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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사적 설교 방법

wordlove 2021. 10. 18. 08:21

구속 사적 설교 방법

 

1. 구속 사적 설교 방법

1). FCF(타락한 상황에 초점 맞추기: The Fallen Condition Focus)를 설정: 강해 설교의 전개는 왜 FCF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에 달려 있는가? FCF를 분명하게 제시하면 설교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게 되고 설교자는 한 가지 목적에 중점을 두고 설교를 조직할 수 있다. FCF로부터 설교를 시작해야 할 신학적인 이유는 딤후3:16에 있다.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 함이니 하나님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 말씀을 사용하신다. 성경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이 타락한 존재로 살고 있기 때문에 구속 사역이 필요하다. 단순히 구원을 받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화되기 위해서도 그렇다. 성경에서 말하는 목적에 충실한 설교는 FCF를 기본으로 다루어야 한다.

 

2) FCF를 결정하는 방법: 3단계 과정. a.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b.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은 무엇인가? c. 현재의 청중들과 본문이 쓰인 당시의 사람들(혹은 저자)사이에 공통점은 무엇인가?

 

성경 인물과 현재 청중이 공유하고 있는 상황이 무엇인지를 확인했을 때에만 설교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 고전 9:8-12에서 모세는 자신의 상황에서 이 기록을 했지만 바울은 이 본문이 쓰인 원래의 목적(소에게 노동의 대가로 곡식을 주어야 한다면 사람들은 그렇게 해야 한다)을 적절하게 이해하기만 한다면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현재적인 의미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a. 우리가 FCF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진실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그 본문과 관련된 사실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b. 우리가 성경에서 다루고 있는 그리고 성령이 의도하고 있는 FCF가 무엇인지 결정하기 전까지는 그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 성경 속의 인물과 자신의 청중이 공통 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 강해 설교의 전제 조건이 된다.

 

3). FCF를 영입함: 모든 설교의 주제는 본문의 진리가 FCF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이다. 서론에서 본문에서 왜 이런 진리가 제시되었는지와 현 상황에서 그 진리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설교의 FCF를 설명한다. 이런 FCF의 관점에서 본문의 진리를 어떻게 제시할 것인지를 정식으로 언급하는 것이 설교의 명제인데 이 명제 역시 서론에서 준비하게 된다. 명제의 구조 또한 FCF를 기초로 한다. 우리의 타락은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성경을 통한 위로의 교정이 없으면 계속 악화 될 수밖에 없는 일상적인 현실이다. 본문은 성경의 위로를 삶에 적용하는 방법 그리고 우리의 영적 건강을 위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설명한다.

 

4). 구속의 신호 해독하기: 성경 본문이 우리의 타락과 상태에 초점을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 안에서 구원을 보증하고 그 구원의 특성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a. 설교에서의 반기독교적 메시지: 본문 안에서 구원의 취지를 밝혀내지 못하면 우리의 말이 옳다 하더라도 전적으로 잘못된 설교를 할 수 있다. 아담 스미스는 기독교적 설교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원과 성화의 능력이 설교 곳곳에서 배어 나오게 하는 것이다. 교화 적인 설교들은 모두 기독교적이어야 한다. 즉 구원과 성화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구세주의 사역과 상관없이 도덕적인 권고만 하는 것은 설교를 단순히 바리새주의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b. 설교를 위한 성경 신학: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언급이 없는 본문에서 어떻게 은혜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상황도 본문의 한 부분이다. 성경은 성경의 전체적인 메시지와 완전히 분리되어 존재하는 본문은 없다. 본문의 신학적인 해석이 올바른 것이 되려면 현재의 본문이 성경의 전체 메시지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식별해야 한다. 성경의 모든 부분을 하나로 통합하는 성경의 전체의 주제라는 관점에서 연구하는 방법을 성경 신학이라고 한다. 성경의 모든 계시는 하나님을 드러내며 성경의 모든 구절은 얼마간의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계시는 성경 역사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보스는점진적인 과정은 유기적이다. 계시는 씨앗의 형태로 존재함으로 완전히 자란 후에는 서로 다르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결코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진리의 초기 형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후의 형태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며 이 사실은 역으로도 성립된다.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는 구조를 세우기 위해서 각각의 구절이나 기록된 사건 그리고 각각의 성경 역사 등 모든 것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통해서만 그가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다. 보스는 계시는 구원의 행위와 연결되어 있으며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은 성경의 계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성경 구절이든지 그 구절에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설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본문에서 구속이 지배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계시를 적절하게 설명하려면 그 구절이 구속과 관련해서 어떤 내용과 정황을 갖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에서 나타난 구속적인 측면이 씨앗의 형태라도 그것을 완벽한 열매의 모습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모든 성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드러내려는 목적과 취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c. 설교를 위한 성경의 초점: 그리스도 중심이 설교에서 절대적으로 중심이 되는 요소이다. 본문의 FCF가 인간의 궁핍함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 만큼 하나님의 자비를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원은 우리 인간의 불안전한 측면을 채우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성경은 처음에서 끝까지 우리의 구세주와 힘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찾을 수 있는 방법 그리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을 행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다. 예수 님은 모든 성경은 자신에 관한 설명하셨다. 십자가 이전에 있었던 율법과 선지자들 글과 사도들의 사역에서도 예수 님이 중심이었다.

