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1. 본문: 엡 4:30
2. 명제: 하나님의 자녀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3. 제목: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1. 갈등, 기독교 윤리는 세상 윤리와 다르다.
이 구절에서는 기독교 윤리의 “특이성” “특이성”이라고 묘사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독교 윤리를 다른 도덕적인 체계나 일반 윤리의 체계와 다르게 하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일반 윤리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 진실을 말하라, 너희의 기질이 과격하지 않도록 하라, 악한 말은 하지 말고,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 그리고 친절하라, 선하라고 말합니다. 도움을 주고 박애 정신을 가지고 있어라. 그러나 그들의 체계 속에서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명령이 없습니다. 저는 바로 이 점이 기독교 윤리를 다른 모든 것들과 구별시키고 차이 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가진 기독교적 삶과 그리스도인의 행실과 행동에 대한 개념은 그러한 명령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러한 명령 위에 기초하고 있지 아니하면 그것은 진실로 기독교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덕이 기독교를 대신하는 일이 빈번하다는 것은 삶과 교회 역사에 있어서 비참한 사실입니다. 더 나아가 이 구절에는 성화에 대한 성경적인 교리의 중추 신경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부정적으로 어떤 율법이나 어떤 도덕적 규례나 윤리의 어떤 조항을 지키라고 호소하지 않습니다. 그의 호소는 율법적인 차원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특별한 죄로 인하여 고민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끊임없이 패배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을 넘어뜨리는 바로 그 죄를 다루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성화에 대한 성경적인 방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가 어디 있으며 자기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것은 제가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분을 위하여입니다! 우리의 성화, 우리의 삶, 우리의 행실은 그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행하셨는가를 인식하고, 생각하고 그것에서 유추하여 발생한 것이어야 합니다.
2. 갈등심화,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는 말의 의미
사도가 가르치는 교리는 그릇된 삶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는 짓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너희가 그 안에서 구속된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여기서 배우는 우선적이고 명백한 사실은 신자의 삶 속에 성령이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우리가 구속받은 자들 중에 속하여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인치신 것은 바로 성령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엡 1장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14절“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이 시점에서 우리 마음에 명심하고 있어야 하는 중요한 일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그가 우리 안에 내주 하신다는 점입니다. 성령이 안에 계시지 아니하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롬 8:9절“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 바울은 말합니다. 이는 신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교리입니다. 사도는 고전 3장에서 성령이 몸 된 ”교회 안에 내주하신다“고 상기시켰습니다. 6장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9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시는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여기서 사도는 교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20절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사도가 이 에베소서 4:30을 쓰면서 마음으로 가장 크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는 모든 만물에 의존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도 존재하셨습니다. 그는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사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두 가지 일이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 그것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는 큰 신비입니다. 구원과 구속의 길 때문에 이러한 긍휼의 한 부분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수준에 맞게 몸을 굽히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에서 그 점을 보게 됩니다. 그는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의 무지와 우리의 연약과 우리의 약함을 아십니다. 성령께서 구원과 구속을 위하여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근심하게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구원 안에서 그는 우리가 그를 상심케 하고 근심하게 하고 낙담시키는 것이 가능한 관계를 우리와 맺으신 것입니다. 성령과 우리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구원 교리의 진수입니다. 우리는 율법과 관계를 청산하였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러한 옛 율법적인 차원에서 생각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죄 지을 때 가장 크게 인식하여야 하는 것은 자기가 악한 것을 행하였다는 것이나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다는 것보다는, 자신이 하나님의“사랑”을 반대하여 범죄 하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계는 이제 인격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단순하게 하나의 감화력이나 일종의 능력으로 간주하는 일은 더 이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분이 한 격위 (인격)(인격) 임을 인식하여야 합니다! 한 인격을 상심케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마음 아픔을 느끼실 수 있으십니다. 내 모든 행동은 그에게 알리워지고 내가 그를 근심하게 하고 낙담케 하고 슬프게 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바로 그것이 “근심하게 하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3. 전환, 그러면 실제로 어떻게 함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합니까?
