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
1. 본문: 눅 17:20-21
2. 명제: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3. 제목: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는 지금 기독교 신앙의 기본 요소와 본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세상은 엄청난 문제에 빠져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사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바로 이때 교회가 나타나 세상 앞에 서서 말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시오." 여기 교회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기독교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반드시 대답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가르침과 메시지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고 그 나라에 우선순위를 두라고 촉구하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7장에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세가지 질문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나라를 어떻게 세우시는가?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임하시는가? 나는 이 나라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가?
첫 번째 질문은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나라를 어떻게 세우시는가?
이 질문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끊임없이 던졌던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0-21절“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처음부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방식을 오해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 선생께서는 항상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십니다. 선생께서는 자신이 온 것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뜻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선생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 나라가 언제 어떻게 임합니까?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그때가 지금인가요? "그러자 주님은 즉시 바리새인들의 말을 수정해 주십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전체적인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30-31에도 나옵니다. 여기서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선생께서는 계속해서 그 나라를 말씀하는데,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시지요 기록된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선생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선생은 계속해서 한 왕에 대해 말씀하면서 자신이 실제로 그 왕이라고 하고, 선생께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리라고 말씀하는데, 그 증거를 우리에게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이게 임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형태가 제자들에게도 걸림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도 이 점은 제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4-7을 읽어 봅시다. 이것은 부활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를 보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주님임을 알고 있었으나, 여전히 하나님 나라는 그분이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택하신 사도들 조차 하나님 나라를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 죽음과 무덤을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니 이제 틀림없이 그분의 나라를 세우실 거야. 여기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많이 가르쳐 주시지 않았는가? ”이들은 주님께 이렇게까지 물었습니다. “ 지금이 그때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오해는 보편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공통된 오해는,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이는 외형을 가지고 온다고 생각하며, 어떤 획기적인 행동의 결과로 온다고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메시아가 오시면, 그분은 무엇보다도 먼저 군사적이며 정치적인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이들은 절망과 불행에 사로잡혀 있었고 해방을 원했습니다. 이들은 구원자 메시아가 오면 큰 군대를 이끌고 원수를 물리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은 온 세계의 수도가 될 것이며, 그 구원자 메시아는 온 세계를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이런 나라를 세울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러한 오해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스스로를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스스로 하나님 나라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영적인 곳인 동시에 정치적인 곳입니다. 교황은 정치적인 인물로서, 많은 나라들이 교황청과 대사를 교환하고있습니다. 로마제국 때처럼, 교회와 국가가 연합하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자행한 모든 박해는 바로 이러한 연합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불행히도, 이러한 오해는 우리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21세기에 하나님 나라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오해 가운데 하나는, 세상을 바꾸고 개혁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20세기의 소위 ‘사회복음'의 시대를 보십시오. 당시 사람들은 사회복음을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예전에는 복음을 전파하면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야. ”영국의 자유당 정부는 1906-1915년 집권하면서 복지국가의 틀을 마련했습니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병원을 지었습니다. 더 나은 주택을 공급했습니다. 복지국가를 만들었습니다. 사회가 풍요로워졌습니다. 세상이 훨씬 더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사회적 정치적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계속되어 온 비극입니다. 모든 것이 물질화되었고,, 사람들은 “ 우리는 더 이상 교회나 성경이 필요 없어. 모든 것이 이루어졌어!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가 우리 눈앞에 이루어졌어! 우리가 입법을 통해 그 나라를 오게 한 거야! 더 이상 뭐가 필요하지? "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생각이 잘 못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두 번째 질문은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옵니까?
