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영향력들
1. 본문 고전 15:12-23
2. 명제: 예수님의 부활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3. 제목: 부활의 영향력들
부활절 아침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라진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부터 지금까지 유대교인들은 안식일, 즉 토요일에 예배드립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약 20002000년 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아침을 계기로 하여 일요일을 주일로 정하고 예배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주일 예배가 사실 예수님의 부활의 결정적인 증거 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인에게는 사실 매주일이 부활 주일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이겠지만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가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십자가와 예수님의 부활이 전파된 핵심적인 복음의 진리였고 그 진리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인중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의 진리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세속 문화는 물질주의와 쾌략주의입니다.. 이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도 부활의 진리를 잘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의 영향력은 엄청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에게 미치는 영향력들은 무엇입니까?
1.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집니다.(11-19)
먼저 바울 사도는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라는 가정법을 사용해서 부활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전도와 믿음이 헛 것입니다. 모든 복음 전파자는 하나님의 거짓 증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전히 죄가운데 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예수 믿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 믿고 죽은 자도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죽은자 가운데 부활이 없다고 합니까? 오랫동안 죽음에 종노릇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 것만을 보아왔습니다. 죽음 앞에 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이 끝이라는 절망이 머리에 유전자처럼 새겨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잘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종 노릇하는 인간을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죽음은 끝이라는 생각은 마귀가 주는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거짓말에 믿음을 세우지 마시고 진리 위에 세우십시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을 인간의 상식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해서 세워야 합니다.. 기독교는 복음의 전파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복음 즉 기쁜 소식의 핵심이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인간의 죄가 용서받았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수가 있습니까? 우리의 믿음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죽은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4대 성인 가운데 한분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죄를 용서하기 위한 기초였다고 한다면 부활은 예수 믿는 자의 모든 죄가 다 씻음 받았다는 보증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은행에 돈을 넣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모든 죄가 용서 받을 기반이 열렸습니다. 마치 은행에 가서 계좌를 여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은행에 돈을 입금할 때 받는 통장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의지하여 예수님의 나의 구주와 주님을 믿으면 모든 죄가 다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증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너를 내가 의롭다 여기노라 죄 한번도 안지은 자처럼 여겨 주시겠다는 부활하신 주님이 보증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내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결정적인 보증서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내 믿음을 보증해 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여러 세상 종교들과 기독교의 차이가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백화점 왕 존 와나메이커 옹이 한번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그의 교회 주일 학교에 참석하였던 한 동양인이 말하기를 " 공자나 예수 그리스도나 다 같은 도덕적 인류의 선생이요, 사표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자기는 다만 공자의 도를 따르는 유교를 믿을 뿐이다"라고" 하는 말을 하였을 때 이 말을 듣던 와나메이커 옹은 정색을 하며 동양에서 온 그 젊은이를 향하여하는 말이 "공자는 역시 죽었으나 예수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 다른 점 "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부활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종교는 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관념이요, 이론입니다. 사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위에 세우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십자가와 부활의 사실과 능력의 그리스도 위에 세우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내 믿음을 보증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죽음의 권세 마귀의 권세도 어떤 세상의 힘도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 위에 세우져 있음을 확신하십시다. 믿으십시다. 선포하십시다. 주장하십시다. 아멘!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에게 미치는 영향력들은 무엇입니까?
2. 부활 능력을 누리게 됩니다.(20-22)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죽은자가 산자가 되었습니다. 사망은 첫인간 아담으로부터 생겼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의 죄로부터 죽음이 생겼습니다. 모든 인간이 죽은 것은 인간 조상 아담의 죄 때문입니다. 아담은 온 인류을 대표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생이 죄인 되었다면 우리는 좀 억울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억울해도 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운전수를 잘못 만나 그 운전수 때문에 버스에 탄 모든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운전수의 행동은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승객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행동입니다. 인간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태어나고 죄짓고 살다가 죽습니다. 죄의 삵은 사망입니다. 아담 안에서는 사망이 그 결론입니다.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까? 죄인인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은 죽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부활하시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죽으서야 했습니까? 죄인은 죄인의 구원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히5: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 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죄 없으신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죽으셔야 사망을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죽은 인간은 살게 됩니다. 인간 안에는 죽음이 기다리며 예수님 안에는 부활이 기다립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은 밀알 하나가 땅에 묻혀 썩는 것과 같습니다. 땅속에서 썩었으나 부활하여 새 생명의 종의 기원이 되셨습니다. 믿음으로 예수의 생명과 연합하면 부활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의 피, 예수의 영으로 예수족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소망이십니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십자가와 부활)은 오직 여러분과 저에 대한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붙잡고 나아가십시다. 주님의 나에 대한 사랑에 대한 확신 이것이 나의 승리의 삶의 원동력입니다. 다시 말하면 왜 예수님 안에서 모든 인간이 살게 됩니까? 