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대한 이론/그리스도 중심적인 네러티브 설교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wordlove 2023. 12. 10. 15:12

1. 본문: 73 : 25-28

2. 명제: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보아야 고난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가능성의 명제

3. 제목: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4: 본문 구성 요약.

A.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선을 베푸시며 그중에서도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구나. (1)

B. 그러나 나는 발을 잘못 디뎌 거의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2)

C. 이것은 내가 악인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교만한 자들을 질투하였음이라. (3)

D. 그들이 일평생 아무런 고통도 없이 건강하게 지내며 (4)

E.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병으로 고생하는 일도 없으니 (5)

F. 교만을 목걸이로 삼고 폭력을 옷으로 삼는구나. (6)

G. 그들의 마음은 악을 토하고 그들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7)

H. 그들이 남을 조롱하며 악한 말을 하고 거만을 부리며 은근히 남을 위협함. (8)

I. 그들이 입으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혀로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악담하니 (9)

J. 그의 백성이 그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의 악한 영향을 그대로 받아(10)

K. 하나님이 어떻게 알겠는가? 가장 높으신 분이라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 수는 없다(11)

L. 이 악인들을 보아라. 이들은 언제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그들의 재산은 날로 늘어만 간다. (12)

M.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고 죄를 짓지 않은 것이 허사구나. (13)

N. 나는 종일 괴로움을 당하며 아침마다 벌을 받았다. (14)

O. 내가 만일 이런 것을 말했다면 주의 백성들에게 반역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15)

P. 내가 이 모든 문제를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었으나 (16)

Q. 내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 악인들의 최후를 깨달았습니다. (17)

R.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셔서 파멸에 밀어 넣으시므로 그들이 순식간에 멸망하여 끔찍한 종말에 이릅니다. 그들은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꿈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일어나시면 그들이 꿈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18)

S. 마음이 괴롭고 아플 때 내가 어리석고 무식하여 주 앞에 짐승같이 . (22)

T. 늘에서는 나에게 주밖에 없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있는데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랍니까? 내 몸과 마음은 쇠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며 내가 필요로 하는 전체입니다. (25)

U.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할 것입니다. 주께 신실치 못한 자를 주는 멸망시키셨습니다. (27)

V. 그러나 나에게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정말 좋은 일입니다.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았으니 주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널리 전하겠습니다. (28)

 

1. 갈등: 나의 믿음의 기초가 흔들거립니다. A, B,,,,L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자 애쓰는 아삽이라는 사람의 노래가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성가 대장으로 봉사하는 참으로 경건한 신자였던 것 같습니다. 아삽은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선을 베푸시며 그중에서도 특별히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으로 확신하며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의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는 깊은 신앙의 회의감에 빠졌습니다. 무엇 때문이라고요? 그의 독백을 들어 보십시오. 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니까 자신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소위 하나님을 안 믿는 악인들이 아주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형통을 보니까 자신의 마음에 질투심마저 생깁니다. 그들은 일평생 아무런 고통도 없이 건강하게 호의호식하며 지냅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병으로 고생하는 일도 없습니다. 교만을 목걸이로 삼고 폭력을 옷으로 삼아 사는 악한 인생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악을 토하고 그들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릅니다. 그들은 남을 조롱하며 악한 말을 하고 거만을 부리며 은근히 남을 위협하기를 즐겨합니다. 그들은 입으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혀로는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악담을 퍼붓습니다. 그들은 입을 열어 11"하나님이 어떻게 알겠는가? 가장 높으신 분이라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 수는 없다"라고 비아냥거립니다. 그런데도 이 악인들은 언제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그들의 재산은 날로 늘어만 갑니다. 만사형통합니다. 그들의 모습에 아삽의 심사는 질투심으로 끓어오르고 과연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공평하신 분이신가에 대한 회의감으로 그의 신앙은 비틀거리고 있었습니.

 

2. 갈등 심화: 깨끗한 양심을 지키며 사는 것은 허사로구나, M, N, O, P

아삽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지금까지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고 하나님 앞에 죄짓지 않고 양심적으로 살려고 했모든 행동은 다 허사였구나. 잠도 오지 않으며 바보 멍청이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손해의식으로 온몸이 부들부들 뜰리기 조차합니다. 죄짓기를 밥 먹듯이 하면서 사는 악인들은 저렇게 형통한데 믿음으로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아삽 자신은 종일 괴로움을 당하며 아침마다 벌을 받으니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입니까?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신 것인가? 아삽이는 깊은 신앙의 회의감에 빠졌습니다. 지난 세기의 성자로 칭송받은 테레사 수녀도 한때 하나님은 안 계신 것이 아니냐는 깊은 신앙의 절망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삽이 겪는 절망감과 회의감이 이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삽이는 마음에 담겨있는 모든 의심을 다 뱉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만약 다른 성도들이 그의 말을 들었다면 저 사람이 과연 하나님 믿는 백성 맞아 어떻게 저렇게 불신의 말을 함부로 하지 그런 의혹을 주기도 충분했으라 짐작됩니다. 아삽이는 악인이 잘되고 믿음으로 살고자 애쓰는 자신은 오히려 온갖 고초를 다 당하는 이 현실을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아삽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분들 가운데서도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합니. 하나님도 안 믿고 죄를 낙으로 삼는 자들은 오히려 잘되는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나는 왜 이 모양이야! 이러한 신앙의 의심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분들도 있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3. 전환: 내가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갔을 때, Q, R, S,