우리가 거룩한 것이 아닌 것을 행하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 곧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육체에 속한 것은 어떤 것이든지 성령을 근심하게 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육체에 속한 것이 어떤 것들인지 갈라디아서 5장에 열거된 목록을 생각하여 봅시다. 19-21절“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육체의 일들,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합니다. 성령은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으십니다. 엡 4:29절"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무가치 말, 불순한 생각, 분노의 생각, 모든 투기 그것들이 다 성령님을 상심케 해드립니다. 또한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가 우리 안에 임재하여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를 영예롭게 못하고, 그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영예롭게 합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그를 근심케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방식은 성령의 각성과 인도와 감동에 대하여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대하여 행하시는 모든 일을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바울은 우리 안에 선하신 뜻을 위하여 행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시라고 말합니다.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끊임없이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엡 5:17절“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바로 그 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를 각성하고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 안에 소원들을 창조하시는 이가 바로 그 성령이십니다. 여러분은 갑자기 말씀을 읽고 싶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성령이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갑자기 여러분으로 하여금 기도하고 묵상하게 자극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일을 떠나서 어떤 다른 일을 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성령의 하시는 일입니다. 그 모든 것은 성령의 위대한 성화의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러한 일에 반응하지 못하고 연기하면서, 나는 지금은 그렇게 할 수없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든지 자신을 드려 그의 인도를 받지 못하면, 그것들이야 말로 오! 그를 슬프게 하는 방식들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즉각 반응치 않고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의 성화에 관심을 두고 계시는 그분의 겸손하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성령을 얼마나 근심케 하는 일입니까! 왜 우리는 이 사도의 권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 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는 권면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는 그가 누구이며 어떤 분인지를 생각하여 그를 실망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는 복 되신 삼위일체 안의 제3격위입니다. 그는 우리 안에, 우리 몸 안에 한 손님으로 아니 참 하나님 즉 주인으로 거하고 계십니다. 민약 우리 집에 어떤 귀한 손님이 머물러 계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와 함께 있는 어떤 존귀한 손님 때문에 그가 있는 동안은 최선의 행동을 합니다. 집에 어린아이들이 있다면 조용히 하도록 당부합니다. 그것은 존경과 영예의 표지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바로 그 손님 때문에 우리가 어디 있든지 우리의 대화에 주의를 더욱 무한하게 기울여야 마땅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생각, 우리의 상상 속에 계셔서 그 모든 것들을 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성화는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곧, 그가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이러저러한 죄악을 제거할 수 있을까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러는 것보다는 “그분”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바로 그것만으로도 성화를 장려하는 데 충분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가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기만 하면, 우리의 모든 행실과 품행은 전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행해진 모든 일을 생각하십시오.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동등하게 영원하신 삼위 중 제3위이신 성령을 생각하십시오. 그럼에도 그분은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자신을 복종시키셨으며, 심지어는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하여 내려오셨습니다. 그분을 인식하지 못하고 언제나 그분이 보시기에 기쁘지 못한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배은망덕인가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내 죄가 사함받기 위한 것입니까? 내가 늘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기 위한 것입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구원에 부수되는 것들입니다. 목적과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속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바로 그것이 목적입니다! 장엄한 목적이 앞에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것입니까? 그것은 임박한 주님의 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의로 세상을 판단하시려 다시 오시는 날이요, 자기의 원수를 멸하고 더 나아가서 온 세상에서 악의 그림자와 흔적마저 다 제거하실 날입니다. 흠도 없고 주름잡힌 것이나 그러한 것들이 전혀 없는 이 영광스러운 교회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모든 무가치한 것과 악한 것은 다 제거가 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영화로운 교회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마지막입니다. 구속의 날이요, 완전하고 최종적인 완벽한 구원이 임하는 날입니다! 그 구속의 큰 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영광, 우리가 준비되어 맞이하게 될 그 완전함의 큰 날을 우리 앞에 견고하게 붙잡으며 성화를 설교하여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그 모든 것의 목적입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를 근심케 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의 여러 가지 은혜로운 표증들을 상실하게 될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하신 사랑에 대한 느낌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확신도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평안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 친히 내 영으로 더불어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신다고 말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여러분의 인침의 증거들은 희미하게 되고 급기야 전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위안들을 놓치고 상실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한 가지 덧붙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그의 은혜로운 감화력들을 철회한다면, 그는 여러분을 육체의 소욕에 주도권에 잡혀 있게 내버려 두실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러분 안에 있는 모든 육체의 소욕에 여러분은 맡기워지게 될 것이란 말입니다. 또한 마귀는 그러한 것들을 이용하여 여러분을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을 모독할 것입니다. 비열하고 추한 생각들과 소원들을 여러분의 마음 안에 집어넣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지옥에 살고 있으며, 지옥이 자기 안에 있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성령을 근심하게 하면 이것이 그가 우리를 포기하신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는 언제나 거하고 계십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실 것이고, 다시 율법으로 위협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는 전혀 구원 받은 적이 없다는 느낌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저주를 받고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하실 것입니다. 물론 성령은 결단코 하나님의 자녀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인침은 어떤 순간에도 지워지지 아니하는 인침입니다. 또한 다시 찍었다 다시 지우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구원 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하는 일은 없습니다. 제가 성령께서 자신을 철회하셨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 뜻은 그가 여러분 밖으로 나가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그분에 의하여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질 때, 그는 다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세주, 여러분을 위하여 죽으시고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구주로 열어 보여 주십니다. 그는 여러분의 죄를 다시 씻으실 것이며, 다시 한 번 여러분을 향하여 미소를 던질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으로 하여금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는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는 여러분을 가지실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을 인도하여 완전함의 그 영광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면 그가 여러분을 징계하실 것이 틀림없습니다! “너희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확신함이라.” 그를 근심하게 하지 마십시오. 저는 여러분에게 경고합니다. 그를 근심케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만일 여러분이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면, 여러분을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이 전혀 경험하지 못하였던 서글픈 영혼의 고뇌와 체험을 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4. 대단원,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이는 단순합니다!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그러므로 내 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디 있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그는 나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내 모든 생각과 내 모든 말과 행실을 그가 감찰하십니다. 오, 우리에게 이러한 특권을 주신 하나님은 얼마나 감사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마십시오. 이는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그를 기억하십시오. 그가 여러분 안에서 행하고 계시는 일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여러분을 위하여 준비하고 계시는 영광을 기억하시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그를 근심하게 하는 일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