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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복(수정본)

wordlove 2021. 1. 7. 08:22

1. 본문: 5:1-12

2. 명제: 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하며 하늘에 큰 상이 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3. 제목: 여덟 번째 복/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의 복

 

팔복 중 마지막 시간입니다. 산상 수훈에서 천국 백성은 세상 사람과 다름을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부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온유한 자가 아니라 강하고 거친 자들을 복 되도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죄 때문에 애통하는 자가 아니라 죄를 즐기고 사랑하는 자를 복되도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성취하는 자를 복되도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권력자, 부자, 힘 있는 자를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니체가 말하는 초인을 꿈꿉니다.. 그래서 사람을 많이 죽인 악인을 영웅이라고 추겨 올립니다. 세상의 가치에 비추어 보면 예수님은 실패자입니다. 니체의 힘의 철학을 숭상하는 이 세상은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자연적으로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산상 수훈의 여덟 번째 복은 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하며 하늘에 큰 상이 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을 얻기 위해 아래의 질문을 던집니다.

 

1. 의가 무엇입니까?

화평의 축복 다음에 핍박받는 복이 나옵니다. 우리가 아무리 화목하게 하려고 해도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천국 백성을 무조건 욕하고 비방하고 반대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결점이나 부족한 때문이 아니라 천국 백성이 10절에는 의를 위하는 것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11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인함이라고 말합니다. 어두움이 빛을 싫어하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세상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이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은 받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라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천국 백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관이 내 가치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치관에 따라 살면 필연적으로 이 땅에서 고통과 핍박이 있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그 예수를 따라가는 제자들이 대접받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15:18-19“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을 살면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자랑한다면 그는 문제 있는 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가치관과 타협하면서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환영받을 것입니다. 의롭다 하거나 의를 실천하는 것은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닮는 사람은 항상 박해가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아벨은 형 가인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모세도 바로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다윗도 사울 왕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엘리아와 예레미아 선지자들의 박해를 보십시오. 욥은 자기 아내와 친구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구약에서 가장 뛰어난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의로웠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온유하고 의로웠음에도 불구하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꺼지 아니하시는 분으로서 부드럽고 친절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예수님을 어떻게 했습니까? 순교자들을 보십시오, 죤 낙스, 청교도들, 허드선 테일러 선교사 이들은 격심한 박해를 견디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편에 서기를 원할 때 냉대가 있습니다. 이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마지막 산상 수훈의 여덟번째 복은 예수님 닮아가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하며 하늘에 큰 상이 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을 얻기 위해 아래의 질문을 던집니다.

 

2. 박해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천국 백성이 지혜가 부족하고 어리석음 때문에 어려움을 받는 것을 복 되도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광신적이기 때문에 박해를 받은 고난을 복 되도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받은 고난을 복 되도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심에서 소리치며 복음 전도하다가 욕을 얻어먹는 것은 박해받는 것이 아닙니다. 절에 불을 지르다가 경찰서에 끌려가는 광신도에게 복이 약속 된 것은 아닙니다. 벧 전 4: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나의 잘못된 행위로 박해를 받는 자에게 복은 약속되어있지 않습니다. 가끔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어렵게 고통당하는 것을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를 모독하는 일입니다. 나의 잘못으로 인한 고난은 십자가가 아니라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도둑질해서 받는 고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괜히 남의 일에 참견해서 고난을 당하는 것은 핍박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핍박은 좋은 일을 한 것에 대하여 나쁜 사람에게 받는 것이라면 처벌은 나쁜 일을 한 것에 대해서 좋은 사람에게 받는 것입니다. 마지막 산상 수훈의 여덟 번째 복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하며 하늘에 큰 상이 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을 얻기 위해 아래의 질문을 던집니다.

 

3, 왜 그리스도인은 박해를 당합니까?

