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할 이유
1. 본문: 엡 4:20-24
2. 명제: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은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3. 제목: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할 이유
1. 갈등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전에 살아왔던 방식으로 삶을 살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그들에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일은 우리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죄 된 생활을 떠나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모든 일의 목적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전 6:19절“너희가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 인줄 알지 못하였느냐?”고 말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가르침은 우리로 옛 사람을 벗고 이전의 삶의 방식과 이전의 삶의 자세를 떨쳐버리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옛 사람을 벗어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옛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은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다시 산자가 되었습니다. 과거 미국의 불쌍한 노예들과 같은 모습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법이 공포되어 노예 제도는 폐지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노예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노예처럼 옛 삶을 살곤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노예에서 벗어남을 잘 인식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옛 사람에 속한 것들을 행할 때 그러한 노예와 같습니다. 고통을 잘 참치 못하는 어른에게 “너는 더 이상 어린아이 같이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 네 어릴 때의 성향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너는 어른이다. 그러니 어린아이같이 하는 일을 떠나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옛 사람은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가버렸다. 그러므로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 받은 백성들처럼 살아라. 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은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2. 갈등심화
옛 사람이 행해 나가는 방향 때문입니다. 사도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사람의 성질과 옛 사람의 성격을 벗어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에게 속한 모든 것은 다 범죄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도가 옛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옛사람의 성질과 습관입니다. 첫째로 옛 사람의 방향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사도는 “썩어져 가는”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 모두는 원죄로 말미암아 부패한 본성을 물러 받았습니다. 시 51:5절“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전수 받은 본성은 부패하고 더렵혀진 것입니다. 인생 전체가 이 점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작은 어린아이도 그 점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부패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사도는 본성이 부패해졌기 때문에 우리 인생들이 지닌 상태는 더욱 악하다고 말합니다. “썩어짐” 은 썩어져 가는 의미입니다. 그 상태는 처음의 상태보다 갈수록 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의미는 곧 “멸망으로 가는 경향성”입니다. 썩어짐 부패 오염 문드러짐 등은 모두 함께 갑니다. 그러므로 썩어져 가는 것은 해체와 멸망의 방향을 향해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가 여기서 옛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옛 삶은 더욱더 부패하고 오염되어 멸망의 길을 치달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사도의 말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생태학 역사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역사나 생태계는 썩어짐과 와해의 과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결국은 마지막 멸망의 길을 향해서 치달아 가고 있습니다. 갈 6:7-8절“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언제나 썩어짐을 거두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멸망으로 끝나고 부패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령을 위하여 심은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말합니다. 약 1:15절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에서 출발하여 그 과정은 죄를 낳습니다. 마지막은 멸망으로 끝을 맺습니다. 썩어짐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마지막 멸망으로 끝을 맺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을 얼마나 웅변적으로 진술합니까? 도덕적 영역은 어떠합니까? 도덕적 부패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형상들입니다. 세상은 개선되지 않습니다. 점점 그 부패의 강도는 높아집니다. 역사를 보면 개선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 부흥입니다. 신앙 부흥이 일어난 후 그 결과로 사회가 개선되었습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즉 성령의 감화 없이는 세상은 본질상 썩어가고 있기 때문에 갈수록 악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 세상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넘어가면 사람마다 조소주의적인 냉담과 무감각과 싸워야만 합니다. 젊은 이상론이 노년에까지 가져가는 것은 극소수의 사람뿐입니다. 그것은 무엇에 기인합니까? 이 썩어짐 이 부패 이 문드러짐의 과정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는 꿈과 희망을 잃어버립니다. 그는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도덕적 기상을 잃어버리고 무가치함에 대한 저항력을 상실하고 맙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고 안일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패의 일부입니다. 옛 사람은 썩어져 가고 있습니다. 멸망의 방향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3. 전환
두 번째는 이 옛 사람으로 하여금 충동하고 강권하며 멸망으로 가게 하는 영향력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욕심으로 부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쫓는“ 이 욕심은 강하거나 넘치는 압도적인 소원을 의미합니다. 선하든 악하든 결렬한 바람을 의미합니다. 욕심은 악한 소원의 동의어입니다. 사도는 우리 안에 있는 욕심들이 썩어져 가고 있으며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이러한 욕심들이 우리를 몰아서 부패와 멸망으로 치닫게 합니다. ”옛 사람 그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결과로 썩어져 가는 사람이다.“ 물론 자연적인 본능 그 자체가 악이 아닙니다. 굶주림, 성욕, 자기 방어, 등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닙니다. 이것들을 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이 본능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생명을 누리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몸에 있는 본능들은 마음의 통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두뇌와 생각하는 이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그 두뇌와 마음이 이러한 본능들을 통제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지(이성)만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양심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성보다 더 높은 것으로 이성에 지시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양심은 하나님 자신에 의해 통제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동물들이 가진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는 하등의 문제가 없습니다. 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만일 성이 악하다면 하나님께서 악을 주셨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 생각은 잘못입니다. 동시에 모든 본능들은 바른 위치에 있으며 이성과 이해의 통제를 받고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과 성령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에 빠진 인간의 비극이 여기에서 생겼습니다. 