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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와 들보

wordlove 2022. 10. 23. 15:46

1. 본문: 7:1-5

2. 본문 요약: 하나님의 백성은 함부로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3. 본문: 비판

4. 본문 테마: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

5. 명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아야 한다.(예언적 명제)

6. 목적: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부로 말아야 할 여러 가지 비판의 이유를 소개하여 적용하도록 돕기 위해서

7. 질문 제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전환 문장: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9. 대지

10. 제목: 티와 들보

 

비판하지 말라 ‘는‘ 주의 명령의 의미와 그 실제를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 있습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은 남의 의견을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 평화를 위해 무조건 용납하자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참과 거짓을 분별하여 남을 정죄하거나 심판하는 자리에 서지 말라는 뜻임을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 마 7: 1~5 절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비판)에 대한 다른 교리를 소홀히 하는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1'하나님께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해석에 즉각 반대를 표시하는 복음적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성경의 가르침의 관점에서 이렇게 반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서 8:1절의 말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를 언급합니다. 그 뜻은 우리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심판의 영역에서 전적으로 벗어나 있다는 뜻이 분명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기초로 해서 참된 기독교인에게는 심판(비판)이 이제 다시 없다고 그들은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세 가지 종류의 심판(비판)이 있는데, 복음적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문제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매우 부족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신칭의 교리를 너무 열심히 주장한 나머지 성경의 다른 교리를 과소평가하고 소홀히 한 죄를 범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우선 최종적이며 영원한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양과 염소, 영광과 멸망으로 가게 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의 구분을 결정짓습니다. 이 심판은 그 사람이 천국과 지옥에 가는 그 사람의 최종 운명을 결정하고 확정 짓는 것입니다. 둘째 심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순응해야 할 심판인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 고린도전서 11장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거기서 성찬식에 대한 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27-29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찌니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라고 한 다음 30-32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즉 죽은 자도 많으니)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비판 혹은 심판)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엄중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 자녀가 만일 죄를 범하거나 잘못된 삶을 산다면 하나님께 벌 받을 것을 명백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벌은 아픔이나 병고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고린도전서 5장에서 같은 말씀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을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교리입니다. 바울은 더 나아가 기독교인들 가운데 그들의 악한 생활 때문에 죽은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심판이 그들에게 그런 모양으로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신들을 판단할 것을 거부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 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사망의 세력을 쥐고 있는 사탄에게 내어줄 것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심판이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만사가 오우케이라고 말하며 경솔하고 문제 있는 삶을 산다면 매우 잘못입니다. 12: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히브리서의 이 구절은 역경을 통과하고 있는 히브리 기독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곧 이런 뜻입니다. 우리는 시련을 올바른 방법으로 바라보도록 조심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잘못되어 갈 때보다는 모든 것이 잘 되어 갈 때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완전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자녀들을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이 영광에 들어갈수 있도록 이 세상에서 자녀들의 죄와 허물을 심판하십니다. 성도가 아닌 사람들은 '사생아' 들이며 하나님은 그들이 번영하게 내버려두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는 것은 그들로 이런 심판을 면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전11:32 “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정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눈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주시하시며 우리의 죄성을 판단하고 계십니다. 모두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세 번째 심판은 '보상 또는 상급의 심판이라 일컬어지는 심판입니다. 죽은 후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심판이 있을 것을 성경에서 매우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 자신이 심판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께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고린도전서 3장에 '각 사람의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그 공력을 밝히리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이 기초 위에 무엇을 세우든, , , 보석이든, 나무, 풀이든, 짚이든, 불로 시험을 받을 것입니다. 그중 어떤 것 곧 나무, , 짚은 전적으로 불타 없어질 것이지만 사람 자체는 구원을 받을 것이로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 이후 행한 것에 대한 심판을 가리키며, 고후5:10-11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앎으로 사람을 권하노니 라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이것은 불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며 기독교 신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이 심판대 앞에 서야하며, 선악 간에 우리가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인가 지옥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영역에서 우리에게 있을 보상을 결정하는 심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야 할 주된 이유는, 우리가 주께 심판받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의 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것이요, 그분을 만나볼 것이요, 이 심판이 앞으로 있을 것입니다. 