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
1. 본문: 살 전 5:18
2. 본문 중심 진리: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삶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명령했다.
3. 주제: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
4. 테마: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
5. 명제: 감사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다.
5. 목적: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사람의 양식임을 격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6. 질문제기: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 되기 위해 감사는 어떤 모습으로 표현 되어야 할까?
7. 중심 단어: 여러 가지 모습으로
8. 전환 문장: 감사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 되기 위해 감사는 어떤 모습으로 표현 되어야 할까?
8. 대지
1) 감사는 언제 해야 할까요?
2) 감사는 왜 해야 할까요?
3) 누가 감사 할 수 있을까요?
4).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10. 제목: 범사에 감사하라
11. 복음: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입니다.
본문: 살 전 5:18
다음 주일은 전 세계 개신교인들이 추수 감사주일로 드립니다. 일년 동안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면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 추수 감사 주일의 유례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청교도들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1492년에 콜럼버스에 의해 미국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미지의 땅이요 터프한 인디언들이 터 잡고 있는 그런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 때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오늘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청교도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참으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영국 왕 차알스 1세 때는 핍박이 극심했습니다. 그 때 일단의 청교도인 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인 오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1620년 영국 플리머스 항구를 떠나 120여명의 청교도인 들이 생명을 걸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지의 땅인 오늘의 미국 땅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들이 타고 온 배 이름이 오월의 꽃이라는 메이플라워입니다. 그들이 처음 도착한 곳이 미국의 동부 오늘날의 메사추세추 연안이었습니다. 그해는 극심한 추위가 찾아왔고 설상가상으로 굶주림과 풍토병으로 거의 절반이 일년이 체 못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남은 사람들은 일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일년 후 되는 가을에 추수 농사를 마친 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추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태반이나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슬픔 가운데서도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오늘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의 조상들입니다. 진정 감사드릴 형편이 안 되었지만 그들은 역경 가운데서도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 후손 선교사님들이 120-30년 전 조선 땅에 복음 들고 찾아와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오늘 이 땅에 약 8백 내지 천 만 명의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이 때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가 한국 교회의 모판이 되었습니다. 미국 선교사님들이 세운 좋은 전통을 따라 추수 감사 예배 절기를 한국 교회도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는 삶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늘 읽은 데살로니가 전서는 AD 50년경 바울 사도가 개척한 교회인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시대는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가 극심한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전하자 로마 황제 대신 예수를 왕으로 전하는 반역자들이라는 누명을 받게 되어 생명의 위협을 느낀 바울은 아직 어린 교회와 교인들을 두고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떠난 이후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고 흔들리지 말고 감사하는 신앙생활을 할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 오늘 말씀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범사에 감사하는 삶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주 추수 감사주일을 앞두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사람의 양식임을 격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삶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 되기 위해 감사는 어떤 모습으로 표현 되어야 할까요?
1. 감사는 언제 해야 할까요?
바울 사도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범사라는 말은 환경의 유 불리에 구해 받지 말고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전천후 감사 생활을 말합니다. 누구나 순풍을 만나면 감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역경의 때는 원망, 불평 짜증을 부리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요사이 생활이 어렵다 보니까? 요행을 기다리며 대박을 기대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롯 또 복권이 한번 터지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대박이 터지면 감사해야겠지요. 하지만 내 손에 보잘 것 없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은 것이 들어온다고 해도 감사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어린아이가 가져온 작은 도시락 하나를 들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셨습니다. 약 만 명 이상이 되는 군중 앞에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무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꿀보다 더 단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후가 되자 모든 사람들의 배들이 밥 달라고 데모를 벌입니다. 눈치를 체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시험해 보셨습니다. 너희들이 먹을 것을 주어라. 그러자 믿음없는 제자들이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제자 야고보는 주님 우리 돈 없는 것 아시죠. 지금 이 큰 무리를 먹이려면 빵 하나 우유하나를 준다고 해도 최소한 몇 백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보고 책임지라니요. 주님! 농담하시는 군요. 다들 이런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자 중 안드레는 일단 주님의 말씀에 순종 하고자 먹을 것이 있는지를 찾아보았습니다. 가난한 시절이니 누구하나 변변하게 도시락 하나 챙겨 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꼬마 여자 아이가 도시락 하나를 들고 있습니다. 그 속에는 멸치만한 작은 물고기 두 마리와 시꺼먼 보리떡 다섯 개가 들어있는 보잘 것 없는 도시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참으로 착한 아이었습니다. 제자 안드레가 애야! 그 도시락 예수님에게 드리지 않겠니? 하자 보통 아이 같으면 싫어요! 하고 단박에 거절 했을 텐데 예! 아저씨 예수님께 갖다드리세요 라고 순순히 내놓았습니다. 제자 안드레가 예수님께 그 도시락을 들고 와서는 주님! 아무리 찾아보아도 먹을 것이라고는 이 도시락 하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것이 무엇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라며 예수님께 도시락을 건네자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작은 그 도시락 하나 들고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작은 도시락을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도시락을 나누자 똑 같은 도시락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나눌 때마다 계속 새로운 도시락이 생겼습니다. 그날 만 명 이상 되는 모든 사람이 배불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풍성한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십시오. 큰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기대 한 것 보다 더 수입이 적고 내 기대에 비치지 못할 때 바로 그때가 감사를 드릴 때인 것입니다. 내손에 가진 것이 적을 때 바로 감사 할 때인 것입니다. 작은 것 가지고 감사하면 주님은 더 큰 것을 주시는 것입니다. 반디 불 가지고 감사하면 호롱불을 주시고 호롱불을 가지고 감사하면 전기 불을 주시고 전기 불을 가지고 감사하면 햇빛을 주십니다. 언제 감사해야 할 까요?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그곳에서 감사하십시오. 형편이 어려울 때가 바로 감사가 할 때입니다. 작은 것 가지고 감사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는 태도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입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 되기 위해 감사는 어떤 모습으로 표현 되어야 할까요?