 

5). 구원의 메시지 해석하기

(1) 주제 설교 방법과 본문 설교 방법: 주제 설교는 본문 안에서 진리를 이끌어 내지 않는 방법이다. 강해 설교는 본문 외에 다른 자료를 참조하지 않는다. a. 본문 설명, b. 예표 설명, c, 상황 설명: 그리스도를 언급하지 않는 본문도 많다. 이때에도 상황에 근거해서 메시지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본문이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원 계획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설명함으로써 본문을 그리스도와 연결시킬 수 있다. 구원이라는 정황에서 볼 때 모든 성경 구절은 구원의 네 가지 초점 중에 적어도 한두 가지 의미는 가지고 있다. 즉 모든 성경 본문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언하거나, 그리스도 사역을 준비하거나, 그리스도 사역을 반영하거나, 그리스도 사역의 결과를 나타낸다. a: 예언적인 본문: ) 40. 구약의 성례 전, 출애굽 b) 준비해주는 본문: 모세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을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것이다. 10 계명은 단순히 도덕적 규범 이상을 의미한다. 즉 율법은 신학적인 렌즈 구실을 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통해 우리 영혼이 얼마나 연약한지 알 수 있다. 구약 성도들은 자신이 무능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은 어떤 것이든지 완벽하게 지킬 수 없으며 그래서 구원자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논지를 충분히 입증하지 않고 율법을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명령이 갖는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c) 반영하고 있는 본문: 본문이 그리스도의 사역의 예언도 아니고 준비도 아니라면 강해자는 그 본문이 구속적인 메시지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간단히 설명하기만 하면 된다. 이 본문에서 반영하고 있는 하나님의 본성 즉 그리스도의 사역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본성은 무엇인가? 이 본문에서 반영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 즉 그리스도의 사역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을 사용하여 본문의 뜻을 왜곡시키지 않으면서도 성경 본문을 구속적인 상황에서 해석할 수 있다. 본문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생각나게 만드는 하나님의 본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물어봄으로써 강해자는 이야기의 계보, 규범, 격언, 비유 등 어떤 형태의 본문이든지 그 안에 계신 하나님의 공의, 거룩, , 신실, 섭리, 구원 등을 발견할 수 있다. 구원의 하나님이 갖고 있는 이런 특성은 그리스도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본문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바울은 그런 본문에 대해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라고 말했다. 영원히 변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자기-계시이기 때문에 모든 성경은 구원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모든 성경은 말씀이나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다. 이런 구원의 진리들은 씨앗의 형태나 성숙한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성경은 계시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런 신학적인 특성을 볼 수 있는 눈만 가지고 있다면 그 특성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계시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결점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줌으로써 그들 모두 구세주와 성화 영적 승리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인물의 결점을 무시하고 이들의 모범을 따르라는 것은 청중들에게 믿음의 소망을 빼앗는 것과 같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도움이 모든 성경 구절에서 하나님을 궁극적인 승리자로 만들고 있다. 설교자의 결론은 구원이라는 주제는 반드시 거둬 들어야 한다. 설교자가 도덕적인 주석을 씨앗으로 뿌려서 그 열매로 율법주의를 거둬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합성적 본문: 종종 성경에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전파되기도 하는 교훈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복종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복종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인간의 복종이 필요하다면 그 행동이 성경에서 요구하는 행동이라고 해도 그것은 단순한 율법주의에 불과하다. 하나님이 인정하신 유일한 복종은 나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그리스도 사역을 통해서 성화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낼 수 없다. 나의 기도는 인간적인 동기와 결점이 많아 나의 기도 자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낼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좋은 의도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예비해 주신 축복의 결과로써 기도한다. 그리스도를 언급하지 않고 그런 축복을 약속하는 것은 기도를 어리석은 주문이나 불운한 소망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삶이 갖고 있는 양상 행동 그리고 소망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 동기의 힘과 근원을 찾을 수 있다. d. 본문의 진리가 그리스도 사역의 예언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구원 사역의 결과로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의미로도 설명될 수 없다면 본문의 상황으로부터 구원이라는 주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성경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예언, 준비, 반영, 사역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스펄전은 나는 이제까지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이 없는 본문을 본적이 없다

