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아니하실지라도
1. 본문: 단 3: 1-30
2. 명제: 승리케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선언적 명제)
3. 제목: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1. 갈등: 느브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1절)
BC 7세기 고대 중동 지방을 제패한 바벨론 제국이,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유대 나라마저 정복하여 속국으로 삼았습니다. 43년간이나 통치한 느브갓네살 왕은 자신의 통치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우상화 작업을 벌였습니다. 황금으로 10층 높이의 거대한 왕의 모양을 한 신상을 만들어, 만조백관과 백성들에게 절을 하게 함으로써, 신하들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마치 신처럼 섬기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어기는 자는 가차 없이 용광로 속에 집에 넣어 죽이는 무서운 법이었습니다. 옛날 왕들은 자신을 신이라든지 혹은 신의 아들 신의 대리자로 숭배하도록 강요했든 적이 많았습니다. 일본강점기 때도 일본의 통치강화를 위해 우상화 작업을 했습니다. 일본신사를 만들어 우리 조상들에게 절하게 했습니다. 어기면 학교와 교회 폐지, 직장에서의 불이익, 감옥 고문 등 무서운 형벌로 위협했습니다. 이 위협 때문에 사실 절대다수 우리 조상들은 일본제국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에 1884년에 언더워드와 아펜젤러 목사님이 제물포 항구를 통하여 들어옴으로써, 복음 운동이 시작된된 지 약 20년만인 1905년에 을사늑약이 맺어졌고 일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직 신앙이 어린아이처럼 약했던 그 시대 한국 교회는. 소수의 주의 종을 제외한 거의 다수는 일본제국이 강요한 우상에게 절하고 말았습니다. 한국 교회 역사 가운데 가장 부끄러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세 사람은,, 모든 자들이 두려움으로 떨며 우상 앞에 고개 숙이고 있었을 때, 그들만은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서 있었습니다. 옆에 서 있는 시뻘건 용광로는 배고픈 뱀처럼 먹이를 기다리며 명렬히 혀를 날름거립니다.
2. 갈등심화: 너희를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다. (15절)
예상대로 배신자에 대한 보고가 왕에게 즉각 올라갔습니다. 왕이시여!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는 불충한 자가 있습니다. 여러분, 과거에는 왕의 말이 바로 법이지 않습니까? 느브갓네살왕의 왕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중무장한 병사들이 세사람을 개처럼 왕 앞에 끌고 왔습니다.. 왕이 그들을 신문을 합니다. 단단 3:14 “느부갓네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그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그런데 이 느브갓네살 왕은 통이 큰 인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당장 목을쳐라고 하지 않고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습니다. 3:15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마치 좋은말로 타일러는 엄한 아버지의 말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능히 너희를 나의 손에서 건져 낼 신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하나님을 믿는 이 세 사람의 조국 유대 나라는 이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망했습니다. 이왕의 말은 내가 너의 신보다 더 강하다라는 비웃음의 말입니다. 정복자의 왕이 이렇게 관대하게 나오면 왜만하면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1,000도 이상의 이글거리는 용광로가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버티다가도 많은 경우 합리화를 하며 환경 탓으로 돌리며 타협하고 맙니다. 일본강점기에도 한국 교회와 수많은 신앙인이 일본의 총과 칼 회유 앞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결국, 일본 신사에게 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상 숭배를 하면서 합리화를 시도했습니다. 이것은 우상 숭배가 아니고 국기에 경례하듯이 국가의례에 불과하다. 또 학교와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상황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해방 후 어떤 분들이 감옥 안에서 고생한 분도 귀하지만, 바깥에서 어쩔 수 없이 우상 숭배를 하면서 교회를 지킨 우리의 공도 있다고 자기변명을 늘어놓은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일본강점기 끝까지 신사참배를 하지 아니하고 버틴 주의 종 가운데 한 분인 주기철 목사님은 과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분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해방되기 일 년 전 1944년 4월 21일 혹독한 고문으로 감옥에서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아니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우상에게 절했던 많은 사람은 편안하게 살았고, 호의호식하며 온갖 부귀영화까지 누렸습니다. 하지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변명하거나 환경 탓으로 돌리든가 혹은 상황 논리를 내세우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1,000도 이상의 시뻘건 용광로뿐일까요?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기는 하십니까?
