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 자를 대응하는 법(수정본)
1. 본문: 롬 12:14-15
2. 명제: 그리스도인은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3. 제목: 핍박 자에 대응하는 법
가장 훌륭한 복음전도는 일상생활의 삶과 직업적인 생활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방식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이 “ 너희가 가진 이것이 무엇이냐? 나도 그와 같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할 때는 사람들이 우리 속에서 우리를 돋보이게 하는 어떤 특별한 점을 발견한 때입니다. 이론적인 신앙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단순한 이론적인 신앙만큼 기독교를 그릇되게 하고 해롭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점을 염두 해 두고 14절을 시작해 봅시다. 우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그들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결코 장미 빛 그림을 그려주는 인상을 주지 않습니다. 예수 믿으면 다시는 잘못되어 나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14절에서 “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 성경은 가장 악한 자를 대면시키면서 우리가 그 악한 자를 어떻게 대면해야 될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세상이 점점 더 선해 질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복음은 절대적으로 정직합니다. 이것이 이단과 참 복음을 구별시켜 주는 기준입니다. 이단들은 우리에게 오면 즉각 모든 병을 고칠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선전합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사형통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가장 불행한 일을 대비하게 만듭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리스도인은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핍박 자에 대한 그리스도인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첫 번째 원리는 우리는 항상 롬 12:1-2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사람입니다. 그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 말씀이 묘사하고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일반인들은 그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새로운 성품을 소유하기까지는 결코 이러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형태나 모양으로든지 핍박을 받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세상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합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속에 새로운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그 성품 때문에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을 받는 다면 여러분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15: 18-19“ 요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선한 일만하셨습니다. 행 10:38“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예수님은 고난당한 자를 건져 주시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주님을 미워했고 주님을 배척했습니다. 끝내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이 세상이 어떠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같은 일이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납니다. 핍박은 공개적으로 주어지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주어지기도 하고 노골적으로 주어지기도 합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핍박이 항상 같은 식으로 오는 것은 아닙니다.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 올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왕따 시킬 수도 있습니다. 욕설의 형태로 올 수 있습니다. 핍박이 꼭 공개적이고 육체적인 형태로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잔인한 핍박은 교활하고 지적이고 정서적인 형태일 것입니다. 핍박은 여러 방식으로 올 것이고 기이한 방식으로 올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핍박에 대해 우리의 대응은 어떠해야 합니까? “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그들을 축복하라고 말합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여기 축복하라는 말은 “ 그들에게 좋은 것을 말하라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은 다루시되 긍휼어린 방식으로 다루어 주십사라고 간구하십시오. 그런 다음 사도는 “ 저주하지 말라 ”우리의 본성은 핍박하는 자들은 저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저주를 멈추라. 우리는 여기서 저주하자 말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에게 저주가 내려오도록 부르는 일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위험은 악한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이 사람들을 저주해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 그들에게 저주를 내려 주십시오. 요청하는 대신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요청하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9:51-56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가니 그들이 예수님을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인 요한과 야고보가 ” 주여 우리가 엘리야가 행한 것처럼 불을 명하여 하늘로 쫓아내려 저들을 멸하라 명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주님! 저들을 저주하여 주옵소서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 꾸짖으시고 가라사대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도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여 왔노라 하시고 “여기서 이 교훈이 완백하게 드러났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 그렇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일을 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 그러니 저주하기를 멈추고 그 반대로 복을 내려 주십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핍박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긍정적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 신앙을 가장 철저하게 시험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이 교훈은 핍박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긍정적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앙갚음만 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은 분명 앙갚음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참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또는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자라는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태도로 그들에게 축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들에게 좋은 것이 임하기를 바라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먼저 상기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셨고 또 여러분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스스로 상기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과거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나면서부터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롬 5:10 ”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과거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딛 3:3”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우리 속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만한 것이 있었습니까? 