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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길

wordlove 2022. 9. 4. 15:26

1. 본문: 요일 3:2

2. 본문 요약: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이다.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그분과 같이 될 것을 압니다.

3. 본문 주제: 영광의 길

4. 본문 테마: 그리스도인의 삶이 영광의 길인 이유

5. 명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광의 길이다.(선언적 명제)

6 교훈: 그리스도의 삶이 영광의 길인 이유를 분명히 밝혀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서

7. 질문제기: 그리스도인의 삶이 영광의 길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8. 전환 문장: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광의 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영광의 길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9. 대지

10. 제목: 영광의 길

 

오늘 본문은 이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가장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백스터가 이런 찬송 시를 섰습니다. “ 주님 살고 죽는 것은 내가 염려할 일이 아닙니다. 오직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만이 내게 할당된 몫이며 이 일을 위해 주님의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만일 생명이 오래 지속된다면 그만큼 순종할 수 있음을 감사하며 비록 생명이 단축된다 해도 영원한 세계로 들어감으로 인해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이전에 통과하셨던 어두운 방보다 더 어두운 곳으로 인도하지 않으실 것이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가 제시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가 갖는 불행한 느낌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신분이나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아가게 될 영광된 길과 연결 시켜 생각하는 대신 그저 앞에 당장 일어나는 것들에만 집착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해 나아갈 때 실패하는 대체적인 이유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눈앞에 일어나는 일에만 집착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라는? 사실만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의 도덕적 행동이나 품행 등과 관련된 전반적 질문에 걸려 넘어지는 근본 이유가 내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중요한 사실을 인식하는데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신약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선한 생활과 선한 행위에 대해 강조할 때 언제나 우리의 신분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누구인가 우선적으로 상기시켜 주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요청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성경은 먼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여러분이 이런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므로....’와 같은 내용으로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과 그리스도의 사역의 결과로써 주어지는 주님 안에서의 우리의 신분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신분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 글을 읽는 성도들을 위로하고자 이 글을 쓰면서 그들이 복음이 제시하는 모든 축복을 진심으로 받고자 한다면 우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해야 하고 그다음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과, 형제들을 사랑하되,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지 않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만 된다고 강력하게 제언합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는 왜 이런 일을 해야만 합니까? 라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해 사도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인가를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런 요청들은 저절로 지켜지게 될 것입니다. ”라고 답을 합니다. 이 내용이 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지금 이 세상 안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에게 불친절하며 괴롭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 때문에 불편해하거나 흥분할 것 없다. 이 세상은 여러분의 신분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생각하거나 평가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에도 알지 못했다. 하나님에 관해서도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따라서 이 세상이 여러분을 비웃는다는 것은 여러분이 소유한 믿음을 확실하게 인정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이 우리에 대해 좋게만 말한다면 우리의 믿음이 아주 좋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 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서 세상이 우리를 높여 주고 이해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오히려 자신을 심각하게 살펴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광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영광의 길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다 라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고 헬라어 현재형을 사용해 신분의 계속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번 더 강조하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어디에 놓여있으며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나는 알고 있다, 나는 확신하고 있다. 나는 확실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다. 나는 이것에 대해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주장할 수 있다. 현재 하나님의 자녀인 것처럼 장차 누릴 놀라운 영광중에도 하나님의 자녀로 남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자녀인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영광중에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삶에도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거나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거나 둘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또 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앞으로 영원토록 하나님과의 귀한 관계는 변함없이 지속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믿으면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되며, 이것은 거듭나게 됨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이미 맺어진 관계이며 앞으로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는 말씀은 앞으로도 계속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제시하는 뜻을 알고 있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묻는 것은 여러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진리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다음의 몇 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우선 새로운 생명을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자신 안에 주어진 새로운 품성을 인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2:20 에서는 ”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 의 고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 안에 자신 외의 또 다른 어떤 분이 함께 있다는 이중성을 느끼게 됩니다. 