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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삶(수정본)

wordlove 2020. 11. 19. 08:27

1. 본문: 고전 15:57

2. 명제: 승리의 삶은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의지할 때 가능합니다.

3. 승리의 삶

 

1. 우리의 본성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충만함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믿는 자로서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라면 그분 안에 거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거룩하고 의롭게 재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얻은 거룩과 의로움에 의하여 산다면 우리의 삶은 날마다 은혜가 넘쳐 날 것입니다. 우리는 롬 7장에서 율법이라는 삶의 체계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노력에 기초를 둔 삶의 방식이며 우리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려는 삶의 체계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런 식으로 노력하고 애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열쇠는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애쓰지 말고 그냥 믿으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이미 완성하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힘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승리는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의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7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과 율법의 관계를 결혼에 비유했습니다. 한 여자가 결혼해서 사는 동안은 그 남자와 함께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으면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십자가와 부활하심을 통해 아담 안에서 취하셔서 예수님 안에 두셨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 옛 사람은 율법에 대해서는 죽었고 예수님 안에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죽은 것이지 율법이 죽은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는 죽었지만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다시 살아나 예수님과 결혼하게 되어 율법이 말하는 의무에서 해방됩니다. 그 대신 죽은 자를 일으키시는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한다는 것은 은혜와 결혼한다는 것입니다. 은혜와 결혼하는 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분의 소망은 우리가 단지 그분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받고 그분과의 관계 속에 살 때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도록 허락할 때 승리하는 삶은 가능합니다. 율법에 죽은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 대신 종교적인 규칙을 지킴으로 즉 율법적으로 살고자 할 때 어떻게 되는지를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7:14-15“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예수님 안에 거하는 대신 자아를 쫓아 살 때 바울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자신을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율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율법은 선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우리 인간의 본성에 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두 가지 본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믿을 때 들어오신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싶어 합니다. 다른 하나는 죄를 쫓아가기를 원하는 죄의 본성이 그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육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생명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내 힘으로 살고자 하면 즉 율법적으로 살고자 하면 육신의 소욕을 쫓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바울 자신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7:18-20”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바울은 율법을 어길 때 즉 죄를 지을 때 이를 행하는 것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내속에 선한 것이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육신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새로 들어오신 예수님의 생명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길 원하지만 우리 안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힘 즉 육신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소욕을 따르면 이 힘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는 상관없이 행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7:19-23”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 바울은 자신이 죄를 지을 때 그 속에 사악한 원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죄의 힘이 그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에 우리가 실패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과정이 이러합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을 떠나 내 힘으로 살고자 할 때 죄의 힘이 발동되고 그때 사탄이 우리에게 좋지 않은 생각을 심어 주십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을 줍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우리의 것이 아님을 아십니까? 기도를 할 때 가끔씩 마음에 끔찍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저는 오 하나님 용서해 주소서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너무 죄송해요. 예수님 이름으로 명령한다 불의한 생각은 떠나가라 ““ 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생각이 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 주는데 그때 우리는 그 생각을 어떻게 할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 주어 그것에 사로 잡혀 따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의 영역을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생각을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후 10:5”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 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루터는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새는 어쩔 수는 없지만 그 새가 내 머리 위에 집을 짓지 못하게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조절할 수 없앨 수는 없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할지를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나온 생각은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의 생각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지 못할 때 즉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른 생각 즉 사탄이 불의한 생각을 집어넣은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 이름으로 쫓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예수님의 은혜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게 거하지 못하고 내 힘으로 즉 육신의 소욕을 따라 가면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성입니다.

 

2. 누가 우리를 승리하게 하는가?

