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기쁨(수정본)
1, 본문: 빌 3:1
2. 명제: 참된 기쁨은 주 안에 있다.
3. 제목: 참된 기쁨
우리는 우울한 시대 기쁨을 상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 안에서 기뻐하는 법을 빌립보 교인들에게 가르치고자 이 편지를 썼습니다.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던 바울 사도는 기쁨을 빼앗아 가기 쉬운 다양한 요인들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빌립보 1장에서 보면 지금 바울 사도는 감옥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빌립보 교인들이 낙담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함이니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라는 말로 위로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없다고 낙담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음을 지적합니다.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며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 “때문에 바울 자신이 없어도 구원의 역사는 계속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짓 형제들이 바울 사도를 시기하여 열심히 복음 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의 복음 전하는 동기는 잘못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으니 자신 또한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빌립보 교인들 사이에도 어떤 시기와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2장에서 “ 너희 안에 이 마음 즉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 ”그러면 기쁨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는 기쁨을 지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려 준 다음 3:1절”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라고 말합니다. 그는 ”주 안에서 기뻐하라 “라는 위대한 주제를 선포합니다. 이것은 권면이자 명령입니다. 이 권면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주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주안에서 기뻐해야 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주안에서 기뻐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1.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명령입니다. 우리는 기쁨을 주관적인 상태나 기분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여기서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것을 볼 때 기쁨은 수동적인 또는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문득 기쁨이 생기기를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뻐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합니다. 갑자기 우리 속에 무슨 변화가 생기거나 무슨 일이 일어나서 아주 행복해진다는 식의 암시는 이 말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은 기쁜 일이 생겨야 기쁜 것 아니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 기쁜 일의 결과에 따라 행 불행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지적하는 잘못이 이것입니다.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기뻐해야 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여기에서 두 가지 위험성을 밝혀야 합니다. 첫 번째는 감정을 통해서 인위적으로 기쁜 상태를 만들려는 것입니다. 기쁨과 행복은 감정의 영역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행복감을 얻는 방법들이 많습니다. 세상은 괴로움과 불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끔찍한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술을 통해서 순간의 기분을 up할 수 있고 상황을 조작하는 방법을 통해서 할 수 있고 예컨대 마약을 통해서 환각의 세계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문제를 현실적으로 직시하는 것을 피하고 의도적으로 괴로움을 외면한 채 기쁨과 행복과 평화를 찾아 인위적인 행복감과 쾌락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철칙은 행복감이나 기쁨을 얻기 위해 감정적인 본성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는 곳입니다. 또 피해야 할 한 가지 위험은 밝고 행복하고 유쾌하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기뻐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성경적인 신앙을 잘못 생각해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참된 행복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밝고 유쾌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멋진 일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항상 노력합니다. 이런 태도도 감정을 직접 공략하는 잘못된 형태인 것입니다. 행복한 인상을 주려고 애쓰는 사람과 정말 행복한 사람을 확실히 다릅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본인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절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노력하는 사람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행복한 척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 의무감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속이 다 들여 다 보입니다. 그들이 보여 주는 기쁨이 얄팍하다는 것을 금장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기계적인 신앙인이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 사도는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그 어떤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이처럼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해서 감정을 직접 공략해서 기뻐하려고 애쓰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보다 기쁨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알 때 생겨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집중할 때 그 산물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기뻐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세상은 행복해지기 위해 각종 약물과 화려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불행 속에서 허우적 되며 기쁨에 이르는 비결을 찾고자 헤매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리스도인 외에는 아무도 참으로 기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만이 이 시대에 가장 확실한 기쁨의 증언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문자 그대로 사실임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은 실제 삶을 통해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바를 보여 주며 세상을 이길 것을 요구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 차례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롬 8:38-39“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것이 하나님 자녀들의 자리입니다.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이 부름 받은 자리입니다. 우리가 받은 명령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은 오늘날 세상의 실상에도 불구하고 상황과 상관없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에 충격을 주고 그들의 죄를 드러내며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기뻐하고 있습니까?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나타나는 결과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따라야 할 권면입니다.
