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구원의 보증이신 그리스도

wordlove 2021. 1. 23. 05:53

1. 본문: 8;3-4

2. 명제: 우리의 구원이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보증이 되시기 때문이다.

3. 제목: 구원의 보증이신 그리스도

 

1. 갈등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 가운데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온 결과입니다.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리스도인은 죄를 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 받은 목적은 그러한 결과를 낳기 위함입니다. 7:4 “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단지 죄를 용서받았다든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바울의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말씀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아무리 많은 죄를 짓든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 삶의 새로운 것 을 가져오며 죄의 몸을 제거해 버린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반론을 배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이제 성령을 따라 살아가고 있으며 죄를 이기는 새로운 삶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데도 중요한 요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증명은 우리가 율법에서 해방되었으며 죄의 통치와 왕 노릇에서 구원받았음을 역설하는 데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은혜의 왕 노릇 안에 있게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 있는 새로운 삶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이러한 성화의 과정 곧 그리스도의 의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 속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강조하는 것입니다.

 

2. 갈등심화

그러나 왜 율법은 그런 일을 할 수 없을까요? 3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율법이 약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자동적으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수행의 목적으로 우리와 우리의 노력에 맡겨집니다. 그러므로 약한 것은 율법이 아니라 우리입니다. 다른 말로 해서 율법의 실패는 그 율법이 우리 육신을 통해서 일해야 된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어느 설교자가 이런 예를 사용했습니다. 그는 시골교회에서 농부들에게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봄에 나가 여러분의 밭을 일굽니다. 여러분은 삽과 괭이를 가지고 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땅속에 땅을 파기 어려운 곳이 있게 됩니다. 여러분은 괭이로 더 힘을 주어 내리쳤습니다. 그 결과 괭이의 손잡이가 부러집니다. 손잡이는 나무로만 만들어졌기 때문에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하다고 해서 괭이 자체가 잘못이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 약한 것은 쇠로 만들어진 괭이의 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진 손잡이로 나무로 만든 손잡이가 없이는 괭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율법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7: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8장에서 이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그것 에 대하여 반복해서 설명합니다. 다른 말로 해서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먼저 율법에서 구원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지금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2절에서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해방되는 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해방될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고 우리의 죄책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증가시킴으로써 우리를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율법부터 시작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의 권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죄의 왕 노릇과 통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죄에 대한 죽음 율법에 대하여 죽음 이란 용어를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은 율법 아래에 있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구원받을 필요가 있듯이 죄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은 우리를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무섭고 저주받은 위치로 끌어내리고 도리어 우리를 매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율법에서 구원받았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율법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도 율법도 할 수 없는 것을 행하신 것입니다. 롬 1:16-17“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 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이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그러한 복음의 핵심 때문입니다. 이것이 로마서의 위대한 주제입니다.

 

3. 전환

하나님이 어떻게 이 일을 하셨습니까? 4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우리는 먼저 하나님 이라는 위대한 말을 강조해야 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그분의 계획이며 목적입니다. 인간은 죄와 수치와 실패로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하며 무력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여기서도 삼위일체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 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곧 성부 성자, 성령이 다 언급되어있습니다.. 삼위 하나님은 구원을 창세전부터 계획하시고 목적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 사. ”이 점을 바라보십시오. 1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우리가 영원토록 안전하다고 말하는 이 장엄한 선포를 보십시오. 바울은 어떻게 이 점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대답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 안에 내포되어 있으며 태초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구원이 약간이라도 우리에게 달려있다면 바울은 결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약간이라도 인간에게 맡겨져 있다면 그것은 실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도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우리 인간에게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은 모두 하나님께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은 구원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는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는 그의 장중에 있으며 구원은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깨닫기 전에는 구원을 확신할 수 없으며 성화와 최종적인 영화를 확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롬 8:29-31“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오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신 일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나 그의 결정에 강조점을 두는 모든 칭 의나 성화에 대한 교훈은 성경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도록 결심하였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이고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분의 위대하고 영원한 계획입니다. 자기 아들을... 보내사...보내사 ”구원은 절대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떠나서는 어떤 구원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과 섬기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 어떠한 화해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중심에 계시지 않으면 그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상상이며 사단의 기만입니다. 기독교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또한 그로 말미암아 이루신 것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 5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 ‘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전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케 하신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 입니다. 이 점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봅시다. 왜 바울은 구태여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어 라고 하셨을까요? 단순히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어 ’ ’라고 하지 않고 ‘ 하나님은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어 ’ ’라고 하였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한정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들 라고 묘사한 이름이 많습니다. 천사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들 ’ ’이라고 말하는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기 아들 ’ 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하나님의 아들들 이나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바울이 말하는 분은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방식과 같은 방식의 아들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는 자기의 아들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양자로 받아들여진 아들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 자신의 아들 입니다. 그는 언제나 그랬으며 영원토록 양자가 아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것을 자기 아들 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자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낳았다 ’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 주 예수 그리스가 피조물이었다고 가르치는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단을 아리우스 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그리스도는 창조된 피조물이 아니라 낳은 자요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 1장에서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 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우리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을 잘 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를 주셨다 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척도입니다. 이런 독특한 의미에 있어서 자기 아들 입니다. 그것은 주님으로 하여금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라고 말할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말씀은 아버지와 아들이 본체와 영광에서 하나이며 동등하시고 함께 영원하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의미가 아님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아들 ’ 이었습니다. 그는 베들레헴에 아기로 태어났을 때에 아들이 되셨던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그는 육신이 되셨고 사람이 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독생자요 하나님의 아들은 영원토록 아들이셨고 영원한 아들이시며 또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의 성자 하나님 되심은 영원부터 존재했던 것입니다. 부활할 때 아들이 되신 것도 아닙니다.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바울은 부활로 인하여 그 아들 됨이 선언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포되었고 명백히 드러났으며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진리임을 만천하에 선포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사실이고 영원 전부터 진리였던 것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고전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첫 사람 아담은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땅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신 주님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자 하나님이시고 창조된 것이 아닌 독생 하신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하늘로부터 오신 주님 이십니다. 바울이 여기서 상기시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4. 대단원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 사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통찰력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구원 얻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기 죄악에 빠진 죄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오직 그의 유일하신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단순한 인간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 을 보내시는 정도까지 자신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의 구원에 개입하셨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완전하였고 모든 것이 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범죄 하였고 그와 함께 온 세상은 더럽혀졌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사람은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보증하십니까? 답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기 아들 이 계신 것이 그에 대한 보증이라는 것입니다. 피조물도 아니고 심지어 완전한 피조물도 아닌 자기 아들 성자 하나님입니다. 또한 구원은 하나님의 성품과 영광에 의해서 보증된다는 것입니다. 보증은 이중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 자신의 아들이며 영원하신 아들이신 그분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실패할 수 없으며 확실히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은 영광의 주님 영원하신 성자 안에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길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처럼 원수와 싸웠으며 죽으셨습니다. 능력으로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바로 그 길만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수 있는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화되며 최종적으로 영화롭게 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점도 흠도 없이 아버지 앞에 나타나게 될 때까지 우리의 구원이 보증되었고 안전하며 확실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 있으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아버지의 독생자요 영원토록 아버지와 함께 동일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이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베들레헴에 아기로 그리고 인간 예수로 그 독생자를 하늘로부터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세상과 육체와 마귀 그리고 지옥에도 불구하고 확실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