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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자(수정본)

wordlove 2020. 12. 26. 07:52

1. 본문: 9: 27

2. 명제: 선택 교리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바라보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3. 제목: 남은 자(선택받은 자)

 

선택 교리는 기독교 여러 교리 가운데 가장 신비적인 교리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은 예수 믿은 자들을 구원받은 자 또는 택함 받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27절에서는 남은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27절에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여기 남은 자란 의미는 택함 받은 자 또는 하나님께 쓰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잔치 비유에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데 택함 받은 자는 적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 당시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받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롬마서 9장에서 바울 사도는 이런 자기 동포들을 보고 내 동포들이 구원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내가 저주를 받아도 괜찮다는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은 내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 믿지 않는 것은 혈통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같은 집안 식구 가운데서도 예수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지만 또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함을 받지 못했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선택 교리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바라 보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선택 교리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확신과 감사를 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복음 전파에 힘쓰도록 격려하기 위해서 오늘 말씀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선택 교리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바라보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택 교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바르게 알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6절에서 이스라엘 중에 난자가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렸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태어난 모든 자식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것은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7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믿음의 조상 아브라람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장남 이스마엘과 동생 이삭입니다. 물론 혈통적으로 다 아브라함의 자식들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자녀가 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아들인 이삭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은 인간 혈통을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 가운데 형 에서와 동생 야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고 야곱이 남은 자가 되었다. 고. 말씀합니다. 10이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태어나기 전 어머니 리브가가 임신 중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형님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게 되리라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1절에 자식들이 아직 나지 않았기에 무선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어떤 행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은 불의하시다고 시비를 걸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구원입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은 하나님이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인생이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이라며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바울 사도는 토기장이 비유를 들어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20-21”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흙을 빚어 자기 마음에 따라 임금님 밥상에 올리는 귀한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돼지 밥그릇용 천한 그릇도 만들기도 합니다. 돼지 밥그릇이 왜 나를 이렇게 만들어냐고 토기장이에게 시비를 겁니까?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것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라고? 바울 사도는 반문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은 의롭지 못한 것 아닙니까?라고? 시비를 거는 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우리 인간을 지으신 주인이십니다. 당신의 뜻에 따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고 또 어떤 사람은 심판의 사람으로 선택할 권한을 가지신 주권을 가진 주인이십니다. 선택 교리는 먼저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의 주되심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음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이 할 일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드신 하나님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감사와 순종을 배우는 것이 먼저 할 일이 아닐까요? 선택 교리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바라보아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택 교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바르게 알 수 있을까요?

 

2.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13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야곱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실 수 있는 주이십니다. 선택 교리는 인간의 어떤 공로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실 창세기를 읽어 보면 인간적으로 얼른 보면 에서는 용맹하고 남성다운 매력을 가진 반면 야곱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성이 강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개별 성품의 호 불호에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의해 야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6오직 인간의 원하는 것으로도 아니고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이니라 선택은 인간이 원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어떤 공로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인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호세아서는 참 특이한 책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호세아 선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아주 부도덕한 여자로 나옵니다. 남편 몰래 바람을 피워 부정을 했습니다. 한번만 아니라 두 번이나 부정을 했습니다. 호세아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한탄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가서 그 부정한 아내를 데려 오라고 했습니다.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부정한 아내를 데려옵니다. 그러다가 또다시 아내 고멜이 바람을 피우고 도망을 가고 말았습니다. 호세아가 가슴을 치고 울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내 아내를 찾아 데려 오라고 또다시 명령합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부정한 아내로 인해서 가슴 아프고 답답해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부정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인해 가슴 아프고 답답한 하나님의 심정을 호세아 선지서를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나만이 유일한 경배와 섬김의 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세상과 짝하고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 백성은 다 간음한 자들이지만 그러나 나는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오늘도 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내 답답함과 아픔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을 다시 끌어안고 또 사랑하며 열납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나의 백성들이 아직도 내 백성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그들을 향한 나의 끊임없는 지속적인 사랑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하는 자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려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내 백성이 아닌 즉 사랑할 수 없는 온갖 죄로 물든 이방 족속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사랑이 넓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온갖 우상과 죄악에 물들었던 어두움의 땅인 조선 땅에도 약 백삼십 년 전에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2:8-9. “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우리 자신들을 보십시오. 나의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거스틴이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만일 하나님이라면 나는 벌써 나를 부수어 버릴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만약 주께서 주의 공의대로 나를 처리했다면 벌써 우리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남은 자로 두신 이유는 그의 끊임없는 지속적인 사랑으로 그가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저 감사할 뿐이 아닙니까? 찬송가 294 하나님을 배반하고 멀리 떠난 우리 원수 같이 대적하나 사랑하여 주네 하나님은 사랑이라 죄악에 빠졌던 우리까지 사랑하니 참 사랑 아니가? ”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용서의 교훈을 가르치시면서 네 이웃이 네게 허물과 실수와 잘못을 범했을 지라도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 ””라고 하셨을까요? 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을까요? 그것은 끝없는 용서 무한한 용서를 가르치시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용서의 밑 바 땅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 그 조건 없는 긍휼의 풍성한 사랑이 저와 여러분을 오늘도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서 아직도 선택받은 남은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선택 교리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바라보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택 교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바르게 알 수 있을까요?

 

3.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택 교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내가 예수 안 믿는 것은 택함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원 받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만 생각하면 선택 교리는 운명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그 사람은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선택 받은 사람은 반드시 믿게 되는 것입니다.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오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구원은 믿음을 통해서 얻는 의입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에 의를 얻은 것은 믿음의 의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을 희생 제물로 보내 주셔서 십자가에서 죄인을 대신해서 죽게 하시고 부활시킴으로 인해 그 예수님을 구주로 의지하는 자를 의롭다 여겨 주시는 구원 얻는 의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의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다 여겨 주십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 때문에 과거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이방인 즉 우리들까지도 예수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구원의 길이 열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이라고 불렸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행위를 의지하여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을 믿어 구원 얻는 길 대신 자기 공로와 자기 행위로 하나님의 의를 얻겠다는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이런 자는 부디 칠 돌에 부딪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30-31“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오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하나님이 주신 의를 의지 않고 자기 행위로 구원 얻고자 하는 자는 돌에 자기 머리를 박치기 하는 자와 같습니다. 돌에 머리를 박으면 돌이 깨어지겠는가? 아니면 그 사람의 머리가 깨어지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의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33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앞에서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했고 에서를 미워했다고 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십시오. 에서는 오늘날 어떤 사람과 같습니까? 하나님의 의의 축복이신 예수님을 무시하고 믿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반면 야곱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고 믿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를 믿지 아니하는 에서는 미워했고 하나님이 보내신 구주를 믿은 야곱은 사랑한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선택은 하나님이 주신 의이신 예수님을 믿느냐 아니야에 달린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선택은 100% 하나님의 일이며 동시에 100% 인간의 일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서 200%가 아니라 100%인 것입니다. 인간 측면에서 보면 구원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선택 받은 사람인가 아닌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지금 내가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님을 의지 하느냐 즉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불신자도 오늘 예수 믿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며 하나님의 사랑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선택 교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사 구원하시기로 미리 작정하시고 때가 되며 예수 믿도록 부르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이 선택 교리를 바로 이해하면 구원에 대한 더 깊은 확신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더 깊은 뜨거움으로 예수님의 구주이심을 더 기쁘게 전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