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지혜를 구하라
1. 본문: 롬 12:16
2. 명제: 참된 지혜는 겸손에 있다.
3. 제목: 참된 지혜를 구하라
1. 갈등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서로 마음을 같이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교회 안에서 참된 조화를 이루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혜자인 바울 사도는 피차 마음을 같이하는데 방해가 되는 두 가지 길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거만과 놓은 지성을 가진 체하는 것이 교회 안의 조화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입니다.
2. 갈등 심화
이 뜻은 너희 자신이 매우 중요하다고 과장하지 말라. 너희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바로 이 사도의 권면을 지키지 못함으로 얼마나 큰 손해를 입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모든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교만의 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요한 사도는 죄의 세 가지 특징을 소개하면서 요일 2: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생의 자랑은 어리석은 자기자랑입니다. 이것은 고집스럽고 항상 인생을 허영 되게 만듭니다. 그러나 교만은 이보다 훨씬 더 교활합니다. 무엇보다 이 죄는 마귀가 지은 죄입니다. 원래 마귀는 타락하기 전 천사 장이었습니다. 천사가 이 교만에 빠져서 자기의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보다 더 높게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을 품었고 결국 천사가 타락하여 마귀가 되고 말았습니다. 교만하면 천사도 마귀가 됩니다. 이 교만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지은 첫 번째 죄입니다. 교만한 마귀는 여자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모든 것을 아는 신들이 될 수 있다는 망상을 주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첫 번째 죄요. 근원적 타락의 원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이 죄는 계속해서 모든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로 존재해왔습니다. 더 나아가 이 죄는 모든 죄 가운데 가장 심각한 죄입니다. 왜냐하면 이 죄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가장 큰 은사를 남용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것들 중 이성, 총명, 생각, 평가력 등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큰 선물을 은혜 받은 선물로 감사하지 못하고 자기 것으로 남용하는 것이 인간의 큰 죄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 차이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요? 지식은 정보 어떤 사물에 대한 것을 아는 것 어떤 사물을 발견하는 것 어떤 사물들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배워서 알 수 있습니다. 큰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혜는 부족한 사람이 많습니다. 둘 사이의 관계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는 지식을 사용하고 적용하는 능력과 수완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큰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지식을 활용하는 수완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가장 문제는 지식은 많지만 지혜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지혜는 선하고 가치 있는 목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추진해 나가는 능력과 수완입니다. 오늘 날 세상의 문제는 단순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우월하게 대우하는 점입니다. 알면 알수록 더 지혜로 워야 하는데 더 악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인류의 고통거리입니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지식을 뽐낼 수 있거나 자기의 지혜를 자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많은 지식은 없지만 지혜롭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정말 지혜로 울 수 있고 칭찬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거만과 자만에 빠지게 됩니다.
3. 전환
어째서 사도는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고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자랑할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위대한 학자는 겸비하다는 것을 항상 발견할 것입니다, “설 아는 것이야 말로 위험천만한 일이다” 설 아는 것이 머리를 쳐들고 모든 것을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람이 알면 알수록 자기는 모르는 것을 더 인식하게 됩니다. 학자가 위대해지만 위대할수록 그 사람은 거의 필연적으로 더 겸손해집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 8:1-2“고전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고전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에서 이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십시오. 우리의 지식은 얼마나 적습니까? 마치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합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우리가 아는 것은 부분적일 뿐입니다. 세상은 미쳐있습니다. 지식을 뽐내는 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지식은 그 지식에 대하여 자랑하지 않을 동안만 놀라운 것입니다. 지혜에 있어서도 똑같습니다. 인생에서 많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이 자주 어리석은 자처럼 행동합니다. 구약성경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의 마지막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자신을 어리석게 만들었습니까? 솔로문은 잠언을 기록했고 전도서도 기록했습니다. 그는 지혜자로 유명한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적인 생활에서는 얼마나 지혜롭지 못하였는지요. 여러분이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고 싶은 순간 여러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이 저지른 실수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을 겸비하게 할 것이고 제 정신을 차리게 만들 것입니다. 롬 1:22“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모든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을 보십시오. 오늘날 보다 더 미쳤던 세상이 어디 있었습니까? 지금 세상은 총명과 지식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하고 있는 일을 보십시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의 결말을 보십시오. 결국 비극으로 끝나버립니다. 지혜의 실패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지혜를 떠벌리고 싶은 생각이 들거든 여러분이 참되지 못한 짓을 하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또한 여러분의 지식과 지혜는 여러분이 산출한 것이 아니니 뽐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무엇이든 금방 배우는 지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지성을 여러분이 산출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태어날 때 그 이지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시작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면 그 체계들도 멀리까지 진행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지혜도 여러분이 산출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랑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결국 그것이 여러분에게 큰 폐를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후 8장에서 바울은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부풀게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부풀어집니까? 가스 바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것이 아니고 견고한 것도 아닙니다.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덕을 세우지만 지식은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대단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허풍선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풍선처럼 되고 교만으로 부풀어 있을 때 매우 불행하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비극입니다. 