2. 감사는 왜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믿기 때문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주권을 모르는 불신자들은 역경을 만나면 운명론에 빠져 팔자소관으로 자신의 운명을 돌립니다. 내 팔자가 이렇게 더럽고 사납다. 그래서 체념하거나 누구를 향한 불평과 원망을 쏟아 부는 것입니다. 만사가 형통하면 축복 받은 인생이요. 어려움을 당하면 자신을 저주하며 한탄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을 사랑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내 인생을 다스리는 사랑의 주권자이심을 믿는 사람이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롬 8:29“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동방의 의인이라는 칭송을 받은 참으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구 보다도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강도 때들이 들어 닥쳐 모든 재산을 강탈해 가버렸습니다. 집이 무너져 사랑하는 여덟 자식들이 하루아침에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욥의 몸에 흉악한 병이 생겼습니다. 친구들은 이런 욥의 보습을 보고 고개를 돌리고 비웃습니다. 마누라마저 저주하며 도망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극심한 역경의 상황 가운데서도 “욥1: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욥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이다 하고 욥1: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 하니라” 역경의 때에 욥은 먼저 하나님께 엎드려 예배 드렸습니다. 주님의 거룩하심과 선하심을 찬양했습니다. 입으로도 죄를 짓지 아니하고 불평 원망 하지 아니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욥은 자신이 만난 역경 가운데는 자신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음을 믿고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주님을 믿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욥기서의 마지막 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욥을 갑절로 축복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역경을 통한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자 주님은 감사하는 욥을 갑절로 축복하신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은 감사해야 할까요? 주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입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 되기 위해 감사는 어떤 모습으로 표현 되어야 할까?
3. 감사는 누가 해야 할 까요?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너희를 항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여기 너희는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을 가리킵니다. 감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만이 진정 할 수 있는 믿음의 징표인 것입니다. 십자가 사랑을 경험한 사람만이 진정 감사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의 특징은 원망, 불평, 짜증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예수님 만난 참신자의 징표인 것입니다. 어느 날 열 문둥이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고쳐 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겨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가는 도중에 자기 몸을 보니까? 깨끗하게 나아있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열 문둥이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님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엾더나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대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는이라 하시더라“ 나머지 아홉 문둥이는 병이 낫는 주님의 축복을 경험하자 주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이들은 육체의 병은 치유 받았지만 예수님은 진정 만나지 못하고 더 중요한 자신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을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러나 한 문둥이만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이 사람은 육체의 병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영혼까지 구원 받아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감사는 구원 받은 사람의 징표인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크신 은혜 때문에 감사하십니까? 감사로 여러분의 믿음의 진정성을 보여 주십시오. 범사에 감사는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입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이 되기 위해 감사는 어떤 모습으로 표현 되어야 할까?
4.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요?
우리는 말로서, 기도로서, 찬송으로, 헌신으로서 주님의 은혜에 감사 할 수가 있습니다. 먼저 말로서 하나님 감사해요라고 선포하십시오. 입으로 감사해요 감사라는 말이 습관이 되도록 하십시오. 원망 불평해보세요 마귀가 춤을 추고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면 원망, 불평, 마귀는 기겁을 하고 도망가고 마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곳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또 기도 할 때마다 감사를 먼저 드리십시오. 달라고 구하는 기도보다 먼저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감사부터 먼저 하십시오, 하나님 이 것 저 것 감사해요. 부모님이 자식들로부터 감사 합니다 라는 말을 들으면 기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드리는 감사 기도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응답 받은 기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찬양은 감사입니다. 찬양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곳에 성령님이 충만히 임하십니다. 무엇보다 귀한 헌신으로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릴 수가 있습니다. 귀신들렸다가 예수님으로부터 고침 받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결혼할 때 가지고 가기위해 수년 동안 모은 귀한 향유가 담겨있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으셨습니다. 그 당시 풍습으로는 귀한 손님이 집으로 찾아올 때에 하는 최고의 예우가 바로 향유의 머리에 부어 감사를 표하는 관습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자신에게 베푼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여 이런 아름다운 귀한 헌신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자 이것을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가롯 유다는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느냐? 왜 귀한 것을 허비 하느냐?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않고 라며 마리아를 막 나무랐습니다. 가록 유다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드린 헌신을 허비하는 것으로 비웃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에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가고자 하니 내 백성을 놓아 달라고 하자 너희들은 게으른 백성들이다 라며 욕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게으른 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조롱합니다. 다윗 왕이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날 너무 기뻐 등실 등실 춤을 추었습니다. 이것을 본 아내 미갈은 왕이 체신머리도 없느냐고 비웃었습니다. 그 비웃음으로 미갈은 자식을 못 낳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롯 유다는 마치 가난한자를 많이 생각하는 의로운 자처럼 위선을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롯 유다가 나중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은 배신자였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모르는 자는 진정 감사 할 수도 없고 은혜 받은 사람의 헌신의 의미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 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마리아의 사랑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진정 받으시고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의 예언대로 오늘 섬김의 교회에서도 막달라 마리아의 아름다운 헌신이 소개 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감사하는 인생을 보시고 기뻐하시면 축복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양식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는 나의 삶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