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 사람이라
1. 본문: 시 51: 1-19
2. 본문 요약: 죄를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누릴 수가 있다.
3. 주제: 죄
4. 테마: 죄의 고백
5. 명제: 죄를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누릴 수가 있다.
6. 설교 목적: 어떻게 고백해야 하는지를 소개하여 하나님의 죄 용서함의 축복을 누리도록 돕기 위해서
7. 질문제기: 왜 죄를 고백해야 합니까?, 무엇을 고백해야 합니까? 어떻게 고백해야 합니까?
8. 전환 문장: 죄를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함을 누릴 수가 있다. 왜 죄를 고백해야 합니까?, 무엇을 고백해야 합니까? 어떻게 고백해야 합니까?
9. 대지
10. 제목: 죄의 고백/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 본문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훌륭한 왕이라고 칭찬이 자자한 다윗 왕의 사건입니다. 사실 다윗은 성군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왕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아 가장 번성했고 강력한 통일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알고 보면 하나님 앞에 큰 죄인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도 하나님 앞에 숨겨 놓은 죄를 지은 왕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보내신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을 찾아왔습니다.. 왕이시여,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한 자였습니다.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염소가 심히 많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양 새끼를 자기 딸처럼 키웠습니다. 어떤 행인이 부자를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 양과 소는 그냥 두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 자기에게 온 손님을 위하여 잡았습니다. 다윗이 그 말을 듣고서는 나단에게 내가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이 일을 행한 자는 반드시 죽어 마땅합니다. 그리고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할 것이라고 입에 거품을 튀기면 노했습니다. 그러자 나단 선지자가 다윗왕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사울 왕에게서 구원하여 왕으로 삼고, 이스라엘 민족과 유다 민족을 네게 맡겨다. 그러한데 어찌하여 나의 말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네가 칼로 내 충성스러운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도다. 이제 칼이 네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며 내가 너와 내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줄 것이며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행하리라. 그러자 다윗이 왕하 12:13절“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시편 51편은 나단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들은 다윗왕이 하나님께 회개한 기도입니다. 알렉 모티어라는 신학자는 시편 51편 본문(NKJV)에서 아홉 개의 중요 단어를 지목합니다. "인자(loving kindness), 은혜(mercy), 긍휼(tender mercies), 죄악(transgressions), 지움(blotting out), 죄악(iniquity), 죄(sin), 말갛게 씻음(wash thoroughly), 깨끗이 제함(cleanse)." 이 단어들에서 죄를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죄용서함을 누릴 수가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죄를 어떻게 고백해야 하는지를 소개하여 하나님의 죄용서함의 축복을 누리도록 돕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왜 죄를 고백해야 합니까?, 무엇을 고백해야 합니까? 어떻게 고백해야 합니까?
첫째는 왜 죄를 고백해야 합니까?
죄가 무엇입니까? 2절의 죄란 단어의 히브리어 ‘핫타아’를 영어로 sin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죄란 하나님의 과녁에서 벗어난 것이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합격선에 미달하였다는 뜻입니다. 2절“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다윗은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깨끗이 제하실 수 있음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죄를 깨끗이 씻어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3절“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그뿐만 아니라 다윗은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나는 죄인이라는 자기 고백입니다. 9절“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그리고 주님의 얼굴을 내 죄에서 숨기소서,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 죄를 주님이 쳐다 보시면 나는 부끄러워 설 수가 없다는 고백입니다. 14절“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공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합니다. 피 흘린 죄 나는 살인자입니다. 이상의 구절에 나오는 죄란 단어의 의미는 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과녁을 벗어난 그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기준 수준에 미달하는 자격 박탈의 죄입니다. 이것을 원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과 인간을 비참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죄 때문입니다. 인간 조상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가 바로 이 죄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더는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이 신이 될 수 있는데 신이 되는 것을 막고 자신을 억압하는 못된 하나님으로 오해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불순종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끊고 자기가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하나님의 품을 떠났습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이렇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렘 2:13 절“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두 가지 죄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인생이 생수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버린 결과 만족함이 없습니다. 불만족이 죄인의 특징입니다. 남을 죽이고 빼앗고 쌓고 높아지고 그래도 만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결과는 스스로 웅덩이를 파는데 그 물을 가두지 못하는 터진 웅덩이가 되었습니다. 인생무상입니다. 모든 것이 헛됩니다. 다윗이 범죄한 결과 자식들의 반역과 자식들 사이의 피 비린내 나는 골육상쟁, 인생무상 그자체였습니자. 우리가 고백할 죄는 하나님을 떠나 내가 하나님이다.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라는 이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이 죄가 가장 큰 죄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안 믿는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죄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무엇을 고백해야 합니까?
