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극복하는 묘약
1: 본문: 막 4: 35-41
2. 본문 요약: 예수 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리리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갑자기 광풍이 불어 물이 배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주무시고 계십니까? 불평하며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고 꾸짖으셨다.
3. 본문 주제: 주님의 사랑
4. 본문 테마: 주님의 사랑의 능력
5. 명제: 주님의 사랑은 역경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시다. ( 가능성의 명제 )
6. 목적: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주님의 사랑을 붙잡고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돕기 위해서
7. 질문제기: 역경 가운데서 이기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8. 전환 문장: 주님의 사랑은 역경을 이기게 하는 능력이시다. 역경 가운데서 이기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9. 대지
10. 제목: 역경을 극복하는 묘약
1. 갈등
어느 날 예수 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리리 호수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풍이 불더니 물이 배에 차게 되었습니다. 이때 주님은 배 안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당황한 제자들은 예수 님을 깨우시며 주님은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돌보시지 않고 주무십니까?라고? 원망하며 불평하자, 잠에서 깨신 주님은 바람을 향해 잠잠하라 명하시니 그 사납던 바람이 잠잠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제자들을 꾸짖어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전 세계는 코로나 이후의 휴유증으로 심한 경제적인 침체로 인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는 미친광이 김정은이의 핵과 미사일의 위협, 높은 은행 금리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든 집 값이 30%, 40% 폭락 중이라고 언론은 중계하고 있습니다. 얼마전 까지 지금 집을 사지 못하면 내 생애에는 집을 사지 못할 것이라는 강박감과, 천정 부지로 오르는 아파트 값을 보고 더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소위 영끌족들이 영혼을 끌어 모아 집을 샀습니다. 서울에서 어떤 이가 27억 아파트를 샀는데 24억을 은행 대출을 받아 샀다고 합니다. 은행 이자가 월 2,0002,000만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아파트 값이 상승하지 않고 폭락하지 결국 경매로 집을 내어 놓았는데 24억이 18억으로 경매가 시작 되었으나 두 번이나 유찰되어 14억으로 다시 시작한다고 합니다. 억소리나는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슷한 영끌족들도 고금리 때문에 한 달 월급을 이자 갚는데 다 쏟아부어도 부족하여, 집을 팔자니 살 사람이 없고 급매로 내어 놓아야 할지를 두고 발을 동동 굴리며, 집 없는 사람 은행 빚 없는 사람이 부럽다는 신조어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자영업하는 분들도 장사가 안된다며 아우성입니다. 이런 와중에 이단 신천지는 이만희의 고향 경북 영천에서 교주 이만희가 큰 헬기를 타고 나타나자, 신천지 교인들 약 1414만 명이 큰 운동에서 모여 재림 예수가 나타났다며 환호하며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고 있는 모습은 이단의 허구와 종말의 어떠함을 볼 때 참으로 참담함을 느낍니다. 누구 하나 편안한 잠을 잘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재의 이 세상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가던 작은 배가 갑자기 큰 파도를 만났습니다. 정말 예측 불허의 사건입니다. 여기에다 강한 바람이 부니 큰 파도가 작은 배를 덮쳐 배안으로 뱀의 혀처럼 날음 거리면서 기어 들어오니 모든 제자들의 얼굴에는 핏기는 사라지고 하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2. 갈등 심화
무서운 파도가 바람을 타고 배를 치니 누가 먼저라고 할 것없이 다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38절 ” 예수님은 배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이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주무시고 계십니다. 모든 제자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원망과, 불평과, 의심으로 충혈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먼저 그랬는지 알 수는 없으나 이구동성으로 고함의 합창을 불렀습니다. ”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돌아보지 아니하십니까?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돌아보지 아니하십니까? 제자들은 자신들이 죽게 되었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주님을 원망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제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들은 주님을 아직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선생님이란 호칭은 보통 자신들을 리더하는 인간 지도자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주님도 그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40절 보세요. ” 어째서 너희가 무서워 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41절에서 제자들이 매우 두려워하여“ 이분이 어떤 분이시길래 바람과 파도가 순종하는 것일까?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고 있음에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 강풍 사건은 우리 생각으로는 우연히 일어 난 사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보세요. 35절” 호수 거너편으로 가자 “이 호수를 건너가자고 제안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주님이심입니다. 그러니까? 아직도 믿음이 약한 제자들에게 믿음의 훈련을 경험시키고자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호수 한복판으로 몰고 가셨음을 추론할 수 있지 않습니까? 아멘, 믿음의 훈련 장소로 이 망망 대해와 같은 호수가를 선택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 자신들과 어떤 관계인지를 분명하게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직 인간 선생 정도로 알고 있으니, 그것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모르고 있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훈련시키시기를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호수에서의 강풍 사건은 주님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치밀하게 준비하신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를 믿는 우리들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건을 단순히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보지 마시고, 그 사건을 통해서 내 믿음을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섭리의 뜻을 배우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3. 전환