요한이 표현한 대로 요일2:28 우리가 그때 부끄럽게 되고 싶지 않으면 지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심판날' 에 담대함을 얻고 싶으면 우리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째 이유는 비판함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한 비판을 낳게 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비판의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2'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의 표준에 따라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주께서 선언하고 계십니다. 3: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환언하면, 만일 여러분이 권위자로 자처한다면, 만일 여러분이 선생이 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권위에 의해 비판을 받을 것이며 여러분이 주장하는 바로 그 주장에 의하여 비판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바로 그 주권자로 여기십니까?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비판에 따라 여러분에게 적용될 표준이 될 것입니다. “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 우리가 권위자 노릇을 한다면 우리가 이 표준에 따라 비판받는다고 불평할 권리가 내게는 없습니다. 그것은 아주 공평하고, 아주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살피는 일에 용의주도하다면 바로 그 판단이 내게로 돌아올 것이며 내게는 불평할 근거가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지막 이유는 우리는 비판을 할 수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이 말씀은 가히 풍자 중에서도 최고의 풍자라 하겠습니다. 주는, 우리 자신의 상태가 이러한즉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그들의 허물에 매우 관심을 가지며, 그들의 유익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인상을 주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 속에 있는 이 사소한 결점으로 괴로워하며, 이 티를 제거하려 안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눈 속에 있는 이 들보가 여러분들로 이 일을 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맹인 안과의사는 다른 사람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없습니다. 맹인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소용이 없다면 맹인 안과 의사는 얼마나 더 소용이 없겠습니까? 주님은 여기서 바로 이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일 다른 사람의 눈의 미세한 티를 빼낼 수 있으려면 먼저 여러분 자신의 눈이 아주 밝은지를 분명히 하십시오. 여러분 눈 속에 있는 들보로 눈이 멀어있는 한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없습니다. 남의 눈의 티는 먼지라고 한다면, 내 눈의 들보는 크기가 집 짓는 기둥의 크기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큰 들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눈의 작은 티를 지적하는 그 사람을 주는 위선자로 정죄하고 계십니다. 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는 실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정죄하는 일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척합니다. 그의 결점을 발견하는데 매우 고통스러운 양 가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주께서 이미 보여주신 바와 같이 실로 남의 결점을 발견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선입니다. 그 사람이 자칭 친구라고 하며 찾아가서는 이런 결점이 당신 속에 있다니, 부끄러워.‘ 부끄러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이 같은 행동에 나타나는 악의와, 이런 사람이 자주 즐기는 쾌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을 진정 돕고 싶으면, 여러분이 이 문제에 순수하며, 참되다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에게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 네 눈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런 다음에야 네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만큼 분명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돕고 싶으면 그리고 그들에게서 결점과 허물과 단점과 불완전함을 제거하고 싶으면 먼저 여러분의 영(정신)과 태도가 잘못되어 있음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판단과 혹평과 비판의 정신은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미세한 티와 대조해 볼 때 실로 들보와 같은 것입니다. 주님은 결국 너희가 범하는 이런 비판 정신보다 더 무서운 죄는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들보와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육신의 어떤 죄에 빠지거나 또는 여기저기 어떤 작은 과오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속에 있는 이 비판의 영과 비교할 때 그것은 눈에 작은 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희 자신의 영혼에서 먼저 출발하십시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우리 주님의 말씀을 매일 읽으십시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여러분의 태도를 점검하십시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하는 말들을 조용히 분석해 보십시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괴로운 과업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과 우리의 태도와 우리의 말을 정직하고 참되게 검토한다면, 우리 눈에서 들보를 빼내는 일에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겸손 해저 우리는 비판과 혹평의 정신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사람이 자기의 참모습을 볼 때는 다른 사람을 나쁜 방법으로 판단하지 못할 것입니다. 많은 시간을 자기를 정죄하고, 자기 손을 씻고, 자기를 깨끗하게 하려 애쓰는 일에 사용될 때, 겸손의 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악평과 혹평의 영을 제거하는 데는 한 가지 방법만이 있는데 곧 여러분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삶입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회개의 삶이 우리의 교만을 꺾어 겸손한 사람으로 되게 합니다. 자신의 눈에서 들보를 제거한 후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을 도우며, 남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를 빼낼 수 있는 적절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눈에서 티를 빼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눈보다 더 예민한 기관은 없습니다. 손가락이 와닿는 순간 눈꺼풀이 닫힙니다. 눈을 치료하는데 무엇보다 요긴한 것은 공감과 인내와 침착과 냉정입니다. 이것이 요구되는 까닭은 이 작업의 섬세함 때문입니다. 이것을 영적 영역으로 옮겨 보십시오. 여러분은 다른 사람 속의 가장 섬세한 것(결점)에 손대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작은 티를 빼낼 수 있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겸손해야 하며, 공감적이어야 하며, 여러분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 속에서 발견할 때, 그것을 정죄하기는커녕 그것으로 애통하는 감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감과 연민의 정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때 여러분은 진정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먼저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살피고 나의 들보를 제거하고 우리 자신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겸손과 이해가 가득하고, 공감적하며, 관대하고, 자비로운 상태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성경말씀대로 엡 4:15서로 사랑 안에서 참된 말을 하며 이로써 그를 도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일상생활의 가장 어려운 일의 하나요, 우리가 최후에 달성할 수 있는 일의 하나입니다. 약1:12“ 각자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합시다.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함부로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알았습니다. 세 가지 이유를 아셨으니 이제 ’’ 비판하지 맙시다.‘ 교회 생활에서는 어거스틴과 칼빈의 신조인 진리는 굳게 붙잡고, 비진리는 타협하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하라는 말씀을 늘 상기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땅에서 징계와 손실의 괴로움을 피하고 싶다면, 다음부터는, 여러분 자신을 먼저 비판하기 전에는, 남을 비판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명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