그 순서가 뒤집어 졌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그 순간부터 인간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본능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본능들이 주도권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들이 욕심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본능들이 주도권을 잡으면 욕심이 되는 것입니다. 통제를 받아야 할 것들이 전체 삶을 장악하고 지배합니다. 바로 그것이 혼돈입니다. 바로 욕심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욕이나 본능이 이성을 침묵케 하고 양심과 하나님의 소리를 묵살해 버립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 사람의 상태는 혼돈과 혼란의 상태로 야기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무절제의 정“이라고 부릅니다. 원래 정은 하등 악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들이 무절제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정이 무절제하면 사람은 하나님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부인합니다. 불신자들의 삶이 그러합니다. 그들은 욕심의 지배를 받고 욕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인간적인 타락한 본성을 부인하라 너희는 너희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세상의 고통 거리는 욕심이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혼 관계 가족 관계 사회 계층관의 관계 국제 관계 모든 것들에 고통을 주는 것이 바로 욕심 때문임을 말씀합니다. 악한 소원이 통제를 합니다. 이성과 총명은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생각에 없습니다. 갈등으로 가득 하고 있는 것은 욕심이 폭군 노릇을 한 까닭입니다. 죄가 인간을 완전히 전복 시켜 놓은 셈입니다. 말하자면 죄는 인간을 짐승보다 더 악하게 만든 것입니다. 인간은 원래 선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본능의 지배를 받을 때 짐승보다 더 악합니다. 세 번째로 사람을 욕심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유혹’이라고 말합니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 유혹은 욕심을 교묘하게 통제합니다. 욕심은 사람을 교묘하게 다룹니다. 옛 사람은 그래서 멸망으로 치달아 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가장 큰 특징은 유혹 즉 속임수 거짓말입니다. 모든 고통의 배경에는 이 유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귀는 유혹 즉 거짓말의 아비입니다. 요 8:44절”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음으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노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마귀는 유혹 즉 속임수 또는 거짓말을 통하여 인간을 파멸시켰습니다. 세상을 패하게 하였습니다. 교활과 유혹으로 그런 일을 행하였습니다. 성경이 마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창 3:1절”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어 마귀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어겨도 죽지 아니한다. 고 거짓말로 인간 조상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바울은 고후 11:3절”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염려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고린도 교회에서 같은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 마귀는 이단을 통하여 속임수와 유혹으로 찾아와서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였습니다. 벧 후에서도 2;19절”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이단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율법을 첨가시켰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할례를 행하여야 한다고 속였습니다. 이것은 참 복음이 아닙니다. 이것이 마귀의 특징입니다. 주님은 마귀를 ”그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라“ ”거짓의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고통 거리는 세상이 마귀의 속임을 받으며 유린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특징을 잠언에서는 이방인의 음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음녀는 화장을 짙게 하고 유혹을 하며 그럴듯하게 꾸미고 나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와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강퍅하게 되면 거기에는 죄의 유혹 때문입니다. 롬 7:11절 ”죄가 기회를 따라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느니라.” 죄는 무서운 유혹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선하고 거룩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주어진 것은 죄에서 빠져 나오게 하기 위함인데 도리어 그 율법이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율법이 죄를 행하고 싶은 소원을 그 안에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도덕적 교훈에만 의존하는 것은 비 성경적입니다. 도덕적 교훈에만 의존하는 것은 죄인의 심리를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죄는 우리 속에 죄를 짓도록 유혹합니다.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것은 그러한 일을 하라고 자극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렘 17:9절”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사람은 이 점을 스스로 모릅니다. 자신에 대하여 부단히 속고 있습니다. 그것이 죄의 특징입니다. 죄는 사람 자신이 스스로에게 속게 합니다. 그래서 롬 7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율법을 지키려고 애쓸 때 그것은 내 안에서 정욕을 건드리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내 안에 어떤 본능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래서 율법 자체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무엇이 나를 도울 수 있습니까? 답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죄는 교활 뿐만 아니라 언제나 미소를 짓고 친절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죄는 우리의 자존심을 들먹입니다. 죄는 언제나 생각을 약화시킵니다. 죄는 언제나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의 감정에 호소합니다. 생각을 한다면 죄는 사라집니다. 생각하지 못하고 혈기를 부린다는 것은 혈기와 감정이 여러분을 통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죄가 이기는 것입니다. 바른 생각을 하십시오. 죄는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습관의 위험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술 한두 잔 먹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어 한잔 마시고 두잔 마시고 세잔 마시다거 마침내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습관이 마침내 중독자로 만듭니다. 습관을 깬다는 것은 아주 힘듭니다. 결국 자신의 멸망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스도인이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4. 대단원
끝으로 죄는 죄가 줄 수 없는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죄란 어리석고 그릇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만족을 주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욕심을 통하여 일하는 죄는 아무것도 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빼앗아 갈 뿐입니다. 탕자를 보십시오. 그는 아버지 품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재산을 억지로 상속 받아 아버지 품을 떠났습니다. 세상에서 멋지게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돈이 호주머니에 생기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 그는 날마다 흥청망청 즐기며 놀았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친구들도 다 떠났습니다. 성경은 ”주는 자가 없더라.“ 아무도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돼지 치는 신세가 되어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죄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그는 이제 빈 털털이가 되었습니다. 죄는 우리의 정신 도덕성 우리의 행동 육체마저 다 가져 갑니다. 결국 아무 쓸모가 없는 쓰레기로 만듭니다. 죄는 우리의 개성 정절 정직 도덕성 성품 균형감각 감성 등 모든 것을 다 가져갑니다. 그래서 사도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죄를 전염병처럼 피하십시오. 할 수반 있으면 멀리하십시오. 성경의 교훈은 이러합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어리석은 것인지를 알기를 바랍니다. 죄는 언제나 속임수로 다가옵니다. 옛 사람의 유혹의 욕심 때문에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으며 썩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 고 명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