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의 축복
1. 본문 선택: 요일 4:13
2. 본문 요약: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3. 주제: 성령의 오심
4. 테마;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
5. 명제: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들이 있을 수 있다. 가능성의 명제
6. 목적: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들을 분명히 제거하고 성령충만을 누리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7. 질문제기: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8. 전환 문장: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들이 있을 수 있다.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9. 대지
10. 제목: 성령 충만의 축복
이 서신은 요한 사도가 1세기 말엽의 매우 어렵고 혼스러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쓴 내용입니다. 당시 세상은 오늘날처럼 힘든 곳이었습니다. 곤경과 모순과 혼란으로 가득했습니다. 세상은 항상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고찰하고자 하는 내용과 관련해 그 점을 일종의 배경으로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요한 사도는 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이 편지를 쓰고 있으며, 자신이 떠난 후 계속 살아갈 사람들에게 마지막 조언의 말을 전했습니다. 사도가 그들에게 쓴 내용이 무엇인가요? 그는 세상에 관해 무엇인가를 말했습니다. 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우리 모두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그 상태와 문제점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독교 교회가 이 모든 상황 가운데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세상은 재난의 장소요, 전쟁, 비참, 불행, 추잡함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기에 우리는 21세기가 되면 세상이 너무도 달라질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전히 같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지혜의 정수는 우리가 장차 도래할 이 세상의 파멸 가운데 연루되지 않고 거기로부터 구원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시종일관 제시하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경이 자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야를 또 다른 세상에 고정시킨 이들입니다. 아브라함의 위대한 비밀도 그것이었습니다. 그는 히 11:10절"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듣기에 그런 사람들은 땅에서 낯선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구별된 삶을 산 사람들이며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을 배운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바에 의하면 온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며 그 누구도 그분을 피할 수 없고,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리고 그분을 통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구원받을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내년에 무엇이 우리 모두를 붙들어 줄 것인지에 대해 예측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에 직면할 수 있으며, 위대한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롬8:38-39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일서 4장 이 구절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것은 요한이 언급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았는지의 여부를 알기 위해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특정한 시금석들이 있음을 앞에서 지적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든지 말든지 나는 하나님을 만나야 하며 내게 있어 긴박한 물음은 과연 내가 그분의 영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님은 내 안에 거하고 계신가? 성령이 거하심에 대해 사람들이 자신에게 적용하는 특정한 시금석들 중 몇 가지를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죄의식, 무가치하다는 느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그분이 어떤 일을 하셨는지에 대한 깨달음, 더욱 그분을 닮고자 하는 열망, 육신과 성령의 싸움에 대한 자각, 내적 전투, 성령의 열매, 성령이 자신의 주권 안에서 특정한 때에 특정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특별한 은사들, 이것이 일반적인 시금석입니다. 나는 이 주제로 다시 돌아갈려고 합니다. 그것은 너무도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주제로 돌아가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수많은 사람을 혼란 가운데로 몰아넣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내가 성령을 받았는가?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으며,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인은 항상 자신이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간에는 분명한 구분이 있었습니다. 벤전 1: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새 질서와 새 성질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선해지려고 노력하는 일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생명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이라는 이 선물을 받아 변화된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처음 받았던 자들을 살펴보십시오. 행 2:13절"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미친 사람들과 같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힘, 광채, 새로움, 사랑, 온화함과 열정 등이 있었으며, 그리스도인은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새 피조물', '새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란 위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았으며 그래서 너무도 다르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달리 말해 성령의 열매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갖가지 양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달리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의 삶에 들어가시면 필시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성경 안에서 그리고 부흥과 진정한 삶을 추구했던 모든 시대에 관한 교회사 속에서 그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 특별한 삶의 질서와 특질이 오직 특정인들에게만 적용된다고 하는 것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철저히 반대합니다. 신약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성령을 받았는가? 13절"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오늘 말씀은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들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들을 분명히 제거하고 성령충만을 누리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첫 번째는 그릇된 교훈입니다.