교만하게 되면 고전 13장에서 사랑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뽐내고 있으면 그 사람은 사랑과 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오래 참고”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오래 참지 못하고 온유하지 못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지만” 그러나 교만은 항상 시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그러나 교만은 거만하게 만들고 자랑하게 만들고 자기를 과대하게 높이며 실상보다 크게 보이게 하고 결국 거짓말을 만듭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면” 사랑은 부풀어 오르거나 거만하게 들뜨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무례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그러나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은 항상 자기 유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칭찬과 갈채 받기를 좋아합니다.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그러나 거짓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쉽게 성을 냅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든지 떨어지지 어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시고 폐하리라“ 사랑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러나 지혜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참으로 지혜를 갖고 있지 않음을 입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속고 있고 자신에게 큰 해를 끼치게 만듭니다. 교만한 사람들과 함께 살기는 항상 어렵습니다. 그들은 악하게 행동하고 그 때문에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 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고전 10:12”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갈 6:3”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는 자는 자신들을 속이는 자입니다. 약 3:1-2”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많이 선생 되지 말라. 왜요? 스스로 한 표준을 세우고 있다는 좋은 이유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마 7:1-2”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7: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자신을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고 한 표준을 세워놓고 다른 사람을 정죄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적용했던 바로 그 표준에 따라서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서 가장 냉혹한 심판을 불러오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혜롭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대 앞에서 자신들이 세웠던 그 표준들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기만하면서 자신들을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주님과 정반대로 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2:20”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성육신 하신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노라“ 요 12:49-50”요 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요 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주님께서도 전적으로 아버지께 의존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도 스스로 그 어느 것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뽐내시기는커녕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겸손하고 온유하심과 겸비하심을 보게 됩니다. 주님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영구한 처방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힘을 동원하여 교만의 죄를 피해야 합니다.
4. 대단원
어떻게 이 위험을 대처할 수 있습니까? 자신이 무식한 사람이요 전적으로 지혜가 모자란다는 인상을 누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자신의 진상을 숨기고 아닌척하는 사람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척하는 것은 언제나 가증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는 마 6: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것 저지른 실수와 허물을 생각하십시오. 주 예수님을 따라 가보십시오. 모든 면에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빌 2: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하라고 말합니다. 구원의 사실이 확실하니 두렵고 떨림으로 있으라는 것이고 만유의 주께서 보시는 가운데 있음을 알고 있으니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고 있으면 그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힐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대 속에 존재하는 악을 알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도의 이 말도 들으십시오. 고전 2: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바울 사도의 능력, 천재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도 두렵고 떨림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자기 확신에 빠지거나 자기 신뢰감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 안에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에 따라 행하였습니다. 고전 2: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이것들을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되는 점들입니다. 이것들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 전체를 통제해야 합니다. 약 3:13”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자기 지혜를 자랑하지 않도록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길은 거짓된 지혜와 참된 지혜의 차이를 배우 것입니다. 그런 다음 거짓된 것을 물리치고 참된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어떤 것입니까? 먼저 근원이 어딘지를 생각하십시오. 참된 지혜는 위로부터 곧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거짓된 지혜는 인간적인 지혜요 세상적인 지혜입니다. 거짓 지혜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요.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정욕 적이라고 말합니다. 본성이 동물적 부분에 속합니다. 육체적 또는 혼적인 것이요 영적이지 못합니다. 야고보는 거짓 지혜는 마귀 적이라고 말합니다. 악한 영들에 속한 것들입니다. 악한 영은 매우 영리합니다. 마귀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거짓 지혜는 항상 뛰어나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은 교만 시기하는 것 독한 마음 싸움에서 드러납니다. 특별히 해서는 안 될 말을 하는 혀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세상 지혜 거짓 된 지혜를 조심하십시오. 반면 참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이 지혜는 순결합니다. 섞인 것이나 음란한 것이나 거짓된 것이나 사이비적인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 다음은 화평 서러운 것입니다. 참된 지혜는 온유함으로 겸손함으로 이어집니다.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은 화평의 사람입니다. 그들은 온유하고 기만하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또 양순한 사람입니다. 관용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이들과 함께 있기가 쉽고 대하기가 쉽습니다. 이들은 편협함이 없습니다. 이들은 선입관에 빠지지 않습니다. 이들은 영적인 사람이며 늘 마음이 열려있습니다. 외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꾸미지 않습니다. 참된 지혜를 가진 사람은 항상 겸손합니다. 자제합니다. 그들은 사랑스럽고 화평을 만듭니다. 야고보는 이런 참된 지혜를 얻는 방법에 대해 말합니다. 약 1:5-6”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존 번연은 ”자세를 낮추고 앉아 있는 자는 넘어질 것을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겸손한 자는 복이 있나니. 주님께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실천해 옮길 수 있도록 구하십시오. 우리가 스스로 거만하다면 결코 이웃과 마음을 같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총명을 주시고 성령 충만을 주시어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