하나님 나라는 어떤 형태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답이 있는데, 세 가지 모두 신약 성경의 복음서에 나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과 함께 임하며 comes, 임했습니다 came. 누가복음 11:14-20이 이것을 잘보여줍니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제 말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계셨을 때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며, 하나님이 자연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이 나타나는 것이며, 하나님이 귀신들과 모든 악한 것들보다 강하시다는 사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시면서, 기적을 행하시고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실 때 " 이것이 하나님 나라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입법이 아니며 정복하는 군대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행하신 기적과 그분이 보이신 놀라운 권능이야말로 하나님 나라가 그분과 그분의 능력 가운데 임했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벌써 임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교회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교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 교회 ”는 외형적 기관이 아닙니다. 물론 외형적 기관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로마 가톨릭으로 알려진 체제는 교회가 아니며,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로마 가톨릭은 화려함과 권세를 가진 세상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직 화려하고 힘 있게, 눈에 보이게 임하지 않습니다. 국가 교회의 모습으로 임하지도 않습니다. 단순히 교인들이 곧 교회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교회에 외형적으로 참여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순히 이름을 교인 명부에 올렸다. 는. 뜻도 아니며,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렇다면 최근에 인기 있는 사상인 '비종교적 기독교 religionless Christianity'를 의미합니까? 교회를 폐쇄하고 종교의식과 예배를 그치며 세상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필요와 고통을 돌아볼 때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된다는 가르침을 의미합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보기 원한다면 교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창녀촌 같은 곳에 가서 술주정뱅이와 창녀들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가 의미하는 바는 외형적인 제도권 교회나 무교회적이며 비종교적인 기독교가 아닙니다. 제가 의미하는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몸입니다. 제가 의미하는 교회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 그분을 알고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몸입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교회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참 신자들의 마음에서, 그분의 사랑에 매인 사람들의 마음에서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한 형태이며, 현세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주요 형태입니다. 주님이 육체로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지금 그분의 백성 속에 계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교회는 고전 12:27절 “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 "입니다. 세 번째는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그날에 하나님 나라가 가시으로, 외형적으로,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임할 것입니다.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교회 시대의 끝을 의미합니다. 그날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십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의 형태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시며 구름 타고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막 14:62절 "인자가…………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나님 나라는 아주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신성의 위엄을 띠고 오실 것이며, 왕으로 다스리고 심판하시며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인자가 오셔서 그분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이것은 택함 받은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심판의 보좌를 세우시고, 온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분을 믿지 않는 자들은 누구든지 마귀와 악한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형벌에 떨어질 것이며 그분 앞에서 추방당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모든 죄와 악이 제거될 것입니다. 영광의 나라가 설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그 영광 가운데 그분의 보좌에 앉으실 것이며,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이 그분과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그분과 영원 영원히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때가 오고 있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나는 이 나라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러나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의 개선이나 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장 좋은 가르침과 가장 좋은 아이디어를 찾고 있으며,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원합니다. 이들은 철학자들의 글을 읽습니다. 이들은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글을 읽습니다. 이들은 유교와 불교와 힌두교에 관한 책을 읽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 예수님의 가르침 ”이라고 말하는 것에까지 이릅니다. 그래서 이들은 산상설교를 읽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 정말 좋은 사상이야! 활용해야겠어! "예를 들어, 마하트마 간디가 그렇게 했습니다. 간디는 여전히 힌두교에 남아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 가운데 일부를 취해 수정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런 방법으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노력해도 하나님 나라를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이들 가운데도 이들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비밀이 그분의 이타심이라고 말하며, 이들은 우리도 그분과 똑같이 하면 그분의 나라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본받아 그분과 같이 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자신을 구원하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이기심을 버리는 것, 대단한 자기희생의 행동을 보이는 것, 세상에서 선을 행하는 것.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사람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임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 그분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러한 모든 생각과 가르침이 거짓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까? 주님은 “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있을 수 있습니까? 내가 그분이 누구신지 인정할 때 하나님 나라는 내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첫 단계입니다. 나는 그분을 세상이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 지도자로, 가장 위대한 사회 개혁가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분이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을 때,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는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그때에야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들어옵니다. 그리스도를 나를 구속하려고 육체로 오신 하나님으로 믿을 때,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들어옵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은, 내가 나에 대한 그분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결코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 전문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20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기 못하리라" 이 말씀은 지금도 변함없이 절대적으로 적용됩니다. 바리새인들은 한 주에 두 번 금식했으며, 소유의 십 분의 일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 부족하다. 충분하지 못하다! " 하나님은 내게 절대적인 의를 요구하신다. 하나님 앞에 의로우신 분은 모든 율법을 다 지키신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예수님의 의를 의지할 때 그 의를 힘입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또한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평가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눅 19:10절 "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막 12:17절 "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인정합니까? 여러분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그분의 방법을 믿음으로써 자신을 완전히 내어 맡겨야 합니다. 마 20:28절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여러분은 “ 십자가에 달린 그 분을 바라볼 때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고 소망이 없는 죄인으로서, 주님의 발 앞에 나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분께 자신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찬송가 282장 1절”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것은 여러분이 절대적이며 완전하게 항복하고, 자신을 완전히 그분의 손에 내어맡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그분께 드리고,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과 여러분의 개인적인 구원자와 주님으로 인정합니까? 여러분이 구하는 것은 그 분뿐이며, 그분이 여러분의 전부라고 고백합니까? 여러분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고백합니까? 이 사람이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