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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궁극적 견인

wordlove 2020. 11. 9. 13:34

1, 본문 : 73:23-24

2. 명제: 성도가 승리하는 근거는 성도의 견인 진리 때문이다.

3. 제목: 성도의 견인

 

1. 갈등

우리는 아삽이의 간증을 통해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2: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그러하기에 모든 영혼의 구원에 대한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구원하시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죄 용서함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또한 제어하는 은혜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삽이를 뒤에서 붙잡으시고 계심을 주목하십시오. 그의 발이 거의 넘어질 뻔하였는데도 어떻게 미끄러지지 않았습니까? 바로 하나님이 그를 붙잡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제어하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회복시키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아삽으로 하여금 돌이켜 성소로 이끄셨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그로 하여금 왜 하나님의 성소에 가지 않느냐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삶을 이끄시어 성소로 나아가게 하시고 결국 그를 회복시키십니다. 이것을 지나 시간에 살펴보았습니다. 아삽이는 과거를 바라보면서 놀라워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전히 주 앞에 있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죄악 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아삽이는 내가 여기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고는 아삽이는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의 미래는 어떠할까요? 그의 대답은 미래에도 여전히 같을 것이다. 나는 항상 주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73:23-24”73:23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73:24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아삽이 처럼 과거에 대하여 바르게 깨달은 사람은 미래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삽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붙잡인바 되었다, 내가 제멋대로 계속 나아갈 때에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나는 하나님 앞에 있었으며 이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연이나 우발적인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이 일을 하신 것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진리라면 하나님께서 장래에도 역시 그와 같은 일을 계속 하실 것입니다.

 

2. 갈등심화

이것을 성도의 궁극적 견인 교리라고 부릅니다. 성도의 견인이란 뜻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은 성도는 은혜의 상태에서 떨어질 수 없다 즉 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지탱 시켜 주며 기쁨과 위로를 주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통해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은 그 믿음을 지켜 나간 것입니다. 혹톡한 천주교의 탄압 속에서도 목숨까지도 포기 하며서 믿음을 지탱 시켜 준 것이 바로 이 진리입니다. 히틀러 앞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독일 성도들도 이 진리를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도 지하에서 이 믿음으로 버티고 있는 성도들이 지금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아삽이는 주님 앞으로 돌아와서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라고 말합니다. 후에는아삽이가 말하는 것은 주께서 지금 일하고 계시니 장래에도 계속적으로 일하실 것입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낙망하여 뒤로 물러간 사람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것입니까? 왜 낙심 자는 항상 돌아오며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이것을 설명하는 위대한 교리가 바로 성도의 견인 교리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 하는 진리입니다. 10:28-29”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주님이 말씀하신 이 진리는 바로 성도의 견인 진리를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 전반에 걸쳐 이 위대한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물론 히 6장에서는 잠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고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지만 진리에서 멀어지는 사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낙심 자가 아닙니다. 외관상으로 보면 그리스도인처럼 보였지만 이들은 심령으로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였습니다. 불신자와 낙심 자는 다릅니다. 불신자가 반드시 돌아온다는 진리가 성도의 견인 진리는 아닙니다. 성도의 견인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와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거듭난 천국 백성에게만 해당됩니다, 바울 사도도 성도의 견인 진리를 이렇게 증거 합니다. 8:38-39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여기 우리는 모든 세상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어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을 일걸 습니다.

 

