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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의 영광(수정본)

wordlove 2020. 12. 7. 07:52

1. 본문 :1:14-18

2. 명제: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의 방식으로 오셨다.

3. 제목: 성육신의 영광

 

하나님이 인생을 구원 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성육신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성육신 하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라는 여기 말씀이 누구입니까?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신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예수님이 성육신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14절에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 이요, 18아버지 품안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 이시라고 말씀합니다. 이 뜻은 하나님 아버지와 가장 친밀하신 분, 모든 비밀을 공유하신 분, 완벽하고 온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서 성부 하나님을 우리 인생들에게 해석해 주시고 설명해 주시며 묘사해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 어느 때에도 그 어떤 의미에서도 하나님을 본 자가 없었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본다는 뜻은 단순히 육안으로 본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의 하나님 되심을 실제로 알고 이해한다는 것을 다 포괄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충만 이 시기에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진리를 실제적으로 알려주실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계시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한분밖에 없으신데 바로 아버지 품 안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뜻입니다. 고전 1:21“ 이 세상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세상 지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은 죄인일 뿐 아니라 유한한 존재인데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을 다 아시는 분이시기에 하나님을 우리 인생에게 소개하실 수 있으신 유일하신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출 33: 20 “ 나를 보고 살자는 없음이니라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보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 인간의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성육신으로 오신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보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 수 있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이 베들레헴의 아기로 태어나야 합니다. 말씀이 육신으로 되셔야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믿기 전 다멕 섹으로 교회를 핍박하러 가다가 겪은 일입니다. 그는 자신만만하고 유능하며 성경에 능통한 인물이자 하나님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스스로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한번 얼핏 본 것만으로도 눈이 멀어 맥없이 길에 쓰러져 버렸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육안으로 얼핏 본 것만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쓰러져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한계입니다. 33:20“ 나를 보고 살자는 없음이니라 인간은 하나님을 보는 순간 죽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진리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찰스 훼슬레는 육신을 입으시는 하나님을 보라 육신이 되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라고 노래한 이유입니다. 우리인생은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보는 즉시 죽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보아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아들 뿐입니다. 이분이 말씀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생이 감당할 수 있고 견딜 수 있는 방식으로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서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으심으로 이 일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으로 오심으로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 왜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오셨을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두 번째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법인 율법이 이 방식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이것이 성육신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구원을 받으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 하시기”위해” 반드시 여자에게 나셔야 했고 율법 아래 나서야 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첫째로 우리의 대표자는 인간이어야 하고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이야 말로 창조의 최고봉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끼어들어 사람을 시험함으로써 타락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타락했습니다. 죄에 빠졌습니다. 인류 전체가 타락했습니다.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따라서 율법은 당연히 형벌을 요구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모든 죄인은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이룩하신 최고의 성취가 실패로 돌아간 듯합니다.. 마귀는 즉시 하나님을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 당신이 지으신 사람을 좀 보세요!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존재 큰 목적을 갖고 지은 창조의 최고봉이 저 모양이네요! 저 꼴을 좀 보십시오! ”그러므로 공의로운 하나님의 공정상과 정당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류를 구속하고 회복할 자로서 사람이 와야만 했습니다. 인간의 죄를 위해 하나님이 단순히 용서를 선포하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해결책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귀도 결코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단순히 타락한 사람에게 네가 저지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용서한다라고 말씀하신다면 마귀는 계속 의기양양하게 떠들 것입니다. 사람을 용서하신다니 좋습니다. 하지만 저 꼴을 좀 보십시오. 여전히 엉망이잖아요. 용서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가망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요. 당신이 지으신 태초의 모습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잖아요. “사람이 실패했으니 사람이 성공을 해야 합니다. 실패하지 않는 완벽한 사람을 내놓지 않는 한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로우심을 입증할 수 없고 하나님은 마귀의 조롱과 비웃음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인생을 대표하고 구원해 주실 구세주가 필요한데 완백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혈과 육을 가진 존재이므로 구세주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우리 인생이 대표자가 되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왜 율법 아래에 나서야 할까요? 