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죽이는 일
1. 본문: 롬 8:12-13
2. 명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성화 구원을 이룰 수 있다.
3. 제목: 몸을 죽이는 일/성화 구원을 이루는 일
1. 갈등
우리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하여 성화 구원을 실제적으로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성화 구원은 사람이 스스로 담당해야 하고 그 안에 계신 “ 성령으로 말미암아 몸의 행실을 죽이라 ””고 부름 받은 하나의 과정임을 알아야 합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성화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어떻게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일 수 있을까요? 그 권면은 13절 “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리.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먼저 ‘ 몸 ’이라는 말부터 생각해 봅시다. 이 말은 10절의 육신의 의미가 아닙니다. 사도는 죄가 머물고 있는 육체적인 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은 물질이 언제나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몸이 언제나 악하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을 하고 죄를 짓자 사람의 전체가 타락하였고 몸과 혼과 영에 죄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탄생한 영은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10절 “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니라 ”그러나 아직도 10절 “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의 가르침입니다. 다른 말로해서 그리스도인이 몸은 비록 중생하였지만 죄가 아직도 그의 죽을 몸 또는 죽어가는 몸에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죄에 대하여 투쟁하고 싸우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몸은 죄와 오염의 도구요 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본능들은 천성적인 것이고 또 정상적인 것이며 그것들이 천성적으로 죄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거하는 죄가 언제나 그 자연적인 본능들을 무절제하고 정욕으로 돌리려 합니다. 너무 많이 먹고 또 과음을 하고 또 너무 탐닉하도록 죄가 충동질하는 것입니다. 죄가 우리 몸속에 남아 있어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죄는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것을 죄 있고 악한 것으로 돌려버리려고 애를 습니다. ‘ 죽이다 ’는 말은 끊어지게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권면은 우리가 ‘ 몸의 행실’을 죽게 하고 몸의 행실에 대해서 끝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에 대한 신약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2. 갈등 심화
몸의 행실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요? 먼저 거짓된 방식에 주의해야 합니다. 로마 가톨릭 방식은 주로 수도원 제도적인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이 세상의 직업에 종사하는 동안 세상과 육신과 마귀와 투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영적인 사람이 되고 싶으면 세상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해서 자신을 전폭적으로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안일과 돈을 포기하고 음식과 마시는 것에 대해서 절제하고 자주 금식하며 이런 등등의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몸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가톨릭은 가르칩니다. 그러나 수도사였던 마르틴 루터가 그 기만성을 폭로한 것이 종교 개혁의 사례 가운데 하나입니다, 루터는 잘 짜여진 프로그램을 충실히 따랐지만 그 싸움은 언제나 자기 안에서 격렬하게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루터는 철저하게 자신의 몸을 물리적으로 약화시키려고 시도했던 행동이 바울 사도가 ‘ 육신의 몸을 죽이라 ’고 말하는 뜻이 아니다. 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해 줍니다. 두 번째는 율법주의의 기만이 있습니다. 가톨릭이 아닌 사람들 속에 있는 율법주의적인 자세입니다. ’ 거짓된 청교도 ‘라고 불리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이들은 진짜 청교도 정신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 기쁨을 비난하고 고된 나날을 ‘살아가는 유의 생활방식입니다. 이들의 생활은 순전히 율법주의 적이며 윤리 도덕주의 자들이었습니다. 이들도 몸의 행실을 죽이기 위한 사도 바울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3. 전환
그러면 참된 방식은 무엇입니까? “ 만일 너희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특별히 “ 영으로써 ” 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이 가톨릭의 수도원 방식과 율법주의와 거짓된 청교도주의에서 기독교를 구별하는 표시입니다. “ 영으로써 ”성령이 우리 그리스도인 안에 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능하게 하시며 힘과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루신 위대한 구원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능력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면 안 됩니다. 요 15장에서 그리스도인은 참 포도나무의 가지들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마귀는 이 세상에 역사하고 있으며 그는 힘에 있어서 강력합니다. 그러나 “ 요일 5:18-19절“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여기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말은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현재 진행형 시제입니다. ’ 하나님께서 난자마다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아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 그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 요한은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진리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계속해서 죄 안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19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악한 자의 팔과 가슴에 있습니다. 그가 세상을 절대적으로 통제합니다. 그런 세상 사람들에게 ’ 몸을 죽이라 ‘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은 마귀의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은 “ 하나님께 속하여 있고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악한 자는 때때로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큰소리치며 위협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를 만질 수도 없고 더구나 그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내주하심으로 우리 속에 있는 능력을 사용하고 행사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 권면은 “ 영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능력을 행사하라는 권유를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을까요? 먼저 영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지위를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많은 고통들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불평하며 지신들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낙담합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들어야 할 말은 벧 후 1:2-4절“ 벧후 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벧후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벧후 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입니다. 이런데도 그리스도인은 자신들이 아무런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불평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 불평과 신음과 탄식을 그치라. 일어서서 너희 속에 있는 것을 사용하라 만일 너희가 그리스도인이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에 능력이 있다. 