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성령을 구하라
본문: 행 1:4-5, 행 2: 1-4
명제: 성령의 충만으로 만 육신(육체의 소욕)과 세상과 마귀의 시험을 이겨 예수님 증인의 삶을 살 수 있다.
제목: 약속의 성령을 구하라
1. 갈등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오호 곤곤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 이 탄식은 불신자의 탄식이 아닙니다. 이 탄식은 위대한 바울 사도의 절규입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의 탄식입니다. 우리는 잘 믿어 보려고 마음은 원하는데 실제로는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알지만 우리는 이길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도 여전히 우리 속에는 부패한 본성인 즉 육신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육신이란 성령의 감화로부터 떨어져 있는 타락한 인간 본성을 의미합니다. 영어로 sinfulnature 입니다. 세상과 마귀는 우리의 육신을 통하여 우리를 실세 없이 공격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탄식하던 바울의 결론이 이러합니다. 육신에서 이기게 하는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음을 알고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성령만이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신앙생활의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성령의 충만을 회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성령의 충만을 회복할 수 할 수 있을까? 먼저 나는 성령의 사람인가를 확인하십시오. 롬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 인생은 육신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육신을 “죄와 사망의 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육신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 짓게 만들어 죽게 합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때 우리 속에 육신 외에 또 다른 법이 들어오셨는데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바로 성령님을 말씀합니다. 이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리는 기능을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도인이란 생명의 성령의 법인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을 영접할 때 성령님이 내안에 오십니다. 확신하십시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심을 확신하십시오. 성 어거스틴은 “우리가 구원 받기 이전에는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자였으나 구원 받은 후에는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자가 되었다.” 라고 했습니다. 왜요?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성령이 내 생각을 다스리도록 하십시오. 롬8:5-8“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성령을 좇아 살면 즉 성령의 통제를 받으면 육신을 이기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육신을 따라 갈 것인가 성령을 따라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내 생각입니다. 생각을 마음이라고 혼 또는 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내 생각이 육신을 좇아 생각하면 하나님과 원수 노릇을 하며 결국 그 인생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 성령의 일을 생각하면 생명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나를 두고 싸웁니다. 그러나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소욕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습니다. 따라서 내 생각을 성령님께 의지하면 성령님은 내 생각을 사로잡아 육신의 소욕을 이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2. 갈등심화
어떻게 성령 충만을 회복할 수 할 수 있을까? 세 번째는 약속의 성령을 구하십시오. 이 약속하신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을 능력으로 무장해서 이기게 하며예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 이 약속의 성령을 성령 충만 또는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성령세례라고 부릅니다. 이 성령은 누구에게 주는 것입니까? 믿는 자에게? 이미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십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오래 동안 성령의 내주하심만 알았지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의 성령 즉 성령의 기름 부어 주심과 같은 능력의 성령에 대해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내안에 계시는데 또 다른 성령님을 구하느냐하면서 냉소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소극적으로 성령님을 대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주옵소서! 성령을 환영 합니다. 이곳에 충만하게 임하옵소서! 성령님 더 주옵소서라는 표현들을 못했습니다. 183장의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찬송가 184장의 “불길 같은 성신여 간구하는 우리게 지금 강림하셔서 영광 보여 주소서 성신이요 임하사 내 영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고서” 185장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이미 내 안에 계시는데 무슨 또 다른 성령을 달라고 그러느냐라는 오해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 소극적인 신앙인과 교회는 이상하게 침체 되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점점 율법적으로 변화 되어 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약속대로 성령님을 강하게 구하고 충만을 사모하는 교회와 신앙을 인간 한계를 뛰어 넘는 불같은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영적 은사가 나타나고 복음을 강력하게 증거 합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환영하고 인정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3. 전환
초대 교회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단한 믿음과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싶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와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에 그들은 겁을 먹고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 같은 제자는 예수님을 모른다. 저주하며 부인까지 했습니다. 그들도 여전히 연약한 육신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어도 여전히 나약한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언제 권능의 사람들로 변화 되었습니까? 