따라서 승리의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분의 생명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승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7:24에서 “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자문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누가라고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줍니다. 롬 7:25“로마서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 줄까?? 그 누군가가 해답인 것입니다. 정답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이 죄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만이 우리가 승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직장 상사 가운데 사이좋게 지내기가 불가능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여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주님 내 안에는 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 나를 통해서 저 사람을 좀 사랑해 주십시오. 즉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만약에 불의한 생각이 들어오면 바울이 말한 대로 그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십시오.. 나는 앙심을 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예수님의 본성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선언하십시오. 또 나의 감정은 원한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끔 속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감정이 나를 인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하며 나는 믿음대로 살 것을 선택하십시오. 예수님을 통해서 이 사람을 사랑해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십시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인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 사랑을 표현하게 허락하십시오. 그러면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신약에서 말하는 성령은 뉴마 즉, 공기, 호흡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우리는 성령 안에 안식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 우리 대신 호흡하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승리의 삶은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노력으로 사는 것이지 우리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서 스스로 호흡할 수 없는 사람에게 인공호흡기가 대신 쉬도록 도와줍니다. 의식이 깨어 환자가 본인의 입과 코를 막고 있는 호흡기를 보고는 공포에 질려 스스로 호흡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기계가 역반응을 일으켜 경보기가 울리고 간호사가 급히 달려옵니다. 간호사는 긴장을 풀고 숨을 쉬려고 하지 마세요.라고. 진정시킵니다.. 만약 우리의 능력으로 승리를 경험하려고 애를 쓴다면 호흡기를 달고 있는 사람이 자기 스스로 숨을 쉬려고 애쓰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의도한 방식과는 반대로 하는 행동인 것입니다. 지금 당장 그렇게 애쓰는 행동을 그만두고 예수님의 풍성함을 신뢰하기로 작정하시고 그분이 나를 통해 사시도록 허락하십시오. 예수님이 당신을 통해 사시도록 허락하시고 은혜의 삶을 경험하십시오. 승리를 경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율법적인 삶의 형태입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더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호흡하십니다. 저는 이렇게 저렇게 맹세하는 사람의 약속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 약속을 이룰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나오지 않는 인간의 결심은 싶게 무너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승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나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우리는 승리를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규칙을 잘 따르면 스스로에게 영적이라는 느낌만 들고 다른 사람에게도 영적으로 보여 교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종교 행위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만 승리를 가져옵니다. 이것이 은혜의 삶이요. 승리의 삶입니다.

 

3. 선물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로 살기 위해 매일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하며 예배에 잘 나올 것을 배웁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이런 규칙을 잘 지키면 신앙이 성장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영접한 후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성경 읽기,, 기도, 전도, 예배 참석 등 이런 규칙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무리하게 강행될 의무가 아니라 먼저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결과인 것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이런 일들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 안게 거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 안에 거하면 그 후 예수님의 은혜의 힘으로 종교적인 의무도 자연스럽게 지키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속 깊은 곳으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할 때 그분으로부터 생수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승리는 선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의 승리입니다. 고전 15:57 “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승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롬 8:37“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 교인들의 비극은 그분이 이미 주신 것을 자신의 힘만으로 승리를 회득하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주님이시고 구세주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그분 안에 거하기만 하면 그분의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5:16 “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시오 예수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명이요 능력입니다. 우리가 율법적인 삶 곧 육적인 삶을 살 때 우리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성경은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순서를 반대로 합니다. 육체의 소욕을 극복하고 난 후에야 성령 안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육체의 소욕을 극복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형벌로부터 자유케 했고 그분의 생명 즉 성령은 날마다 우리를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우리는 승리하려고 얼마나 싸우다가 지쳐 있습니까? 이제 싸우는 것을 그만두고 은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승리는 투쟁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싸우지도 않았으며 애쓰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승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살 때 즉 성령의 힘을 의지할 때 저절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100층 건물에서 어떤 사람이 떨어졌습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떨어져 죽게 됩니다. 왜요? 밑으로 당기는 중력의 법칙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행글라이더를 타면 나를 수가 있습니다. 왜 날 수 있을까요? 행글라이더를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행글라이더에는 두 가지 법칙이 작용합니다. 당기는 중력의 법칙과 다른 하나는 공기 역학의 법칙입니다. 행글라이더가 중력보다 큰 공기의 저항 즉 공기 역학의 법칙을 받고 있기 때문에 밑으로 추락하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 속에는 두 가지 법이 작동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는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의 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그런데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보다 훨씬 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보다 큰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생명과 성령의 법이 우리를 지탱시켜 줍니다. 성령님은 매 순간마다 예수님 안에 거하기만 하면 우리는 죄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살기로 작정하면 죄와 사망의 법칙이 작동합니다. 우리 안에 죄의 힘 즉 육신의 소욕 때문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매일 아침에 주님 안에 거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이 나의 생명이 되시고 나를 통해 나타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런 기도는 예수님께 온전히 의존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분은 당신에게 그전에 경험하지 못한 승리의 선물을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