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에서 행방되는 길(수정본)
1. 본문 롬:8:1-17
2. 명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이 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정죄 의식과 패배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다.
3. 제목: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에서 해방되는 길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 서로 싸워 치열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 해결책이 성령충만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을 구하는 우리 신앙생활 앞에는 넘어지고 자빠지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도 또한 현실입니다. 그러다가 경험하는 것이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입니다. 정죄 의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 라는 정죄 의식을 가지는 순간 깊은 패배 의식에 빠집니다. 그렇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예수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1절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이 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앙생활 중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에서 해방되는 분명한 이유를 성령님의 역사를 통해서 알려 승리하도록 돕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이 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요?
1.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음을 믿음으로서 가능합니다. 롬 7장에서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는 두 가지 법이 작용한다고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법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의 법은 사망의 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생명의 법입니다. 성령님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의 법으로서 죽었던 것을 살리시는 생명의 법입니다. 반면 죄의 법은 항상 죽게 만듭니다. 죄는 죽이고 결론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런데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고 그리스도인을 해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2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해방은 장차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이겼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죄와 사망의 법은 율법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정죄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으로 그 자체는 의롭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으로 완전함 즉 100점을 요구합니다. 모든 인생이 율법 앞에 서면 결국 정죄 의식으로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이 생깁니다. 이런 연약한 인생을 위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시기 위해 죄인들을 대신하여 희생 제물이 되셨습니다. 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인생들은 예수님의 피 공로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 즉 율법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내가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즉 내 삶이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더 이상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율법의 요구를 십자가에서 다 만족 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은혜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모든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법인 성령님을 보내 주서서 하나님의 백성을 돕고 계십니다. 이제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은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죄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더 이상 정죄 의식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옥의 권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 즉 성령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패배 의식에서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원천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이 믿음으로 승리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여호수아에게 다윗에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내가 세상 끝날 때 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 믿음을 가지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확신을 선포했습니다. 마귀가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두려움입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빠지면 깊은 실패 의식에 종노릇 하게 됩니다. 나는 못해. 나는 할 수 없어. 나는 실패자야. 이 사람들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내 안에 계신 너무나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마귀의 공갈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믿음 없는 불신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불신을 책망하셨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배안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돌풍과 함께 큰 파도가 제자들이 타고 있었던 배를 때리자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라고 두려워하며 그런데도 주님은 주무시고 계십니까? 라며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왜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없는 자들아! 라며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바로 옆에 계셨지만 강풍이 부니까? 예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강풍과 파도만 바로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믿음을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성령님으로 예수 믿는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이 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정죄 의식과 패배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정죄의식과 패배 의식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요?
2.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성령님이 우리 죽을 몸도 살리심을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성령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영이시오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이 성령님이 죽을 우리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11절.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님은 창조자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그 성령이 내 안에 계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절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극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만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는 모든 자도 장차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요 11:25-26 “ 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죽음이 없습니다. 죽어도 천국이요. 장차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은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에 기초한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살리기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에 대한 이 주님의 사랑에서 끊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롬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멘! 이 부활신앙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입니다. 이 부활의 영이신 성령은 또한 우리의 죽었던 몸도 변화 시키십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영이신 성령님은 죽은 우리의 행실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구약 시대의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 시키신 분이십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사기꾼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참으로 변화되기 힘든 고래심줄 보다 더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을 마침내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싸워 이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누가 하나님과 싸워 이길 수가 있을까요? 역설적으로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한 사람만이 하나님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야곱은 젊을 시절 자기의 육신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지만 수많은 역경을 통해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나는 안 되다. 저 사람은 안 되라는 패배주의는 성경적인 신앙이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은 할 수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나는 할 수 없지만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께서는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은 나의 죽을 행실도 변화 시키실 것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이 하시는 일들을 통해서 정죄 의식과 패배의식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정죄 의식과 패배 의식에서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요?
3. 성령님이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그리스인들을 인도하십니다. 14절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누가 하나님의 아들입니까?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15절“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을 통해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먼저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 속에 임함으로만 가능합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십자가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믿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믿게 하시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고백이 됩니까? 그 고백을 주시는 분이 성령님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관계를 당시 로마 시대 때에 유행했던 양자라는 제도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양자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지만 로마 시대는 양자를 자기 친자식처럼 어떤 경우에는 자기 친자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양자를 삼으면 먼저 가정교사를 붙여 줍니다. 가정 교사는 양자에게 그의 부모가 어떤 분인가를 잘 가르치고 부모가 원하는 교육을 충실하게 시킵니다. 그리고 교육이 끝나갈 즈음에 그 가정교사는 그대를 위해서 그대에게 양부모가 된 분들은 놀라운 상속을 준비해 놓았다.라는 말로 격려해 줍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도 이와 똑 같습니다. 성령께서 찾아오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하고 부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른다고 했습니다. 아바라는 말은 원래 아람어입니다. 우리말의 아빠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실 수 있는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성령님이 내 마음 속에서 허락하신 축복입니다. 또 성령님은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을 계속해서 가르치십니다. 성령님은 가정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율법이 우리의 가정교사였습니다.. 율법은 몽학 선생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새로운 가정교사이신 성령께서는 우리를 정죄하는 대신에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하는 아빠이심과 그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새로운 가정 교사이신 성령님께서는 교육이 끝날 무렵에 이런 얘기를 하십니다. 너희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이런 놀라운 재산을 준비하셨고 너는 그 성속자다.라고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넘어지는 순간도 있고 쓰러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손을 잡아 이끌어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패배자로 이 세상에 끝날 사람이 아니야 인생의 마지막 걸음 저 건너편에 너를 위해서 빛나는 천국과 영원한 기업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상속자란 말이야.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너를 위해 준비하신 이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곳의 상속자가 되어야 해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빛나는 영광의 상속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잠시 우리를 지치게 하고 쓰러지게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넘어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의 애기입니다. 홀어머니로서 행상을 하시고 콩나물 장사를 하시면서 자녀들을 교육시켰습니다.. 이 어머니께선 무척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자식들이 성공하고 장성했는데도 자식들과 같이 사시지 아니하고 혼자 자그마한 오두막집에서 사셨습니다. 자식들이 너무 미안하고 황송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어머니 이제는 아파트로 이사 가시지요. 아니면 단독 주택으로 옮겨가시게 해드릴께요 라고 하며 졸라대자 어느 날 어머니는 자식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정원한다면 나를 위해 이렇게 집을 지어라. 그 집은 바닥을 반드시 유리로 지어야 한다. 유리뿐만 아니라 기둥을 꼭 12개를 세워야한다. 그리고 그 기둥의 밑바닥에는 반드시 보석을 박아야 하는데 그 보석의 색깔이 다 달라야 하고 문을 12개로 만들어야 한다. 그 말을 들은 자식들은 기가 막혀서 어머니 농담하지 마세요. 그런 집이 어디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어머니는 없으면 그만둬라.. 나는 그 집을 하늘나라에 갖고 있으니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어머니가 소박한 삶 속에서도 당당하게 사셨던 비밀이 무엇일까요? 저 빛나고 영광스러운 하늘나라의 상속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런 소망이 있다면 이 땅에서의 삶이 때때로 우리를 지치게 하고 우리를 낙망하게 한다 할지라도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을 사도는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사랑하시는 여러분이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을 보장하시고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면 왜 우리는 실망합니까? 왜 넘어집니까? 우리는 패배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며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승리의 사람이라는 것을 예수님 앞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