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자(수정문)
1. 본문: 요일 2:18-19
2. 명제: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배교할 것이다.
3. 제목: 남은 자들
요한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영적 전쟁에 진입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것을 통해서 영적 전쟁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하 기 위하여 이것을 기록했습니다. 20세기 초에만 해도 서구 교회는 주일에 교회에 가는 일이 당연한 관례로 여겼습니다. 교회는 인기가 있었고 신뢰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이 매우 예외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오늘 날 한국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물질적 풍요와 또는 물량주의적인 교회 풍토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인하여 서구 교회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다고 야단들입니다. 이들을 기러기 신자라고 조롱합니다. 교회와 교인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얼마 안 되는 소수의 무리가 옳은 것인가? 아니면 대다수의 대중이 옳은 것인가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시기는 언제나 교회가 공격받을 때입니다. 사람들은 다수를 따르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많으면 자신들의 믿음이 진짜로 흔들리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아주 심한 낙담과 비관주의가 만연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런 상태에 있는 교인들에게 이 서신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떤 이들은 교인의 숫자와 통계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쇠약해진 교회를 막기 위해 무언가를 조직해야 한다면서 여러 가지 활동으로 치닫게 됩니다, 과연 사도는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 배교할 것입니다. 마지막 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 번째 원리는 그와 같은 상황을 만날 때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는 18절에서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리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첫 번째로 강조해야 될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언제나 강해져야 하며 전 세계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해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만큼 신약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 관과 거리가 먼 것은 없으며 이보다 잘못된 것은 없다고 봅니다. 신약 성경을 읽어 보십시오. 사도들은 “첫 번째로 믿은 교인들에게 여러분은 영적 싸움을 하게 될 것이며 우리를 거슬러 싸우고자 하는 간교하고 힘센 대적이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덤벼들 것입니다”라고 경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눅 18:8절에서 “인자가 오실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해서 볼 때 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흥왕하고 증가되어야 하는 어떤 조직으로 만들려는 생각이야 말로 성경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교회 상태야말로 성경 말씀이 참으로 확실하게 가르쳐 주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놀라거나 당황하고나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순되게 들리지 모르나 오늘날 교회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실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상황을 접하게 될 때 우리가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대신 현 상황을 직면하면서 ”인간의 분노가 주님을 찬양할 것이며 지금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주님의 말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원리는 우리는 오늘 날과 같은 시대에 교회가 가장 관심을 두어야 할 부분은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요한은 ”아이들이 지금은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 인줄 아노라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니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지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라는 18-19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의 관심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의 숫자가 얼마냐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났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교리의 순수성에 있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 삼위일체를 부인합니다. 그래서 이 서신을 읽으면서 요한 사도가 가진 관심은 참된 교리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숫자나 조직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숫자를 중시하는 풍조가 이 시대에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이 숫자나 조직에 맞추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자연스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사실과 숫자와 통계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건물로서 사람의 모임으로서 교회와 초교파적 조직으로서의 교회를 생각하려는 경향이 다분히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교회를 생각하도록 교육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전체 생각이 기계적 통계에 지배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신약 성경의 분위기와는 다릅니다. 사도 요한이 강조하는 것도 교회의 순수성에 있지 교회의 크기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들이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지하에 들어가 일생을 마쳤던 초대교회 시절 카타콤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처음 교회가 집안에 있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는 많은 사람이 모이건 소수의 사람이 모이건 같은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지 숫자나 조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실제로 조직적으로 연합된 세력들이 교회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줄어들고 있는 교인 숫자의 통계도 듣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한 가지로 우리가 함께 뭉치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다 우리와 한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 같이 모여 우리를 거스르는 공동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 하나의 단체를 만들자“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말에 동의를 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말에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를 부인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어떠하든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고 있든지 간에 우리의 관심은 한 가지 교리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소수의 무리가 예수 그리스도인지 아닌지에 대한 확신도 없으며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잘못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는 다수 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문제는 남아 있는 자들이 옳은가 아닌 간에 관한 것일 뿐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리의 순수성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참된 연합이나 일치는 진리라는 전제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진리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 연합하고 합병하고 뭉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벗어나면 성령을 통한 일치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인정하며 그분이 성육신하셨다는 사실과 구속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심과 부활하심과 성령의 인격 등을 믿는 자들만을 함께 묶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리들을 떠나서 참된 연합이란 있을 수 없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은 남은 자의 교리를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난국에 맞서 홀로 버티고 있는 한 사람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고 계심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얼마나 고의적으로 숫자를 감소시키시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기드온 300명 용사에 대한 이야기를 보십시오, 소수의 사람이 남을 때까지 많은 사람을 축출해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야 말로 자신의 교리가 순수하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힘 있는 적군들을 물리쳐 주실 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교리입니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 뒤에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능력이 적들보다 훨씬 강함으로 대적을 물리칠 수 있는 분이 우리 뒤에 버티고 계시며 또한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존 귀히 여기는 자들은 존 귀히 여기십니다. 순수한 교리를 시인하고 고백하는 자들만을 인정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도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났기에 심약한 디모데는 낙심하고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 거짓 선생을 따라가며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는 자들의 말을 믿는 것을 보고 바울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딤후 2:19”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누구인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믿음과 교리의 순수성이라는 말입니다.
