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적 증거와 증언
1. 본문: 요일 4:14-15
2. 본문 요약: 사도들이 증거 한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는 자들은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들이다.
3. 주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
4. 테마: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의 증거
5. 명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이다.
6. 목적: 사도들이 증거한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는 자들은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들임을 확신하도록
7. 질문제기: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8. 전환 문장: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이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9. 대지
10. 제목: 사도적 증거와 증언
이제 우리는 요한일서의 특징적 면모를 보여 주는 위대하고 훌륭한 내용들 중 하나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원한다면 그것을 문맥 속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14절은 15절과 전후의 구절들과 함께 고찰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의를 끄는 것은 구원의 확신에 관한 주제 전체입니다. 그는 형제 사랑의 중요성에 관해 다시 언급함으로써 그 주제에 이르렀으며,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보조적 주제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요한에 의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14, 15절에서 그는 우리가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그다음 시금석을 제시하며, 그 점에서 주요 본문은 15절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그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 수있는 세 번째 방법입니다. 그것은 곧 형제를 사랑하며, 성령을 지니고, 또 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고찰해야 할 시금석은 이것입니다. 과연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가?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의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고 있는 셈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들이 증거한 성경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시인하는 자들은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임을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 이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먼저, 올바른 믿음이야말로 성령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요한은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면 이는 성령이 분명 우리 안에 계심을 의미한다고 말씀합니다. 성령을 떠나서는 올바른 믿음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난 후에 성령을 받게 된다고 가르치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서도 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특별한 구절로 비추어 보건대, 그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함에 분명합니다. 요한는 15절“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방법은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성령을 지니지 않고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고전 2:7-8, 10절“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이 세상의 통치자들, 세상의 위인들, 힘있고 지혜로우며 귀족에 속하는 자들마저도 나사렛 예수를 보고 한 사람, 목수, 기술자로만 알았을 뿐입니다. 그들은 그분을 특출한 종교적 천재로 간주했을 수도 있지만, 그분이 영광의 주이심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울은 그들이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린도인들에게 자신과 그들은 이 사실을 이해하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 하시는 성령을 통해 그것을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고린도전서 12:3에서 그는 다시 그것을 매우 체계적으로 진술했습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 누구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이는 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회사를 통해서도 분명히 엿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성과 이해력과 큰 지혜와 지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곧 건전하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에게 제시된 메시지가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들었지만 그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장 비천하고 무지하며 교육받지 못한 문맹인들이 그것을 듣고 그 안에서 기뻐함과 아울러 변화받아 하나님의 교회의 성도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성령을 받지 않고서는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근본적 사실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간략히 말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성령 안에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적극적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보았고, 자신의 무가치함과 결함과 실패와 죄악들을 분명히 자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에 관해 어떤 느낌을 갖는지 간에 그리고 여러분이 아무리 자신을 정죄하고자 해도 마음으로부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진정 믿는다면, 나는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며 또한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셨다고 확신합시다. 그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았다면 여러분이 그것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이어서, 올바른 믿음은 사도적 증거와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14-15절을 함께 고찰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과 동료 사도들 및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자들을 가리켜 요한은 요일 1: 3절 ”우리가“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다.” 여기서 요한은 14절“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계속해서 15절”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믿음이란 사도적 증거와 증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15절의 '시인'이라는 말은 자신이 들은 바에 대해 동의를 표하고 '아멘'이라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다시 너무도 중요한 사항이 언급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해 특정한 교훈과 교리를 받아들이며 거기에 동의할 때 그것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그리스도를 육안으로 본 적은 없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계실 때 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믿음의 문제에서 성경 자체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권위라고 하는 이 중요한 교리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신약성경에 기록된 내용 이외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이란 무엇입니까? 이 모든 고등 비평적 성경 접근법들은 결국 오류일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어리석은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신약성경을 떠나 내가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을 떠나서 믿는다고 말하는 모든 것은 단지 상상에 불과합니다. 