3. 전환

먼저 이 성도의 견인 진리는 불변하는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1:17“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하나님의 정하신 뜻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 뜻은 불변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을 하나님이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시작만 하시고 나중에 일을 포기하는 사람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따라 살아갑니다. 나의 유익이 없다고 판단하면 마음을 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중도에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결코 부인하지 않으며 일관성이 없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는 그 어떤 모순도 없습니다. 바로 그런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위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정직하게 읽어 가면 분명이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은 자기의 영원한 영혼을 영광중에 즉 천국에서 보내게 될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서 지내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 사이의 분리와 심판의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것은 불변하는 목적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져야하는 목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은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있는 세력에 의해서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를 가리켜 이 세상 신또는 사탄, 마귀라고 부릅니다. 이 악령은 이생과 저 생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비상한 능력과 교활함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세력을 통해서 이 세상을 다스립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유혹해서 죄 짓는 마음, 사고방식, 성향들을 다스립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이 모든 유혹들을 이길 수 있을까요? 성경을 보면 위대한 믿음의 사람도 마귀의 시험에 빠져 헤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백성임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내가 붙잡혀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지키고 있기 때문임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내 오른 손을 붙드셨나이다.그것만이 유일한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한이 없고 무한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세 가지를 기도했습니다. 1:18-19“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 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 즉 장차 받을 유산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크심이 어떠한 것을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특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 능력이 어떠한지를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너희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방 세계에 살고 있다. 너희들은 어려운 이 세상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너희 속에 역사하시는 능력이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죽은 자들 가운데 다시 살리실 때에 베 푸셨던 바로 그 능력이라는 것입니. 그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천국 백성을 위해 그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위해 바울 사도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3:20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의 능력입니다. 아삽이는 73:24“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그는 과거로부터 미루어 짐작하여 미래를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그처럼 자기에게 은혜롭게 대하였던 하나님이 결코 자기를 버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도 아주 논리적으로 5: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여러분은 이 논리를 반박할 수 있습니까? 만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시어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 희생 하셨고 그리고 예수 믿는 자의 구원자가 되기 위하여 능력으로 부활하여 우리를 구원하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확실한 것이 아닙니까? 우리를 위해서 그러한 일을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다면 하나님은 자신을 부인하고 계십니다. 바울 사도는 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에서 그것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침 밷음과 거룩하신 손과 발에 망치로 못 박히는 아픔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마지막 한 방울의 피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를 위하여 그러한 일을 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구원 받았습니다. 56장이 바로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면 여러분이 견인 되는 일을 결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절대적으로 그분의 지체가 되었으며 그분에게 연합된 것입니다. 칭 의의 교리가 그것을 증거 합니다. 10:17“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예수님이 내 죄를 짊어지셨기에 그분의 공로를 의지하는 나는 내 죄 때문에 심판받지 아니한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믿은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바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해당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거듭남의 교리도 역시 같은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되로 지음 받았지만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즉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입니다.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고 그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사람이 오늘 거듭났다가 내일 거듭나지 않는 상태로 돌아 갈 수는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는 여러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그래서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면 결단코 끊어질 수 가 없는 것입니다.

 

4. 대단원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보전하십니까? 아삽이는 주의 교훈으로 인도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주께서 인도하시고 주장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제어하십니다. 우리 속에서 일하십니다. 2:12-13“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이것이 자기 백성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지탱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벗어나게 하는 방식입니다. 경건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이 성경 안에, 성령 안에,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모든 것을 사용하여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붙잡으시고 안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십니다. 12: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탱시키고 인도하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그 궁극적인 영화로 가게 하시는 과정에 그러한 질병과 아픔까지도 사용하시기도 하십니다. 이 모든 과정이 무엇으로 이어집니까? 아삽이는 영광으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그분의 지탱함을 받는다면 우리는 여기 이 세상에서부터 영광에 대한 어떤 경지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구원의 열매들 영광과 생명의 열매들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은사와 성령의 열매 그것은 모두 그 영광의 한 부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속에 이러한 것들을 산출하신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영화롭게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세상과 다르게 만 드십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만 드십니다.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닮도록 만 드십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것은 진리입니다. 물론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영광에 온전히 이르러 하늘에 예비 된 모든 것을 다 누리게 되는 것은 죽은 이후의 일입니다. 4: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그와 함께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 지요. 얼마나 쉽게 불평하며 이 세상의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들만을 붙잡는데 혈안이 되어 사는 지요.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죄 사함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완전하고 영원한 영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지탱해 주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러한 목적과 결말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사도 요한은 요일 3: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여러분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두려움 없이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화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리가 이것을 확신한다면 확신할수록 나의 거룩함과 정결함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로써 나 자신을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시간은 짧습니다. 끝이 오고 있습니다. 그 면류관을 쓸 영광의 날을 위해 더욱 더 부지런히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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