예수님은 부활 생명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인생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문제는 예수님 안에 있어야하고 그 생명과 끊임없이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면 부활의 생명이신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십니다. 롬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8:11에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계속적으로 교제에 충실하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지가 나무에 잘 붙어있으면 나무로부터 생명을 받음으로 그 가지가 살아 열매 맺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가지입니다. 예수님는 나무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잘 붙어있는 것이 생명의 법칙입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부활의 주님과 잘 교제하는 비결이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할수록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가장 큰 원수였던 사망이 깨뜨려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죽은 것을 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죽은 나사로를 나사로야! 주님이 부르시자 죽은자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자를 부하게 하시며 소경 된 자의 눈을 뜨게 하시며 눌린 자를 해방시키려 오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다고 포기한 38년 병자를 향해 네가 낫고자 하느냐! 라는 예수님의 물음에 주님 내가 낫고자 합니다 라고 믿음의 손을 내밀자 3838년 동안 누워있던 죽음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걷는 인생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믿으면 온갖 중독으로 죽어가고 있던 인생들이 죽음의 쇠사슬을 풀고 새 삶을 사는 승리자로 고침 받습니다. 죽음 조차 깨뜨리신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예수 믿는 우리는 부활 생명을 소유한 가장 복된자요 능력자들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귀신 들린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주님 할 수만 있으면 내 아들을 고쳐 주옵소서 하자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더니 무슨 말인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하시며 고쳐주셨습니다. 아멘! 할수 있거 드니라는 식의 부정적인 말을 다 쓰레기 통에 넣어 버리십시오.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전에는 하지 못했던 기도도 할 수 있고 전도도 할 수 있고 나의 견고한 진들도 변화될 수 있고 믿음도 성장하고 나의 옛사람도 변화됩니다.. 부활의 주님이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능히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믿음을 사용하십시오. 믿는 자가 되십시오. 이 세상의 가장 큰 절망은 죽음입니다. 죽음 조차도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 환경, 마귀를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만을 진정 두려워하십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는 사람, 환경,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종교 개혁자 루터가 개혁의 말기에 지쳤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절망에 지쳐 누워있는데 아내가 어느 날 상복을 입고 방에 들어옵니다. 깜짝 놀란 루터가 아니 누가 죽었소? 했습니다. 아내가 질색을 하면서 예,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무슨 소리요. 아내가 하나님이 안돌아 가셨다면 당신이 그렇게 누워있을 리가 없지요.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내의 한마다기 루터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명을 다시 수행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에게 미치는 영향력들은 무엇입니까?
3. 부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23)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의 부활을 예고하는 사건입니다. 여기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첫 열매는 나머지 모든 것의 대표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은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입니다. 여기 부활의 순서는 첫째가 예수님이십니다. 그 다음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의 소유가 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소유가 된 자들은 바로 예수님 안에 있는 자요.. 예수님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모든 예수 믿는 자들이 다 부활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수 안에 계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단지 이생의 것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아 아니겠습니까? 즉 부활이 없다고 한다면 예수 믿는 우리는 거짓을 믿고 사는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장차 부활이 없다면 이땅의 것만 추구하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자가 됩니다. 죄짓고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잘난 자들입니다. 쾌세라 쾌세라로 사는 사람이 가장 현명한 자들입니다. 즉 동물적인 삶을 사는 자들이 가장 멋진 자들입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부활을 안 믿는 사람들 이 땅의 것만이 전부라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삶은 한마디로 동물적인 삶 그 자체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배가 신입니다. 배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 앞에 서야 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청교도인들은 단 한번 밖에 없는 인생 곧 지나가리 그리스도를 위해 행한 모든 것만이 영원할 수 있나니 그들은 영원을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였습니다. 어떤 어머니와 그녀의 어린 아들이 기독교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로마의 원형극장에 던져졌습니다. 잠시 뒤에 사자굴의 문이 열렸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은 으르렁거리면서 달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아들은 무섭게 달려드는 사자를 보고서 어머니의 품에 꼭 안기면서 울부짖었습니다. “엄마! 무서워요!” 어머니는 아들의 몸을 꼭 안아 주면서 조용히 위로해 주었습니다. “얘야! 눈을 꼭 감고 조금만 참아라. 그러면 곧 눈앞이 환하게 밝아 올 것이란다! ”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을 받아 감옥에 끌려가면서도 또 매를 맞으면서도 심지어는 사자굴 속으로 던져지면서도 기뻐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죽어도 천국이다라는 부활 신앙 앞에 세상도 감당치 못하는 승리자 된 것입니다. 부활 주님을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의 것에만 소망을 두고 사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보면 나의 기치관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돈, 집, 건강, 이런 눈에 보이는 땅에 있는 것들에게만 우선순위를 둔다면 여러분은 부활의 주님을 믿고 있는 것인지 한 번쯤 자문해 보십시오. 왜 우리가 죄를 미워합니까? 부활하신 주님 앞에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내 것을 가지고 남을 돕습니까? 부활의 주님이 우리에게 요청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시간을 내어 예배를 드립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왜 봉사합니까?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왜 전도합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를 믿는 자들을 가장 복되게 하며 가장 영광 스럽게 하며 가장 지혜롭게 하며 가장 위대한 삶을 살게 하며 승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순교자들, 헌신자들, 이들은 결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닙니다. 큰 상급을 받을 자들입니다. 이들이야 말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며 복음의 능력을 누리고 증거한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 15장에서 부활의 놀라운 진리를 증거하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부활의 이 아침에 이런 권면의 말씀을 하십니다.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돼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아멘! 그 부활의 소망 때문에 우리가 지금 주를 위해서 흘리는 땀과 수고와 봉사가 하나도 헛되지 않고 영광스러운 상급으로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이 부활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이천년에 이 땅에 오서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죽음에서 부활하사 지금도 살아 우리와 함께하시며 도우시는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신 주님을 찬양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