2. 우리는 왜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할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해야 할 이유는 많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기뻐하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의 이유가 아닙니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는 주님을 위해 주 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세상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큰 구원은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계획하시고 설계하신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구원과 복음을 세상에 보내 주셨고 우리의 삶 속에 보내 주셨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점이 저와 여러분에게 기뻐해야 할 가장 큰 이유인 것입니다. 비참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명예를 나타낼 수 있을까요? 항상 믿음을 변명하기에 급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큰 구원과 하나님의 명예를 나타낼 수 있을까요? 그런 모습으로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보여 줄 수 있을까요? 베드로는 벧 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구원의 목적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더없이 귀한 특권을 가진 자들로 이 특권을 행사하는 최고의 방법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이기는 삶 환난 속에서도 기뻐하는 삶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뻐해야 합니다. 인생 속에서 패배하고 좌절한 사람들 한가운데 우뚝 서서 기쁨을 추구하는 하나님 백성들의 새로운 삶을 보고 ‘내가 바라던 삶이 바로 저기 있구나.’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할 일입니다. 네 번째 이유는 나 자신을 위해서 주안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며 이것이 빌립보서의 큰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 기뻐해야 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앞에 있는 많은 위험에 대한 가장 큰 방어막임을 아십니까? 느혜미야는 느 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이것은 심리학적으로 명백한 원리입니다. 우리는 불행할 때보다 행복할 때 훨씬 더 일을 잘 수행할 수 있습니다. 행복할수록 일이 더 수월해집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신 현대 의학은 후생 유전자 의학입니다. 이 유전자 의학이 발견한 공로는 병은 유전자의 변절로 생기다는 것입니다. 항상 불평 원망 미움 근심 걱정 등등 부정적인 생각 즉 스트레스로 그 마음을 채우는 사람은 유전자가 꺼지거나 변절되어 정상적인 작동을 하지 못하니 각종 병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반면 사랑 감사 용서 기쁨 등등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면 유전자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또 꺼졌던 유전자가 다시 캐져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이 원리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 모든 것 중에서도 무릇 네 마음을 지키라 ””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마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인생의 운명뿐만 아니라 건강도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긍정적인 생각을 택하느냐 아니면 마귀가 주는 부정적인 생각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건강도 결정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심으로 주 안에서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못한 그리스도인보다 세상의 삶에서 어려움을 덜 겪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예민한 것은 자의식과 자존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대책은 이러한 자의식과 자존심으로 뭉쳐진 자신을 생각지 말고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주님의 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도 낙망치 않습니다. 전부 주님을 위해 맡은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설사 다 잃는다 해도 자신으로서는 잃은 것이 없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오직 이 기쁨만이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다른 기쁨과 행복의 토대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 자신의 성공이든 능력이든 세상 학식이든 가정이든 자녀든 결국 우리를 실망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다 사라지고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삶을 마치는 순간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벌거벗은 영혼만 혼자 빈손으로 남아 그동안 죽음의 강 너머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을 의지하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죽음의 고독이 밀어닥칩니다.. 요 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 결국 우리도 이런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시험이 닥치면 세상에서 얻었던 것들은 전부 사라지고 이 기쁨만 유일하게 남는다는 사실 이 기쁨은 그 순간에도 우리를 저버리거나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곳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들어보십시오. 히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내 기쁨이 주 안에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나를 해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어 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을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기쁨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그를 핍박하고 때리고 중상하고 그의 평판과 모든 것을 빼앗고자 덤벼들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안에서 기뻐하고 있습니까?
3. 어떻게 주안에서 기뻐할 수 있을까요?
여기 나오는 명령에 따라 주 안에서 기뻐하는 길은 무엇보다 다른 기쁨의 원천들을 배제합니다. 빼앗길 수 있는 것에 기쁨의 원천을 두고 있다면 얼른 바로잡아야 합니다.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세상의 삶 자체를 피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소속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과 세상이 주는 것들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도 주님이 주신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혹시 내 기쁨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지 항상 살피고 주시하고 바로잡아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주를 묵상해야 합니다. 주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주안에서 기뻐할 수는 없습니다. 내 마음을 사로잡고 매혹시키기 쉬운 것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주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히 12:1-2“ 그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주를 생각하십시오. 주께 시선을 고정시키십시오. 주를 바라보아야만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를 위해 하신 일 크고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을 살펴보고 묵상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주님이 겪으신 모든 고난을 살펴보아야 하며 십자가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상고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주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자신을 낮추시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모든 일들을 묵상하십시오. 이 모든 일들이 나를 위해 하신 일이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이미 하신 일을 상고한 다음 그분이 지금 나를 위해하고 계시는 일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일을 시작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계속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알면 알수록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혼란과 혼돈과 괴로움과 싸움과 아수라장을 보면서 그분이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과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시리라는 사실을 생각하십시오. 그리스도가 다시 오셔서 모든 원수를 물리치시고 그 나라를 세우시는 마지막 완성의 때가 오고 있습니다. 그때 영광스러운 새 하늘과 새 땅이 펼쳐질 것이며 주를 믿고 주 안에서 기뻐하는 자들이 주와 함께 영원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상고하는 것이야 말로 기뻐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 주 안에서 기뻐하라 “라는 권면의 의미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절로 기쁜 마음이 생기길 바라서는 안 됩니다. 인위적인 기쁨 감정을 만들어 내서도 안 됩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는 길은 주와 그분의 구원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참으로 아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세상과 세상의 온갖 괴로움 앞에서도 웃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웃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죽음은 사랑하는 주님이 계신 곳과 그 영광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안에서 기뻐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