 

6). 비구속적 메시지 인식하기: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메시지는 인간 중심적인 메시지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메시지는 인간적인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내는데 초점을 맞추게 된다 a......a...... 이 되어라는 치명적 메시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이런 존재가 되라고 권고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성경 적인 신앙을 손상시킨다. 이런 설교는 성도들의 소망을 침식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메시지는 분명 성경에 근거하고 있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 완성시키지 못한 것이다. b.....처럼 되라. 청중으로 하여금 성경 속의 특정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만든다. 설교자의 실수는 어떤 인물이라도 타락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물론 어떤 부분만 모방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전 11:1, 11:39) 그런 경우 그 인물이 그런 행동을 한 근원을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행동을 한 근원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다면 자랑할 것이 무엇인가? 라는 성경의 경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은혜는 우리 스스로를 자극하고 유지시키는 것이 아닌데 그 이유는 그 은혜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혜는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3:27, 고전 3:5-23) 다른 사람의 경건한 행동을 모방하라고 말하면서 그런 외적인 모방보다 더한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지 않는다면 청중은 영적으로 변화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며 그 필요성마저 부인하게 된다. c..... 선한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 성경 인물의 행동에 초점을 맞출 때 쉽게 비구속적인 메시지를 접할 수 있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지만 순종을 통해서 그 은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암시하는 설교는 성화 과정에서의 하나님의 사역을 부식시킬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본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결국 구원 자체를 의심하게 만들 것이다.

d. 영적 훈련을 실천하라는 메시지: 많은 성도들이 경건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영적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분노를 없애고 은혜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영적 훈련을 실천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못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훈련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화를 누르거나 은혜를 나눠주는 도깨비로 생각한다. 기독교적 훈련을 제시할 때 그 훈련의 동기가 되고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보증해 주는 은혜를 언급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그런 도깨비로 나타난다. 만약 영적 훈련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위나 권리를 획득할 수 있다면 은혜는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도덕적인 교훈으로만 가득 찬 메시지는 은연중 자신의 타락한 상태를 스스로의 능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간성 때문에 우리의 행동은 항상 더립힐 수밖에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 성경의 근본 진리이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 혹은 이후라도 자신의 힘으로 은혜를 획득해야 한다면 그것은 지정 은혜가 아니다. 성경에도 .....하라는 메시지가 있다. 그러나 이런 메시지도 항상 구속적인 상황 안에 귀속되어있다. 그리스도의 사역 없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행하실 수 없다. 구원의 진리를 언급하지 않은 채 성경적 행동만을 가르치는 것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일 뿐이다. 행동을 죄의 교정 수단으로 제시하는 메시지는 율법주의를 조장한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힘으로 지켜야 할 행동을 행할 수 있다고 설교했다면 성도들은 그런 행위를 행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좌절보다는 영혼의 위안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라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도덕적인 행위를 제시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행위 안에서 영광을 받아야 할 뿐은 오직 한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거룩을 위한 노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인간 중심적인 실패할 수밖에 없는 종교로 나아갈 것이다.(6:10) 바울은 ...되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항상 그리스도를 초점에 맞추었다. 강해 설교는 모든 본문을 구속이라는 상황에서 풀어나간다. 청중들이 홀로 출발하느냐 아니면 구세주의 품에서 시작하느냐 하는 것은 허무와 신앙 율법주의와 진정한 순종 그리고 행동을 통해서 선한 체하는 것과 진정한 고결함의 차이를 나타낸다.