정말 없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됨됨이대로 우리를 저주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실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이것이 하나님을 우리를 다루시는 방식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그 아버지 안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그 아들의 됨됨이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달려가 그를 영접하고 포옹하고 그 아들을 위해 모든 일을 했습니다. 그 아들이 사랑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이기적이었고 아버지를 경멸했으며 모든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영접했습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러니 우리를 핍박하는 자에 대해 우리가 과격하게 반응하고 싶을 때마다 하나님께 저주를 내려 주십사 하고 요청하고 싶을 때마다 멈추어 서서 ”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그와 같이 다루었다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사고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여러분은 핍박에 대해 본능적으로 대응하고 싶은 것을 멈추십시오. 핍박 자에 대한 그리스도인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두 번째 원리는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에 은혜에 대한 이 개념을 확고히 전제하면서 여러분의 핍박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고 그 정반대의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이 나를 이와 같이 대접하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에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후 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회심 전에 모든 사람을 ‘육체를 따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자기가 유대인임을 자랑했습니다.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그들을 깔보고 개처럼 취급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육체를 따라 사람을 보는 방식입니다. 우리도 본성적으로 다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다른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내가 핍박 자와 다른 모든 자를 새로운 방식으로 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다운 사고방식을 가지고 핍박 자를 바라보면 그가 저지르고 있는 죄와 그 죄를 저지르고 있는 죄인 사이의 생명을 좌우하는 차이를 구분 짓습니다. 그 죄에 대해 더 이상 말할 것이 없습니다. 핍박하는 것은 항상 그릇된 것입니다. 죄는 항상 악합니다.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죄인과 죄를 구별하여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행동 그 자체만 보고 그 사람에게 과격하게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 어째서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 이런 방식으로 처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은 그 사람의 그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그 삶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렇게 결론은 내릴 것입니다. “ 저 사람이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며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영적인 진리에 대해 소경이고 그의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방식들을 대적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요점에 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성을 잃어버린 어떤 사람이 어떤 이상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시작하는데 그 사람을 마치 현자인 것처럼 취급한다면 여러분은 매우 잔인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불쌍한 사람이 정신이 나갔고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에 그 사람에 대한 관용을 보일 것입니다. 우리는 핍박 자를 보고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 이 사람은 사단의 노예가 되어서 이와 같이 행동하고 있다. 그 사람은 마귀의 노예이다. 그 사람은 자신도 알지 못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가 나를 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그러나 그런 분류의 사람들이 내 주님을 똑같은 방식으로 대우하였다. 그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 없이하라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여라 “고 소리치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오직 한 가지 답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소경이었습니다. 고후 4:3-4”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리스도인은 항상 이런 식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핍박하는 저 사람은 자기들이 행하는 일을 알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점은 여러분의 가족 친지 친구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은 동일한 점입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알지 못합니다. 정신이 나간 사람에게 성을 내는 것이 그릇된 것처럼 그들에 대해서 성을 내는 것도 잘못된 거야라고 생각하는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취할 두 번째 단계입니다. 핍박 자에 대한 그리스도인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세 번째 단계는 이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을 소원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 정말 비극이야! 그들이 내가 이전에 빠졌던 그 상태 그대로네. 내가 구원받은 것 하나님께 감사하나이다. 저들도 구원받았으면 좋겠다. ”이미 하나님께서 구들에게 복을 주십사라고 기도하는 일을 시작한 것입니다. “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여러분은 그 사람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고 나서 사단의 올무와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고 지옥에서 벗어나 구원받도록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겠죠. “ 하나님께서 내게 긍휼을 베푸신 것처럼 저들에게도 긍휼을 베풀러 주십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들을 변화 시키시어 새롭게 영적으로 태어나게 새로운 성품을 주시고 다소 사람 사울처럼 저들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 “ 저들을 축복하라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위해 안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끔 유도할 것이고 그들이 구원받아 거듭나기를 기도하게끔 할 것입니다. 눅 9:51-56에서 예수님은 “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려 온 것이 아니라 구하려 왔노라 ”우리는 주님을 닮아야 합니다. 눅 23:34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스데반 집사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행 7:59-60”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여 주게 될 것이고 여러분 속에 하나님의 성품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