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한 계시(수정본)
1. 본문: 히 1:1-3.
2. 명제: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온전하고 완벽한 계시의 말씀을 주셨다.
3. 제목: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한 계시
기독교 신앙은 사람의 생각과 사유를 통해 얻는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나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을 믿는 계시 종교라는 점이 모든 세상 종교와 다른 특별한 점입니다. 천주교와 우리 기독교와의 차이점도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만을 믿습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성경 외에 교회의 전통과 교황의 말을 성경과 동일시하며 오히려 성경 보다 더 높이 앞세웁니다. 천주교는 예수님 중심 교회라기보다는 마리아 중심 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것을 잘 설명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죄인이 꿈에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한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가보니 예수님이 분노의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너무 무서워서 더 이상 올라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마리아가 따뜻한 미소로 자신을 환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천주교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간단하지만 중요한 예 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너무 거룩 하시여 인간과 거리감이 있으니까? 그분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기도하면 예수님이 그 기도에 더 잘 응답해 주신다고 생각하고 마리아에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어찌 죄인의 중보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마리아는 죄가 없다. 라는 교리를 17세기에 만들었다가 1950년대에는 마리아가 예수님처럼 부활 승천했다는 해괴한 교리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인간 마리아 우상 숭배의 변천사를 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시 방법에 대한 무지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자신의 생각과 뜻을 보여 주시는 유일한 계시의 방편입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 사도가 우리들을 향해 하고 싶은 요지가 바로 “아들을 통한 계시의 탁월성”입니다. 이 아들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온전하고 완벽한 계시의 말씀을 주셨다고 오늘 본문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한 계시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1. 아들 안에서 완벽하게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아들 안에서 완벽하게 말씀하셨다고“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 시대의 조상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구약에는 선지자들의 글과 사역을 담은 선지 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선지자들을 분석해 보면 그들을 통하여 주어진 계시가 부분적이라는 점이 이 계시의 가장 두드려진 특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계시 중에서 어느 부분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씩 주어지곤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계시의 특정한 측면이 주어지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앞서 주어진 것에 대해 보충적이고 추가적인 계시가 주어지곤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계시들 사이에는 놀라운 통일성이 있습니다. 마침내 한 완벽한 선지자 완전하고도 영원한 선지자가 오셨습니다. 구약은 그 선지자가 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이제 그가 오셨습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완전한 분 곧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이 계시는 완전하고 완벽하며 온전합니다. 구약과 선지자들은 비록 훌륭한 인물이기는 했지만 약하고 죄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기에 죄가 없으시고 흠이 없는 완벽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형상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원한 광채이십니다. 요 14:9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완전한 말씀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세상 완전한 교사 완벽한 선지자가 오신 것입니다. 또한 그분은 완전하고도 완벽한 제사장이십니다. 바울 사도는 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구약 시대에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제사 제도와 의식과 예식들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그 직분에 따라 다양한 단계로 임명 되었으며 성막과 제단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완전하지는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완전한 제사장직과 예전의 불완전한 레위와 아론 계통의 제사장직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기에만 하나님께 온전한 예물을 드릴 완전한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는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드리는 제물도 완벽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 히브리서에서 이러한 대조를 상세하게 기술합니다. 황소와 염소가 흘린 피는 결코 그 어떤 것도 온전하게 할 수가 없었으며 단지 의식적인 방법으로 죄를 덮기만 했을 뿐입니다. 그러하기에 인간은 자신의 죄를 사함 받기위해 완전한 제물을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완전한 제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는 있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양으로서 아무런 죄가 없는 몸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인이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죄의 삯을 치룰 수 없네 오직 그분만이 하늘 문을 여시고 우리를 그리로 인도하시네.“ 더 이상 황소와 염소와 어린양의 제물이 필요하지 않으면 암소를 태운 재도 이제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제물로 바쳐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왕으로서도 완벽합니다. 본문은 그 사실을 이렇게 말합니다.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세상은 위대한 왕을 고대하고 기대합니다. 인류 역사의 오랜 기간 동안 왕들과 지배자들 권력자들의 군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인간의 전적인 충성과 복종을 받기에 합당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신 이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홀로 하나님의 생명책의 봉인을 떼고 펼칠 수 있으며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원한 영광의 광채이시며 아버지의 형상이신 그는 왕 중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온전한 헌신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성당에 가보면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을 품에 품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주장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이 부족하여 인간 어머니 마리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은 완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선지자 완전한 제사장 완전한 제물이시며 또한 완전한 왕이십니다. 완전한 중보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한 계시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2. 