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love 2024. 9. 15. 14:57

본문: 13:1-14

명제: 복음은 국가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맺게 한다. (선언적 명제)

3. 제목: 그리스도인의 시민권

 

1. 갈등: 그리스도인의 시민권

먼저 여 야의 정치적인 논쟁에 대한 지지 여부에 관한 글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13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속한 국가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우리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논의의 초점을 옮깁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비추어 롬 13:1"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바울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시민권의 의미에 대해서 말합니다. 바울은 통치자나 더욱이 그리스도인 통치자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그리스도인 통치자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교회와 국가의 관계라는 문제에 대해 특별한 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몇 가지 흥미로운 추론을 해볼 수 있습니다. 존 스토트는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해 네가지 대표 모델을 제시합니다. 에라스투스주의: 국가가 교회를 다스립니다. 신정 정치: 교회가 국가를 다스립니다. 콘스탄티누스주의: 국가가 교회에 특권을 주고, 교회는 이 특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어느 정도 국가에 순응합니다. 협력: 교회와 국가가 각기 하나님께 받은 고유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러한 역할을 완수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협력합니다. 존 스토트는 "네 번째 모델, 곧 협력이 바울이 로마서 13장에서 가르치는 것과 가장 잘 들어맞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13장은 그리스도인들이 국가의 국민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논의의 초점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국가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부정적으로 볼 것이며, 또한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과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무엇이고. 그리스도인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2. 갈등 심화: 그리스도인과 국가

1절에서 바울은 명료하게 모든 그리스도인은 정부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가 말하는 세 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국가는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1"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무릇 정부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므로 국민의 존경과 복종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것은 이 땅의 통치자들 또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의해 세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니엘서 417절은 하나님이 모든 인간 정권을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국가에 주신 역할을 인정하고 5"양심을 따라" 복종해야 합니다. 둘째, 복종하는 것이 현명한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 사회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계획하셨다고 말합니다. 3-4"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사람들이 서로 책임 있는 삶을 살며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하려면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회는 처벌이라는 위협이 없다면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따라서 국가는 지혜로운 체제입니다. 4절은 정부가 실제로 하는 일을 보여 줍니다.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했으니” “은 국가가 각종 제재 즉 벌금, 구속, 사형 등을 통해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권력을 상징합니다. 만약 모든 국민들이 칼을 지닌다면 세상이 얼마나 무질서해지겠습니까? 무정부 상태였던 시대와 지역이 있긴 하지만 누구도 그런 상태에서 살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소수의 사람이 칼을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모두 칼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요컨대 정부가 일할 수 있도록 우리는 복종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복종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의 질서는 쉽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복종하는 것이 공평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다스리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넌지시 말하는 듯합니다. 6-7"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그리스도인은 조세 납부를 성실히 함으로써 국가에 협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통치자들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역할인 통치를 하고 우리는 우리의 역할인 복종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까? 얼핏 보면 바울이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말할 때 그의 요구는 더욱 단호해집니다. 2" 권세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바울이 비기독교 국가인 로마 제국에 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진술의 강도는 한층 더 커집니다. 바울이 염두에 두고 있는 "권세들“"권세들 “은 교회에 대해 잘해야 비우호적이고, 최악의 경우 적대적이었던 권력이었습니다. 세속화되고 있는 지금의 교회들은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했던 적개심을 이제 겨우 어느 정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구 교회는 이미 복음을 전하면 고발당하거나 동성애 반대를 설교하면 핍박을 받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실 21세기에도 이슬람 지역이나 중국 북한 등 공산주의권에서는 교회들은 매일 그것을 경험합니다. 이제 한국에도 서구 교회처럼 차별 금지법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형태의 '국가'에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도 벧전 2:17절에서 이 말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벧전 2:17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기본 입장은 복종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권세가 절대적이지는 않다고 말씀합니다. 22:21 "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셨던 예수님은 그 시대의 일반적인 국가관인 '왕이나 황제는 신들 가운데 하나이거나 그 지역의 신과 너무나 밀접해서 국가에 신적인 권위가 있다' 개념에 도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허락하셨지만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것은 반대하셨습니다. 곧 무조건적인 복종에는 반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의식 깊은 곳에 뿌리내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국가 권력을 심판할 수 있는 더 높은 권세를 섬긴다는 사실이 발각되면서 로마 제국은 그리스도인들을 극심하게 박해하였습니다. 같은 이유로 역사의 거의 모든 시기에 걸쳐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을 겪어 왔습니다. 17세기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이 '왕권신수설' 즉 왕의 통치권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므로 왕권을 제한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정치 이론을 주장하자 개신교 목사였던 사무엘 루터포드는 그것에 반대해서 법이 왕이다라는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곧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왕이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이 왕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암시는 로마서 133-4절에 나옵니다. 3"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4절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통치자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바울은 표기하고 있습니다. 통치자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은 그가 하나님의 도덕적 명령에 따라 일해야 함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종에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라이언 킹에서 왕의 아들인 어린 사자 심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되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 그의 아버지 무파사 왕은 "왕이 된다는 것은 그것보다 더 큰 일이란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처럼 왕이 정말 지지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도덕적 명령에 어긋나는 옳지 않은 행동을 결코 요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이러한 암시들이 명시적으로 나옵니다. 사도행전 529절에서 베드로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에 대해 전하지 말라고 하자 다음과 같은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베드로와 동료 사도들은 복음 전파를 금지하는 산헤드린 즉 유대인의 최고 법정의 명령에 불복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시민 불복종의 근거를 명확히 제시해 줍니다. 곧 국가가 하나님이 금하신 것 즉 우상을 섬기도록 명하거나 혹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 즉 전도 금지, 동성애 반대 등, 금지를 금한다면 국민으로서 불복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국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예리하고 독특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부당한 정권에 복종하고 지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21:9절에서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 조국 유대인들에게 잔인한 이교도 바빌론에 항복하라고 외쳤던 사람이 바로 예레미야 선지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하고 어리석은 정부라 하더라도 그 권위를 약화하거나 경멸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통치자가 하나님께 불순종할 것을 요구할 때 용감하게 저항하며 불복종한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잘 알려진 예로는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바빌론이 이교도의 나라였지만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그곳에서 행정관으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 즉 우상숭배 하라고 명령받았을 때,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못하게 했을 때, 이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국가에 불복종하고 처벌을 받았습니다. 일제 시대 주기철 목사님과 많은 주의 종들이 우상인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써 부당한 권세에 불복종함으로써 순교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바로의 영아 살해 명령에 불복종한 유대인 산파들도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정권에 저항해서 유대인들을 숨겨 주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 전환: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책임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국가에 대해 어떤 책임을 인식하고 살아야 하는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 1, 5절에서 우리는 국가에 복종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6-7절에서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항목인 세금이 포함됩니다. 3:20 절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를 마치 선거도, 세금 납부도, 공무원이 되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잘못 추론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두 번째, 5절에서 양심에 따라 복종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반드시 국가를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5절에서 처벌받는 것이 두려워 복종할 수도 있습니다. 단 두려워서 복종한다면 자기 이익을 위해 복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처벌당할 위험이 없다면 복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국가에 복종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국가에 필요 이상으로 복종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명령을 받은 것뿐이야"라며 부도덕한 행위도 서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사태 때에 정부의 예배 금지에 많은 교회와 믿음이 약한 신자들이 정부의 처벌이 무서워서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예배 참석을 소홀히 한 결과 어느 통계에 의하며 만 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바울의 근본적인 원칙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양심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 때문에 국가에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길이 교차하기 때문에 확고한 원칙이 요구됩니다. 한편으로 우리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국가에 복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동기는 국가를 세우신 하나님께 복종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국가가 명령하는 것을 아무런 비판 없이 절대적으로 복종하지는 못합니다. 국가가 우리의 양심에 어긋나는 것을 요구한다면 불복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주석가인 레온모리스(Leon Morris)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양심은 국가에 복종하라는 외부의 명령을 따르게 하는 강력한 지원군이다. 하지만 일단 양심이 관여하게 되면 양심에 어긋나는 것은 할 수 없다는 경계선이 정해진다. 양심은 우리로 하여금 복종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 복종에 한계를 짓도록 합니다.세 번째, 7절에서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자세로 복종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국가에 협력해야 할 뿐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과 예의를 갖추고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가족과 교회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부모나 사역자들, 그리고 통치자들에게 예의를 갖추어야 합니다. 비록 존경할 만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