아삽이는 의심의 나날을 보내며 절망 가운데 매달려 있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자기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엎드려 자신의 고민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기도하는 아삽에게 하나님께서 어두운 아삽의 눈을 열어셨서 놀라운 광경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떵떵거리며 살던 교만한 악인들의 최후를 보여주셨습니다. 천년만년 형통하게 살 것처럼 보였던 악인들의 최후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17-19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시 73:1873:18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시 73:1973:19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셔서 파멸에 밀어 넣으시니 그들이 순식간에 넘어져 끔찍한 종말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마치 그 악인들은 아침이 되면 사라지는 꿈과 같은 허무한 신세로 전략하고 말았습니다.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였던 하나님께서 일어나시니 악인들의 존재는 꿈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권불 십 년이라 했고 3대 부자도 없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기억에 평생 권력을 잡고 있을 것 같았던 김일성이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박 대통령도 자기의 고추 친구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에 경천동지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건강하다고 자랑하던 친구가 쓰러져 병석에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인생무상을 느낍니다. 사랑했던 우리 부모님도 이제 우리 곁에 더 이상 계시지 않습니다. 안개와 같이 허무한 인생입니다. 아무도 자기 인생을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우리 인생이 당하는 고난에 대한 두 가지 큰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복적인 견해입니다. 우리 한국인의 혼에는 기복적인 신앙이 깊이 뿌리 박혀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아직도 이 기복 신앙의 뿌리에 근거한 신앙을 가진 신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기복 신앙은 일시적이고 현실적인 축복을 근거로 고난을 이해합니다. 교회 안의 형통 신앙도 비슷합니다. 만사가 잘되는 형통만을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반면 고난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기복적인 신앙을 가진 교인들은 고난을 만나면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자라고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을 정죄하며 자학하기도 합니다. 이 기복 신앙은 윤리 의식이 모자랍니다. 옳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아무튼 잘되었는가 못되었는가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아삽이라는 사람도 이런 신앙을 가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을 보고는 질투하고 어려움 당한 자신에 대해서는 부끄러워합니다. 그러고는 깊은 신앙의 회의감으로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성경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둘째는 성경적인 견해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고난을 보는 견해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평생 형통하게 살 것 같은 악인들의 마지막을 보십시오. 악인은 마지막 날에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으로서 반드시 인간의 선악 간의 행실에 대해 심판을 하십니다. 고후 5:10“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 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오늘이 아니면 내일, 이 땅에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설 때 반드시 심판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끝까지 기다려 보아야 합니. 또한, 성경 이 땅에서의 고난은 의인이 입어야 할 마땅한 옷으로 봅니다. 왜 이 땅에서 예수 님을 진실로 믿는 의인들에게 고난이 많습니까? 어둠 움은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참 빛이신 예수 님이 오시자 어두움은 예수 님을 싫어했습니다. 자기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죄 없는 예수 님도 많은 고난을 받으셨다가 마침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셨습니다. 예수 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은 참 빛을 안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 님처럼 역시 어두운 세상은 본질적으로 싫어합니다. 예수 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 4장 바울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고전4: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4: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4: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줄이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4: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마지막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 사도는 우리는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도들은 왜 이런 고난을 당했습니까? 참 빛이신 예수님 편에 서있기 때문이요. 또한 빛이신 이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증거 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 생활 잘하는 사람에게 고난이 있다는 것은 그분의 믿음이 진실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편에 서있다는 확신한 증거인 것입니다. 고난이 없다는 것은 결코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나는 예수님 편에 서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 축복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준비되어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이 땅의 축복 예를 들면 재물, 건강, 자식 등은 다 일시적이요 찰나적이며 곧 없어질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참 축복은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하늘에 속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오는 축복이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부터 오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예수 님 자신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나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선포합니다. 주님은 이 땅보다 하늘에 더 큰 상이 있음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던 아삽이는 마침내 믿음의 눈이 열린 것입니다. 악인의 최후를 보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공평하심과 은혜로우심을 보았습니다. 25 하늘에서 나에게 주밖에 없습니다.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여기 주가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6 하나님 내 마음의 반석이시며 영원한 분깃이시라 ““ 여기 반석을 고전 10: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바울 사도는 반석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받으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고 내 죄를 안고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3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온전히 만족시킴으로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볼 때 예수님처럼 봅니다. 이제 예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영원한 복입니다. 아삽이는 이제 참 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을 깊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22 어리석고 무식하여 주 앞에 짐승같이 되었습니다. “ 나님을 의심하며 세상의 형통을 질투하며 믿음의 향기를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의 불신을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고난을 바라볼 때 우리가 만나는 고난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멘!

 

4. 대단원: 하늘에서는 나에게 주 밖에 없나이다. T, U, V

드디어 우울했던 아삽이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으로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25 하늘에서 나에게 주밖에 없습니다.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가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데 이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랍니까? 내 몸과 마음은 쇠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26 하나님 내 마음의 반석이시며 영원한 분깃이시라 ““ 예수 그리스도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입니다. 27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하는 자는 망할 것입니다. 28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내게 복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널리 전파하겠습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다 같이 CCM “하늘 아래 주밖에 사모할 이 없네 불러볼까요? 이 아삽의 고백과 노래가 저와 여러분의 고백과 찬양이 되기를 예수 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