 

2. 구속적인 강해의 방법

1) 구속적인 흐름을 포착하기: 우리는 어떤 훌륭한 행위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없다. 우리는 받은 명령을 다행한 후에도 여전히 무익한 종에 불과하다.(눅.(17:10) 우리가 행한 가장 훌륭한 행위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에 불과하다.(64:6) 이런 행위들은 그리스도로 덮어지고 성령으로부터 발생했을 때에만 하나님께 용납될 수 있다. 본문에서 그리스도를 언급하지 안 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2) 구속적인 기초 놓기

(1) 타락한 상황을 제시하기: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를 위해서는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FCF를 명확하게 진술하는 것이다. 타락한 상황을 분명하게 제시하면 설교자가 어떤 본문을 강해하든지 구속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성도들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서 영감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본문의 목적을 상세하게 설명할 때 성도들은 구멍이 뚫려 있는 불완전한 영적 존재로 비추어지며 이런 구멍은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다. 성경 분문에서 말하고 있는 구멍 즉 FCF를 설명한다면 우리는 인간적인 행동을 제시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2) 그리스도 중심을 설명하기: 올바른 강해는 예수 님을 본문에 강제로 앉히거나 어떤 구절 속에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 계획과 그 계시 안에서 본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 중심이라는 주제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시드니 그레이다누스는 유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성경 본문을 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속 사의 통일성이란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한 모든 본문이 그리스도 중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구속 사는 곧 그리스도의 역사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역사의 중심과 주제가 무엇인지를 밝혀준다. 성경 본문이 그리스도 중심에 초점을 맞추거나 설교가 그리스도 중심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설교자가 예수 님의 인격이나 사역에 관한 구절을 메시지 속에 교묘하게 쑤셔 넣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뱀을 쳐부수는 위대한 드라마 안에서 이 본문이 어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모세 율법이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신약의 사건을 이끌어 내는 것도 도약을 한 것에 불과하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구속적 행위를 계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그리스도 중심에 초점을 맞추려면 현재의 성경 본문이 전체적인 구속사에서 어떤 위치와 기능을 갖고 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자신의 위대한 계획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심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 모든 성경 구절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그레이다누스는 그리스도를 역사 속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영원한 로고스로 이해하면 모든 설교가 그리스도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직접 적으로 언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주장인지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영원한 로고스로 이해함으로써 그 틀을 파괴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그 구속 사역을 직접 언급하지 않더라도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구속 역사의 한 시점에 이미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강해 설교를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로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골고다와 베들레헴을 언급할 필요는 없다. 설교자가 본문의 내용이나 상황에 근거해서 신학적인 진리나 역사적인 사실을 설명하고 그것을 통해서 현재의 본문이 사탄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싸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증명할 수 있다면 그 메시지의 중심에는 이미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3) 구속적인 목적을 식별하기: 설교자가 성경 전체의 목적만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어떤 설교에서든지 예수 님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서도 그리스도 중심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 계획과 목적 이유를 제시하기 위해서 본문을 어떻게 사용하셨는지 설명한다면 이런 설교는 청중을 인간 중심적인 신앙으로 나가게 만들지는 않는다.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교훈 속에 나타난 원칙을 통해서 하나님이 성취하려고 했던 목적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설교자는 메시지가 단순히 인간적인 영웅을 숭배하는 것으로 전락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성경의 진정한 영웅은 하나님이시다. 물론 인간적인 모범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15:4) 그리고 인간의 긍정적인 모습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중심의 설교는 필연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가 된다. 하나님의 구원 활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리스도 사역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며 구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때 필연적으로 그리스도 사역 또한 발견할 수 있다.(1:1-3) 설교가 진정한 설교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설교가 직접 골고다로 뛰어 넘어갔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속 사 안에서 그 구절의 의미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아냈기 때문이다. 설교자가 성경 속의 사건이나 인물 기록 등이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다시 말해서 여자의 후손과 사탄 사이의 싸움에서 여자의 후손이 완벽하게 승리하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그것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하나님이 구원 계획이라는 관점에서 즉 그 계획을 구속적으로 계시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성경에 기록된 인물이나 교훈 사건은 저마다 올바른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고대의 영웅도 가망이 없는 타락한 본성을 가지 피조물이며 그들의 신앙이나 은혜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가능하다고 설명할 것이다. 율법도 단순한 도덕적인 교훈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으로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즉 거룩한 행위를 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3:24) 율법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수행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위대한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해야 한다. 성경의 영웅들도 그들의 약점을 통해서 진정한 의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성경적 기준(율법이든, 인간적인 모범이든)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뜻에 따라 제시할 것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게 인도할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설명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에 감사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선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든다.