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가치를 따라 살기 때문에 세상의 가치와 충돌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닮아 가기 때문에 받는 박해라는 것입니다. 틸리케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들어가는 사람은 가치의 변화를 겪지 않으면 안 됩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과거 선지자들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핍박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보증하는 표입니다. 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초대 교인들은 예수님 이름 때문에 받은 상처와 고통이 명예로운 훈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히틀러를 반대하다가 핍박 받은 본회퍼는 모진 고문과 가족의 위험 속에서 1945년 강제 수용소에서 사형을 받았습니다. 그는 고난은 참된 제자의 표지이다. 제자가 그의 스승보다 뛰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고난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고난을 의미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참된 교회의 표 가운데 하나가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참된 교회는 복음을 위하여 핍박당하고 순교하는 자들 의 공동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은혜의 증거이며 기쁨입니다. 세상은 기독교인에게 본질적으로 적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아십니까? 어두움이 빛을 싫어하듯이 천국 백성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았기 때문에 이것이 박해를 불러옵니다. 예수 안에서 새사람은 박해를 받습니다. 우리 주님이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천국 백성은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그런데 오늘 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유행에 너무 민감합니다. TV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어찌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은 가치관을 천국 백성이 따라야 합니까? 박해를 받는 것은 주님에 대한 충성을 보일 기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으면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믿어 형통만을 바라는 기복 신앙은 성경적인 신앙이 아니라 미신에 불과합니다. 미신을 믿지 마세요. 눅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모든 사람들로 부터 칭찬을 받으면 참 천국 백성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거짓 신자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닮으면 박해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의를 위해서 즉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은 여러분이 참 천국 백성이며 하늘 시민이라는 증거인 것입니다. 마지막 산상 수훈의 여덟 번째 복은 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천국을 소유하며 하늘에 큰 상이 있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을 얻기 위해 아래의 질문을 던집니다.

 

4. 박해 시 어떤 태도가 요구 됩니까?

박해 시 천국 백성이 가져야 할 반응은 무엇입니까? 나의 죄로 인해서 받은 고난이라면 당연히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받은 고난이라면 그리스도인은 기뻐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기뻐해야 할까요? 하늘에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항상 의인을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죽였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잠깐이요 축복은 영원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박국 선지자는 왜 이 세상에서는 의인에게 고난이 많을까요?라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답은 의인이 당하는 고난은 잠깐이요.. 악인은 결국 망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스타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20장에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는 자의 영혼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기 때문에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위해서 사단과의 타협을 거절하고 세속 주의적 가치관과의 타협을 거절했던 사실 때문에 고통받았던 사람들이 천국에서 왕 노릇할 것입니다. 바울은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천국을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적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는 이 세상에서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설교자 스펄전은 말년에 많은 병을 앓았습니다. 성도들이 찾아와서 목사님 아프시죠?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목사님이 맞습니다. 아파요. 너무 아파요. 그런데 주님은 이 고통 보다 내게 더 가까이 계세요 그것 때문에 그는 고통 속에서도 황홀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었던 입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천국입니다. 고통이 나를 주께로부터 멀리 떼어 놓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 고통의 짐을 끌어안고 내 주님 앞에 다가갑니다. 그리고 주를 의지합니다. 주를 의지할 때 주께서 주시는 놀라운 평안이 지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황홀한 기쁨을 아십니까? 이것이 지상에서 경험하는 천국입니다.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분노를 억제해야 합니다. 대꾸해서도 안 됩니다. 보복한다면 세상 사람을 닮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보존과 보복의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문학의 주제는 복수가 많습니다. 천국 백성은 다릅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비판을 하나님께 일임했습니다. 박해로 우리의 기가 꺾여서는 안 됩니다. 낙심하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명한 성악가 마리안 앤드슨은 한 세기에 한 사람 나올까 하는 귀한 재능 있는 음악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 독창회를 가졌을 때 신문사 및 평론가들이 혹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는 너무 실망하여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 때 어머니가 너는 어찌하여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기를 원하느냐? 그 평가를 내린 사람들이 도대체 몇 명이냐? 그 외 많은 사람들이 네 노래를 좋아한단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려고 한다는 것은 큰 교만이야 하며 용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어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 믿음 때문에 박해받을 때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상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만이라도 나를 위로한다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팔복을 마치면서 우리는 참으로 복된 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정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참된 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상 수훈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교훈입니다. 축복은 예수님을 닮은 인격에 있는 것입니다. 축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지 않을까? 내가 지식을 조그만 더 가지면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나 인간은 돈을 가져도 지식을 가져도 명예를 가져도 여전히 목말라합니다..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가치관을 따라 사는 인격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강조하는 가르칩니다. 팔복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인격에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소유하는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자기 죄를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는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온유한 자 겸손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름을 받는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는 복을 누리는 자가 될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는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불림을 받는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의 때문에 즉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는 천국을 소유하며 하늘의 큰 상을 받는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이 이 인격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단순히 소유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의 삶은 많은 소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행한 삶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복은 미신에 불과합니다. 미신을 쫓지 마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짜 복된 인생을 사시는 여러분이 다되시기를 축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