 옳은 말입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설교에서 행 2:33절”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예수 님께서는 ” 받았으며 “ 그리고 ” 주셨습니다. “이것은 한 동작입니다. 같은 분이 받아서 주신 것입니다. 준다는 동작은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엡 4장을 기록할 때나 다윗이 시편을 기록할 때 감동을 주신 분은 같은 성령입니다. 그리고 이 두 경우에 성령께서 하신 일은 교회에 오는 모든 선물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온 것이며 그를 통하여 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 아들 “에게 선물을 주시는 분은 ” 아버지 “이심을 강조하며 에베소서에서는 ” 교회 “와 그리고 개개의 성도들에게 선물들을 주시는 분은 ”아들“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주권과 권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에서 인용할 때 문자 그대로 똑같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용입니다. 성령께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내용입니다. 선물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통하여 그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는 것과 받는 것이 같은 행위라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하였습니다. ” 아들 “은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위대한 중보자입니다.
4. 대단원
마지막으로 "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라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적에 대한 승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고대에는 왕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는 언제나 승리의 행진이 있게 마련입니다. 패배한 왕은 모두 쇠사슬에 묶인 체 끌려가야만 했습니다. 승리자는 “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 오는 것입니다. ”그는 사로잡은 적들을 데리고 와서 사람들 앞에 구경거리로 전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줍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이런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랫동안 인간을 대적하여 왔고 속박했던 원수들 곧 마귀와 지옥과 죄악의 죽음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의 열차 안에 포로로 잡아 오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포로들을 통치하던 왕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포로가 되어서 끌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원수들을 정복하려고 세상에 오셔서 원수들을 패배시키고 전쟁을 마치신 후 이 모든 포로 들을 이끌고 하늘로 돌아 오사 그의 환호하는 백성들인 우리들에게 선물들을 부어 주시는 광경을 사도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선물의 분배자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 하나 됨을 이룰 수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위대한 대장이시며 우리는 그의 백성들입니다. 주님께서 원수들을 패배시키고 우리들에게 그의 선물들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물들은 언제나 그리고 영원토록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