죄악을 고백해야 합니다. 히브리어 ‘아온’을 영어로 transgression로 우리말로1절의 죄악이란 번역된 단어의 의미는 희어졌다, 굽어 있다는 뜻입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다윗은 하나님의 성품을 의지합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분이시며, 긍휼히 많으신 분이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바라봅니다. 그분에게 자기의 죄악을 지워 달라고 구합니다. 5절“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을 분명히 고백합니다. 나는 죄악 중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내가 죄를 짓는 것은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타락한 본성을 가진 자이기 때문에 죄를 지었음을 고백합니다, 9절“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그래서 다윗은 이 모든 죄악을 지워 달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은 이 죄악 때문에 완고하고 고집스럽게 되었습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을 굳게 휘게 만듭니다. 모든 인생을 병든 인생으로 만듭니다. 다윗도 죄를 지을 때 숨겼습니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도 잊어버렸습니다. 죄는 인간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모르게 합니다. 그래서 교도소에는 죄인이 없다고 합니다. 다들 누구 때문에 내가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자기 죄를 부인한다고 합니다. 다윗도 설마 하나님이 이런 일까지 알 수가 있을까? 끝까지 감출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자신을 향해 말씀하고 있는데도 알지도 모른 체 오히려 자신이 의로운 재판관이 되어 분노했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입니다. 이렇게 죄는 인간을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자기중심적인 자아도취에 빠지게 만듭니다. 갈 6:7절“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속이고 숨기고 자신은 결백하다고 고집 피우는 것 등은 다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다윗은 마침내 나단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빛 앞에 꼬꾸라졌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말씀의 빛이 죄가 어둡게 만든 다윗의 마음을 열어 자신을 보게 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했습니다. 사람에게 한 죄는 먼저 하나님께 지은 죄임을 아십니까?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 그다음에는 죄를 지은 피해자에게 책임 있는 조치를 하는 것입니다.
3. 어떻게 고백해야 합니까?
9절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여기 "지워 주소서"(blot out)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 ‘마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 의미는 일종의 영적 · 우주적 세제, 죄를 씻되 마지막 한 올까지 말끔히 죄를 씻을 세제가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말끔히 지울 수 있는 강력한 세제가 이 세상에 존재합니까? 인간 세상에는 없습니다. 여기에 인간의 한계와 절망이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고 주님께 얼굴을 향합니다. 여기 주님은 누구십니까? 히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우리의 죄를 완전히 지워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어 구약 시대 때는 죄를 범한 죄인을 대신하여 짐승을 희생제물로 삼아 대신 죽게 하심으로 죄인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어린양. 소, 염소, 비둘기 등 수 많은 희생제물이 죄인을 대신하여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희생제물은 일시적이며 단회적인 효과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 3:15 절에서 약속하신 대로 인간에게 죄를 지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인생의 원흉인 마귀의 머리를 박살 내고, 우리 인간을 마귀의 속박에서 구원하실 여자의 후손을 보내셨습니다. 그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이 땅에 비천한 인간으로 오신 이유는 죄인이 나를 대신하여 저주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며, 죄는 인간의 마음을 구부러지게 하여 숨기고, 속이고, 사기 치고, 죽이고, 쌓고, 도둑질하고,6 그래도 나는 천사라고 자신을 분장하고 다니게 만듭니다. 이 세상에 이런 죄인들이 많으므로 세상을 바람 잘 날 없이 어둡고 소란스럽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나는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안 계십니까? 여러분, 억울하신 분이 있다며 예수 그리스도만큼 억울하신 분이 어디 있을까요? 그분은 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이 세상은 주인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소도 개도 짐승도 자기 주인을 알아보는데 마귀에 속고 있는 인간만은 주신의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주님이 이런 수모를 당해야 했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당하신 이 수모의 사랑을 아십니까? 그래도 우리는 다 자기 집에서 삽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인은 머리 둘 곳도 없었습니다. 왜 주님이 가난하게 되셨습니까? 우리를 부유케 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시기 위해서 당신은 스스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인간은 주님의 뺨을 치며 침을 뱉었습니다. 왜 이런 조롱에도 참고 있었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조롱하는 자를 향해 천사들을 보내어 당장 쓸어 버릴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갖추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대신 죽기 위해서 였습니다. 여러분, 몸이 아파 나는 저주받았다고 신세 한탄을 하신 적은 없습니까? 주석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머리 위에 씌운 가시 면류관에 있는 가시는 주님의 머리를 깊이 찔러 시신경을 마비시켰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이미 눈이 잘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왜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먼저 장애인이 되셨습니다. 십자가형은 당시 가장 흉악한 죄인들에게 행한 부끄러운 형벌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십자가형을 거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가장 고통을 많이 겪으면서 서서히 죽게 만드는 인간이 개발한 가장 잔인한 사형제도였습니다. 죽기 전까지 너무 고통이 심하여 까무러치고 깨기를 수천 번 반복하다가 죽는 형벌이었습니다. 왜 죄 없으신 주님이 이런 무서운 형벌을 받으셔야 만 했을까요? 공의로우신 성부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싫어하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반드시 심판하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도 외면당하셨고 버림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탄식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막 사박다니, 아버지여,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왜 사랑하는 성부 아버지마저도 사랑하는 그분의 외아들을 버리셔야만 했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입니다. 십자가 외에는 죄인의 죄 문제가 해결될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죽기 위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입니다. 롬 5:8“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가 돌아가심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 이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는 도다라고 외쳤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힘의 근원입니다. 요한 사도는 요일 1:9절“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자기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죄를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 용서는 다만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만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선물입니다. 여러분 지은 죄 때문에 고민하는 분은 안 계십니까? 혹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착각하시는 분은 안 계십니까? 오늘, 어떤 죄도 십자가를 통해 보여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붙잡고 죄를 고백함으로써 죄 용서함을 받아 먼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시며, 이어 사람과 화평을 누리시기를 예수 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