3. 전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18절)
시뻘건 용광로 앞에서 다시 한 번한번의 기회를 준다는 왕의 자비 앞에 이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단단 3: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3:173: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3:18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들의 신앙의 정체성이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말속에 녹아 들어있습니다. 이들의 신앙의 정체는 어떤 것입니까? 첫째, 자기 목숨보다 믿음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신앙입니다. 불충한 신하로 낙인 찍히면 죽음만이 기다리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단단 3: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3:63:6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하매.” 이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둘째,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거는 신앙이었습니다. 단단 3:17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능히 건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소망을 걸고 있습니다. 이 세 믿음의 사람 앞에 서있는 느부갓네살 왕은 그 시대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를 가진 왕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를 밥 먹는 것보다 더 쉽게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기 조국을 망가뜨린 왕의 무서운 권세를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 젊은이들은 자기 앞에 앉아있는 큰 권세자보다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심을 변함없이 믿고 있습니다. 셌째, 눈에 보이는 축복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신앙입니다. 이분들의 신앙은 한마디로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의 신앙입니다. 단단 3:18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할 것으로 소망하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죽는다고 해도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주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서워서 이런저런 변명과 자기 합리화를 시도해도 우리는 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땅은 잠깐입니다. 이 땅에서는 비록 아무런 축복이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이 땅에서는 비웃음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축복받지 못한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욕을 얻어먹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주님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합 3:17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3:18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3:19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저는 이분들의 신앙의 정체를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하나님도 감동한 신앙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감동하는 신앙이란 어떤 신앙입니까? 자기 목숨보다 믿음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신앙입니다. 어떤 역경 가운데서라도 하나님께만 소망을 거는 신앙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축복보다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신앙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베느고의 신앙은 하나님 마저 감동한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만 본문을 보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세 사람이 영웅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결론은 우리도 이 세 사람의 신앙을 본받아 살자고 외칩니다. 이렇게 설교하며 인간을 높이는 인본주의 설교이며 윤리 도덕적인 설교가 됩니다. 물론 이런 신앙을 하나의 모범의 예로써 사용할 수 있지만, 이런 설교는 성경을 왜곡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 가는 율법주의적 설교에 빠지기 쉽습니다. 모든 신 구약 성경의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들어내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신구약은 모든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인간은 조연에 불과하며, 주연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찬양을 받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 자신도 눅 24: 44-47 “4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눅24:4524: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24:46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눅24:47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신구약 모든 성경은 예수 님에 대하여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오늘 본문의 이 절체절명의 사건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십니까? 3:25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여기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 아니하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은 분, 이분이 아직 인성을 입지 아니하신 바로 구약에서 활동하시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이 마침내 용광로 속에 오셔서 이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구덩이에서 그들을 구원하셨고, 그들이 만난 역경을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세상, 육신, 마귀,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이 분이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4. 대단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라. (28절)
하나님은 마침내 하나님을 대적하는 느부갓네살 왕의 마음도 변화시켜 하나님을 찬양케 하셨습니다. 단단 3:29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성부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드립시다.드립시다. 성령 하나님을 찬양 드리십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느부갓네살의 완악한 마음마저 변화시켰습니다. 일본강점기 총과 칼이 무서워 우상 앞에 절을 한, 많은 주의 종들을 하나님은 버리시지 아니하시고, 회개시켜 사용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찬양드립시다.드립시다. 무서운 일제의 칼과 고문 앞에서도 굳건히 버티어 감당케 하시고 결국 이기게 하신 주기철 목사님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찬양드립시다.드립시다. 마침내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하나님이 이 땅에서도 높이셨습니다. 단단 3: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역경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주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바울 사도는 어떤 것도 롬 8:39절"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절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어떤 것도, 사망이나, 생명이나, 영적인 존재도,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시간도,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어떤 것들도, 공간도,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도 끊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은 우리 안에 사랑받을 만한 것이나, 주변에 있는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바울은 삶의 고난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죄에도 당당하고 변치 않는 확신으로 맞서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제 온전히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답게 만들기로 작정하셨는데, 그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뒤엎을 수는 없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이기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어떤 역경도 이기게 하실 분은 바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분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변호하시며,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 앞에 어떤 역경이 오더라도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소망하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