 

3. 구속적인 강해의 수단

1) 구속적인 강해의 절차

a. 본문에 나타난 구속의 원칙을 제시함

a) 구속을 제공한 하나님의 계시 된 본성

b) 구속을 필요로 하는 인간의 계시 된 본성

b. 본문의 성도들이 이런 구속의 원칙을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했는지 설명함.

c. 현대의 성도들이 본문 속의 성도들과 공유하고 있는 공통적인 특성이나 상황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런 관점에서 구속적인 원칙을 현대인들의 삶에 적용함.

 

이 절차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이 과정을 통해서 청중이 이 메시지를 들어야 할 이유를 제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궁핍함을 처리해주는 결과로 청중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며 즉 청중이 행하고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것을 곧 메시지의 목적으로 삼을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첫 번째 특징의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메시지가 이런 구속적인 진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메시지의 목적이나 강조점이 인간 중심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나 행하고 계신 일 혹은 앞으로 행하실 일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FCF가 메시지를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이 그런 행동을 하신 이유를 설명해 주지만 구속적인 강해는 인간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인간의 외람됨을 배제시킨다.. 이런 강해는 설교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기능 즉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능을 감당할 수 있다. 성도들은 모두 헌신의 소명을 갖고 있지만 설교자들은 이 소명이 하나님의 구원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의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 충실한 설교는 사람들이 자신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시는 분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들을 행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요구를 행할 수 있다.

 

2) 구속적인 강해의 실체

구속적인 강해는 어떤 모양을 갖추어야 하는가? 설교자는 본문에 나타난 교훈을 청중에게 제시하기 전에 먼저 그 근거가 되는 구속의 진리를 강조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교훈을 설명하면서 구속적인 사건을 제시할 수도 있으며 교훈을 모두 제시한 후 즉 설교의 끝부분에서 그 교훈을 실천하게 만드는 구속적인 진리를 지적해줄 수도 있다. 마지막 방법은 조심해야 한다. 전체적으로는 인간 중심적인 설교를 하다가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잠깐 언급할 가능성이 있다. 메시지 안에서 하나님 중심의 요소를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구속적인 설교는 세 가지 대지를 설명한 뒤 십자가를 붙이는 설교가 아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는 설교자가 제멋대로 십자가를 언급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라고 해서 반드시 십자가를 언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만드는 것이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이다.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 계획안에서 본문의 역할과 위치를 이해하게 해주는 설교이다. 청중이 메시지 전체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답해 봄으로써 하나님의 역사적 신학적 개인적인 목적을 이루는 방향으로 성경 본문을 해석했는지 판단해 볼 수 있다. 구속의 주제를 첫 번째 대지에서 서론 결론 부분에 전개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중심성은 인위적인 기준이 아니라 본문의 전개 과정과 메시지의 목적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3) 구속적 강해의 메시지

