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love 2024. 4. 28. 14:31

1. 본문: 요일 5:4-5

2. 본문 요약: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다.

3. 주제: 세상을 이김

4. 테마: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방식:

5. 명제: 세상을 이기는 방식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믿는 것이다. (선언적 명제)

6. 목적: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방식들을 소개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7. 질문제기: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방식들은 무엇입니까?

8. 중심 단어: 믿음의 방식들

9. 전환 문장: 세상을 이기는 방식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믿는 것이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방식들은 무엇입니까?

10. 대지

11. 제목: 어떻게 믿음이 이기는가?

 

진정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하는 것은 거듭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을 예수 그리스도와 생동감 있고도 긴밀한 관계를 맺게 합니다. 우리를 이길 수 있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실제적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것은 성공적인 삶의 비결이며 기쁨의 비결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방식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방식들을 소개하여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방식들은 무엇입니까?

 

첫 번째는 직접적이며, 수동적인 방식입니다.

4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에 대한 신앙이요 믿음입니다. 믿음의 결과는 우리가 그분에게 가서 그분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18:10.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옛날의 경건한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과 그 시험 및 유혹에 대항해 싸웠는지를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실패했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할 일은 단 하나이다. 그 망대로 달려갈 것이며 거기서 안전함을 얻는다." 여러분이 그것을 신약성경에서 찾아보기 원한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포도나무와 가지에 관한 교훈을 보면 됩니다. 15:5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도 바울은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세상을 이긴다는 중요한 표현들입니다. 달리 말해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매달리며 그분 안에 숨고 문자적 의미에서 그분의 보호와 보살핌과 구원에 의지하며, 전적으로 그분을 의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이를 단순한 믿음이라 칭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실패들 중 대부분은 직접 죄와 맞서 싸우려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달려가서 그분 안에 숨지 않으면 분명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 직접 그리고 곧장 나아가서 그분을 뵐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믿음의 위대한 전략'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그분이 소책자를 한 권 읽었다고 합니다. “ 남아프리카의 어느 그리스도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두루 여행하는 중에 어느 농촌에 이르렀다. 그 지역에 닥친 홍수로 인해 그는 일종의 여인숙에서 지내야 했다. 그는 그곳 농부들을 보고 놀라움과 슬픔을 느꼈다. 그들 중에는 그곳에 와서 일년 내내 고된 노동의 대가로 벌어 모은 돈을 며칠 만에 모조리 탕진해 버린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술에 너무도 중독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악습을 타파할 수 없었다. 그는 이 끔찍스러운 불행의 특별한 희생자인 듯이 보이는 한 가난한 사람에게 각별한 관심이 끌렸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말을 붙이기 시작했다. 먼저 그 사람의 아내와 자식들이 당해야만 했던 시련을 지적하면서 이치를 따져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 가난한 사람은 모든 것을 시인했으며, 무의식적으로 거기에 빠져들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무기력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만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거기서 벗어날 수 있다면 온 세상이라도 내어 주고 싶지만 이제는 그 희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때 이 그리스도인은 계속해 그에게 믿음과 극복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했으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에게 전했다. 또한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하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그 사실을 믿는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는 단순한 사람이요 무학자였으며, 오로지 이 그리스도인이 말한 그분의 이름을 찾기만을 갈망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분의 이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가난한 사람은 먼 곳으로 가서 다시 열심히 일했고 자신의 곡물을 팔기 위해 동일한 장소로 돌아왔다. 그곳으로 유혹하는 자들이 다시 찾아왔지만 그들과 함께 가지 않았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놀랐다. 일년 가량 지나 그리스도인 방문자가 돌아와 그 사람이 완전히 변화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으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았다. 그 사람의 단순한 증언은 이러했다. "내가 처음 돌아왔을 때 친구들이 와서 나를 유혹했고, 나는 약해졌다. 그러나 갑자기 나는 예수라는 이름을 기억했다. 단지 계속해 '예수님' 하고 부르기만 했을 뿐이다. 예수님 나를 구원해 주세요라고 그분께 외쳤다." 그의 믿음은 단순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하여 그는 극복했다. 그는 해방되었다.” 내가 말하는 직접적 믿음이란 바로 이러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단순하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아이가 되는 것'이고 우리의 전적인 연약함과 무기력함, 절망 상태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 싸움이 힘들고 대적이 앞을 가로막으며 우리가 실패할 순간에 처해 있다고 느낄 때, 단순히 "예수님!" 하고 부르짖어야 하며 그분이 보살피고 계시며 우리를 구원하며 지킬 준비를 갖추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또 알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그때 단지 다음과 같은 찬송을 부르기만 하면 됩니다. 찬송가 446주 음성 외에는 참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늘 계시옵소서 기쁘고 기쁘도다 항상 기쁘도다 나 주께 왔사오니 복 주옵소서 ““ 우리는 어린아이들로서 그분을 바라봅니다. 자신을 그분께 의탁합니다. 그분의 강하신 팔에 안깁니다. 그리하면 그분은 분명 우리를 지키고 구하실 것이며, 4: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여러 세기를 통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모든 사람과 성도에 관한 위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그리고 육신과 마음의 간교한 유혹의 희생물이 된 사람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었을 때, 여러분은 그들에게 주어진 소망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런 상태에서 윤리적 향상에 관해 전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변화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곧 전적 절망과 무기력 상태에 처한 그들을 구원하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분을 바라보는 자는 모두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수동적 의미에서 세상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즉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서 그분을, 그분의 강한 권능을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입니다. 승리는 오직 그분 안에만, 그분의 권능 안에만 있으며 나 자신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의 연약함과 그분의 강하신 권능을 자각하고 나 자신을 단순하게 그분께 맡길 때 승리가 임합니다. 여호와의 이름 즉 예수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는 말씀을 다시금 기억합시다. 주님이 나를 지키실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방식들은 무엇입니까?