인간으로서 내가 존재하지만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새로운 생명과 품성을 인식하는 자입니다. 또 우리 가운에 있는 죄에 대해 뼤저리게 느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자신 안에 있는 죄 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없는 즉 거듭나지 못한 일반인들은 자신의 죄 성을 인정하려 않습니다. 원죄를 부인하며 오히려 맹자의 성선설을 더 믿으며 그들은 죄 성이 있다든지 죄악 가운데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미워하며 자신을 방어하는데 급급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정죄하는 설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자신이 죄 악성을 가진 형편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못된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자이다 고 고백한 찰스 웨슬리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라고 고백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사역의 결과입니다. 또 한 죄 성에 대한 인정뿐만 아니라 죄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도 새로운 품성을 지닌 것에 대한 증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죄 성을 인정하며 죄로부터 놓임을 받고 해방되고자 하는 성화 구원의 소원이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임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아는 증표인 것입니다. 그다음 증거는 하나님과 하나님에 속한 것들을 향한 소원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려는 열망입니다. 성령이 없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필요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원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거스르고자 하는 적대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고 성경 말씀을 읽기 원하며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표입니다.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아주 멀리 있는 알 수 없는 주권자가 아니라 나를 친히 사랑해 주시는 아빠로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 자녀로서 갖는 느낌을 가지며 마음으로부터 아빠 라고 부르고 싶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알 수 없고 멀리 계시는 신이 아니라 바로 옆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형제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측정하는 기준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하고 좋아할 수 있는가 없는가? 물론 그리스도인 사이에도 충돌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을 만날 때 반갑다고 느낍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이 하나님의 가족 가운데 속해 있다는 사실을 기쁨으로 인정하고 인식하기 때문에 주안에서 다른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가를 측정하여 증명해 줄 수 있는 테스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영광의 길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두 번째는 우리는 영광된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이 말씀은 장래에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아직 알지 못하지만 우리가 어떠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라고 불분명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된 모습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비록 지금은 비천한 상태에 살고 있지만 장차 우리도 영화의 상태에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주님이 이미 걸으셨던 그 길을 뒤쫓아 걸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시고 이 땅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사실 때 어느 누구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손수 지은 이 세상과 백성은 그를 영접하지 아니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더 이상 비천한 상태에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금 하늘 보좌에서 영화로운 상태에 계십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님은 14:1-3”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영광의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영광의 자리에 들어가신 것을 확실히 믿고 있듯이 그리스도인은 나도 영광의 자녀로서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될 것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에 근거에 이렇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라고 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여러분에게 주어질 영화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의 한 부분입니다. 그분의 약속대로 우리는 영광의 자리로 들어가 마침내 영화의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영광의 길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세 번째는 영광스러운 삶의 내용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영광이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인해 드러나 보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이라고 이 말씀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님의 재림에 대한 위대한 교리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고 오신 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죄악 되고 악한 모든 사람은 불 못으로 던짐을 받을 것입니다. 벧 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이 드러나게 될 것이요. 모든 악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모든 영광 가운데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그대로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서야 주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이해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지불하신 대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와 같은 영광의 신앙을 붙잡고 놓치지 맙시다. 불평하고 원망했던 모든 것을 부끄럽게 여기십시다. 주님의 영광을 대충 찬양하고 대충 경배라고 대충 사랑했던 자세를 부끄럽게 여기십시다. 그리스도인은 영광된 삶을 향해 나아가는 자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계신 그대로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아는 것은 이 말씀이야말로 육신의 부활에 대한 교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결된 삶을 잘도록 도와주시며 죄를 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심으로 결국에는 흠 없는 자로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한 우리의 육신도 궁극적으로 변화되어 영화로운 모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영화롭게 바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분과 같아질 것입니다. 나 같이 죄악 되고 무가치한 자가 그분과 같이 될 것이다. ‘라는 사실이야말로 참으로 영광된 소망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이와 같은 소망을 바라보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