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설교

마리아 신앙과 마르다 신앙

wordlove 2009. 8. 31. 07:21

1. 본문: 눅 10:38-42

2. 본문 중심 진리: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제자들과 방문하시자 언니 마르다는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밑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다. 이때 마르다가 예수님께 내 동생에게 나를 도우라고 명령 하소서 라고 부탁을 하자 예수님께서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하가지만 하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3. 주제: 우선적인 선택

4. 테마: 더 좋은 우선적인 선택

5. 명제: 주님과의 관계 맺는 것이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먼저 해야 할 좋은 선택이다.(비교적 명제)

6. 목적: 바쁜 일의 종이 되어 주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을 소홀히 하는  우리의 잘못된 습관을 고쳐서 주님과의 관계 맺는 일에 우선적인 선택을 하는 삶을 살도록 돕기 위해서

7. 질문제기: 왜 주님과의 관계 맺는 것이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먼저 해야 할 좋은 선택인가?(Why?)

8. 중심단어: 이유들

9. 전환 문장:  주님과의 관계 맺는 것이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먼저 해야 할 좋은 선택이다. 왜 주님과의 관계 맺는 것이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먼저 해야 할 좋은 선택인가?

10. 대지

1) 인간 본성은 육신적인 바쁜 일에 먼저 분주하기 때문이다.

2) 자기 의를 높이고 남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3) 주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4) 주님과 먼저 친밀한 관계를 맺은 심령이 진정 성령의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11. 제목: 마리아 신앙과 마르다 신앙/빼앗기지 아니하는 더 좋은 선택

12. 복음: 예수님은 어떤 일보다 먼저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


본문: 눅 10:38-42


1. 갈등: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함.

예수님이 특별히 가까이 하신 집안이 있었습니다. 마르다 마리아 자매와 오빠인 나사로의 가정이었습니다. 이들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나 부모님을 일찍 여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더 가까이 하셨는지 모릅니다. 오빠 나사로가 가정의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빠 나사로가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가정의 기둥이 무너진 것입니다. 가정에 큰 슬픔이 찾아 왔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오셔서 죽은 지 사흘이 되어 이미 장사지낸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가셔서 나사로야! 이름을 부르시니 나사로가 죽음에서 일어나 부활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은 장차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 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장차 부활 하실 것을 예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은혜를 받은 이 가정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남다른 감사를 가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이 이 가정을 방문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언니 마르다는 손님으로 오신 주님과 제자들을 위해 대접할 음식을 장만하느라 마음이 더욱 분주했습니다. 마르다 언니는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친절과 책임감이 아주 강한 좋은 덕성을 가진 여성 같습니다. 이런 은사를 가진 가정, 교회, 공동체는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마르다 같은 유형의 여성을 현모양처의 덕성을 가진 자매라고 칭찬할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참으로 바쁘게 삽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이 먼저 행동하고 싶어 하는 열심 때문입니다. 마르다 같은 일꾼은 참으로 귀한 행동하는 신앙인입니다.