예를 들어 성령을 받는 일을 항상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어떤 현상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나아가 그들은 갑작스러운 체험을 결코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성령을 갑작스럽게 받은 경우들이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이나 교회사를 통해 보건대 은사가 항상 갑작스럽고 극적인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혹은 성령을 받을 때는 항상 심한 정서적 격변을 수반한다고 믿게 하려는 가르침입니다. 중국에서 그토록 귀하게 사용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조나단 고포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체험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은사가 찰스 피니나, D. L. 무디 같은 사람에게 갑작스럽고 심한 정서적 격변과 더불어 임했던 것처럼 자신에게도 그렇게 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포스는 자신도 그런 방식으로 성령의 은사를 받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성령 충만을 받았을 때 극적인 강렬함은 수반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 은사를 피니나 무디와 같은 방식으로 받았다면 나 역시 경탄을 자아내는 인물로서 그러한 사람들의 명단에 첨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동일한 은사를 받았으되 매우 조용하고 거의 의식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내게 임했다. 나는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며 권능으로 나를 채우고 계심을 자각하게 되었다."그리하여 그는 중국과 극동의 다른 여러 곳에서의 위대한 부흥 운동에 일익을 담당하도록 인도되었습니다.. 그것이 항상 심한 정서적 격변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상기시켜 줍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느냐가 아니라 받았는지의 ‘여부'입니다. 또 다른 그릇된 교훈은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들 중에는 매우 극적인 것들도 있는데, 예컨대 치유의 은사, 방언의 은서, 방언 통역의 은사 등이 그러합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눈에 두드러지는 은사들을 통해 임하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열매들을 통해 더 자주 임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 은사인 사랑에 관한 특징을 우리에게 제시했습니다. 성령이 놀라운 열매,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사랑을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나게 하심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두 번째는 그릇된 욕망이나 그릇된 동기를 품은 까닭입니다.
예컨대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시몬이라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빌립과 베드로와 요한의 설교를 경청했으며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자 성령의 은사가 신자들 위에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사도들의 안수를 받고서 사람들이 성령을 받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그 권능을 갈망했으며, 돈으로 그것을 사서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놀라운 축복을 베풀 수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동기는 그릇되었습니다. 그의 욕망도 그릇되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서적을 읽을 때 마주치는 위힘들 중 하나입니다. 피니나 무디에 관해 읽고 “그런 체험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체험이나 은사를 탐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의를 갈망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거룩을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모해야 하는 것은 어떤 위대하고 화려한 체험이나 위대한 이적을 행하는 은사나 방언의 은사 혹은 다른 어떤 은사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사모해야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만드는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동기와 욕망을 주의 깊게 점검해야 하며, 탁월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다른 어떤 자처럼 되어 자신의 이름이 교회사에 남고 사람들이 우리를 가리켜 탁월하고 놀라운 사람들이라고 찬탄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도록 분명히 명심해야 합니다. 물론 그러한 욕망들은 성령을 소멸시킬 것이며. 동기가 그릇되며 욕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성령의 오심에 대한 오해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세 번째는 성령을 소멸시키는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감화에 순종하지 않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매우 조용하고 차분하게 우리 삶에 임하실 수 있으며,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사 우리를 감동, 감화시키십니다. 그분의 감화에 순종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는 것은 성령을 소멸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성령을 소멸시킨다면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성령의 권능과 생명력과 활동을 자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폐단을 유발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소위 지성주의일 것입니다. 너무도 자주 성령의 은사를 단지 격한 감정의 표출에 불과하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지적인 사람들과 이것에 관심을 가지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가 성령을 소멸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단순한 지적 주제로 전락시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생명’입니다. 감정에 치우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18세기 교회가 휘트필드 등을 단순한 광신자들이라 정죄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들이었음을 깨닫지 못했던 것과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는 성령을 소멸시키는 일입니다. 우리가 빠질 수 있는 또 다른 오해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르기를 엡 4:30절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말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성령을 근심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심을 알기 원한다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적극적으로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충만하게 채울 때에야 비요소 자신에게 가능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날마다 읽을 때, 비로소 잘못을 방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릇된 것에 이끌리는 자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 자들입니다. 여러 시대에 살았던 믿음의 위인들의 삶을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으며, 그러는 중에 자신들에게 가능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찾았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지닌 은사가 바로 이것이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일을 피해야 하며 성령을 소멸시키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육신을 죽이라고, 죄와 싸우데 피흘리까지 싸우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성령의 모든 감화와 인도에 순종해야 하며 모든 거룩한 바람과 열망, 기도하고자 하는 모든 욕구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경의 명령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두 가지를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여러분은 무디의 경우를 기억하는가? 그는 자신의 결점과 부족합을 의식하게 되었으며, 하나님께 그것에 관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으며, 수개월 동안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기다리는 모임이나 기도 모임이 아니라, 뉴욕의 어느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때, 갑자기 하나님이 강력한 축복으로 그를 압도하셨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에 무디는 그로 인해 죽는 것이 분명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손을 들고 "하나님, 멈추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시간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 잘 아신다는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은 큰 은사들을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것들을 주시지 않은 데 대해 감사드리십시다. 하나님이 특정한 은사들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그것들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허비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축복하고 이 은사 주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시간과 방법을 오직 그분께 맡기십시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선물을 소유하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자신의 성령을 주셨습니까? 성령 받은 사람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믿는다면 이어서 즉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말씀에 순종하며, 잘못된 동기를 버리고, 성령 충만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그것이 분명 우리를 성령 충만의 축복으로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