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love 2024. 6. 2. 15:34

본문 요일 5 : 13

명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은 마땅하다. (명령적 명제)

3. 제목: 확실한 지식

 

오늘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옳다는 데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의견이 일치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씀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고 너희가 하나님 아들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마도 서신 전체에서 가장 중요할 구절입니다. 요한 사도는 서신을 끝냈으며 여기서는 뒤돌아보면서 자신이 말씀해 온 바를 요약하고 수신자들에게 서신을 쓰게 된 목적을 상기시켰습니다. 특히 요한은 수신자들이 이 서신의 핵심 기록 목적을 분명히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 목적이란 그리스도인들, 곧 하나님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 자신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에게 알게 하려 함이라." 바로 앞 문맥에서 요한은 나사렛 예수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함을 강조해 왔습니다. 요한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진리를 분명히 알 수 있게 되기를 원했으며, 영생과 하나님에 관한 온전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의 말하는 바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몇가지 주장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 번째 주장은 우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아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무엇입니다. 어떤 이들은 영생이란 단지 죽어 이 세상을 떠나 내세로 들어갈 때 얻게 되는 그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영생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해서도 안 된다. 믿음이란 항상 그 대상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것은 믿음에 대한 철학적 개념일 뿐, 성경에서 다루는 것과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요한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내가 지금 너희에게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되 확신 있게 알게 하는 데 있다. 나는 너희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게 하기 원한다.” 여러분은 다른 사도들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바울도 롬 8 : 38-39절에서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따라서 믿음을 끊임없이 불확실한 어떤 분류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분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8:16 절에서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영생을 지녔고, 하나님을 알며, 그리스도를 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주장은 이것이 가능하되 우리 모두에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종종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과 만납니다. 그들은 특정한 사람만이 이처럼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영적으로 특별한 사람만이 이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우리가 모두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에는 그러한 구별에 관한 언급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본 서신 서두에서 요일 1:3" 우리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도 그 점을 매우 강한 어조로 언급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마찬가지로 사도 베드로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그들을 가리켜 벧후 1:1절에서" 동일하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더 적은 믿음이 아니라 같은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의 가르침은 항상 사람들을 두 분류로 나눕니다. 즉 성인들과 성인이 아닌 자들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신약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모두' '로 지칭됩니다. 때때로 나는 신약성경에서 우리에게 제시되는 가장 영광스러운 축복들을 스스로 도외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보통 그리스도인'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역 상의 구분은 있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생과 하나님과의 직접적 친교와 교류에 관한 이 특정한 지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가능한 것입니다. 세 번째 주장은, 그것을 소유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입니다. 나는 우리가 모두 그것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완수하신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에 관한 이 복되고 놀라운 지식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영생이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그 무엇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선물로 제공하셨고 우리가 그것을 얻을 수 있게 하려고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서 잔혹한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자신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신하지 않는다면, 그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구원의 능력을 제대로 증언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여러분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모든 관계가 좋은 상태임을 확신하기 전까지는 주님의 기쁨을 실제로 알 수 없습니다. 이런 기쁨을 지닐 수 있는 길은 영생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친교를 나눔을 의미합니다. 이런 지식은 예수 믿는 모두에게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영생을 소유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내가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스스로 적용해 볼 만한 특별한 시험 방법들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우리의 믿음입니다.

요한은 요일 5 : 12절에서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말했습니다. 이 구절의 바른 이해를 위해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나는 그분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복음 서를 통해 접하는 나사렛 예수라는 인격에 대한 나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모든 초점은 그분에 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영생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데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내게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나는 나 자신의 무가치함과 죄악 됨, 보잘것없음 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점을 깊이 절감했으며,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나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습니까? 내게는 소망이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님은 하나님을 만족스럽게 해 드리셨으며 자신의 모든 삶을 절대적이고도 완벽하게 바치셨습니다. 그분은 죄 문제를 처리하셨습니다. 나의 죄악들을 담당하사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분이 여기 계십니다. 또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완벽한 사역에만 의존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이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스스로 적용해 볼 만한 특별한 시험 방법들이 무엇입니까?

 

두 번째 시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나는 필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이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요일 4 : 19" 하나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그러므로 두 번째 시험 방법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나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그분은 엄한 주인이신가요? 하나님을 가혹한 분으로 생각합니까? 일을 그르칠 때 나는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신다."라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는다면 나는 하나님이 그분을 보내셨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믿으며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또한, 요한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한 우리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기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요일 2:15-17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영생이 있음을 확실히 알 때 세상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집니까? 우리가 모두 사는 세상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신문에서 보는 바와 같은 세상, 그것은 흥미를 끌지 않습니까? 요한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전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죄의 지배를 받는다고 봅니다. 그들은 세상을 악한 세력들이 활동하는 곳으로 간주하며,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세상의 악한 영의 작용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싸워야 할 그 무엇으로 알고 멀리해야 할 어떤 것으로 여깁니다. 또한,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에 의해 패배당할 것이라고 자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환경을 돌아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후 4:16-18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강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바라봄에 있어 과연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하나님에 관해 생각하는 데 할애하니까? 그분의 영광에 관해 어느 정도 생각합니까? 가장 깊이 생각하는 것은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입니까? 아니면 눈에 보이는 세상입니까? 나아가 요한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세상을 극복하고 이겼습니다. 그들은 세상 안에 있지만 더 거기 속하지 않습니다. 세상 안에 있지만, 그 위에 있습니다. 그들도 죄 가운데 빠질 수 있지만, 그 속에서 희희낙락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악한 세상에서 구원함을 받아 어둠의 나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집착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을 알기 원합니까? 하나님을 알기 원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들에 대해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영생을 지닌 자들은 더욱 하나님을 알고자 합니다. 예수님과 교제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가 기도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기 원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열망합니다. 무엇보다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닮기를 사모합니다. 예수님의 성품 즉 사랑, 화평, 자비, 양선, 희락, 온유, 충성, 절제를 닮기 원하며, 그래서 그 사람 옆에 가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이것들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증표입니다. 내가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스스로 적용해 볼 만한 특별한 시험 방법들이 무엇입니까?

 

마지막 방법은 바로 형제 사랑입니다.

요한은 거듭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이라면 다른 그리스도인을 사랑할 것입니다. 자신이 다른 그리스도인과 밀접한 관계에 처해 있음을 자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중요한 시험 방법이 여기 있습니다. 형제들을 사랑합니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는 교회에서 다른 형제와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함께 서로 섬기기를 좋아합니다. 옆의 형제를 바라볼 때 나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존중하며, 배려하며, 불쌍히 여기며, 귀하게 생각합니다. 형제 사랑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것들을 자신에게 진지하게 적용한다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미래가 바로 거기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영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니고 있다면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작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없이 죽는다면 영원한 파멸에 처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생명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의롭고 거룩해지기를 원합니까? 그리스도를 닮기 원하며 형제를 사랑하기를 원합니까? 이것들이 바로 여러분이 영생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시금석들입니다. 주님은 요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에 관해 어떤 것을 믿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내가 묻는 것은 과연 그분을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아버지이심을 믿습니까? 23:1"여호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나의 목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나의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이 나의 주님이심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아무런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셨으니, 나도 옆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만약 이런 것들에 내가 확신하지 못하며 알지 못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지식을 바란다고 하나님께 고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분께 간구드리십시오. 여러분이 자신의 연약함과 죄인 됨을 깊이 깨달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어두운 내 영의 눈을 열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확신하건대 그렇게 한다면, 그분은 여러분을 절대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6:37 "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영생을 가지고 있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형제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