하나님의 구속적 사역을 중심에 두는 강해 설교 방법은 인간의 행위를 과대평가하거나 은혜를 경시하여 율법주의 경향을 띠는 설교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지닐 것이다.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은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목이 곱고 유혹에 잘 빠지는지 묘사하는 구절을 본문으로 삼는다면 설교의 주제는 인간의 실수나 결점 그리고 반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항상 신실하다는 사실이 될 것이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택하시고 우리와의 관계를 확고하게 보증해 주셨다는 사실을 주제로 삼았을 때도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런 메시지에서 설교자가 숙고하게 될 주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쉴 수 있는 특권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등의 주제이다. (2) 죄의식을 없해 주는 은혜: 칭의나 용서에 관한 메시지는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는 은혜를 주제로 삼는다. 이런 주제의 메시지는 고백과 회개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함께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죄를 씻기에 충분하고 완벽하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3) 죄의 세력을 물리치는 은혜: 우리가 받은 영적 능력이나 성화에 대한 메시지는 그리스도가 항상 존재하셔서 우리에게 영적 효험이 된다는 사실을 성경이 증거 할 때 나타난다. 이런 압도적인 은혜를 전함으로써 설교자들은 성령의 능력과 말씀의 진리 안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성도들이 세상과 육신과 마귀와 싸울 준비를 갖추게 해 준다. (4) 거룩으로 이끄는 은혜: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은혜를 설명하기 위한 무대라는 사실을 성도들이 깨달을 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경외와 겸손이 생겨난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에게 복종하라고 권고하는 메시지의 기초가 된다. 동시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에게 순종하는 데 적적한 동기 유발이 된다. 또 한 성도들이 성경 진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할 때 그 결과가 감사와 찬양 사랑의 봉사로 나타난다.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는 기독교인들이 성도로서 지켜야 할 일반적인 행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의 근원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이끄는 은혜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규율은 변함이 없지만 그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는 변한다.

 

4) 구속적인 강해의 특징: 우리가 청중에게 거룩하라고 말할 때 그들에게 어떤 동기 부여를 주는 가에 따라서 우리의 설교가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인지 판단해 볼 수 있다. 순종할 수 있는 동기 부여를 은혜를 통해서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행위의 근원을 기독교인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데 두면서도 성경의 교훈을 현재의 삶에서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5) 은혜의 영향 이해하기

(1) 역사적 이해: 존 번연은 감옥이라는 환경에서 승리의 삶을 증거 했다. 번연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사랑이 두려움 보다 훨씬 더 강한 동기 부여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확신과 고백을 버리지 않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벌을 주실까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신 구주를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의 신앙에 동기를 부여한 것이 위협적인 것이었다면 번연은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의 위협에 굴복했을 것이며 하나님의 분노는 나중에 진정시키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구세주에 대한 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신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2) 개인적인 이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그만큼 사랑하고 호의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들의 행동이 얼마나 선한가에 달려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 앞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부인했다. 나는 하나님을 자기보다 못한 성도에게는 아량을 베풀지 못하는 옹졸한 사람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자신의 행위에 따라서 자신이 고귀한지 아닌지 판단하게 만든 것은 나의 설교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실수를 보면서 자신이 비교적 의롭다고 생각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에게 옹졸해지는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이었다. (3) 공식으로 이해하기: 만일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그럼으로써 죄악을 없애거나 그 결과로써 벗어날 수 있다면 바리새파의 주장은 타당하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의인을 더 사랑하신다. 오직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통해서만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고 행동할 때 우리의 의로운 행동이나 동기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죄는 우리를 십자가로 몰아 가지만 감사는 죄에서 벗어나 참된 순종의 삶을 살게 만든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께 잘 보이기 위해서 뇌물을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분을 향한 감사와 찬양의 표시이다. 이기적인 행동이나 무의미한 아첨 같은 행위는 하나님의 품에서 사라지고 대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고 싶은 욕구를 갖게 되며 그분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게 되고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된다. 즉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변함없는 사랑을 우리의 선행 보다 앞세우지 않는 설교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병들게 할 것이다.

6) 은혜를 수단으로 활용하기; 성도들에게 올바른 행동을 촉구하면서 그 이유나 방법에 대해서 주지 않는다면 그 설교는 성도들을 해칠 수 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자신의 행동이나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께 용납받고 그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화는 오로지 은혜의 결과일 뿐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사랑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얻거나 획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은혜는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며 그 사랑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도 이미 보장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지만 불순종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거절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결점 때문에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물론 죄의 결과로 우리는 연단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연단도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표현에 불과하다.(12:5-11) 우리는 오직 은혜로만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만 성화 된다. 우리는 오직 은혜로만 보장받는다. 우리는 성도들에게 순종을 요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있다고 위협해서는 안 된다. 이런 위협을 통해서는 결코 진정한 순종을 이끌어 낼 수 없다.

