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love 2021. 3. 15. 07:41

1. 본문 요 3:3-5

2. 명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3. 제목: 거듭남

 

1. 갈등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시는 짧고 소중한 3년 가운데 아주 많은 시간을 논쟁하고 논박하며 질문에 답하는데 쓰셨습니다. 그분은 큰 인내심으로 사람들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고 답하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또 다른 오해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는 주님과 니고데모의 유명한 대화 속에서 나타납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선생이며 바리새인인데 늦은 밤에 주님을 면담하러 왔습니다. 주님은 특별히 어려운 문제들을 다루셨고 질문에 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니고데모의 이야기에서, 주님은 어느 때보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진짜 비결에 이릅니다. 니고데모의 이야기에는 매우 주목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질문조차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보십시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이때 갑자기 주님이 니고데모의 말을 끊으십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단지 주님을 칭찬했을 뿐인데 주님은 니고데모의 말을 가로막으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질문을 하려 했지만 주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그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에 관한 심오한 진리를 제시하십니다.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요 이스라엘의 선생인 니고데모는 보통 사람들에게 종교와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주님은 니고데모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아십니다. 우리는 그분에게 그 무엇도 숨길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에 관한 명확하고 분명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현대인의 혼란에 대한 진정한 해답이 여기 있습니다. 왜냐하면 니고데모의 태도가 곧 현대인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어떤 목사들은 교회가 세상 수준에서 그들을 만나야 하고, 그렇게 할 때 그들은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지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은 여기서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2. 갈등 심화

첫째는 이 말씀을 단순히 반복하십니다. "너는 거듭나야 한다.” “너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도전을 주십니다. 그분은 사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좋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 하지만 너는 그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그 말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 너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진실로 진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남! 이것은 중요한 단어이며, 기독교의 핵심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단어를, 위로부터 나다 born from above "로 번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람어로 이 말은 " 한 번 더 태어나지 another birth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결코 볼 수 없다 "는 뜻입니다. “다시 태어나다", "한 번 더 태어나다", "위에서 나다”, “성령으로 나다는 모두 같은 뜻입니다. 이것은 신약성경의 중요한 교리입니다. 소극적인 의미로써, 기독교는 단순히 우리가 이미 가진 것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전보다 조금 나아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니고데모의 말을 가로막으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니고데모가 바로 이런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를 보십시오. 저는 유대인의 지도자며, 이스라엘의 선생입니다. 저는 추가로 뭔가를 원합니다. ……..”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침묵해라! 너는 아무것도 덧붙일 수 없다. 너는 반드시 거듭나야 한다. 너에게는 새로운 기초가 필요하다. 너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 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의 소극적 의미입니다. 적극적 의미도 있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해체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선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모두 제거되고 해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 페인트를 실하거나 유리창을 몇 게 갈거나 지붕을 새로 고치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때로 새로운 창조나 "거듭남이라 불립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개선하거나 조금 더 좋게 만드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새 생명을 우리에게 불어넣으십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벧후 1:4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 가됩니다.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3. 전환