오순절 성령 충만을 덧입고 성령의 기름 부어 심을 받은 후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오셨어 제자들에게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행1:4-5“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기다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권능을 받아 내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행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약속대로 12제자들과 다른 교인들 도합 120명 정도가 간절히 기도하며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하며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행1:14-15“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들은 이미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을 믿은 신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이미 내주하고 계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예수를 나의 주로라고 고백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이 나의 구주와 주님을 고백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내안에 계시기 때문에 고백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 모양으로 아직 약속하신 성령 충만을 경험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많은 신자들이 여전히 자신의 육신을 이기지 못하고 육신에 끌려 다니는 무기력한 신앙생활 패배하는 신앙생활을 여전히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령 충만을 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이것을 아시고 구하는 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주시는 능력의 성령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초대 교인들은 간절히 그 성령을 받기를 구했습니다. 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믿음으로 간절히 구해야합니다. 구하기 위해 뜨겁게 기도해야합니다. 그러자 약속대로 능력의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행2:1-4“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이 성령의 충만을 덧입자 제자들은 변화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권능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육신에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영에 끌려 다니는 사람 성령이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자신의 육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예수 증인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실 때에 비로소 제자들은 육신을 이기고 권능의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증거 하는 강력한 증인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 부흥 역사를 보아도 동일한 현상이 반복 됩니다. 바로 오순절 성령의 충만의 영향력이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반복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 영국의 웨일즈 부흥, 미국의 건초 더미의 부흥 등, 성령의 역사가 임할 때에 죽었던 심령들이 살아나고 어둡던 심령이 밟아지며 침체되었던 교회가 다시 힘을 얻고 완고한 심령들이 통회 자복하며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기적의 역사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결과 가정이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 되었습니다. 국가가 변화되었습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 원동을 통해서 한국 교회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민족의 개화와 독립운동에도 크게 기여를 한 것입니다. 독립 선언서 33중 인 절반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 시대 기독교 교세는 전체 인구 중 1% 미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미국의 부흥의 역사의 결과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백 수년전에 선교사로 조선 땅에 건너와서 오늘날 복음의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부흥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부흥의 불길을 사모하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방치하는 곳에는 역사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환영하며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간절히 구하는 곳에 강력하게 임하시는 것입니다. 신앙이 침체되어 있는 개인과 교회를 보십시오. 성령님을 사모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육신을 쫓아 삽니다. 다 인간 생각 자기 생각을 주장합니다. 시들은 영혼이 됩니다. 그곳은 인간적인 냄새가 진동합니다.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도 못이기도 세상에 끌려 살면 마귀의 유혹에 쉽게 자빠집니다. 성령의 권능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의 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100전 100패입니다.
4. 대단원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능력의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눅11:10-13“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 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너희 천부께 구하는 자에게! 여기 구하는 자는 이미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악한 도둑놈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나를 사랑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아버지가 구하는 자식에게 좋은 것 즉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반문 하는 것입니다. 왜 이 성령을 더 받아야 합니까? 성령님은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 할 때 우선순위 1번은 성령을 충만히 주옵소서여야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을 두고 쓰레기를 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서입니다. 성령이 다스리는 이기는 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을 주옵소서입니다. 내가 성령 충만해야 나를 이기는 것입니다. 나를 이기야 가정을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자녀를 올바르게 지도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성령 충만해야 부부가 건강해집니다. 내가 성령 충만해야 직장 생활이 성공해집니다. 내가 성령 충만해야 교회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 충만해야 세상에서도 승리 할 수가 있습니다. 어려운 모든 인생의 문제도 성령으로 이끌림을 받아야 풀어집니다. 이 성령은 구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러나 지나치게 이성적이고 이기적이고 너무 부정적인 심령은 성령의 은혜가 임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시인하는 가난한 심령 겸손한 심령 무엇보다도 간절히 구하는 심령위에 이 성령은 임하시는 것입니다. 다 같이 이 은혜를 구하십시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나는 부족합니다. 무능력합니다. 많이 실패했습니다. 주의 영의 도움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주여! 약속하신 성령으로 충만케 하옵소서! 성령 충만을 주옵소서! 성령으로 기름 부어 주옵소서! 한번만이 아니라 날마다 어떤 기도보다도 이 기도를 먼저 하셔야합니다. 간절히 부르짖어 보십시오. 사모하십시오.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내 개인과 교회와 이 민족위에 성령의 불을 다신 한번 부어 달라고 간절히 구하십시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이 시간 간절히 성령 충만을 초대 교인들처럼 구하십시다. 그러면 나의 육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겨서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