2. 갈등 심화: 주여 내 동생에게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한편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밑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 듣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런 모습은 스승을 따라 배우는 제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 여성들에게는 참으로 희귀한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나 지금이나 일반 사람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여성상은 마르다의 모습에서 찾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시 사회의 규범을 어기고 마리아는 남자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에 가장 비위가 상한 사람이 있었다면 언니 마르다였을 것 같습니다. 지금 언니 마르다는 부엌에서 혼자 손님 음식 장만하느라고 정신이 없고 손도 모자라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한가하게 예수님 발아래 앉아 말씀 듣고 있습니다. 언니 마르다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동생이 얄밉기도 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속으로 참 못된 년이네! 언니가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자기 혼자서 뭐하노! 열심히 봉사하는 마르다 언니의 의가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마르다의 자기 의는 자족하지 못하고 동생 마리아를 판단하는데 까지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모든 손님들이 마르다의 우렁찬 목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주님! 동생 마리아를 좀 꾸짖어 주세요. 언니 혼자 일하지 않도록 명령하사 언니를 도와주도록 해주세요. 언니 마르다는 씩씩 그리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쳤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의 특징은 마르다처럼 자기 의가 강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의란 자기 자랑이요 자기 교만의 정신입니다. 자신은 남보다 잘났다고 자부하는 태도입니다. 봉사하면서도 자기를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처럼 수고한다고 은근히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만약 알아주지 않는다면 화를 낼 것입니다.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다른 이웃을 판단하는 경향도 강합니다. 자신은 의롭고 다른 사람은 불의하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자기 열심히 강한 사람들의 특징은 행동을 앞세우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행동파들에게 신앙적으로 치명적인 단점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는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바쁜 일에 분주하다 보니 주님과 조용히 교제하는  일을 소홀히 여기기가 싶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별로 가치 있게 여기지를 않습니다. 당장 효과가 안 보이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항상 우선순위 상 뒤로 미룹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주님과 가까이 가지 않으니 정말 중요한 주님의 마음을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으면서 생기는데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니 믿음이 생기지가 않거나 잘 성장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다거나 믿음이 약하다는 말은 주님의 마음을 잘 모르는 사람과 같은 의미입니다. 열심히 움직이는 봉사가 신앙생활의 중심이라고 잘못 생각하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예배드리는 일, 기도하는 일, QT, 순종 하는 일 등을 소홀히 여기기가 쉽습니다. 아니 이런 일을 무가치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바로 왕에게 내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하니 허락을 하라고 요구하자 바로가 너희들은 참으로 게으른 백성이로 구나 라고 욕을 했습니다. 예배를 게으른 사람이 하는 것으로 무시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목사를 노는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어제께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실 컨 먹어 배부른 경험을 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예수님이 아무런 기적도 행하시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여 물러가고 말았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섞어 질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하시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들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란 말씀입니다. 또 성경은 영생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아는 것이란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아는 체험적인 신앙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체험해서 아는 것이 주님의 일이요 영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도 모르면서 봉사하는 것이 주님의 일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르다는 열심히 봉사하지만 주님의 마음을 잘 몰랐습니다. 봉사한다고 바빠서 주님 가까이 가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도 모르면서 하는 봉사는 진정한 봉사가 아닙니다. 자기의 열심이요 자기 의요 자기 과시오 자기 자랑에 불과합니다.