(1) 변화의 동기: a.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에 대한 응답: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 순종하다가 우리가 영적으로 실패했을 때 느끼는 죄의식은 아들을 희생시키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에 대에 배반했다는 후회이다. 이런 죄의식은 하나님께 거절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느끼는 이기적인 수치심이 아니라 자신이 죄에 대한 보상 심리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위치와 가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확인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의 뜻에 새로운 열의를 갖게 되고 그의 무한한 은혜를 더욱 깊이 있게 체험하게 되고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더욱 갈망하게 된다. 이런 확인 작업을 통해서 우리는 살아가는데 가장 강력한 힘이 되는 것은 두려움이나 미움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우리 자신을 살아 있는 영적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했으며(12:1)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능력은 은혜라고 선포했다(딛(2:11) b. 사랑 많으신 하나님이 드러내시는 죄의 결과를 피하는 것: 설교자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결과를 하나님의 사랑이 조건적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죄의 결과를 오히려 사랑의 하나님이 은혜를 계시하는 것으로 설명해야 한다. 즉 하나님은 우리가 죄의 결과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해를 입지 않도록 우리 게 연단으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은 자녀를 죄에서 구해 주시는 구원의 연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신다. c. 하나님이 사랑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의롭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남을 판단하는 마음 및 자존심이 사라지고 가난한 사람과 연합하게 된다. 많은 설교 자들은 성도들을 죄의식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이 설교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며 성도들은 그런 설교를 듣고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죄의식에 시달린 후에야 은혜를 얻을 수 있고 위안을 느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죄의식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한 고행을 의미한다. 참된 거룩은 죄의 악함을 의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은혜로만 죄를 도말시킬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 데에서 온다.

(2) 변화의 방법: 십계명도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가 갖고있는 구속적인 요소를 발견한다. 모든 성경은 구속 사건의 기록에 포함되므로 하나님의 능력과 부적합이라는 메시지를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수 있는 전형적인 방법이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더라도 본문의 한 측면이나 문맥은 우리 스스로의 해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구하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앞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을 구원하셨는지를 말했다. 하나님의 활동을 믿고 의지하면서 인간의 궁핍함을 고백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일관된 주제이며 성도들도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능력과 동기는 은혜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이해시키기만 한다면 하찮은 인간적인 노력과 무모한 자기 장담은 사라질 것이다.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설교의 내용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목적으로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설교에 능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프란시스 쉐퍼는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빈손으로 나아가야 하며 우리가 성화가 되려면 두 번 고개를 숙여야 한가고 가르쳤다. 우리는 도덕적인 의무를 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혜의 진리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PS: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구약의 다양한 길들(구약의 구속 사적 해석 7가지 길)

 

1. 점진적 구속 사의 길

1) 하나님 중심(그리스도 중심):그리스도 중심은 하나님 중심이어야 한다.

2) 통일된 이야기

3) 구약의 역사는 그리스도께로 인도 그분 안에서 성취

4) 구약에서의 네러티브: 3가지 수준 (1) 최저 수준: 개인적 수준으로 봄(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다윗의 개인적 영웅적인 과점에서 봄 (2) 중간 수준: 이스라엘 민족 수준: 다윗의 승리로 이스라엘 민족이 안전을 얻음 (3) 최고 수준: 구약을 넘어 신약을 통해 진행(;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최저 수준은 다윗 자신을 영웅시, 중간 수준은 이스라엘 나라 안전, 최고 수준은 사탄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구속사 속에서 위대한 왕 다윗과 족장 아브라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메시아 이신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한다. 다윗은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6)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아브라함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 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 )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12:3)는 약속을 받았다. 마태는 그리스도를 점진적 구속사를 사용하여 이 모든 땅의 영원한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을 받은 왕통의 계승자로 설교한다.

 

2. 약속-성취의 길

 

3. 모형론의 길

알레고리 해석은 해석자가 해석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지 어떤 본문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것.(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것) 모형론은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행위들의 축에 따라 구체적인 유추들을 발견하는 것. 모든 세부 사항들에서 모형들을 찾는 것은 알레고리에 빠짐. 참됨 모형은 역사적이다. 오직 역사적 사실적인 인물들, 행위들, 제도들, 사건들만이 모형론 해석의 자료가 됨. 참된 모형론은 하나님 중심적이다. 참된 모형은 그 원형과 의미심장한 유추를 보여 준다. 모형론은 참된 일치를 보여준다. 세부 사항의 병행 관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기본적인 원리들과 구조의 일치에 관심. 확대 상승에 의해 표시.(요나보다 더 큰 이가 마 12-41-42)

모형론의 규칙

1) 모형론적 해석은 항상 문법-역사적 해석을 전제로 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에 초점을 맞추기 전에 이스라엘을 향한 메시지를 먼저 찾는다.