최종적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통해 완벽하게 말씀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바울 서신의 위대한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최종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심장을 십자가에 쏟아 부어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마지막 계시입니다. 그것은 완백하며 또한 최종적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천주교 교황이 인간인 주제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자칭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황의 말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동일하게 믿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주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마지막이요 최종적인 말씀입니다. 더 이상 다른 인간을 통하여 새로운 구원의 말씀을 하지지 않습니다. 교황을 통하여, 통일교 문선명을 통하여, 구원파 유 병언을 통하여, 어떤 다른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은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흉내 내는 인간은 다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예수 믿는 천국 백성은 이것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인 이 성경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해야 할 의무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무엇을 말씀하셨는가요? 여기에 신약 복음의 위대한 주제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입니다. 예수님의 인간을 향한 첫 번째 말씀은 언제나 하나님 자신에 관한 것이며 인간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해 주고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를 기다려 왔습니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의 위대성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 자신의 병적인 자기지향성 때문입니다. 인간에 대한 관심에 몰두하는 중에 하나님을 망각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생각에 몰두하다가 예수님 보다 인간 마리아를 더 숭배하는 어리석음에 천주교는 빠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에 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을 살펴보면 우리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창조주이자 율법의 수여자로 칭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참으로 올바르게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은 오직 아들 안에서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하나님을 향해 “거룩하신 아버지여” 라고 하신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또한 주기도문에서도 그분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알기 시작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볼 때 입니다. 그분의 흠 없으심과 온전하심을 볼 때 그분의 죄에 대한 증오와 악에 대한 혐오를 볼 때 그리고 그분의 온전했던 삶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계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이며 특히 십자가 위에서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우리가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분만이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온전하고도 권위 있게 말씀하십니다. 시편에서도 역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시 103:13“아비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의미를 진정으로 알기 시작하는 것은 오직 아들이신 예수님 안에서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크신 긍휼하심을 봅니다. 그분은 고통 받는 자를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분은 동정심과 긍휼과 친절을 베 푸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12:20“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리라”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것을 봅니다. 그 사랑의 최고 절정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너무 거룩하셔서 그분께 가까이 하기는 어려우니 사랑이 많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기도 부탁하는 것이 좋다는 천주교의 주장은 주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모독하는 짓들입니다. 인간의 전통으로 진리를 거역한 바리새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죄와 구원을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최종적으로 죄의 끔찍한 특성을 우리에게 계시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의 성격과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 우리는 죄의 끔찍함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왜 이 세상에 오셨는가? 성육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죄의 문제를 다루기에 적합한 이는 오직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를 다루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면 하나님은 엄히 명하시는 것으로 그치셨을 것입니다. 또한 선지자들이나 제사장들과 레위 인들의 제사 의식들이 죄를 다루기에 적정하였다면 결코 아들이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영원한 아들이 하늘의 궁정을 떠나셨을까요? 왜 그분이 베들레헴에서 아기로 태어나셨을까요? 왜 그분이 죄 있는 육체를 취했을까요? 왜 그분은 죄인들의 반대를 33년 동안 참으셨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죄의 문제가 너무나 끔찍하고도 깊기 때문에 달리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인 인간은 결코 구원자가 될 수 없기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 안에서 우리에게 구원의 성질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구원의 길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사도가 강조한 대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 사도가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입니다. 다른 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굳게 붙들라.”라고 말씀합니다. 천주교 교황이 다른 세상 종교에도 양심적인 사람은 구원 받을 수가 있다. 라는 보편 구원론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구원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 구원의 길을 무시하는 이단 중의 이단 사상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인간의 귀를 즐겁게 하려다 진리를 거역하는 망 말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 얻을 길이 없다고 성경이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인 이 성경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까? 죄인인 인간 교황의 말을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한 계시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3.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세상의 가장 큰 비극은 인류를 위협하는 전쟁의 비극보다 더 큰 비극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사랑을 말씀하셨음을 인류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곧 여러분의 생명줄이 끊어지고 우리의 창조주이자 심판자 앞에 우리는 서게 될 것입니다. 그분 앞에 설 때 예수님이 여러분의 구원자로 서있습니까? 아니면 심판주로 서있습니까? 그분은 지금 여러분에게 구원의 마지막 손을 내 밉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라. 예수님의 크시고 완전하신 이 마지막 사랑의 음성을 겸손히 들으시고 그 손길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평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생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