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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의 기도(수정본)

wordlove 2020. 11. 18. 08:02

1. 본문 시 90:10-12

2. 명제: 자신이 이 땅에서 살날이 얼마인지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의 기도이다.

3. 제목: 지혜로운 자의 기도

 

1. 갈등, 나의 살날이 얼마나 됩니까?

보통 우리들의 기도는 주로 자신의 현실의 문제 즉 건강, 가정의 평안, 어려운 여러 갈등의 해결 등을 구하는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자신이 이 땅에서 자신의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가 만약 홍 집사님을 위해 기도를 하는데 주님! 홍 집사님의 이 땅에서의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게 해 주소라고 기도했다면 혹시 홍 집사님이 나를 빨리 죽으라는 뜻인가 오해하고 섭섭해하실 런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이 땅에서의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하나님께 물어보는 기도를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2. 갈등 심화, 지혜로운 마음을 얻도록

모세는 이 기도의 목적이 지혜로운 마음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망각하려고 합니다.. 옛날 로마의 어떤 어리석은 황제는 절대 자기 앞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 고 했다. 고합니다. 재수 없다고 생각했겠지요. 어떤 분의 부모님이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진단을 해보니 현대 의학으로 고치기 어려운 중병이라고 진단이 나왔다고 합시다.. 가족들이 병명을 부모님께 숨기고 쉬쉬하는 것이 대부분 불신자들이 취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태도가 지혜로운 자세일까요? 성경에 한 부자가 나옵니다. 그의 모든 관심은 온통 재물 모으기에만 바빴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인생의 종말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자신의 영혼에 대해 무관심했고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했습니다. 어느 날 아무도 예상치 못한 가운데 그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 사람을 데리고 가버렸습니다. 성경은 그 부자를 어리석은 부자라고 평가했습니다. 왜냐하면 잠깐 있다가 없어질 물질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진작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아예 죽기가 무서워서 죽지 않은 불로장생 약을 가져오라고 신하들에게 욱 박 질렀다. 고합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찾은 불로 장생 약이라고 주는 약을 먹고 50살도 못살고 죽었다. 고합니다. 그 약이 무엇인 줄 압니까? 그 약은 사실 오늘날 수은 성분이든 약이었습니다. 그 당시 잘못된 의학 지식으로 수은을 먹으면 장수한다고 알려졌다. 고합니다. 진시황제는 불로장수하고 싶었지만 결국 수은 중독으로 50도 못 살고 단명을 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80-90되 신 어르신네들에게 교회 나오시라니까 바쁘다는 여러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분들이 자신들의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어찌 저렇게 자기 영혼에 대해 무관심할까? 자신들은 아마 죽지 않을 것이라고 여전히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자신들의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는 무지한 체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제가 설교자라서 참으로 답답한 사실은 아무리 설교를 해도 믿음이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나를 가슴 아프게 합니다. 자신이 이 땅에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아는 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정직한 태도를 가지자는 것입니다. 곧 맞이할 분명한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직시하며 대면하며 준비하는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오늘이 나의 종말 즉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오늘 주님이 부르시더라도 부끄럽지 않게 갈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 객관적으로 아는 것은 겸손한 사람의 자세입니다. 겸손함 마음에서 지혜의 마음이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3. 전환, 우리의 연수가 신속이 가니 바람 같이 날아가나이다.