 

두 번째는 간접적인 혹은 '능동적인‘ 방식입니다.

여기서 나는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관한 영광스러운 특성을 보게 됩니다. 전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에서 일어나거나 계속 나아갈 수 없다고 느낄 때, 이 강력한 대적이 다가와 우리를 막 쓰러뜨리려 할 때, 우리는 달아납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식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계속 살아가려면 우리는 간접적 방법을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이 진정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나는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집니다. 나는 복음서에 나오는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여기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고 인간으로 사셨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죄의 권능, 사탄의 권능, 악의 세력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설명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은 그분만이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세상이 죄 가운데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가 싸우는 영적 싸움의 성격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관해 낙관적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죄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죄와 악과 사탄의 세력이 너무도 엄청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실패했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만이 이 세상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자지게 될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세상에 의해 압도되고 그 지배를 받습니다. 사람들은 삶이란 멋지며 세상이란 근사한 곳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결코 세상을 꿰뚫어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겉보기에 근사한 것들에 의해 완전히 현혹됩니다. 특정한 지위를 얻고 누리기 위해 서로 엄청난 경합을 벌입니다. 그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들이 세상을 결코 꿰뚫어 보지 못한다는 것이 비극입니다. 그들은 영적 소경입니다. 단지 그들은 세상에 의해 기만당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그 순간 영적 눈이 열려 세상을 꿰뚫어 봅니다. 저는 로이든 존스의 다음과 같은 견해에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정치와 관련해 너무 흥분해서는 안 되며, 정치로는 결코 인류의 궁극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선거에서 어느 정당이 승리하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아주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입니다. 선거를 통해서는 이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든 정당 역시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도 나라의 정치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무관심하면 꾼들에 의해 개나 돼지 취급을 당하기 때문입니다.(정목사의 사견)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시민으로서의 의무가 있으며, 최악이 아니라 차악을 선택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흥분하며 어느 한 정당을 지지함으로써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들은 세상에 관한 진실을 결코 파악하지 못한 셈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꿰뚫어 봅니다. 그들은 어떠한 법도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객관적으로 봅니다. 그들은 신약성경의 의미에서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이 파멸과 저주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아야 하며, 그리스도 외에는 누구도 자신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 세상을 이기는 믿음의 방식들은 무엇입니까?

 

세 번째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고, 그분의 말씀을 믿고 나아갑니다. 5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를 보되 그분이 세상을 이기신 것을 봅니다. 그들은 그분이 사탄의 시험을 당해 이기신 것을 봅니다. 마침내 강한 자를 결박해 그의 물건을 취하실 수 있는 분을 보니다. 아무런 결함이나 흠이 없는 완벽한 그분의 삶을 봅니다. 목숨을 건 싸움에서 문자 그대로 최악의 지옥까지 내려갔다가 그것을 이기신 분을 봅니다 모든 사람이 사탄에게 패배당한 것을 보았습니다. 단 한 사람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사탄을 이기신 분이 여기 있습니다. 그들은 그분이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영광스러운 부활을 통해 승리하신 것을 봅니다. 그분의 부활을 통해 마지막 원수마저 정복되었음을 봅니다. 삶의 문제에 직면하며 세상을 이기고자 시도할 때, 나는 나 자신의 연약함과 나를 대적하는 모든 세력을 자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분이 이기신 것을 볼 때, 나의 관점은 곧바로 바뀝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신을 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께 속해 있으며 그분의 일부 이며.. 그분과 연합되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분께 속한 모든 것을 공유합니다. 이미 그분의 승리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의미에서 이미 이겼다고 했습니다. 4"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이겼습니다. 그분이 이기셨고, 우리는 그분 안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도 이겼습니다. 이것을 바로 알 때 영적 싸움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요한은 복음서에서 요 1: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했습니다. 우리 뒤에는 무한한 자원이 있습니다. 요6:35절“요 6:35절“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의 권능에는 문자 그대로 아무런 제한도 없습니다. 그분 안에 신성의 모든 자원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2: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우리는 그분 안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분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게도 그 견고한 망대 안으로 달려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싸우려 하기 때문에, 실패를 경험하고 대적에게 패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매우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 특별한 시점에 대적이 와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 쉽습니다. "너는 패배했다. 너는 넘어졌다. 너는 주께 죄를 범했다. 너는 뒤로 물러섰다. 네 믿음에 관해 이야기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너 자신을 보라!" 그럴 때 패배감과 좌절감에 압도되어 하나님께로 돌이켜 기도할 권리가 과연 내게 있을까라고 의심합니다. 그리고 절망과 허망함에 사로잡혀 완전히 낙심합니다. 그러한 시점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르시기를, 비록 우리가 범죄하고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일 1: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요일 2:1-2"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그러므로 범죄와 실패로부터의 구원, 타락하여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고 느끼는 나를 압도하는 절망감으로부터의 구원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나를 깨끗하게 할 수 있으며, 나는 일어나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영광스러운 신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확신합시다. 요일 5:4-5"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이겨셨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말씀을 믿고 나아가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