세 번째 원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검증입니다. 사도는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라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하냐? 라는 것입니다.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든지 교회에 속한 자들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났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라는 말씀에서 적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 있었던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는 ”그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임이 되었다고 말했지만 우리에게서 나갔다는 말은 그들이 비록 우리 안에 거하기는 했어도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점검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지금은 사람들을 도닥거리면서 교회로 불러들여야 할 때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신약 성경은 그런 식으로 교인들을 불러들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씀은 교회 안에 거하면서도 교회에 속한 자들이 아닐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다니던 모든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특별한 목적으로 교회에 나감으로 얻어지는 유익을 위해 다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참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도 한 때 교회 안에 있었던 자들이었지만 모두 엉터리였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점검해 볼 의무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라고 말함으로써 이 진단법을 제시합니다. 그렇다면 여기 ”우리에게 속하였다“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교회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교회에 이름만 걸어놓고 그저 왔다 갔다 하는 정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어느 날 하루 또는 특별한 주일 정도 충성되게 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력 있게 교회와 유기적으로 묶여 있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같이 되려고 몸부림치지 않아도 저절로 그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유기적 생명에 의해 결속되어 있어 그 결과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참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끼기 힘든 느낌으로 교회가 자기의 집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우리에게 속한“자들입니다.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가 무슨 잘못된 일이 생기면 언제나 후다닥 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에 의하면 지금과 같은 시대야말로 교회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시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점검해 볼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교회에 가지 않은 여러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야 말로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측정할 수 있는 때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마 3:12”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지금은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되는 때입니다. 어설프게 붙어 있는 자들은 떨어져 나가고 의심스런 교리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도 떠남으로써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하나님의 교회를 순수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이런 테스트는 발견됩니다. 대 부흥의 시대를 보면서 발견하는 놀라운 사실은 치리라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경건의 일기를 보면 그가 교회 안에서 치리를 얼마나 강하게 주장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모일 때쯤 그는 교회를 점검했습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 그들의 신앙을 테스트했습니다. 이 점검을 끝냈을 때 우리 교회 알곡 교인은 300명 미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에 등을 돌리는 이런 현상은 사실상 하나님의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 정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은 우리와 함께 거하지 못했지만 우리가 여전히 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답은 한 가지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떨어져 나갔지만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있습니다. 잘못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도 참된 신자들은 남아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견고하게 지속해서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 10: 28“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이런 사람들은 시험을 당해도 하나님으로부터 속하여 있기 때문에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배도며 타락의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타락하는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밖에 있다는 사실로 인해 애통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나무나 약하고 무력하다는 사실에 애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리와 숫자에 너무 욕심의 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관심은 우리 삶에서의 순수성과 아울러 교회가 갖고 있는 교리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배교와 타락의 때임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의 무리에 들어가게 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최후의 날과 모든 백성과 함께 다시 오실 주님 재림의 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비록 소수의 사람이지만 그 때에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가 우리에게 속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들이라면 앞으로 올 영광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