자신의 살날이 얼마인지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인생에 대한 새로운 여러 지혜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10절에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 모세는 인생은 70-80년 정도 사는 것이 보편적인 수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 수명은 8282세 정도요 여성은 8686세 정도요 남자는 78세 정도라고 말합니다. 최근의 보도를 보니까 앞으로 과학의 발전으로 유전 조작을 통하여 120년까지도 살 수 있다.. 고들 합니다. 그러나 사실 50밖에 못 산 사람이나 120세를 산사람이나 알고 보면 영원한 세월에 비추어 본면50보 백보입니다. 4주의 목전에서 천년이 밤의 한 순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 젊다고 늦게 가는 것이 아니고 노인이라고 일찍 가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누구나 이 땅을 떠날 날을 반드시 곧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아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또 모세는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장수하시는 분을 보면 참 복 받았다.라고. 덕담을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말입니다. 속을 들어다 보면 병 때문에 고생하신 분, 자식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슬픔, 자식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 등 온갖 인생의 고통만 더했지 오래 산다는 것 자체가 별로 자랑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만큼 추한 욕도 많이 겪는 것이 우리 인생의 현실입니다. 과거의 통계입니다마는 전국에서 인구별 노인들이 제일 많이 사는 마을이 전북 임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노인들이 많다 보니 화장품 장사 미용실 아동복 등등은 장사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인들이 가게들이 문을 닫고 지역을 떠나 지역 경제가 황폐화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이 현실은 앞으로 몇십 년 후의 우리나라의 전체 모습을 미리 보여 주는 한 단면이라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습니다. 오래 산다는 것이 꼭 행복한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수고와 슬픔만 더할 뿐인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또 모세는 인생이라는 것이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세월은 화살과 같이 빠르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안개와 같다. 아침에 핀 꽃과 같이 자라다가 저녁에 시들어 마르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도 66세입니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노인 석에 앉아도 눈치가 보이지 않습니다. 병원에 가면 간호사 선생님들이 어르신이라고 부를 때 묘한 기분이 듭니다. 내가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세월이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 것 같은데 머리는 허연 서리가 내렸습니다. 주위 어르신네들에게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합니다. 인생이 나무 빠르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부자나 가난한 자에게나 평등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더하거나 빼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내 인생을 바로 알면 너무 허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인생무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이 허무하여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허무한 인생을 잊어 보려고 온갖 쾌락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 보면 허무한 인생은 산처럼 내 앞에 우뚝 서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런 인생을 두고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요? 기도하는 모세는 또한 인생에 대한 매우 심각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7절에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빛에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 어 느날 갑자기 죽음이 우리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죄의 결과로 생긴 것입니다.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내가 주인 되어 사는 것을 성경은 죄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리고 죄의 삵은 사망입니다. 죄 때문에 죽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짧은 인생을 잠깐 살다가 나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우리 모두는 나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 가서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심판받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땅의 나의 삶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나의 인생의 회계 보고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준비해야 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재능을 주어 이 땅에 나의 뜻을 이루면 살도록 보냈는데 너는 어떻게 삶았는지를 보고하라고 주님이 묻으신다면 각자의 입으로 보고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물음에 답을 준비하고 계십니까? 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무시하고 살아온 나의 지난날의 모든 삶에 대해 하나님이 묻으신다면 나는 다만 유구 무언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절망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의 절망을 깨뜨리시고 조용히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바로 절망 가운데 헤 메고 있는 우리 인생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내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 앞에 내 죄 대신 심판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나 죄 가운데 살고 있는 모든 죄인들을 구원할 구원의 길을 예수님을 통해 즉 그분이 지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다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인생들을 초청하십니다. 다 네게 오느라 내가 너희들을 쉬게 하리라 ““ 너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나를 의지하면 너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겠다. 네게 오느라 주님이 우리 인생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나를 의지하지 아니하는 자는 자기 죄 문제를 자기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며 죄인 된 자기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생명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사명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하나님을 닮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결코 선택을 강요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나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또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만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설 때 그 예수님을 나의 심판자로 만날 것입니다. 중립은 없습니다. 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시라”” 누구나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설 때 여러분의 죄를 변호해 주실 변호사가 있습니까? 예수 믿는 우리에게는 대언 자 즉 변호사 예수님이 나를 대신 변호해주십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것은 복중에 복인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 인생의 모든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게 주신 구원의 선물입니다. 하나님! 이 땅에서 나의 살날이 얼마나 남았습니까?라고? 기도하든 모세는 그 기도를 통해서 자기 인생을 정직하게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짧으며 안개와 같으며 인생의 허무함을 깨달았고 또한 하나님을 떠난 죄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절망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절망 가운데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구원의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절망은 사라지고 소망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주님이 부르시더라도 기꺼이 아멘! 하며 갈 준비를 하며 살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면서 남은 삶을 열심히 살았습니다. 주님! 내 살날이 얼마인지 알게 하소라는 기도를 진지하게 드리는 사람은 마치 영혼은 없는 것처럼 인생을 한 번밖에 없는 것처럼 사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살 수 없습니다. 정말 모세는 120세가 될 때까지 영육이 건강하다가 주님이 부르시자 기쁨으로 갔습니다. 이 땅에서 내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비관적이며 염세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가장 긍정적이고 소망에 넘치며 하나님 앞에 준비하면서 사는 믿음의 사람의 지혜로운 기도입니다.

 

4. 대단원,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마침내 모세는 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이 기도는 오늘 예수님께 소망을 두는 우리들의 기도여야 합니다. 모세는 13절에서 주의 종들을 긍휼이 여기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주의 긍휼이 늘 필요한 인생들입니다. 좋으신 주님께 구하면 가뭄의 단비처럼 적절한 은혜를 내려 주실 것입니다. 15절에서 모세는 곤고를 받은 날만큼 화를 당한 년 수만큼 기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곤고 와 슬픔과 눈물의 날이 많았습니다. 아무도 나를 진정 도우며 위로해 줄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나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소망의 주님이 계십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이 죽게 되었는데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는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예언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는 심히 통곡하며 벽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결사적으로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내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다.라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생명을 15년을 더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화를 기쁨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주님께 구하십시다. 또한 16절에서 모세는 주의 행사와 영광을 주의 종들과 자손들에게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도 주님! 주의 손길 주의 영광 주의 기적이 나와 우리 자녀들 위에 우리 가정 위에 우리 교회 위에 이 민족 위에 내리 워 주소서 라 고 기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17절에서 모세는 주의 은총을 임하게 하사 우리들의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애쓴들 주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헛수고가 될 뿐인 것입니다. 주님 내 인생을 견고케 해주십시오.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도우시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헛것이며 주님이 집을 세우시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됨을 우리는 잘 압니다. 주님이 내 인생, 우리 가정, 우리 사업 터, 직장, 이 민족을 견고케 하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이 축복이 얼마나 귀합니까? 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입니까? 하나님! 내 남은 날이 얼마인지 알게 해 주소서라는 모세의 기도는 모세를 지혜로운 인생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모세처럼 하나님 이 땅에서 내 살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게 하소서 라고 진지하게 기도한다면 분명히 우리도 모세처럼 지혜로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