2) 세부 사항에서 찾지 말고 자기 백성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활동과 관련된 중심 메시지를 찾으라.

3) 구약 시대의 인물, 제도, 사건의 상징적인 의미를 찾으라. 구약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지 못하면 모형이 될 수 없다.

4) 구약의 모형과 신약의 원형 사이의 대조 점을 기록하라.(차이, 유사점)

5) 구약의 상징/모형에서 그리스도로 옮겨 갈 때 그 의미가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만큼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선약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계신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신 구속 행위를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새 시대의 그림자와 예상 형태(prefigurations)와(prefigurations) 모형으로 본다. 따라서 모형론은 유추(analogy)와 확대 상승(escalation)으로 특징지어진다.. 모형론적 해석의 기초가 되는 주요한 전제 조건은 역사의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으로서 역사에서 구속 계획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신약의 모형론적 주해의 이론적 근거는 단순히 하나님의 언약의 역사 전체에 미치는 하나님의 목적의 연속성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내고 설명하기 위해 역사를 만드시고 이용하시는 하나님의 통치권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비유들을 시간의 모래밭에 기록하신다'"'" 감추어졌거나 오직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것들은 이제 그 안에서 성취되는 교회-메시아적 공동체-에 드러나 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앙은 모형론적 해석의 필수적인 기초가 된다.

 

4. 통시적 주제들의 길

1) 먼저 구절의 주제를 찾으라.

2) 구절과 관련된 그리스도를 찾으라(신약에서)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신의 구속 계획을 실행하실 때, 자기 자신과 자신의 뜻을 점진 적으로 계시하시기 때문에 성경은 주제들의 점진적 발전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주제들의 발전을 구약 자체서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시편의 어떤 시들은 그 당시의 왕들이나 미래의 왕들이 가지는 승리를 축하한다.. 그러나 다윗 계통의 왕에 없던 포로 기간 동안 선지자들은 이러한 승리의 주제를 그 왕통의 왕로부터 오실 메시아 왕으로 확대한다. 신약 저자들 역시 구약의 주제들을 그리스도께로 확대하고, 그것들을 그리스도 빛에서 재해석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설교한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님에게서 그것을 배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종종 하나님의 왕국이나 특별한 율법들과 같은 구약의 주제들을 취해서 자신이 이 땅에 오셨다는 관점으로 그들의 의미를 강화하셨기 때문이다. 존 브라이트(John Bright)신약 성경 어디서나 구약의 핵심 주제들을 파악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그것들에게 주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구속이라는 주요 주제는 구약의 첫 부분에서 발견되며, 그것은 곧장 예수 그리스도까지 추적될 수 있다. 창세기에 따르면, 구속은 여자의 후 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원수 관계를 둠으로써 하나님의 창조를 자신의 피조물들의 반역에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에 기초를 두고 있다(:15).

 

 

5. 대조의

신약은 또한 그리스도를 대조의 길에 의해 설교한다. 다른 길들이 구약과 그리스도 사이의 연속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에 대조는 그리스도께서 가져오는 불연속성에 초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에 지상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시려는 방법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한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왕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단과 주상과 목상과 우상들을 가지고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 악한 일곱 족속들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다(7:1-6). 대조적으로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라고” 명령하신다(28:19-20),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옛 언약의 요구를 성취하기 바라는 방법과 신약의 성도들에게 새 언약의 요구를 성취하기를 바라는 방법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6. 신약에 관련된 구절들

신약의 저자들은 그들의 메시지를 지지하기 위해 구약 구절을 사용한다. 시편에 대해 설교할 때 선택된 바로바로 그 본문과 관련된 신약의 구절을 찾을 수 있다.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가교 역할을 찾는다. 구약 본문에 대해 신약이 직 간접 인유. 구약 본분에 대해 신약 관련 구절이 구성 요소를 언급하지만 반드시 그 주제에 관한 것은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7. 유추(병행 관계적 상황들)

유추를 통해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누구에게 누구신지를 보여주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약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