두 번째 말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렇다면, 왜 우리가 거듭나야 합니까? 첫 번째 이유는, 우리는 본질상 우리의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새 생명이 필요하다면 지금 내게 있는 생명은 무엇인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다만 우리 자신을 현재보다 조금 더 낫게 하는 정도라는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두 가지를 그만두고 두세 가지를 더하면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도덕이나 윤리적 행위나 철학입니다. 우리는 거듭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의 모습으로는 영적인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늘 이 사실이 강하게 다가옵니다. 니고데모는 이 사실을 아주 철저하게 증명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고, 매우 훌륭한 사람이며, 유능한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교육을 잘 받았으며 유대교의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하면 니고데모는 너무나 우둔하고 어리석습니다! 니고데모는 영적인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말씀하십니다. 5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의 반응을 보십시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그의 말은 괴상하고 우스광스럽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말입니까? 주님은 놀라운 영적 선언을 하시지만 니고데모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그러자 니고데모가 묻습니다. 9"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니고데모는 완전히 헤매고 있으며 아직도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니고데모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의미심장하게 표현합니다. 고전 2:14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알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현대인들은 이러한 영적 진리와 마주칠 때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합니다. 이들은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며 따를 수도 없습니다. 이들은 완전히 무지합니다. 이들이 얼마나 똑똑한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인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물과 성령을 이들 앞에 제시한다면 이들은 니고데모처럼 틀림없이 말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보야 너는 나를 따를 수 없다. 너는 내가 사람이 육체적으로 두 번째 태어나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말하고 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이것이 내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네가 왜 나를 따를 수 없는지 네 자신이 더 잘 안다. 너는 육에 속했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 며 너 자신을 넘어설 수 없다. 계속 자신의 본성대로 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선생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니고데모야, 너는 나처럼 생각할 수 없다. 너는 전혀 다른 영역에서 살고 있다. 너는 태어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데도 음악을 이해하려는 사람이나, 눈이 완전히 멀었는데도 미술 비평가가 되려는 사람과 같다. 너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의 본성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배운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8: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들은 눈이 멀었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이들이 가진 육적인 본성은 하나님과 맞섭니다. 이들이 육신의 생각은 우둔하고 맹목적이고 어리석을 뿐 아니라 주님은 요한복음 3: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현대의 선생들이 이 부분에서 잘못된 길로 나갑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들은 마치 문제가 지적인 데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왜 사람들이 그 빛으로 향하지 않습니까? 왜 사람들이 그 빛을 믿고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주님은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음행과 어둠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부패했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새로운 본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로,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거듭나야 하는 이유는, 그 나라는 " 하나님의 나라 " 입니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나라가 아닙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눅 17:21"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도덕이나 행동 규범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영적인 영역으로써 전능하고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다는 뜻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담 및 하와 사이의 옛 관계가 회복되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친구가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상속자로 영적인 영역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거하고 그분과 교제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는 빛과 영광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우리 속에 있는 것이 그 나라에 맞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단지 한 나라의 본성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생각과 계획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일은 무엇이며,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니고데모는 알지 못합니다. 니고데모야, 나는 너에게 땅에서 말하고 있지만 하늘에 있다. 나는 인자다. 이해할 수 있겠느냐?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물론,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네가 거듭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주님은 육신이 되신 말씀입니다! 성육신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기적입니다! 주님은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입니다!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14-16모세가 광 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제 이해하겠느냐?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됩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노력하고 더 나은 삶을 살며 예배에 참석하면 됩니까? 아닙니다! 길운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인자가 반드시 내려와 광야에서 뱀이 들렸듯이 들리셔야 합니다. 이것은 육에 속한 사람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래서 내가 그를 위해 죽었다. 그 옛날 광야에서 놋뱀이 들렸으며 뱀에게 물렸으나 그 놋뱀을 바라보았던 모든 사람이 나았듯이 나도 들려야 한다. 내가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하며, 누구든지 나를 바라보고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 ”이것이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라고 말합니다. 지금도 인간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말합니다. 한 사람이 모두를 위해 죽어야 한다는 것은 부도덕하다! 불가능하다!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나를 구원해야 한다. 아닙니다. 이 십자가의 도가 육에 속한 사람은 이 길을 싫어하고 거부합니다. 사람들은 나이 들고 죽기 직전이라도 거듭나고 새로운 본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며,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 가르침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에 속한 사람은 거듭나야 합니다.

 

4. 대단원

마지막 말씀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어떻게 거듭날수 있습니까? 거듭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을 거듭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나야하며 성령으로 나야 합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입니다.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자 못하다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거듭남은 큰 신비입니다. 왜냐하면 거듭남은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본성은 하나님만이 베푸실 수 있습니다. 새로운 본성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를 다시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거듭남은 바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바람이 빚어낸 결과를 보며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지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여기에 신비가 있습니다. 바람은 왔다가 가며 무언가를 하지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한 사람이 새 사람이 된 자신을 발견합니다. 사람이 5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물이라는 것은 세례이며 또 회개라고 해도 좋습니다. 한 사람이 말합니다. 이제야 제가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저는 악하고 더럽습니다. 저는 깨끗해져야 합니다. 이런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저는 씻겨야 하며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거듭남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애원하는 자로서 도와줄 이 없는 자로서 희망이 없는 가난한 자로서 자신을 하나님의 자비에 맡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기고, 여러분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새 생명을 주시도록 그분께 구해야 합니다. 거듭남이 하늘의 진리이며 하나님이 하늘에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십시오. 여러분의 작음과 무능과 무지를 인정하십시오. 포기하고 항복하십시오 자신을 전능하신 사랑의 하나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분을 믿으십시오. 그분은 니고데모를 대면하시고 "너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뭐든지 줄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