 

4. 대단원: 국가의 의무는 무엇인가?

이제부터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의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와 그 기능들에 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직무 해설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국가의 소극적인 기능은 범죄를 처벌하는 것입니다. 4"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했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보응하는 자니라" 국가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죄를 처벌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동의할 것입니다. 사회의 평화와 조화를 깨뜨리는 살인, 절도, 다양한 형태의 기만과 사기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는 처벌의 성격을 두고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릅니다. 전쟁 반대론자, 사형 반대론자 등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은 사형과 전쟁에서의 살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처벌할 수 있는 권력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바울 이전에 ''을 죽음의 의미로 사용했고, 그 시대에는 그와 같이 관용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바울이 말한 바를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국가의 적극적인 기능은 4" 베푸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선을 이루기 위해 국가가 어떻게 기능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주 석가들은 범죄를 처벌함으로써 국가가 선을 증진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말뜻은 다음과 같다고 말합니다. "국가는 처벌을 통해 범죄를 억제함으로써 당신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당신에게 봉사한다." 이러한 해석은 국가의 기능이 치안 유지와 국방에 제한되어야 한다는 관점과도 일치합니다. 또 다른 뜻은 국민 사이에 봉사를 격려하고 장려하기 위해 국가가 선한 행동과 관계들을 북돋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게다가 어떤 사람들은 국가가 개인의 선만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선을 장려해야 한다고 바울이 말한 것으로 믿습니다. 이것은 다양한 수단을 통해 사람들의 전반적인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신체의 복지를 향상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관점에 따른다면 국가의 영역은 확장됩니다. ''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울이 정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폭넓게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가는 선한 행동과 선을 장려하고 보상하면서 동시에 나쁜 행동과 악은 억제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3장은 극히 제한된 정부나 매우 강력한 정부, 혹은 자유 지상주의나 전체주의의 [양극단을 모두 배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