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 본문: 롬 12:17-21
2. 명제: 복음은 이웃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한다. (선언적 명제)
3. 제목: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갈등: 하나님의 자비
지난주 말씀을 요약하며 시작하겠습니다. 롬 12장에서 마지막 16장까지는 복음을 토대로 예수님을 믿어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즉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삶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 먼저 순종하는 동기부터 살피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동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1절'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충분한 이유는 은혜에 대한 감사뿐입니다. 또한 복음은 이웃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게 요구합니다. 9절에는 세 가지 사랑에 대한 명령이 나옵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우리는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두 번째,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이 악이라고 하면 "미워해야" 하고, 하나님이 선이라고 하시는 것에는 그 안에 "속해야" 즉 꼭 붙어서 떨어지지 않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거짓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요? 복음은 다음과 같은 길을 제시합니다.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롬12: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복음은 우리가 본질적으로 사랑스럽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전혀 아름답지 않았을 때 즉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는 죄인의 때 우리를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떠올리며 회개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거짓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도 거짓 없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무엇과 같습니까? 10-16절에서 첫 번째, 참된 사랑은 끈끈한 가족애와 같습니다. 10절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형제를 사랑하여"와 "우애하고"는 가족 간의 혈연관계를 기독교 공동체에 적용한 말입니다. 바울은 마치 혈연관계에 있는 것처럼 우리가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참된 사랑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합니다. 10절"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 존경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귀하고 가치 있게 대우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깊은 신학적 뿌리가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이성과 인성, 창조성, 그리고 영혼 등은 하나님의 모습을 닮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한없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며 마땅히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16절도 같은 의미입니다.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참된 사랑은 자기중심적이지 않습니다. "낮은 데 처하며"란 의미는 죄인들의 친구라고 조롱을 받았던 예수님처럼 천한 사람들과 함께 교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 참된 사랑은 인내합니다. 11-12절”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2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우리는 문제들 앞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인내하며 "기도"에 온 힘을 쏟아야 합니다. 14절은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명령합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되갚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적극적으로 인내함으로 힘써야 합니다. 인내가 참 사랑입니다.
2. 갈등 심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이 있다
이어지는 오늘 본문 17-21절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를 다룹니다. 17절"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21절"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여기서 '이기라'는 "제압하다"를 의미하는 군사 용어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전쟁에서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악에게 패배하는 것과 같습니다. 악을 물리치는 유일한 길은 해를 입힌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악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약 '악'을 '악을 행한 사람'과 너무 동일시하게 되면, 악을 없애기 위해 악을 행한 사람을 없애야 한다고 믿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악에게 좋은 일을 하게 되고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세력에게 조종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악을 이기는 비밀은 '악'을 '악을 행한 사람'과 구분하는 것입니다. 죄는 미워하데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주된 목표는 죄는 미워하데 사람은 용서하고 사랑하고 친절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두 가지 일이 일어나는데 첫째, 악이 우리를 침범하지 못합니다. 악에 속한 교만과 미움이 우리를 물들이지 못합니다. 둘째, 악이 더 이상 악을 행한 사람에게 침범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사랑으로 마음이 유순해져 선한 영향력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20절에서 바울은 우리의 선한 행위와 말이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두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회개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 사람이 우리의 선한 반응을 보며 자신의 악을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하고 뉘우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악의를 가진 사람을 피하지 마십시오. 18절"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누군가 우리에게 잘못했을 때 대부분은 그 사람을 피해 버립니다. "나는 그들이 내게 한 잘못을 되갚지 않아. 단지 보고 싶지 않을 뿐이야."하지만 당신의 회피가 보복의 한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악을 피하는 것이 악을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20절"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이 말은 악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정중하고 친절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공손하게 말해야 합니다. 셋째, 앙갚음을 하지 않습니다. 19절"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참된 사랑은 원수에게 내손으로 복수하지 아니하고 참된 심판자이신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3. 전환: 복음은 원수도 사랑하게 한다
바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악의를 품고 당신에게 잘못을 범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들끓는 복수심으로 어느 때고 무엇이든 당신이 할 수 있는 앙갚음을 할 것인가, 아니면 넓은 마음으로 그들에게 가장 좋은 일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실제로 누가 자신의 원수에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우리가 정말로 1절"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산다면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복음만이 9-21절에 나오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대로 살게 해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 번째,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얼마나 오래 참으셨고 지금도 참고 계신지 생각나게 해 줍니다.. 롬 2:4절에서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기까지 마지막 심판을 유보하시며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반복되는 우리의 약점과 실패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시며 지금도 참고 계십니다. 두 번째, 복음은 우리 자신에 대해 롬 12:3절에서 지혜롭게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으로 자신을 평가해야 합니다. 먼저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구원에서 멀어진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이웃이 그리스도인이건 아니건, 훌륭한 사람이건 아니건 죄에 관해서는 모두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고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 앞에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복음이 없다면 유명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 어울려 자신의 가치와 신분을 증명받고 싶겠지만 복음 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온 우주의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셨고 우리를 기뻐하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따라서 이제는 인정받을 만한 사람들과 사귀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고 닮고 싶은 분이 이미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통해 우리는 낯선 사람, 힘든 사람, 불편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만큼 풍족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을 존중하며 함께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편견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받아 주신 것을 알기에 인종이나 계급, 직업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복음은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진심 어린 애정으로 함께 나눌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참된 기쁨이라면 다른 사람과 더불어 맘껏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와 평화가 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무시하거나 열등하다고 여기는 사람에 대해 공감하는 것이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고 우리 자신을 똑바로 평가하게 해 줍니다.. 복음은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였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삶이 반드시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삶의 어두운 면이나 고통을 외면하고 힘든 상황을 그럴듯하게 가립니다.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도 당연히 헤아리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의 미래에 대한 만족과 확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지 못한다면, 늘 환경 속에서 위안을 찾거나 그 결과로 세상에서의 힘든 삶을 거부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복음은 우리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못해도 사랑을 행하도록 해줍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마음이 우리를 향한 애정과 사랑으로 충만하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순간 예수님의 사랑은 오로지 의지의 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눅 22:42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고 하실 만큼 힘드셨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눅 23:34절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래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네 번째, 복음은 모든 것을 바르게 정리하실 신뢰할 만한 심판관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되갚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와 세상을 돌보시는 하나님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평하게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갚으실 것을 알기에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길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시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심판하시는지 보여 줍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선한 일을 하다가 환난을 겪었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확신을 가지고 말합니다. 벧전 2:23절"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 복음은 우리에게 공의를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집행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주님이심을 상기시킵니다.
4. 대단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9절'선에 속하라"는 의미는 참 사랑은 하나님이 원하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결코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방법으로 즉 악으로 악을 다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벌거벗겨졌고 즉 부끄러움을 당하셨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 사랑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사신 대로 살고, 그분이 사랑한 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가는 그 순간에도 무릎을 꿇고 행 8:59절에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성경“ 주석가들은 스데반의 이 거룩한 죽음을 보고 감동하여 강폭자 사울이 바울이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주님의 사랑만이 원수 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힘을 주십니다. 원수를 이기는 방법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내손으로 복수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친절하십시오. 주님처럼 용서하십시오.. 긍휼히 여기십시오. 인내하십시오.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십시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 원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승리의 길, 선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