3. 전환: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나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언니 마르다는 주님이 자신의 단호한 부탁을 받으시고 동생 마리아를 나무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상을 180도 빗겨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열심히 봉사하는 언니 마르다를 꾸짖으시고 동생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41-42“눅10: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눅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왜 주님은 열심히 봉사하는 마르다를 책망하시고 주님 말씀 듣고 있는 마리아를 칭찬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의 생명의 떡으로 오셨습니다. 주님 주시는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양식을 주심으로 우리를 살리려 오셨습니다. 밥을 매일 먹어야 우리 육신이 살듯이 영혼을 가진 우리는 매일 주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만 내 영혼이 배불러 오늘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 생명의 떡이신 주님이 이 가정에 심방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먼저 먹어야하지 하지 않겠습니까? 육신의 양식은 얼마든지 먹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 집에서 먹을 수도 있습니다. 시장에 가서 더 맛있는 것을 얼마든지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주시는 영혼의 양식은 지금 놓치면 다시 그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동생 마리아는 주님이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먹고자 주님 가까이 앉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언니 마르다는 주님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먹지 아니하고 자신이 준비하신 육신의 양식으로 주님과 다른 손님들을 먹이려고 분주했던 것입니다. 마르다는 육신의 양식을 먼저 앞세우는 사람이요 마리아는 영혼의 양식을 먼저 앞세우는 신앙인 입니다. 그러나 이 마르다와 마리아 두 사람의 신앙의 방식은 동과 서 만큼 큰 결과의 차이를 가져옵니다. 결국 언니 마르다는 주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또 동생을 비판하고 자기 의만 자랑하다가 주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먹은 마리아는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곧 십자가에서 모든 죄인들을 위해 죽으실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을 떠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자신의 귀하고 귀한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머리 위에 부으셨습니다. 이런 행위는 당시 가장 귀한 손님이 자신의 집을 찾아 왔을 때 최고의 예로 대우하는 당시의 풍습이었습니다. 옥합은 당시 처녀들이 시집갈 때 가지고 갈 지참금으로 수년 동안 조금씩 사모아 놓았던 값진 페르시아 산 향유를 담은 작은 옹기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헌신했습니다. 이 헌신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중에 깨달은 주님의 사랑의 힘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이 아름다운 헌신의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주님의 깊은 사랑을 모르는 제자들은 마리아아의 선행을 나무랐지만 오히려 주님은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복음이 전파 되는 곳마다 마리아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전파 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왜 주님은 마리아가 더 좋은 선택을 하셨다고 칭찬하셨을까요? 마리아는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하늘의 생명과 능력을 공급 받게 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음성을 먼저 듣고 주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능력을 힘입어 더 큰 봉사를 아름다운 헌신의 열매를 드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마르다는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기 정성으로 자기 진심으로 자기 열심으로 봉사하려고 했습니다. 자기 열심으로 하는 봉사는 얼마가지 못합니다. 하다가 스스로 넘어집니다. 마르다 보세요. 결국 동생을 비난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으로부터도 꾸지람을 받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는 포도나무와 가지와 같다고 비유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주님이시오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잘 붙어있는 것이 열매 맺는 비결입니다. 가지가 나무에 잘 붙어있으면 나무에서 생명이 공급되어 자연적으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교제는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르다는 자신은 가지인줄 모르고 나무에 붙어있는 것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많은 교회 신자들이 바로 여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친밀한 관계 맺는 일을 소홀히 하고 봉사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는 항상 썩어질 열매로 나타납니다. 마리아는 자신은 가지로서 나무인 주님께 잘 붙어있는  것이 하나님의 생명과 능력으로 공급 받아 열매 맺는 비밀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봉사는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능력을 먼저 공급 받기위해 예수님은 어떤 일보다 먼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관계를 잘 맺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마르다 보다 더 좋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4. 해지: 주님의 생명과 능력을 공급 받아야 함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우리는 오늘 마리아의 신앙을 우리의 신앙의 모델로 삼아야합니다. 내가 먼저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양식으로 배불러 먹고 그 힘으로 주를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양식을 먹지 아니하고 마르다 처럼 자기 정성, 자기 열심, 자기 힘으로 봉사하겠다는 생각은 오늘부터 부산 앞 앞 바다에 다 던지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육신의 양식을 먹는 일보다 영혼의 양식을 먼저 먹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교회 식사 준비하시는 분들 정말 귀한 봉사자입니다. 그러나 말씀 듣고 예배드리는 것보다 식사 준비하는데 우선순위를 두면 마르다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몇 분 늦게 육신의 양식을 먹더라고 괜찮습니다. 적어도 축도를 마치시고 나서 마무리를 해도 늦지 않습니다. 교회는 영혼의 양식을 먹는 더 좋은 길을 선택해야합니다. 육신의 양식은 집에 가서라도 얼마든지 더 맛있는 것으로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양식은 오늘 드리는 예배를 통해서 주님이 주십니다. 이것을 놓치면 마르다처럼 책망 받은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우리가 진정한 봉사가가 되기 위해 먼저 주님과 친밀한 관계 맺는 일에 먼저 투자 하십시오. 교회에서는 봉사보다 먼저 예배 입니다. 봉사보다 먼저 기도입니다. 봉사보다 먼저 QT를 통해 하나님 음성 듣는 입니다. 봉사보다 먼저 순종입니다. 봉사보다 먼저 주님께 가까이 가서 음성 듣는 것입니다. 주님과 가까이 해서 주님이 주시는 생명과 능력을 먼저 공급 받아야합니다. 주님 마음을 먼저 알고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할 때 진정 더 큰 열매 맺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 마리아의 신앙이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