무능하지 않다. ”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그런 사람에게 자신에 대한 바른 진리를 깨달아 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죄 지을 때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죄짓고 비참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슬프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 나는 실패자요. ” “ 나는 끊임없이 이 죄에 빠집니다. ” “ 이 죄가 나를 넘어뜨립니다. ”그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그들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죄 있는 삶의 주요 고통 거리가 성령을 슬프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즉시 그렇게 하는 것을 멈추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그것을 아는 순간 그의 죄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그는 즉각적으로 행동을 나타냅니다. 또한 우리는 궁극적인 목표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 자신을 영원한 곳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로 생각했다면 우리의 전체 사고방식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요일 3:2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만나는 고통의 대부분은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한 삶에 대하여 너무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살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빌 3:20절“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는 거기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생각을 먼저 한다면 죄에 대해서 싸우는 문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베드로는 이런 삶을 살면 실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실족하지 않으려면 이런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갈 5:16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 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도록 능력을 주셨습니다. 또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구하는 자에게 계속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약속하셨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령 충만을 구하십시오. 성령 충만은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 바른 간계를 맺어 성령이 나를 온전히 다스리도록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 몸의 행실을 죽이십시오. ‘ 이것이 성화 구원의 신약 성경의 방식입니다.
4. 대단원
그렇다면 특별히 몸을 죽이는 일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첫째로 그리스도인은 죄를 삼가야 합니다. 벧전 2:11절“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여기 우리가 투쟁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도 없습니다. 다시는 그런 것을 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죄로부터 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 나는 약하고 할 수 없어요 죄의 유혹은 너무 큽니다. ”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은 나그네와 행인으로서 자신을 바로 인식하고 제어하라고 말합니다. 엡 4:28절”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 또 29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 그런 것을 하지 말라 중단하라. 또 엡 5:11-12절” 엡 5: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엡 5: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바울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라고 합니다. 벧전 3:10-11절” 벧전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한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혀를 조심하라. 우리는 악과 교제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는 한 악한 것들과는 멀리 떠나야 합니다. 고전 9:27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바울은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킨다고 말합니다. ” 이 일을 다투는 자마다 “자신을 절제해야 합니다. 경기에 들어가는 사람은 술을 끊고 담배를 끊습니다. 상을 얻기 위해서 그러합니다. 자신을 절제하고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킵니다. 여러분이 몸의 행실을 죽이기 위해서 “ 육신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자리에 서지 아니하고 ”여러분이 경건한 삶을 원한다면 여러분의 시간을 어두운 길거리 구석에서 보내지 마십시오. ‘ 죄인의 자리에 서지 마십시오. ’ 더구나 ‘ 오만한 자의 자리에 ’’ 앉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악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 피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실족하여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욥은 " 내가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라고 말합니다. ” 똑바로 쳐다보고 좌로나 우로나 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죄로 이끌어 가기 쉬운 어떤 것도 보지 마십시오. 또 동기와 충동과 유혹을 처리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실족하게 될 것입니다. 약 1:13-15절”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죄의 충동은 정욕을 불러일으키고 탐심을 조장합니다. 그러기에 초반에 처리해야 합니다. 싹이 틀 때 잘라버려야 합니다. 즉각적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행동하지 않더라도 마음으로 죄를 즐기는 것도 하나님 앞에 죄요. 마음으로 허락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상상과 생각조차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싹이 트기 전에 잘라버립시오. 그것을 미워하십시오. 성경은 ” 깨어서 믿음에 굳게 깨어라 “ ” 서라 “는 것입니다.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믿음에 굳게 서라고 말합니다. ” 남자답게 굳게 서라 “ 우리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사모해야 될 것은 그리스도인답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할 만한 그리스도인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은 우리 주께 이끌 것입니다. 복음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베드로는 벧 전 2:9-10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비참한 자 실패자 무능한 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 오히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 우리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벧전 2:10절“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우리가 이런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탁월성을 보여 주는 데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가장 큰 소원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을 찬송케 하려는데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교훈입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달라짐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다른 사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여 주어야할 사명자입니다. 죄를 지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잘못 나타내 보이는 것이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신입니다. 그리고 사신답게 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케 하십시오. 잠시 동안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