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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무엇이냐?

wordlove 2021. 2. 20. 07:31

1. 본문: 18:28-40,

2. 명제: 인간의 죄가 예수님을 죽게 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이런 죄인을 위해 대신 죽으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신다.

3. 제목: 진리가 무엇이냐?

 

 

1. 갈등: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흉계로 죽이고자 의논하되

부활 주일이 4월 첫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기전 먼저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고난 주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데는 여러 종류의 인간들의 죄들이 총동원되었습니다.. 먼저 유대인들의 시기심의 죄가 동원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이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과 장로들의 배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걱정이 찾아왔습니다. 모두가 예수 따라 가면 우리는 뭐냐? 이러다가 우리는 밥 굶겨 생겼다. 우리 자리가 위태로울 것 같다. 그렇다면 예수를 죽여 버리자 아예 싹을 잘라 버리자 그런 악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시기심이란 남이 잘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걸고 넘어뜨리려는 악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명분이 없으니까? 거짓 명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다. 그리고 신성 모독죄를 범했다. 예수는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악한 자다.라고. 백성들을 거짓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 대중들은 소수의 이런 거짓선동 가들의 사주를 받아 깊이 알지도 모른 체 그냥 손을 들고 으싸! 으싸! 하며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함을 친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는데 주연으로는 대제사장이 전두 지휘를 했고 그리고 조연으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사주받아 동원된 일반 민중들이 다 힘을 합쳤습니다. 죄를 마음에 품자 진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죄는 인간의 눈을 어둡게 만듭니다. 그리고 또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는 정치적인 문제인 것처럼 교묘하게 만들어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때를 지어 로마 총독 빌라도 관저에 모였습니다. 군중의 힘을 이용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파견한 로마 제국의 신하였습니다. 황제의 눈에 안 들면 신하는 그 날로 끝장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데로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게 지나가고 싶어 하는 것이 관료들의 속마음입니다. 이것을 잘 아는 유대인들은 빌라도를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는데 우리 왕은 로마 황제 밖에 없다. 그러니 예수는 로마 황제를 반역하는 반역자다. 빌라도 당신이 황제를 반역하는 예수를 살려두면 당신은 황제의 충신이 아니다. 당신도 역적이다. 그러면 우리는 당신의 죄를 로마 황제에게 고발 하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폭압으로 다스리는 로마 황제를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예수님을 죽이는데 유대인들은 자신의 양심을 다 내평기치고 자신들이 로마 황제의 충신인 것처럼 위선의 가면을 쓴 체 아부를 떨었던 것이었습니다. 죄는 이렇게 악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온갖 거짓 흉계를 다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에서 시작한 죄는 고목나무처럼 자라 이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활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기심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빌라도가 아무리 예수님을 조사를 해 봐도 실정법상 죄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종교 문제는 너희들이 알아서하라고 유대인들에게 말하고는 예수님을 석방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을 석방하고 대신 강도짓을 하다가 감옥살이하는 바라바를 처형하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악마 성을 보십시오. 우리는 예수를 원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하라고 고함을 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강도 바라바 대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하라고 외쳤습니다. 이처럼 죄는 의 보다 불의를 더 좋아합니다. 죄는 진리 보다 악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협박과 공갈에 결국 두 손을 들고난 빌라도는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 선언을 하며 손을 씻었습니다. 그러자 이 유대인들의 완악함을 보십시오. 그 사람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라고 큰소리쳤습니다. 마마 27:24 “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 27:2527: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죽인 이 완악한 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의 망 말대로 이루어진 것일까요? 예수님을 죽인 유대 나라는 약 40년 후 AD 70년경 로마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고 살아난 자들은 다 노예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그 때부터 약 2000년 동안 유대인은 나라 없는 백성으로 방랑하며 핍박받으면 히틀러 시대에는 600만 명이 가스실에서 개죽음 당하는 참으로 비참한 민족이 된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유대인의 시기심이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시기심은 모든 인생들이 가진 시기심의 영적 아비일 뿐입니다. 우리는 과거 차범근 선수, 이영무 선수, 박주영 선수들이 골을 넣고 기도하는 세리머니를 자주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불교계에서 이것은 종교 차별이니 금지하라고 항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종교 차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기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늘도 인간의 시기심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의 이기심의 죄는 사실 나의 죄임을 아십니까?

 