주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시고자 무엇을 하셨습니까? 먼저 39절을 보십시오. ” 예수께서 일어나시더니 바람을 꾸짖고 호수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조용하여라, 잠잠하여라 “그러자 바람이 멈추었고 호수가 잠잠해졌습니다. 바람과 호수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바람과 호수를 만드신 창조주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훌륭한 인간 선생 정도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지금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거나 작으면 항상 나타나는 현상은 주님의 전능 하심을 의심할 뿐 아니라, 또한 사랑을 의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세우시고자 주님 자신의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믿음의 반대는 의심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주님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 선생님, 우리가 죽게되었는데 돌아보지 아니하십니까? “제자들은 주님은 자신들을 돌보시지 아니하시는 분으로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돌보지 아니한다는 제자들의 주님에 대한 의심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이 의심하는 제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의 기도로 사투를 벌이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와 함께 기도하자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 26: 40-41”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 26:41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신 주님이 십자가라는 큰 위기를 만나 마음이 답답해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했을 때 제자들은 쿨 쿨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누가 배신을 때렸습니까? 주님이 체포 당하시자 절대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한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있었든지 베드로는 주님이 어찌 되나 싶어, 주님이 체포되어 재판 받는 재판장에 몰래 들어갔다가,, 시종 드는 계집아이가 당신도 예수의 한 패거리 지라는 말을 듣고는 놀라, 나는 예수 같은 자를 모른다며 저주하며 부인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 13:1절”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제자들은 주님을 배신했지만 그러나 주님은 끝까지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들도 끝까지 사랑할 줄 믿어시기 바랍니다. 구약에 요나라는 선지자가 나옵니다. 그는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이로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깊은 갈등에 빠졌습니다. 앗시리아는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킨 참으로 악독한 원수의 나라입니다. 그런 원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요나는 당장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몰래 다시스 오늘날 스페인으로 가는 배를 타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배가 바다 한 가운데 이르렀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큰 폭풍을 만나 배가 거의 깨어질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오늘 제자들 모양으로 두려움에 떨며 거의 죽게 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 요나는 배 아래쪽에 가서 쿨쿨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선장이 보니 어떤 사람이 자고 있는 것을 보고, 당신은 누구냐 어느 나라 사람인가? 지금 우리가 죽게 되었으니 너의 신에게 기도하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나 파도는 더욱 거세지고 거의 파선할 지경까지 이르자 사람들이 왜 이런 일어났는지 제비를 뽑아 알아보자며 제비를 뽑고 보니 요나가 당첨되었습니다. 요나 당신, 무엇을 잘못 했기에 우리들에게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지 말해 보시오. 그러자 요나는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인데 지금 이배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까닭이니 나를 바다에 던져 희생제물로 삼으시오. 그러면 당신들이 살 것이요 라고 말합니다. 모든 배에 탄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사납던 파도가 잠잠해졌습니다. 한편, 물에 던져진 요나를 아마 고래라고 추증되는 큰 물고기가 삼 겼습니다.. 고래가 사람을 삼 겨 그 사람이 다시 날아 난 희귀한 사건이 역사의 기록에도 나옵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 하나님께 자신의 불 순종의 죄를 깊이 회개 기도를 합니다. 3일만에 고래가 요나를 토해 내어 살게 된 요나는 원수의 나라인 니느웨이 성에 가서 ” 지금 당장 회개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요 “라고 외쳤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니, 니느웨이 백성들이 그 복음을 듣고 회개하니, 하나님의 심판이 멈추어 살게 되었다는 은혜로운 하나님에 대한 요나서 이야기입니다. 마 12:41절 ”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성경은 요나 보다 더 크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자신의 죄 때문에 바다에 던짐을 받았지만, 아무런 죄가 없으신 주님은 죄 많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으시고 깊고 깊은 십자가 바다로 던짐을 당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십니다. 롬 5: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 주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을 모르고 죄의 종이 되어 자기 멋대로 살 때에,, 주님은 묵묵히 우리를 쳐다보시고 참으시고 기다리시며 사나운 파도가 치는 깊고 망망한 바다와 같은 십자가를 홀로 졌습니다. 십자가는 어떤 형벌인지 아십니까? 천 번의 죽음이라는 인간이 개발한 가장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형벌이었습니다. 총에 정통으로 맞으면 사람은 고통 없이 즉사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형벌은 천천히 고통을 느끼면서 죽도록 만든 잔인한 형벌제도입니다. 양손과 발에 큰 대못을 박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나무에 매답니다. 무거운 체중에 신경이 눌리니 통증은 죄수를 순간적으로 까무러치게 만든다고 합니다. 까무라쳤다가 정신이 들면 그 통증은 또 계속됩니다.. 그래서 또 까무러친다고 합니다. 이러기를 천번을 반복하다가 죽는 형벌이 십자가 형벌입니다. 어떤 죄수는 몇일 간다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홀로 받으시면서 자기 생명을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 인간이 실패한 모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선물은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시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큰 영광과 축복의 사람인지 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내 의가 된 것입니다. 루터는 ” 그리스도인은 아직 여전히 부족한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죄 없는 의인으로 여겨 주십니다. “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이런 나를 당신의 귀한 자녀로 삼아 주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전 15: 10절”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이런분이 어찌 우리를 외면하시며 나 몰라 코를 골며 주무시겠습니까?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부활의 영광 때문에 주어진 선물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역경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4. 대단원
제자들은 주님의 놀라운 이적을 보고도 무서워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었습니다. 40절 ”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믿음이 없는 증거가 무서움입니다.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아직 인격적으로 잘 모르며, 삶 속에서 그 사랑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주님은 이런 제자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키우시고자 한 걸움 한 걸음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언젠가는 주님의 능력과 사랑에 붙잡혀 바울의 고백처럼 ” 주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도다 “주님의 사랑의 힘이 자신의 모든 것을 움직이는 동기요 힘이라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 약한 믿음의 제자들도 주님의 사랑의 능력에 사로잡혀 결국 모두 주님의 증인으로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경험할수록 우리의 믿음은 자라며, 세상의 모든 역경의 파도를 능히 이기고도 남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어떤 역경도 이기게 하는 묘약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 크신 사랑을 깊이 깨닫는 심령이 되도록 늘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