우리 사람의 대표자로서 우리가 충족시켜야 할 하나님의 공의 즉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대신 충족 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사람으로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율법은 우리 인생들에게 요구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에게도 요구하는 것은 마탕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대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완전히 만족시키신 사람은 오직 예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가 되십니다. 그가 율법에 완벽하게 순종하지 않았다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대표자로서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율법을 어긴 죄인들입니다. 율법 앞에 우리 인생은 다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심판을 내립니다. 율법에 따르면 모든 인생은 자신의 죄 때문에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나셨고 율법 아래 나셨습니다. 왜 그렇게 나셨습니까? 실패한 우리 인생 대신 형벌을 담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2:9 “ 이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래서 그는 여자에게서 즉 사람으로 나셔야 했고 율법 아래 나셔야 합니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 즉 율법 자체가 성육신을 요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셔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율법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적극적으로나 소극적으로나 율법을 지킬 수가 없었을 것이며 그러면 우리 인생을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육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육신이 없으면 율법도 만족시킬 수 없고 마귀도 만족 시킬 수 없습니다. 동시에 우리의 대표자로서 구세주는 사람이면서 하나님 이서야 합니다. 신적인 존재여야 합니다. 그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설사 십자가에서 죽어 장사되었다 해도 우리를 구원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단순한 인간이라면 십자가에서 죽어 끝났을 것입니다. 죽어 실패한 인간이 구세주의 자격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자 성자 하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지 하나님이라는 것이 죽음의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은 다 죽습니다. 다윗왕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후손인 이 예수님은 죽음에 매일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깨뜨리고 승리할 능력이 필요한데 그는 하나님이었기에 그렇게 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설교에서 예수님을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예수님을 생명의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생명을 만드시고 지으신 분이시기에 죽음보다 더 강하십니다. 바울은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입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라면 부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조차 다스리시는 주인이요 정복자입니다. 죽음을 이긴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외 다른 인간은 구세주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모든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은 사람이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죄인이 되셨으며 죽음과 무덤을 이기고 살아나셔서 능력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성육신으로 오셨을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세 번째는 우리의 구주가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어야 하는 이유는 구원의 열매를 주시려는데 있습니다. 주님은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의 일을 완성하셨기에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 믿는 자에게 생명과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구원의 열매를 주실까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새롭게 회복시키시고자 오신 분이십니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와 여러분이 구원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야 합니다.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지금 모습으로는 참여 할 수 없습니다. 신성과 죄는 같이 섞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해결책은 우리가 신의 성품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요 나의 하나님으로 믿으면 그에게서 태어납니다. 인간의 본성이 아담에서 나왔듯이 하나님의 본성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본성을 받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옛 본성이 개선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로운 본성인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다는 뜻이며 다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다, 중생한다, 하늘로부터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구원은 여기에서 더 나아갑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었고 그와 연합하게 되었으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고 우리는 그 지체의 각 부분 이 된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가 사람이자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가 사람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와 연합할 수 없습니다. 그가 신인으로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기 때문에 연합할 수 있습니다. 그는 머리요 우리는 지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을 통해 새 인간성을 부여받고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면서 그로부터 능력과 힘과 양분을 받으며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받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살아계신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것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인도 의롭다 하나님이 여겨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진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대제사장이신 주님에 대한 위로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히 2:17-18“ 히 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 하려 하심이라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이 말씀도 들어 보세요. 히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성육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체질을 가지셨기에 우리 체질이 어떠한지 잘 아십니다. 이 땅에 살면서 직접 겪어 보셨기에 시험의 압박이 얼마나 큰지 잘 아시며 세상과 육신과 마귀와 싸우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아십니다. 모든 일에 우리와 똑 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무지를 아시고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 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주님은 이 땅에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예수님을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 도움을 구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을 통해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기뻐하며 영원토록 그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의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