2. 갈등 심화: 나는 그에게서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동원된 또 다른 인간의 죄는 로마 총독 빌라도의 이기심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하는 이기심 때문에 결국 진리 되신 예수님을 거절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유대 나라는 헤롯 왕이 다스렸지만 빌라도는 로마 제국의 파견된 고급 관리로서 피식민지 국가인 유대 나라의 사법권과 병권을 지고 있었던 권력의 실세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당장 죽이고 싶었지만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빌라도를 찾아온 것입니다. 빌라도는 유능한 로마 제국의 행정관답게 다방면에서 예수님의 죄를 추궁해 보았지만 유대인의 고발의 원인은 유대인의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간파하고 무죄이므로 석방하려고 무척 애를 셨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진리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이기심 때문에 결국 진리 편에 서지 못하고 예수님을 거절하는 악마의 편에 서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예수를 살려두면 당신은 역적 편을 드는 반역자임을 명심하시오 라는 유대인들의 공갈 협박에 굴복하여 결국 자신의 양심을 접고만 것입니다. 그리고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허락하고 만 것입니다. 빌라도의 이기심이 예수님을 죽게 했습니다. 빌라도는 양심의 소리 보다 현실의 자기 유익을 따라간 사람입니다. 빌라도는 이기심에 따라 살다가 무책임하고 비겁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승승장구 출세 가도를 달렸을까요? 역사에 의하면 그 후 빌라도는 로마 황제의 신임을 잃어버리고 로마로 소환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에 가면 숙청을 당할 것임을 미리 짐작하고 자결로 생애를 끝냈다고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우리가 예배 때 신앙고백을 할 때마다 빌라도 이름을 암송합니다. “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빌라도 그 이름은 참으로 부끄러운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구주를 죽이는데 일등 공신인 빌라도의 이기심의 죄는 인간을 이렇게 부끄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빌라도의 이기심은 오늘도 우리 인간 가운데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아십니까? 이기심 때문에 많은 인생들이 진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맞이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기를 거부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바로 현대판 빌라도 후손들인 것입니다. 왜 신앙생활이 성장이 안 되는 줄 아십니까? 예수님에게 주인의 자리를 양도하기를 거부하고 빌라도처럼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기를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하기가 싫고 부패한 죄성을 따라 자기가 주인 되어 자기 마음대로 자기 고집대로 살고자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현대판 빌라도입니다.

 

3. 전환: 진리가 무엇이냐?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 대게 침묵하셨습니다. 왜 침묵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여!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보십시오. 돼지는 진주의 가치를 모릅니다. 가치를 모르는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면 돼지는 그 진주를 밟아 버립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돼지 같은 인간들이 하는 헛된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변명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가 그 모습을 보시고 놀랐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 저 예수는 이상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야 무언가 남달라 이렇게 어렴풋이 감을 참았지만 그러나 빌라도의 이기심이 진리를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소경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에 대해서는 결코 양보하시지 아니하시고 당당하게 선포하셨습니다.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자 네 말이 맞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여있지 않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왕이다.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십니다. 이 세상 왕처럼 싸워 빼앗는 왕이 아니며 거짓으로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진리로 다스리는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인생들을 인 도하시 위해 오신 진리이요. 길이시요. 생명이신 것입니다.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 무엇이냐 라고 묻자 예수님은 침묵으로 대답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침묵으로 대답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죄인이 죄 용서함을 받는 구원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어린양이나 비둘기 같은 짐승을 제사장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사람의 머리 위에와 짐승의 머리 위에 손을 얻어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사람의 죄를 이 죄 없는 짐승에게 전가 시켜주옵소서 라고 기도한 후 그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이 짐승은 이 죄인 대신 죽은 희생 제물이 된 것입니다. 이 짐승의 죽음으로 하나님은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저가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마는 그 목사님이 몽골에 가서 양을 잡는 광경을 직접 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양은 주인에게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찌릅니다. 그리고 손을 넣어 심장을 누르면 그 자리에 쓰러져 죽는다고 합니다. 양이 아무런 반향을 하지 않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악한자로부터 온갖 모진 고초를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예수님은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아니하십니다.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악한 죄인인 우리를 위해 대신 죽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죄인들이 살아나는 길을 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스스로의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없음을 아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기 위해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대신 죽으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십니다. 아멘!

 

4. 결단: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며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부활 주일이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의 영광을 덧입고자 하신다면 먼저 십자가를 지나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외면하고 부활의 은혜와 능력과 영광을 덧입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큰 실수는 십자가 없는 부활만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의 영광만을 꿈꾸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기독교가 아니라 미신에 불과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려면 십자가를 통과해야 합니다. “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보혈을 지나 아버지 품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네. ”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갈 수가 없습니다. 죄인이 십자가를 지고 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주 예수님이 내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신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은혜를 통해서 누리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이 부활의 은혜와 영광을 누리고자 한다면 먼저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 앞에 겸손이 나아와 자신을 정직하게 내려놓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나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여 먼저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시기심의 죄는 사실 나의 죄임을 아십니까? 내 시기심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지금도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빌라도의 이기심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임을 아십니까? 나의 이기심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지금도 못 박고 있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성령 충만 하지 못합니까? 그 이유도 바로 주되신 주님께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바로 나의 이기심의 죄 때문인 것입니다. 이번 고난 주간에 유대인의 시기심의 죄와 빌라도의 이기심이 바로 나의 죄임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깊이 회개하는 시간들이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멘!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셨는데 왜 아직도 예수님 믿기를 주저주저하시는 분 계십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기를 거부하면 내 죄를 심판하시는 거룩한 심판자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내 죄 때문에 심판 받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는지 모릅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나 혼자 왔듯이 나 혼자 가야 합니다. 자식도 부모도 남편도 아내도 같이 가주지 못합니다. 자식 부모 남편 아내 눈치 볼 것 없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을 믿으세요. 예수 믿는 복이 가장 큰 복입니다. 영생의 복입니다. 왜 영생의 복을 외면하십니까? 버스 지나간 후 손드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마십시오. 오늘 예수 믿으세요. 오늘 회개하십시다. 오늘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