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의 감증(수정본)
1. 본문: 롬 8:7-14
2. 명제: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은 행위로 그 열매를 보여 주게 된다.
3. 제목: 행위의 검증(수정본)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것은 우리가 진실로 참 그리스도인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시금석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있습니다. 이것이 롬 8장의 주제입니다. 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14절“무 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울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 혹은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단지 교회에 나오는 것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주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입으로 말하는 것이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입증해 주지 않습니다. 새로운 본성을 부여받는 것 성령의 내주 하심 그것만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입술의 고백과 행위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또 다른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행위의 검증입니다. 즉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테스트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바로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만 한다면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실제로 그분의 뜻을 행위를 통하여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위에 대한 강조는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사람은 행위로 그 열매를 보여 주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
1. 새로운 태도를 갖게 만듭니다.
바울 사도는 거룩한 행위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에서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그리스도인의 행위를 나무와 열매와도 같다고 말씀합니다. 나무와 열매를 별개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먼저 나무가 있어야 하고 그 후에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은 성령이 내주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그 안에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이 그에게 새로운 본성을 주시고 그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다루시고 그 속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령의 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도록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우리 속에 계신다면 당연히 성령의 활동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이 내 속에서 먼저 새로운 태도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가장 먼저 성령님은 행위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태도와 생각을 부여합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 문제를 전혀 새로운 방식을 갖도록 만드십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행위의 문제를 율법이나 도덕이나 윤리의 즉 양심의 문제로 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문제로 보게 하십니다. 바울 사도는 ”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행위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인 태도는 윤리 도덕 즉 양심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행하시는 첫 번째 일은 우리로 하여금 이 행위의 문제를 율법이나 윤리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의 거룩하신 성품과 속성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율법을 싫어한다면 그 사랑은 허황된 것입니다. 율법 즉 말씀은 하나님의 존재의 표현이기에 내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나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나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성령님이 알게 해주십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의 율법 즉 말씀을 엄격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엄격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내가 말씀의 어떤 부분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부당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행위를 하나님과의 관계의 차원에서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행위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개별적인 행동이나 죄가 아니라 우리의 ‘ 마음의 상태 ’라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바울은 마음의 상태를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마 15: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 눅 6:45”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우리는 개별적인 행동보다 우리의 마음의 상태와 태도에 대해서 관심을 우선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서 빗나갑니다. 그들은 ” 내가 술을 마셨습니까? 도박을 했습니까? “라는 식으로 특정한 행동들에 질문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누군가가 아니요 라고 대답만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을 전혀 행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영이 전혀 없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금식을 했고 십일조를 드렸고 구제에도 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습니다. 성령이 행위에 대해서 가르치실 때에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 우리의 마음의 상태와 욕구 특정한 일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 ’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행위 그 자체만으로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저 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합니다. 선한 사람 중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의 내주 하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을 닮는 것이 진실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단순한 도덕과 성경적인 거룩과 성화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우리가 세운 높은 윤리 도덕 수준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나 마음의 상태와 태도 ’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내 마음의 상태가 어떤지를 살펴보십시오. 또 우리는 행위의 문제를 행복이나 축복을 차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를 향한 ‘ 하나님의 뜻과 계획 ’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시면 거룩하십시오. 성경은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거룩해야 할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를 향한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그러므로 혹시 거룩함의 길이 나를 힘들게 하고 세상에서 불행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내가 거룩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거룩해야 합니다. 성경은 행위의 문제와 관련하여 성령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태도를 부여하신다고 가르쳐 줍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
2. 새로운 관점을 주십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우리가 행함이 없다는 것은 전적으로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은 죄의 진정한 성격을 보여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기 까지는 어느 누구도 죄가 진정 무엇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라면 우리는 단지 이런 일은 옳고 저런 일들은 나쁘다고 인식하는 정도로 그칠 뿐이며 죄의 본성에 대한 참된 깨달음을 얻지를 못합니다. 오직 성령의 역사로만 사람이 진정 죄가 무엇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명 즉 율법을 어기는 것 ”입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자범죄가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이 죄의 흉악함을 보게 됩니다. 오직 성령만이 죄가 더러운 종양 같아서 사람 속으로 들어와서 결국 그 인생 전부를 망쳐 버린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전하게 만드셨으며 인간으로 하여금 좋은 선물을 누리게 하셨지만 그러나 죄가 들어와서 인간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 것을 보게 합니다. 죄를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고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빼앗은 원수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은 범죄 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게 하십니다. 성경은 비록 인간이 비록 어리석어 죄를 범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외면하시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여기에 범죄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참 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그 사랑에 대하여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인간이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보기 시작하는 그 새로운 시각 때문에 필연적으로 행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만이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계시하십니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즉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2 하나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거역하는 것을 참으시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여러분과 죄의 형벌을 감당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주셨으며 자기 자신을 주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우리가 계속해서 죄 안에서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일까요? 천만에요! 우리로 하여금 그분에게 속한 특별한 백성이 되어 선한 일에 열심을 내도록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 앞에 서도록 우리를 예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이것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행위의 문제와 관련하여 전혀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다리는 부활을 바라보게 하는 것 역시 성령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계시합니다. 바울은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내가 죽어도 내 생명과 존재는 끝나지 않습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이 올 것이며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성령께서 나를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실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과 그분을 뵈올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는다면 한 가지 논리적 결론만이 있을 뿐입니다. 요일 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우리가 죄의 본성과 하나님의 사랑과 부활에 대해 생각한다면 우리의 행위는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 안에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
3. 새로운 능력을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준다고 해서 그 율법이 사람들로 하여금 선한 삶을 살게 하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완벽한 율법을 주셨지만 그들은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마귀는 연약한 우리 인간의 본성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듭니다. 마귀의 유혹을 인간이 이길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서 모든 도덕 체계가 무너집니다. 인간의 육신이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성령의 법이 우리를 전혀 새로운 위치로 옮겨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하나님께서 무기력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면서 그분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신 분이십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정죄 속에 있지 않습니다. 또한 더 이상 죄의 권세 아래 갇혀 있지도 않습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셨으며 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에 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논리적인 결론이 있습니다. 성령이 있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율법 즉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법 즉 말씀은 순결하고 거룩하다는 새로운 시각을 가집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며 따라서 그분의 율법 즉 말씀도 사랑하고 지키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도덕을 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형벌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는 속박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그 자유함 가운데 실제의 행동과 삶에서는 그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 즉 성화 구원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죄는 하나님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는 원수로 여깁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보았기에 죄를 미워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창조 세계를 오염시킨 죄를 혐오하며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자 열망합니다. 그는 “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봅니다. 그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그는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에 애착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히 12:14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니 성령이 있는 사람은 이런 선한 행위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갈 5:23절에서 “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라고 바울 사도가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을 소유하며 성령을 따라 살고 있는 참 그리스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