신약성경의 서신들이 잘못과 이단을 바로잡기 위해 기록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본장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일: 4:1-2절 “사랑하는 자 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초대교회 시절에는 온갖 종류의 외경 복음서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에 관한 이야기를 전파하고 있었으며, 초대교회의 삶을 파괴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들을 세워 이와 같은 권위 있는 설명들을 제시하게 하셨으며, 우리는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경을 믿는 목적도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이 제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신약성경이 기록됨으로써 성취되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거듭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올바른 믿음이란 사도적 증거 및 증언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동의함을 의미한다는 것이 위대한 원칙이라는 점입니다. 나는 신약성경에서 발견하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전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발견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분을 성경에서 발견합니다. 그것이 바로 종교 개혁에서 크게 강조된 점입니다. 그 성경 내용은 사도적 증거와 증언에 따른 기록이요 설명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우월한 상태에 있다는 식으로 설득시키려 하는 사탄의 간교한 시험들에 유의합시다.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성경책을 보지 않는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가 권위가 되신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나는 다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집니다. 성경책을 떠나 여러분이 그리스도에 대해 무엇을 압니까? 우리는 세례 요한, 베드로, 야고보, 요한, 그리고 바울 사도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증거하고 메시지를 전했던 다른 제자들과 사도들의 기록과 증거에 의존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세 번째 중요한 원칙에 이르게 됩니다. 올바른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다시 말해 사도들이 본 것이 내 믿음의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요한은 이렇게 표현하는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보았고 또 증거 한다.”.” 그것이 요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요 14:9절"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지만 우리는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이라고 말씀하셨다" 요한과 마찬가지로 처음 세 복음서를 기록한 제자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주시라는 것을 믿고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보았고 또 증거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이며 그들이 해석한 것은 또 무엇입니까? 두 가지 요소가 이중으로 강조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보았고"라고 말했습니다. '보았고'라는 말은보았고' ‘주시했고' ‘주시했고'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 서두에서도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요 1:14.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주시한다는 것은 단순히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얼핏 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보았고, 주목했으며, 놀라며 주시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바로 그것입니다. 요한은 “우리는 그분의 인격을 보았으며, 나는 우리 앞에 제시된 불가사의한 일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그분은 너무도 평범했지만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줄곧 표출되는 그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때때로 우리를 놀라게 하셨고 이 평범한 분은 갑자기 비범해지기도 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학교에 다니신 적이 없으며 형식적 의미에서 결코 가르침을 받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서기관들과는 달리 권세를 지닌 자로서 가르치셨습니다. 어느 날 그분은 산상에서 그 놀라운 팔복에 대해 설교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에서는 영광이, 은혜로운 말씀이 그분의 입술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그분과 함께 배를 타고 있었으며, 갑자기 풍랑이 일어났을 때 그분은 배의 고물에서 잠들어 계셨습니다. 물이 점차 작은 배 안에 차오르고 있었고 물을 없애려고 노력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곧 물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분을 깨워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그분은 단지 풍랑을 꾸짖으셨고 곧 풍랑이 잠잠해졌으며, 우리는 두려워했습니다. 그분은 자연의 힘을 지배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다스리셨습니다. 그분은 표적과 기사들을 행하셨고, 그것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우리에게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모습과 거기서 내게 하신 말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장사되시는 것을 보았지만 후에 그분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분을 보았으며, 그분은 우리에게 와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문이 잠긴 방 안으로 들어오셨으며, 한 번은 우리와 함께 앉아 구운 생선을 잡수셨습니다. 우리는 보았고 또 증거 합니다.. 실제로 어느 날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었으며, 갑자기 그분의 구름 속으로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사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보았고 또 증거합니다.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그분이 약속하셨던 바로 그 놀라운 날, 곧 예루살렘에서의 그 오순절을 기억합니다. 그날에 신기하고 새로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으며, 우리는 권능과 광채로 가득해졌습니다. 우리는 보았고 또 증거 합니다."." 기록된 내용이 바로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은 사도들의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분이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상기시켰습니다. 마 20:28절“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것은 사도적 교훈이요 증거요 증언이었습니다. 그 모두는 그분이 하나님에 의해 세상의 구주로 보냄을 받으셨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증거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부활 전까지는 그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이처럼 숭고한 주장을 내세우셨지만 너무도 연약하신 듯이 보였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나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이 무덤에 묻히셨을 때 우리는 매우 낙심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으며, 다시 돌아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구약성경을 펼쳐 설명해 주셨으며, 그리스도가 고난당해야 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나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내 아버지께서 세상 죄를 내게 지우셨다. 나는 너희를 자유하게 하기 위해 죽었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도적 증거와 증언이란 곧 사도들이 전파한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는 자는 누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이해한 셈입니다. 이 크신 사랑은 요 3: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을 떠나면 사람들은 멸망합니다. 그러나 그분을 믿으면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보면 또한 마음으로부터 그것에 동의한다면, 그렇게 하는 원인은 단 하나이고 그것은 곧 성령이 내 눈을 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경과 같은 눈을 열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초라하고 나약하며 무지할지라도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눈으로 그분을 주시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그 기록을 받아들이며 그 증언에 동의하고, 말하자면 그들의 눈을 통해 나는 그분의 영광, 곧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사" '나의' 구주가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